페이지 메뉴

레이블이 초국가주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초국가주의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역사지정학

  • 제목 :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역사지정학-

    저자 : 공임순 ( Im Soon Kong )
    발행학회 : 시학과 언어학회
    발행정보 : 시학과 언어학 19권
    발행년도 : 2010

    저작시기 : 2010년
  • 본문내용
  • 시학과 언어학 제19호, 시학과언어학회, 2010.08.pp.7~40.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역사지정학-
    공 임 순
    차 례
    1.국가주권의 전시와 자유민주주의의 스펙터클
    2.국제연합과 태평양동맹의 불안정한 동거와 공간표상의 재편성
    3.여행서사의 자기 회귀적 구조와 국가화
    1.국가주권의 전시와 자유민주주의의 스펙터클
    1949년 6월 남한에서는 국민보도연맹의 결성식이 거행되었다.국민보도
    연맹이 실제 만들어진 것은 4월 21일이지만 6월 5일 명동의 구 국립극장
    에서 결성식을 개최함으로써 공식적인 출범을 본 셈이었다.1) 이것은 국
    1) 국민보도연맹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논의되고 있긴 하지만 국민보도연맹을 전체 연구
    대상으로 한 기존 논의들은 의외로 적은 편이다.그것도 국민보도연맹이 국가에 의한
    민간인의 대량학살이라는 관점에서 국가의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의 행사로 파악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이 연장선상에서 국가억압기구의 창설과 재편 및 실행의 과정
    에서 국가보안법과 국민보도연맹을 연관시켜 국가보안법 체제로 다루는 연구들이 비교
    적 최근의 연구 흐름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국가보안법의 제정과 시행이 국민보도
    연맹의 결성과 공식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동시적인 관계로 접근해야 함은 재론
    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이 글은 국가억압기구에 의한 강제와 지배의 감시체제라는
    8 연구논문
    가권력에 의한 이른바 6월 총공세의 시작을 알리며, 국가주권의 현존을
    가시화한 대표적인사건으로 특기할 만하다.곧이어 벌어진 6월 6일의 반
    민특위 습격 사건, 6월 21일과 25일 양일간에 펼쳐진 국회 프락치 사건
    및 국회 소장파들의 긴급 체포, 6월 26일 김구 암살 등은 국가폭력장치의
    무차별한 공격성을 예증하기에 충분했다.2) 하지만 이것을 국가 파시즘
    내지 전체주의 정권의 속성만으로 환원해버릴 수 없는 것은 이 일련의
    사태들이 정확히 국가주권의 극화와 전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주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공적이고 관념적 구축물이다.이 가공
    적 정치체를 인지하고 체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주권이 편재된 ‘현
    실’로써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48년 정부의 수
    립 후에도 여전히 한반도의 전체 주민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38선 이남의
    주민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탁치와 단정 수립의
    파동을 거치면서 38선 이남에는 광범위한 중도파의층이 산재되어 있었
    고, 이들은 대한민국을 통일자주독립국가의 기준에 미달하는 불완전한 지
    역 정체로 간주하고 있었다.3) 따라서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이
    란 임시적/유예적인 것이었고 이들의 공통 지향 역시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이 불완전한 국가주권성을 탈피하여 온전한 근대 국민국가성을 회
    복 구현하는 것이었다.비록 이들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측면보다 국가주권성이 편재된 ‘현실’로서 내재화되는 과정에서 이 권력 장치들이 편성
    배분 재조직되는 양상에 주목한다.이는 국가주권이 ‘국민’적 정체성을 국민의 권리와 의
    무로 정위하게 되는 국가주권의 제작구성의 형성원리를 글로컬(glocal)한 관점에서 재
    고찰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2) 서중석은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역사비평사, 1996에서 국가보안법의 제정에 이은 ‘6
    월 공세’가 국가보안법 체제를 강고히 하는 국가 파시즘 체제의 일부로 접근하여 서술
    한다.그는 1948년부터 이어지는 1949년의 이 ‘6월 공세’가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되면서,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극대화되는 출발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3) 탁치 파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후로 하여 중도파들은 대한민국을 온전한 근대 국
    민국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국회의 소장파들은 물론 국회 바깥의 김구 및 김규식 계
    열의 중도파들 역시 적어도 1949년 이 시점까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하지
    만 1949년 6월의 총공세는 이들의 입지를 거의 소멸시켜,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에 대
    한 절대적인 지지와 충성을 표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9
    서는 이견차를 보였다 하더라도, 이들의 공통된 바람과 열망은 1949년 이
    시점까지 분명 상존하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1949년 6월의 총공세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에 대한
    이의와 불신을 전적으로 차단하는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이었다.이제
    누구도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을 의심하거나 불신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와 명령이 뒤따랐다.국민의 일반의지를 유일하게 위임받은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은 회의나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절대 가치와 명제
    로써 신성화되었다.이것은 사회와 개인을 국가주권이 행사되고 관철되는
    국민적 정체성의 투명하고 균질적인 장으로 만들겠다는 권력의지의 표현
    이자 기획 및 실행이었다.
    물론 그 권력의지와 실현이라는 것이 일관된 방식으로 작동하거나 단
    일한 효력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하지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권력의지와 실현의 매개된 장치와 테크닉들이사회와 개인을 권력이 행
    사되고 실천되는 권력의 마디와 통과점으로 재구축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렇게 행사된 권력의 장치와 테크닉들이 국가주권을 사회와
    개인의 우위에 선 초월적 입법자(주재자)로서 제작구성하게 되고, 이 제
    작구성된 국가주권의 편재된 ‘현실’이 역으로 그 사회와 주민을 법적 정
    치적 ‘국민’으로 등록 정위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
    다.4) 국민으로 동질화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제작구성된 국가
    주권의 편재된 ‘현실’이사회와 개인을 교환 가능한 대상, 이를테면 비교
    우위가 가능한 ‘국민’이라는 대상으로 주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후적
    효과이자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가주권의 광범위한 편재성은 근
    4) 국가주권이 ‘국민’적 정체성을 생산 창출하게 되는 제작구성에 대한 이 글의 입론은 국
    가와 국민을 민족의 본래성을 토대로 자연화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원리를 비판적으
    로 탐구해온 현재의 해석학적 논의에 힘입은 바 크다.국가와 국민이 국경을 경계로 하
    여 공통적인 역사와 운명을 겪어왔다는 자기 서사는 실은 근대적 산물일 뿐이며, 이 근
    대적 산물이 과거를 재발견하게 되는 사후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
    다.이러한 이들의 논의를 참조삼아 국가주권의 편재화 된 현실이 대한민국에서 갖는
    의미를 추적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10 연구논문
    대 국민국가의 주권이 지닌 양의성과 모순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해
    도 과언이 아니다.왜냐하면 국민의 합의와 동의에 의해 양도되고 위임된
    국가주권이 역으로 ‘국민’적 정체성을 구획하고 한정짓는 공통성과 차이
    의 유일한 가치척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국민들 간의 평등과 불평등의
    양립(불)가능성은 이 차이와 위계화가 균등화된 국민들 간의 양화된 차이
    이자 위치라는 점을 뚜렷이 부각하며 국민의 ‘권리’는 국가주권을 편재된
    ‘현실’로써 수용하고 체화하는 한에서 부여된 한정된 특권이자 의무를 대
    가로 한 비대칭적인 교환 가치임을 분명히 한다.
    국민보도연맹이 1949년 6월의 신국면에서 갖는 의미는 이 지점을 선회
    하고 있다.1948년 12월 1일에 법률 10호로 공포 시행된 국가보안법이
    1949년 12월 19일의 1차 개정을 거치는 동안 국민보도연맹은 국가보안법
    이 규정한 반국가적 행위자들의 민간포섭단체로써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
    추어가게 된다.5) “민주주의민족전선, 남조선노동당중앙정치위원회, 조선
    인민공화국,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국농민연맹, 남조선민주여성동맹,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 조선협동조합중앙연맹, 반일운동자구원회, 조선민
    주학생연맹 등과 전기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에 가입하여 동 결사를
    지원 육성하는 전국적 산업별 각종 단일노동조합 위원장 등과 조선문화
    단체총연맹에 가입하여 동(同)결사를 지원 육성하는 각 문화부문별의 조
    선문학가동맹, 조선연극동맹, 조선미술동맹.보건연맹, 조선교육자협회
    등의 위원장 또는 그와 동격자 등”6)뿐만 아니라 이에 가입하거나 (물질
    5) 국민보도연맹이 전향자들의 자발적인 민간단체로 발족했다고는 하지만, 국민보도연맹의
    운영주체는 이태희 서울지검 검사장을 비롯한 오제도, 선우종원, 정희택 등 공안담당검
    사와 서울시경의 김태선 구장, 김준연 국회의원, 양우정 연합신문사 사장 등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이러한 조직체계가 전면에 드러난 것은 1949년 6월의 결성식을 통해서였
    으며, 이후 각 도 단위의 지방지부가 결성되면서 그 조직 역시 전국적인 망을 갖추어가
    게 된다.강성현, 전향에서 감시 동원, 그리고 학살로-국민보도연맹 조직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2004.
    6) 오제도, 국가보안법실무제요 증보판, 남광문화사관, 1951, xxx-xxx쪽.오제도는 이들 단체
    들과 범죄주체를 세밀하게 선별 분류하여 이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의 시스템을 확립하
    고자 했다.경찰행정기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러한 권력 테크닉들은 경찰력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1
    적 심정적으로) 동조 공명한 모든 사람들이 잠정적인 국가보안법의 대상
    이 되는 상황에서, 자수와 투항 및 신고를 통해 이들을 대한민국의 완전
    한 ‘국민’으로 개변시키겠다는 국민보도연맹의 결성 이념과 목적은 국가
    보안법의 법적인 처벌을 사회와 개인의 신체와 내면에 각인하고 부식하
    는 항상적인 전향의 집합표상에 다름없었다.7)
    이처럼 5 10 총선거로 대변되는 남한 전 주민의 전국적인 투표행위가
    ‘국민’과 그 국가적 정당성의 기초가 되는 것만큼이나 이 합법적인 국가
    의 ‘국민’임을 증명하는 전향의 일상화와 내재화가 또한 ‘국민’을 재구성
    하게 되는 이러한 특정한 시기의 공세적 국면은 가정된 국가주권이 국민
    을 생산하고 관리하며 창출하는 파놉티콘으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8) 파놉티콘이 시공간의 규율화를 통해 피감시자를 일상적으로 통제
    의 행정기술화가 국가행정 전반으로 파급되는 경찰행정국가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7) 국민보도연맹의 전향자에 대한 감시는 사회와 개인을 국가의 법정 앞에 세우는 것과 같
    은 효력을 발휘한다.국민보도연맹은 이처럼 한 사회와 개인의 집합표상을 전향으로 만
    듦으로써 개인과 사회를 국가로 향하게 하는 시선의 수렴과 독점을 낳는다.따라서 국
    가가 설령 보이지 않는다 해도 국가는 이들 간의 관계에 내재하여 사람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한정짓는 가정된 ‘중심’이 된다.이러한 전향에 대한 문화정치사적인 연구는
    별반 없는데, 이에 대해 논의한 논문이 이봉범, 단정수립 후 전향의 문화사적 연구,
    대동문화연구, 2008이다.
    8) 5 10 총선거가 국가적 정당성의 기초가 되는 것은 un 감시하의 전국적인(물론 이 un
    의 감시를 거부한 38선 이북의 북한을 제외한) 총선거(이른바 유사 보통선거)가 실시되
    었다는 참정권의 보장과 대표/재현의 ‘국민적’ 동의와 표명에 있었다.un의 감시라는
    보편자의 인정에 의한 대한민국의 지역적 정치체는 “역사적 남조선 총선거가 실시되었
    고 5월 30일에는 이 나라에 국회가 생겼으며 헌법이 제정되고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박
    사가 선거되었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중외에 선포”했다는 동일한 레토릭
    을 동반하며, 대한민국/남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된 줄거리였다.이러한 국가적 합리
    성과정당화의 기획은 벤덤이 고안한 파놉티콘(panopticon)의 계몽적 기획과 상응하는
    측면이 있다.파놉티콘은 빛이성으로 모든 어두운 곳을 남김없이 밝히겠다는 계몽주의
    적 이상주의의 기획을 반영하고 있다고 푸코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계급 지위 연령
    지역 등을 초월해 대중의 일반의지만이 개인과 사회를 구속할 수 있다는 이러한 계몽주
    의의 이상은 지배의 합리성이 삶/신체의 전반을 통제 감독하게 되는 근대적 이성의 간
    지를 드러내는데, 누구도 이러한 권력 지배의 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이러
    한 근대적 이성의 역설적 도달점이 된다.그런 점에서 국가주권은 이러한 파놉티콘을
    가장 모범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지는데, 이 글은 이 점에 착목해 국가주권의
    파놉티콘화라는 용어를 사용해보았다.
    12 연구논문
    관리하는 권력 장치와 테크닉의 일부로써 디자인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국가주권의 파놉티콘화가 국가국민영토(38선으로 분열되었지만 법적으
    로는 통일되었다고 가정된)의 삼위일체화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외부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국가의지의 강력한 표명으로 읽힐 수 있다.하지만 국
    가의지의 표명이라는 것도 국가주권이사회와 개인에게 내속하여 발현될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환기한다면, 국가주권의 편재된 현실은 향후 국민
    보도연맹 가맹자들에 대한 국가의 대량학살마저 국가의 안위와 보호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는 국가의 초월적 모태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
    다.9)
    그렇다면 여기서 역류하는 질문은 모든 ‘국민’의 상위에서 ‘국민’적 정
    체성의 산실(조국이 어머니의 품으로 의인화되는 과정도 국가주권의 관
    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이 되는 국가주권이 자유민주주의의 기
    치 아래 합법화 정당화될 수 있는 경로와 절차이다.자유민주주의는 개인
    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최소한의 권리주장을 담지
    한다.이러한 자유민주주의가 국가의 초월적 외재성 아래 전시 효과로만
    존재할 수 있는 데는 국가주권의 가정된 편재성이 일지역적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실로써 보편성을 띠고 나타날 수 있는 한에서이다.마치 화폐
    가 하나의 상품형태로써 전 지구적인 권위를 띠고 상품들의 교환과 유통
    을 가능하게 하는 표상으로 그 지배의 총체성을 획득하듯이, 국가주권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지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표상과 보편화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이런 보편성을 경유하여 특수한 국가주권의
    편재된 ‘현실’이 보장되고, 일정한 영토의 ‘국민’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
    로 억압하고 종속하여 생사여탈권을 쥔 유일한 권력으로 표현하는 수렴
    과 확산의 공간화가 이루어진다.국가보안법의 실무관료였던 오제도가 국
    가보안법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아래와 같이 주장할 수 있었던 데는
    9) 한국전쟁기 국민보도연맹의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김동춘, 전쟁과 사회, 돌베개, 2 과
    김선호, 국민보도연맹사건의 과정과 성격, 경희대 석사논문, 2002를 참조할 수 있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3
    이러한 국가주권의 전 세계적인 인정과 수용의 보편 구조가 전제되어 있
    었다.
    우리 국가는 국내적으로 국민총의로 결집된 역사적 국회를 통과한 국헌에
    의거하여 수립 이후 절대 대다수인 48개국의 승인을 받아 한반도 급 기(期)
    부속도서 전역에 긍(亘)해 통치권을 행사하는 당당한 성스러운 독립국가로써
    세계열강에 일원이 되어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삼천만 배달민족은 아 대한
    민국을 반세 위에 세세(世世)토록 확고부동한 체제를 갖추어 금후 다시 여하
    한 외국에 대하여서도 그 침범을 허용하지 못하게 수호 발전시킬 중차대하
    고 성스러운 영광의 의무를 다 같이 자부하며 총진군하여야 될 것임에도 불
    구하고 (중략) 여직것 대한민국을 단정운운의 불온위험사상을 일소하지 못하
    고 이북 괴뢰 집단과 동등시하여 그 위에 미소양군정시 사용하던 초연한
    남북통일이라는 미명하에 국헌을 부정하고 이런 반국가주의운동을 전개함
    을 애국지사라고는 도저히 긍정할 수 없고 당연히 본법의 단속대상으로 하
    며 민족정의를 살려 엄중처단하여야 됨을 재언 불요일 것이다.10)
    그는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이 “국민총의로 결집된 역사적 국회를 통과
    한 국헌”에 의해 그리고 “절대 대다수인 48개국의 승인”을 받아 당당한
    “성스러운 독립국가”로 “세계열강에 일원”이 되었음을 자부한다.전후 세
    계질서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삼권분립과 개인의 자유
    로운 의사표현이 “국민총의로 결집된 역사적 국회”라는 말로 개인(시민)
    에 의한 법의 헌정/구성의 보편적인 기본권을 인정하는 듯하면서, 이는
    곧 “우리 배달민족의 독립국가”이며 “기미 삼일독립정신을 계승한 신생
    대한민국의 국가관념”을 방어하고 “절대 대다수인 48개국의 승인”을 받
    은 국가주권의 신성성을 관철하기 위해 언제든 본법(국가보안법)에 의해
    철회되고 “단속”되며 “엄중 처단”될 수 있는 법적 예외의 대상에 지나지
    않음을 그는 일관되게 주창한다.“국가보안법은 우리 대한민국을 보안하
    기 위해 제정된 특별형법”임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에서, 법이 기술화/또
    는 사실상 정지되고 국가주권을 매개하는 권력이 헌정/구성의 국민적 기
    본권을 초과하여 국가주권이 ‘국민’을 선별하고 구획하는 절대 명제가 되
    10) 오제도, 앞의 책, xxx-xxx쪽.
    14 연구논문
    고 있음을 간취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이러한 국가주권의 신성화와 절
    대화가 이처럼 국제연합의 보편적 장소를 토대로 확립되고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연합이 보편적 장소를 차지하는 데는 적지 않은 균열과 비
    약이 뒤따라야 했다.이를 2장에서는 국제연합과 태평양동맹의 불안정한
    동거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할 예정이다.다음 3장에서는 여행기(기
    행문)의 특정 서사양식이 단지 문학상의 하위 장르가 아니라 공간표상의
    권력적 생성과 매개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 양상을 조병옥의 특사유엔기
    행을 대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인데, 국가행정의 전문기술관료로서 조병
    옥이 유엔특사라는 그의 대표/재현성의 위치에서 공간표상의 냉전적 네
    트워크를 그려가게 되는 과정이 규명된다.11) 마지막 4장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지구-지역-국가의 중첩된 공간표상의 조형술이 국가
    주권의 자기 회귀적 순환과 참조의 거울상이 되었던 특정 시대의 사회정
    치적 맥락과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이 일련의 전개는 1장에서 제시한 국
    가주권의 문제설정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2.국제연합과 태평양동맹의 불안정한 동거와 공간표상의 재편성
    오제도가 국가보안법과 국민보도연맹의 당위성을 시간적으로는 삼일운
    동의 정신에서, 공간적으로는 48개국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합법국가에서
    찾았음은 1장에서 이미 설명한 바다.시공간의 역사적 통시성과 동시대적
    인 공간성은 국가변증법의 두 축을 이루는 것으로, 무엇보다 일지역의
    11) 이 글에서 공간표상은 공간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공간을 재현하고 표상하는 지
    이미지의 생산 및 유통과 재조정의 효과이자 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며, 이런
    점에서 여기서 사용하는 공간표상은 인간의 실천과 행위가 교직되는 지식과 관념의 복
    합체임을 밝혀둔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5
    특수한 국가주권이 동시대적인 전체성과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
    를 보증하고 확정할 상위의 주권 모델이 필요하다.상위의 보편적 중심은
    특수한 일지역의 국가주권을 작동시키는 대문자의 장소가 되고, 이 보편
    의 장소를 경유하여 일지역의 특수한 국가주권은 그 정당성과 합법성을
    획득할 수 있다.이런 점에서 보편의 장소는 특수한 이해관계들의 상위에
    서 특수한 이해관계들을 매개 지양하는 보편적 이해관계의 주재자/입법자
    로서 특권적 권위와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이 보편적 이념과 원리의 구
    현체로서 전후에 등장한 것이 국제연합이다.국제연합은 전후 세계 질서
    의 재편과 구축을 주도하고 입안하는 초국적 중심으로써 지역적이고 개
    별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세계평화와 인류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을
    실현하고 추구하는 역할로써 기대되고 이월/위임되었다.하지만 현실은
    국제연합이 국가 간의 상호 협의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그마저도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충돌하면서 합의
    와 공조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국제연합의 보편적 권위
    는 훼손과 오명을 피할 수 없었다.12)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많은 구식민
    지 지역들의 탈식민화에 대한 욕망은 이러한 국제연합의 보편성을 시험
    대에 올리게 했다.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와 희랍 및 발칸의 제
    지역들에서 벌어진 탈식민화 저항과 해방 운동은 국제연합이 제국주의의
    특수하고 분파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13) 특히
    12) 보편이란 특수들이 그려내는 특정한 배치와 관계의 산물이다.다시 말해 보편은 불변
    의 위치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들의 우연한 사건과 실행들이 배열되는 가운데,
    특수들과 관계맺는 가변적인 위치성인 것이다.하지만 이 특수한 자리배치가 보편의 장
    소로 상정되고 상상될 수 있는 데는 특수를 위임/이월하는 대표/재현의 권능 때문이다.
    이 대표/재현의 권능을 전후의 국제연합이 맡았다는 사실은 국제연합이 특수한 이해관
    계들의 장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연합의 대표성과 재현을 부정 무시할 수 없게 하는 힘으
    로 작용했다.미소의 각축에도 불구하고 미소 모두 국제연합을 탈퇴하지 않음으로써 전
    후에 팽배했던 미소 한 진영의 탈퇴와 국제연합의 지속적인 해체설은 사라졌지만, 이러
    한 국제연합에 대한 대표성과 재현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에 있다.
    13) 구식민지 지역들의 탈식민화 해방 투쟁과 저항 및 약소민족의 유대를 통한 인민주권의
    16 연구논문
    유럽 부흥을 위한 미국의 노력은 유럽 국가들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식민
    지적 지배와 침략을 저지하기는커녕 묵인하거나 심지어 동조한다는 불만
    과 의심을 낳았다.여기에 덧붙여진 미소간의 냉전은 국제연합이 단지 개
    별적이고 진영적인 지역체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그 지역체의 연장으로
    기능한다는 인식을 갖게 했던 것이다.14) 이러한 국제연합의 위상 저하는
    공평한 중재자로서, 특수한 이해관계를 이월/위임받은 초국적 보편자로서
    지역 간 현안을 해결할 국제연합의 능력마저 의심케 하는 일이었다.이는
    한반도와 같이 분단과정쟁의 이해당사자가 직접 맞서는 지역에서는 더
    욱 문제시될 수밖에 없었다.1947년 9월 한반도의 문제가 국제연합에 이
    관된 후 미국의 주도로 1948년 1월 8일에 입경한 국제연합조선위원단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러한 의구심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오기영은 “un총회가 비록 46대 0으로 조선문제를 가결하였고 그 결의
    대로 추진하려 하나 막상 조선에 벌어진 냉엄한 현실은 1대 1이라는 그
    것임을 간과”할 수 없으며 “위원단이 북조선 혁명에 대한 허다한 절찬과
    남조선 비민주 상태에 대한 신랄한 비난을 소련 대표에 의하여” 듣고 왔
    원리에 대한 구식민지 지역민들의 요구와 실제 현실과의 괴리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인
    빨치산과 월남인, 이승만의 재현/대표성의 두 기표, 스캔들과 반공국가주의, 앨피,
    2010에서 다룬 바 있다.이 글에서는 해방기의 시기별 분절 국면에서 한반도의 주민들
    이 초창기에 보여주었던 식민지 내지 구식민지 지역 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전후의 미소
    에 의한 포스트 제국 체제와 관련하여 변화되는 양상에 착목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했
    다.
    14) 1945년에 이미 연합국의 동맹관계는 부분적인 와해가 일어났으며, 이러한 동맹이 와해
    와 대립으로 바뀌어 냉전으로 돌아서게 되는 시점은 약간의 편차가 존재하지만, 1947년
    월터 리프만이 ‘냉전’을 제목으로 한 글을 처음 발표하면서 1947년 가을부터 사람들은
    급속하게 이 냉전 체제를 인식하고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이 월터 리프만의 책은 곧
    박기준에 의해 남한에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그만큼 월터 리프만의 책이 갖는 당대
    의 파급력과 남한 지식인들의 세계 정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말해주는 증거이다.다시
    말해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이를 해석하고 판단할 인식틀이 필요했다는 방증이며,
    이것이 월터 리프만의 책에 대한 남한 내 수요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박기준이 번
    역한 월터 맆맨, 냉정전쟁, 고려문화사, 1948에서 그는 1948년 한반도의 첨예한 사안이
    었던 미소 양군 철퇴와 관련된 월터 리프만의 입장을 전하면서, 이를 한반도의 현실을
    암시하는 준거로 삼고자 했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7
    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남조선에 와서 그 비민주상태는 볼 수 있을 것
    이나 아마 북조선에 가서 그 역사적 민주혁명을 보고 이것을 세계에 보
    증하는 기회는 없을 것을 짐작할 때 이러한 추리의 산물은 결국에 있어
    서 장차 미국이 남조선에서 행할 대조선 정책이 un총회 내의 미국 지지
    국가군의 지지에 의하는 형식 하에 시행되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기대”
    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를 강하게 표명하였다.나아가 그는 결국 이것이
    “하나의 통일정부가 아니라 두 개의 분열정부”를 의미하며 “서로 자기가
    지지하는 정부의 육성과 그 기반의 강화를 위하여 38장벽은 철폐가 아니
    라 더욱 철벽화”되고 말 것임을 역설하였다.15) 오기영의 말처럼 국제연
    합조선위원단은 남한만의 총선거를 권고 지원하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1948년 2월 26일 국제연합 임시총회에서는 이 소총회의 보고서가 통과됨
    으로써 단정 수립은 현실화되었다.오기영만이 아니라 남한만의 총선거와
    단정 수립에 반대하던 사람들에게 국제연합은 당파적이고 국지적인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지역체의 연장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16)
    국제연합이 지역적이고 분파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보편적 윤리와 이
    념의 대행자/구현자로 자리 잡지 못하는 이러한 현실은 국제연합을 통한
    해결책보다는 민족의 자주적 역량에 의한 문제 해결과 대책을 끊임없이
    요청하게 만든 원인이었다.박기준은 “본시 u n이 발족할 때의 정신과
    골자는 세계평화의 추진에 관하여 국제사회의 거지구적인 조직방법을 강
    15) 오기영, un과 조선독립-내조위원단에게 주노라, 신천지, 1948년 2월, 30쪽.
    16) 해방기 국제연합과 국내의 세력 진영 간에 국제연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다룬
    기존연구는 필자의 견문이 짧은 탓인지 찾지 못했다.위의 본문에서도 밝혔듯이, 한반도
    의 문제가 국제연합으로 이관되고 나서, 국제연합의 결정 사항들은 미소정책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정세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중도파를 비롯
    해 좌우 양 진영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제 3차 파리총회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
    부로 대한민국을 승인하는 인정투쟁과 관련해서,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이 글
    은 중도잡지로 알려진 신천지를 중심으로 다른 잡지 및 신문들을 참조하면서 이와 관
    련한 변동의 지점들을 읽어내고자 했다.
    18 연구논문
    구하자는 데 있었다는 것이 동 헌장을 일독하는 사람들의 인상”이었지만,
    그러나 “u n의 사업은 제 2차 세계전쟁에 대한 포괄적 평화체제도 서기
    전에 가장 서실적(緖實的)으로 이 문제 저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미소는 자가선전을 위한 절호의 무대로, 특히 가맹국의 다수를 믿고 있
    는 미국은 u n을 소련 고립화의 무자비한 수단 도구로서 생각”하여 “평
    화도래와 함께 국제사회의 진정한 평화사업의 추진기관이 될 u n을 위
    하여 통분”해마지 않는 중소 가맹국들의 입장을 당면한 조선의 현실과
    결부시켜 전하고 있다.국제연합에 대한 박기준의 이러한 비판적 시선은
    1948년 12월에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이 논의될 제 3차 파리총회로까지
    이어져, 박기준은 만약 대한민국이 국제연합의 가맹국이 될 수 있다면 그
    것은 미국 지도하의 un에서 “소련이 이탈해 슬레브 연맹”을 만드는
    것과 동궤의 과정일 것이며, 이렇게 되면 “u n은 벌서 본래의 거지구적
    성격을 상실”하여 “un을 무대로 통일 조선을 기도한다는 것은 이북 정
    부가 소련의 불록 안에 편입될 것을 생각”할 때 국제연합의 쇠퇴와 와
    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제연합 참가가 한반도의 주민이 희구하는 ‘통일과
    업’과 ‘통일조선’을 불가능하게 함은 물론 “처음에는 미소의 외세에 의해
    다음에는 이 외세에 의존하여 아부하는 남북의 두 정부에 의하여 분할
    되고 파괴되어가는 하나의 조국이 걸어가는 고난의 자취를 혈루를 머
    금고 응시”해야 하는 막다른 지경에 서게 될 것임을 적시하고자 했다.대
    한민국 정부의 승인이 논의되던 파리의 제 3차 국제연합 총회는 그래서
    “남북 양 정권이 각기의 대표를 파견”하여 “조선인이 참석할 수 있는 귀
    중한 국제무대에서 남북과 좌우로 대립된 한줄기 백의의 혈족이 수륙만
    리의 이경에서 골육상쟁”하는 대립과 분열의 현장으로 각인되고 만다.대
    한민국 정부 승인이 초래할 국제연합의 이러한 권위 손상과 대표성의 상
    실은 국제연합의 이상적 기획인 세계평화와 초국적(지구적) 질서의 수립
    이 좌절되는 지역적 패권주의화의 길로 치닫게 되는 제 일보였다.박기준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9
    은 이 때문에 국제연합에서 대한민국 정부 승인이 갖는 국제정세의 판도
    변화를 국제연합의 위상 하락과 결부시켜 논의하고자 했고, 국제연합에서
    대한민국 정부 승인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미칠 파국적인 결과를
    염려했다.17)
    국제연합에 대한 한반도 주변부 지식인들의 기대와 좌절은 국제연합의
    위상 추락과 급격한 지역 재편의 움직임 속에서 국제연합과 지역동맹의
    불안정한 동거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세계에 대한 해석은 곧 자기구성의
    일환이며, 이러한 자기구성의 서사는 세계에 대한 특정한 공간표상의 재
    편성과 해석을 촉진시키게 된다.그런데 이러한 특정한 공간표상의 재조
    정과 구축이 1948년 12월 12일 제 3차 파리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공
    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이 지역 재편의 공간표상에 대한 헤게모니를 대한
    민국 정부 수립과 승인의 주창자들이 거머쥐게 되었다는 사실은 지금까
    지의 세계 해석과는 다른 질적인 전환을 예비하는 움직임이었다.
    국제연합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은 이승만이 천명한 대로 “un총회에서
    법적 승인을 얻음으로써 완전히 산 사람이 된 것”이며, “법적 승인을 얻
    지 못하면 법률상 보호를 받을 수 없고 타인을 고소할 수도 없는” 죽음
    과 삶의 갈림길이었다.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먹고사는 것만으로써
    완전한 산 사람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이 합쳐진 완전한 사람”을 탄생
    시키는 법적 권한과 권리의 부여이자 합법과 비(불)법의 척도였던 것이
    다.18) 국제연합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을 이렇게 법적 형상으로 개념화하
    고 조직화하는 것은 구성된 외부로서 필연적으로 무법 내지 불법의 주체
    와 영토를 지역적으로 투사하게 된다.국제연합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이
    이루어지자, 곧이어 “소련군이 철퇴하는 순간부터 38도 경계선 이북에 하
    등 정부도 인정하지 않는다.우리는 그 상실된 지역에 우리의 권한을 확
    대할 의도이다.그리고 우리는 이를 평화적으로 수행할 것을 원한다.우
    17) 박기준, 남한 신국가와 세계-대한민국과 un, 신천지, 1948년 8월, 16쪽.
    18) 대한민국 유엔승인 경축대회, 전국에서 개최, 서울신문, 1948년 12월 26일자.
    20 연구논문
    리는 북한인민과 투쟁할 것을 원하지 않는다.그러나 북한의 인민들이 합
    법적 정부의 권한에 저항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된
    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한민국 외무당국자의 성명서는 이를 고스란
    히 반향하고 있다.19)
    합법과 비(불)법의 경계가 법적 권한과 권리 밖의 존재에 대해 갖는 정
    복과 침략 나아가 절멸의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은 국제연합의 지역적이고
    분파적인 이해관계를 비판하며 국제연합의 보편적 권위에 문제를 제기했
    던 앞선 주장과는 일견 대치되는 국제연합의 완전한 추인과 긍정의 퍼포
    먼스였다.이를 퍼포먼스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제연합의 대
    한민국 정부 승인 이후 한반도의 통일과 미소 양 점령군 철수를 감시하
    고 확증하기 위해 국제연합 총회의 결의에 따라 한국에 내한한 유엔(신)
    한국위원단에 대해 보인 정부당국자들의 부정적인 태도와 인식 때문이다.
    정부당국자와 유엔(신)한국위원단의 불협화음과 마찰은 유엔(신)한국위원
    단의 일원이었던 시리아 대표의 사퇴와 귀국으로 표면화되었는데, 그는
    자신들의 임무가 “화평통일”에 있으며 “무력행사는 위험하고 또 불가하
    다.거듭 내 개인의 의견이지만 전 세계를 통해서 무력행사란 그 목적 자
    체를 잊어버리게 해 왔다.따라서 반드시 화평의 길”이라야 한다는 의견
    을 피력하고,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그 실현방도를 찾지 못하면 존
    재할 의의가 없다.”는 말로 정부당국자와의 사이에 문제가 없다는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견차를 시사하며 귀국길에 올랐다.20) 이는 “사실적
    법리적”으로 유일한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만이 통일의 단독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법적 개념화의 일원화와 전체화가 빚어낸 파열음이었다는 점
    에서, 국제연합의 보편적 권위가 필요에 따른 선택과 취합의 방식으로 대
    19) 張澤相 외무부장관, 소련군 철퇴순간부터는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언명, 평
    화신문, 1948년 12월 22일자.
    20) 무길 유엔한국위원단 시리아 대표, 출국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와 위원단간의 의견
    차이를 부인, 자유신문, 1949년 3월 26일자.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1
    한민국 정부당국자에게 수용되고 절취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21)
    하지만 “유엔한위가 추진시키려는 남북통일의 구체적 방법에는 1.이북
    정권과의 교섭 추진의 길 2.유엔을 통하여 모스크바와 직접 절충하는 길
    등이 있으나 두 가지가 다 불가능한 방안”이며 “후자는 목하 추진시키고
    있으나 모스크바로부터의 향응(響應)이 전연 없고 전자의 길은 유엔 승인
    하의 대한민국이 현존하고 있는 이상 공식적으로 이북 정권과의 사업 협
    의는 모순당착”이라는 이승만의 발언은 국제연합의 지역적이고 분파적인
    이해관계에 대한 부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법적 정의의 형
    상화와 개념화로 재전위되고 재편성된 위치변환의 결과였다.22) 다시 말
    해 국제연합의 지역적이고 분파적인 이해관계는 오기영과 박기준에게는
    국제연합의 손상된 보편성에 대한 증좌였던 반면, 대한민국 정부당국자와
    주창자에게는 국제연합의 보편성이 실현되고 관철되는 세계사의 일부로
    서 이해되고 재해석되었던 것이다.
    유엔(신)한국위원단을 맞이하는 환영사에서 이승만이 국제연합의 대한
    민국 정부 승인을 축하하면서, “이 성공은 정의와 민주주의의 성공”이며,
    “불행히 지금 온 세계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두 사상이 충돌되는 냉정
    전쟁에 휩쓸리고 있으니 이 큰 투쟁에는 나라마다 개인마다 두 가지 중
    에 한 가지만을 택하여야 할 것이요, 중간 길은 없어야 될 것”이라고 주
    장했다.이것이 유엔(신)한국위원단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승만의 언
    급은 유엔(신)한국위원단이 이러한 원칙 하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자 “공산주의를 접수하는 것은 노예의 속박을 밟는 것이니 나라나
    개인이 다 그 자유와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자유와
    독립을 대표한 민주주의를 붙잡고 기왕부터 투쟁”하여 나온 자유민주주
    21) 尹致暎, 유엔한국위원단과의 협의에서 북한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 서울신문
    , 1949년 3월 10일자.
    22) 이승만 대통령 임병직 외무부장관, 유엔한국위원단 활동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
    , 경향신문, 1949년 4월 18일자.
    22 연구논문
    의의 수호자로서 대한민국을 분절 표상하는 것이었다.이런 측면에서 유
    엔(신)한국위원단의 북한 정권(단체)과 모스크바를 통한 접촉 시도는 국
    제연합의 분절된 선을 월경하는 비(불)법한 일이었고, 이러한 비(불)법을
    용인할 수 없다는 이승만 나름의 표현이었다.23)
    이 점은 국제연합 한국위원단 보고서 xxx-xxx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에 입경한 유엔(신)한국위원단이 임무를 마친 직후인 1949년 7월 29
    일에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국제연합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파리총회에서 내세운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한국) 정부
    는 북한정권이 un총회에 의하여 불법화되었으므로 위원단이나 (한국)
    정부는 북한과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완고하게 주장하였다.또한
    (한국) 정부는 소련정부가 북한정권을 해체하고 위원단 감시 하에 한국정
    부가 북한에서 선거를 실시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설복하기 위하여 위원
    단은 오직 소련정부만을 상대로 교섭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위
    원단의 중재 역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시각이 위원단의 인식과 일치하지
    않았음을 서술하고 있다.24) 이러한 갈등과 마찰의 대립상은 이 시기 남
    한 언론들의 심심찮은 기사거리이기도 했지만, 이 간극의 기저에 흐르는
    보다 더 큰 관점의 차이는 이승만과 대한민국의 주창자들이 국제연합의
    보편성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지역 간 동맹을 통한 진영 간의 싸
    움이 불가피하며, 이 최전선에 국제연합이 수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대한민국이 38선을 경계로 공산진영의 위성국인 북한과 맞서고 있다는
    위기감과 자부심의 교묘한 착종이 빚어낸 자연스런 결과였다는 점에 그
    원인의 일단을 돌릴 수 있다.25)
    23) 李承晩 대통령, 유엔한국위원단 환영국민대회 석상에서 공산당과 타협하지 않고 통일
    을 이룰 것이라는 내용으로 환영사, 연합신문, 1949년 2월 15일자.
    24) 국제연합한국위원단, 국제연합한국위원단보고서 1949 1950, 대한민국국회도서관,
    1965, 92쪽.
    25) 대한민국이 어떤 의미에서 국제연합(un)이 세운 국가라는 관념은 언제나 긍정적인 함
    의와 내포를 수반하지 않는다.이 시기에 광범위하게 주장된 국가주권의 자율성에 대한
    시각과 상치되는 측면이 존재했기 때문이다.위의 본문에서 밝혔듯이 국제연합을 바라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3
    태평양동맹의 구상 배경은 이러한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태평양동맹
    은 1949년 3월 18일 미국을 비롯한 조약체결 12개국의 수도에서 일제히
    발표된 대서양조약기구(당시에는 대서양동맹으로 더 자주 회자되었다.)와
    그 지역화를 본뜬 분절적 공간 구획의 일환이었다.26) 미국과 유럽의 안
    보동맹이 대서양조약기구로 명문화되었듯이, 태평양 지역도 대서양과 같
    은 안보동맹의 네트워크가 형성 편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리핀의 키
    리노와 대한민국의 이승만 그리고 중국 국민당 영수인 장개석의 일치된
    공감과 원조 아래 1949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제창되기 시작했다.이 포
    문을 연 것은 필리핀의 키리노이지만, 이에 대한 적극성의 면에서 이승만
    은 이들을 초과하는 열의를 선보인다.이승만의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는
    3월 20일 키리노의 태평양동맹 결성에 대한 입장이 표명되자마자 3월 23
    일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담화로도 재확인된다.이 담화에서 그는
    “태평양동맹이 가맹국의 활약여하에 따라서는 유럽 국가의 안전보장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며 “일개(一個)를 위한 전부(全
    部)요, 전부(全部)를 위한 일개(一個)”가 되는 “이기적 동기를 초월한 평
    화달성”의 전 단계로써 그 의미를 지닌다고 천명하였다.27)
    태평양동맹에 대한 이승만의 고무된 기대는 미국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일단 제지되었고, 결국 1950년 5월 26일 대한민국과 중국 국민당을 제외
    한 동남아시아회의로 낙착되고 말았지만, 이 과정에서 태평양동맹 결성의
    보는 서로 다른 시선은 국제연합의 승인에 의한 대한민국의 국가주권화가 가져올 위험
    성을 시사한다.하지만 역으로 국제연합과의 강력한 의존성이 국제연합에 대한 대한민
    국의 집단적 자위권(안보권)을 주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의 정부당국자들과 주창자들의 역전된 보상감이 자리한다.이 부분은 향후 이승만의 재
    현/대표성과 국가주권의 인격적 신성화, 세속적 초월화와 관련하여 다시 재고해볼 부분
    으로, 이 논문에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다.
    26) 노기영, 이승만정권의 태평양동맹 추진과 지역안보구상, 지역과 역사, 2005는 이승
    만의 태평양동맹 구상의 배경을 외교사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하지만 이 글은 태
    평양동맹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외교사나 정치사의 측면보다 이것이 국제연합과 동거
    할 수 있었던 공간표상의 재편성과 구축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27) 이승만, 태평양동맹에 기대함, 1949년 3월 23일자, 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 공보처,
    1953.
    24 연구논문
    의의와 향후 일정 및 그 경과에 대한 보고와 소개는 매체의 여하를 가리
    지 않고 반복적으로 활자화되고 언표화되었다.이러한 태평양동맹에 대한
    지의 생산과 유통은 공간에 대한 상상력과 지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
    하고 순환시키는 공간표상의 재편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공간표상
    의 조형술이야말로 사회정치적 변화 국면의 지표이자 전거로서 다루어져
    야 할 것이다.더구나 매체간의 참조와 변용 및 이종교배를 통한 권력적
    생성과 매개 장치로써 이러한 공간표상의 재편성은 공간이 인간의 신체
    감각을 주조하고 조형하는 중심기축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
    은 더욱 배가된다고 할 수 있다.소설과 서사는 현실의 단순한 반영은 아
    니지만 세계에 대한 윤곽과 형상을 보존하며, 지배를 규범화하고 정교화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빌린다면, 다양한 방식
    으로 이루어지는 서사의 양식들은 이러한 공간표상의 재편성과 상상력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28) 3장은 이러한 공간표상의 재편성과 조형술
    이라는 측면에서 여행기의 서사가 갖는 특정한 공간적 네트워크를 행정
    적 관료기술의 일부로서 검토하게 될 것인데, 이 중심에 조병옥의 여행기
    가 자리하고 있다.
    3.여행서사의 자기 회귀적 구조와 국가화
    국제연합이 대한민국의 합법성과정통성의 근거가 되고 있음은 앞에서
    28) 에드워드 사이드, 박홍규 역,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1999는 소설과 서사의 이러한
    기능을 권력의 편성 형태와 동시적으로 다룰 것을 주문한다.소설과 다양한 민족지, 식
    민지 이론, 역사서술 및 대중 취향 등은 서로를 모방하고 지시하며 틀짓는 인용과 반복
    의 서술 형태를 통해 제국의 사명과 비전을 확장하고 유지하며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소설과 서사의 정치성에 대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통찰은 공간의 분업과 재구조
    화 및 권력 유지와 강화에 소설과 서사가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다는 점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5
    전술했다.이러한 국제연합의 보편적 권위를 태평양동맹의 지역적 분절화
    와 양립시키려는 공간지리의 재편성과 조형술은 태평양동맹의 조속한 결
    성을 위해 장개석이 이승만의 초청을 받아 1949년 8월 6일 한국을 방문
    하고 다음날 7일 진해에서 회담하던 때 절정에 도달한다.태평양동맹의
    결성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며 이 태평양동맹이 갖는 아시아 및 세계사
    적 의미가 강조 부각되었다.“아세아의 평화보장을 기본조건으로 하는 방
    공체제로서 한 비 중 삼개국의 주도하에 태평양동맹이 점차 구상화하는
    것은 북대서양동맹과 아울러 세기적 성사”가 아닐 수 없다는 정일형의
    주장은 태평양동맹을 대서양동맹과 동급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었다.그
    는 또한 대서양동맹이 국제연합의 헌장에 부합하듯이 태평양동맹 역시
    국제연합의 헌장에 아무런 어긋남도 없다는 점을 부연한다.“북대서양조
    약 제 1조에 명시되어 있는 한편 퀴리노 대통령의 로무로 특사에게
    보내 지시문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태평양동맹조약도 유엔 헌장의 기본
    정신과 목적에 배치되지 않는 국제평화와 안정과정의에 입각”하리라는
    그의 언명은 대서양동맹의 모델화를 통한 태평양동맹의 긍정이며, 대서양
    동맹의 형성원리에 기댄 동일시의 시선이었다.29) 이런 식으로 국제연합-
    대서양동맹-태평양동맹의 위계적 선분이 그려지며, 세계의 지역적 분할선
    이 국제연합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논리의 순환성이 만들어진다.
    이는 대서양동맹(대서양조약기구)은 단순한 경제 문화 사회적 교류와
    협조를 넘어선 군사동맹이며, 따라서 국제연합의 기능부전과 지역적 패권
    화를 우려한 시각과는 상반되는 서술이다.“북대서양동맹결성이 던지는
    큰 영향중의 하나는 이 동맹을 계기로 하여 국제정치는 지역적 집단체가
    기본이 되고 오대강국 완전합일의 원칙하에 국련을 통하여 세계평화를
    29) 정일형, 태평양 동맹의 정치적 구상-북대서양조약의 분석 검토에서의 고찰-, 신천지
    , 1949년 9월, xxx-xxx쪽.정일형은 실제로 1969년 국제연합총회 한국대표로 활약했고,
    un과 한국, 국제연합독본, un의 설립과 업적 등 국제연합과 관련된 저서를 다수
    출판하기도 했다.
    26 연구논문
    수립한다는 전후 국제정치의 기본방침은 여지없이 무너질 위험성”30)에
    빠지게 되리라는 최우근의 설명과는 배치되는 공간표상의 조형술이기도
    했다.국제연합과 지역적 동맹체간의 이와 같은 부조화와 간극은 때로
    “un은 사실상 양진영으로 분열”되었고 이제 “un은 점차로 한 개의 외
    교전의 선전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인식하에 “un자체의 세계안전보장의
    기능이 거의 상실”된 지금 “서구민주진영국가들은 국제연맹의 전철을 밟
    고 있는 un만 믿고 안연(晏然)히 있을 수 없어서 이 북대서양조약”을 체
    결하게 되었다는 자위권의 정당한 발로로써 재전유되었다.자위권과 보호
    권의 발동은 방어권과 공격권의 구분을 무화시키며 아시아지역과 지역민
    에 대한 새로운 심성구조를 창출하게 되는데, “식민지의 강제와 탄압 밑
    에서 백성들은 강압하면 굴종하고 자유를 주면 전에 압제당한 분(分)까지
    기운을 펼라고 들어서 복종을 하지 않는 것이 통상인데 민주주의는 개인
    의 자유를 허하고 공산주의는 살인방화 등 공혁(恐)수단을 쓰게 되니
    자연 공산주의에 딸케 된다.그리고 식민지 백성으로 정치적 활동이 금지
    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은 정치적 비판력 판단력이 부족해서 공산운동자의
    선전모략을 믿기 쉬워서 또한 그에게 가담하는 자가 많게 된다.”는 아시
    아지역과 지역민들에 대한 부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인식으로 이어졌
    다.31)
    (구)식민지 아시아가 “북한은 별문제로 하고 남한에서 안남에서 면전
    (面甸)에서 섬라(暹羅)에서 인도에서 심지어 비율빈”까지 공산주의자가
    활동하는 무대로 표상되는 이러한 현실감각은 태평양동맹이 아시아를 대
    상으로 한 것임에도 아시아를 배제하고 소외하는 이율배반을 낳는다.32)
    태평양동맹의 주체는 아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며, 미국의 참여가 관건인
    미국 중심의 공간적 도상학이 되고 있는 것이다.마루카와 데쓰시는 전후
    30) 최우근, 전쟁이냐 평화냐(미국진영동향), 신천지, 1949년 6월, 37쪽.
    31) 조헌영, 북대서양동맹과 태평양동맹, 신천지, 1949년 9월, xxx-xxx쪽.
    32) 조헌영, 앞의 글, 140쪽.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7
    의 아시아상을 국제연합의 승인 하에 근대 국민국가로 탈바꿈한 일본과
    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지 못한 파르티잔(빨치산)의 중국이 분기되는 형태
    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는데,33) 태평양동맹의 부상을 기점으로 한 대한민
    국의 아시아상은 동맹과 비동맹, 자유민주진영과 공산진영, 국제연합 승
    인국과 그렇지 않은 국가들의 중첩된 공간표상이 횡단하는 ‘문제적 공간’
    으로 아시아를 분절 개념화했다.이렇게 달라지는 아시아상의 변주는 아
    시아가 약소민족의 유대와 공감의 장으로 여겨지던 공간표상의 탈각이자
    치환이며, 식민지 아시아의 고통이 후진적 아시아의 표상으로 역전되는
    탈식민화의 소진과 해체였다.탈식민화의 역동이사라진 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은 냉전적 네트워크의 결절점으로서의 아시아, 반공의 최전선으로
    서의 아시아로, 이 특정한 분절선을 따라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여
    행서사가 구축된다.34)
    조병옥이 특사의 임무를 부여받아 여행길에 오른 것은 1948년 9월이지
    만 이 여행기가 특사유엔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은 태평양동맹
    에 대한 선전이 절정에 달했던 1949년 8월이었다.이 시차를 무효화하는
    데는 여행기라는 특정한 서사양식이 갖는 보고와 전달의 투명한 리얼리
    티가 게재되어 있다.체험에 바탕에 둔 여행기의 장르적 속성이 보고 들
    은 것에 대한 발화 주체의 진실성을 담보하면서, 이 이야기의 진실성의
    효과를 여론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이니셔티브의 강력한 매개로 전환시키
    33) 마루카와 데쓰시, 백지운 윤여일 역, 리저널리즘, 그린비, 2008을 참조했다.마루카와
    데쓰시가 이를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1949년과 1953년에 걸쳐 획득
    한 일본의 전후가 중국과 북한을 냉전구조 안의 적으로 현전시키고, 서쪽 진영의 중화
    민국(대만)과 한국을 같은 진영으로 분할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그의 지적은 국제연합의
    승인이라는 측면에서 지역적 공간표상을 재접근하고자 하는 이 글의 목적에 따라 강조
    점을 바꾸어 서술한 것이다.
    34) 식민화와 탈식민화, 냉전과 포스트 냉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전후 아시아상과 관련
    해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다.하지만 전후의 아시아상에 대한 기존연구들은 이
    점에 대한 인식을 많은 부분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다.특히 한반도의 사회역사적 국면
    들마다 이러한 탈식민화의 역동과 냉전적 네트워크가 경합 갈등 교착되다가 결국 냉전
    적 네트워크로 일원화되는 양상을 밝히는 연구가 앞으로 필요하리라고 본다.이 글은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출하는 것으로 이후를 기약한다.
    28 연구논문
    게 된다.대중 출판물로서 여행기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지식과정보를
    제공하는 대중적 앎의 생산과 유통 및 확산에 기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체험의 ‘현존’이 발화 주체에게 해석상의 특권을 부여한다.조병옥의 특
    사유엔기행은 이러한 여행기로서의 성격에 un특사라는 지위가 가미되
    어 이 여행기의 공적인 성격은 한층 두드러진다.35)
    책의 머리말에서 밝힌 그의 두 가지 임무는 “기일(其一)은 미국 중국
    비율빈 등의 우방을 례방(禮訪)하여 국교를 도모할 것과 기이(其二)는
    u n한국대표단을 협찬”하는 것이었다.36) “이리하여 (그를 비롯한) 우리
    는 작년 9월초 중앙청 광장에서 정부요인 및 다수동포들의 열렬한 환송
    을 받고 9월 9일 또 다시 많은 동포들의 격려축복리에 김포비행장”을 떠
    나 “숙적의 지(地) 동경”(1)으로 향하게 된다.출발 전의 환송식과 “우리
    민족은 5 10총선거를 통하여 방공진영에 가담하여 민족적 운명을 개척하
    겠다는 배수진을 첫으매 이 민족적 투쟁의 승부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
    리고 “일국의 국제사절이 됨은 과연 통쾌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다만은
    우리 어깨에 놓은 이 중차대한 책임을 국민의 기대에 배치됨이 없도록
    완수케 될 것인가 등등”(2)의 상념은 그의 막중한 사명감을 환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이는 그가 대통령의 지시를 위임받아 “독립문명국가”의
    대표로서 “국민의 기대”를 대리하여 이 여행길에 올랐다는 그의 재현/대
    표성의 위치 때문이며, 이 위임된 대표성의 위치가 그의 사명감의 원천이
    35) 여행기 특유의 공간적 현존성과 직접성이 모든 발화주체들에게 자동적으로 서술의 진
    실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이러한 점에서 조병옥의 un특사라는 위치는 재차 강조되어
    야 할 것인데, 이는 그의 이러한 매개적 권력적 발화위치가 그를 대한민국의 ‘국민’과
    ‘주권’을 대리/대표하는 이 담론적 발화의 바깥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그는 이 담론 바깥의 순수하고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과 ‘주권’을 대신해 발화한다는
    자기 연출과 전시로, 세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정하는 한편 대한민국에 대
    해서는 세계의 냉전적 공간표상을 구축하는 이중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1948년 대한
    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쏟아져 나온 많은 여행기가 일차적으로 이러한 남성 파워엘리트
    들에 의한 담론적 기술이었음은 이러한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36) 조병옥, 특사유엔기행, 덕흥서림, 1949.이후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본문에 면수를
    밝히는 것으로 인용을 대신한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9
    되고, 그 최종적 귀일점에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가 자리하게 되는
    이유이다.따라서 이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제시된 특사로서의 그의 발화
    위치는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를 사후적으로 재구성하게 되는 동력
    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남한의 공산당은 북한의 매국도배와 통모하여 남한의 지역에 폭동을
    전개하고 정부의 위신을 타락케 할 것이요 그리고 북한의 괴뢰정부는 피
    등의 대표들을 파리에 발양케 하여 민족적 추태를 연출함으로서 민족적
    독립을 방해”(2)하는 민족적 타자가 되는 이유도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
    의사를 대리한다는 그의 전제된 재현/대표성의 발화 위치 때문이다.그는
    이 발화 위치에 힘입어 그의 발화를 국가의 공식적인 의사와 등치하는
    재현의 권위를 확보한다.이 때문에 그가 수행하는 일련의 일정과 행사들
    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공적 의례의 일부가 되고, 그
    는 이 재현의 권위를 그가 방문하는 국가와 지역의 대표성과 절합하는
    공간표상의 조형술과 네트워크를 짜나가게 된다.조병옥이 서울을 떠나
    첫 번째로 방문한 국가는 일본으로, 일본에서 그는 맥아더의 방문과 재일
    동포와의 만남, 그리고 동경 시내를 관광하는 일정을 소화한다.여기서
    그가 받은 인상이 보고와 논평의 서술형태가 압축된 방식으로 제시되는
    데, 그는 일본을 “숙적의 지(地)”로 명명하는 한편 이 “우리의 숙적인 군
    국주의 일본을 정복하여 우리민족을 해방시킨 해방의 직접은인일 뿐더러
    맥아더 양대에 걸쳐서 우리민족을 알고 동정”(4)해준 맥아더 장군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방공군의 총본부가 일본에 있으므로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에 대한 한국의 방위를 위하여는 우리 정부가 맥아
    더 사령부와 긴밀한 연락”을 하여야 할 필요성이 이러한 그의 감사의 마
    음과 결부되어 일본과 미국을 분절하고 재접합하는 특정한 공간표상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패전 일본은 부흥의 방향으로 장족진보하는 중”(8)에 있고 “국력의 점
    에 있어 패전일본일망정 한국보다 강대하는 것”(9)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30 연구논문
    그의 발언은 “북으로 검은곰(熊)의 위협과 동으로는 바다뱀(海蛇)의 침략
    을 받을 숙명적 운명”(9)에 있는 대한민국의 긴급한 현실에 대한 경고이
    다.북쪽과 동쪽이라는 단순한 지리적 방위는 북쪽의 검은곰(소련)과 동
    의 바다뱀(일본)으로 의인화되어 표상됨으로써 적을 지정하고 호명하는
    적대성을 공간에 새겨 넣는다.이러한 적의 생산과 권력 경제는 일본을
    거쳐 중국공산당의 본토 점령 이전의 중국 국민당과 이어지는 공간표상
    의 분절화와 조형술로 나타나고, “우방의 원수 혹은 정부요인들”과 “파리
    u n총회의 각국대표들”(10)에게 “살아있는 자유를 가진 남한의 이천만이
    라도 정치적으로 단결하여 주권을 회복하고 그 주권의 발동에 의하여 당
    분간 상실된 북한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대한민국 정부의 본질”(10)과
    “대한민국이란 신생국가의 안전을 위하여는 한국이 자위상 충분한 군사
    력을 확보할 때까지 우방과 u n의 군사상 안전보장의 대책을 강구”해야
    될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원조”(11-12)를 전달하고 요청할 메시지의 선
    별적 유통과 교환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재구축되고 있다.이른바 커뮤
    니케이션 네트워크라고 명명될 만한 이러한 공간표상의 조형술은 이 여
    행기가 허용과 금지, 침묵과 발화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점으로, 국가주권
    의 ‘현시’를 위한 국가 간 횡단의 네트워크이자 이의 마침표를 국제연합
    이 찍게 되는 귀환서사의 일 형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릇 여행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 분리와 통합의 수평적 공간 운동이다.
    이러한 여행의 양식화된 서사양태와 예정된 결론이 여행기의 주 플롯선
    을 이룬다고 하면, 여행기는 귀속의 지점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지배적 규
    범과 권력의 생산에 일조한다고 할 수 있다.‘귀환’ 내지 ‘회귀’라는 말이
    잘 표현하듯이, 여행기는 그 출발점을 기원점으로 하는 귀속과 통합의 서
    사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여행기가 제국의 팽창과 확장의 시기에 제국의
    권력과 권위를 표현하고 상징하는 대표적인 서사장르였듯이, 여행기는
    기원을 설정하고 확립하는 국가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여
    행기의 이러한 사회정치적 맥락이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국가주권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1
    의 명시와 공명하며, 국가주권의 기원점을 획정하고 구획하는 권력적 생
    성과 매개의 장치가 되고 있다.대한민국-미국 점령하의 일본-중국 국민
    당의 중국-비율빈(필리핀)의 태평양/아시아와 미국-가나타(캐나다)-영국
    의 대서양/서구를 횡단하여 마침내 국제연합 제 3차 총회가 개최될 파리
    를 반환점으로 하여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게 될 이러한 공간의 확장과 수
    렴의 운동은 국가주권의 기원이 위치해 있는 지점을 재확증하며, 국가사
    와 여행서사의 융합으로 나타나게 된다.더 정확히 말하면, 여행서사의
    국가화는 국가주권의 절대적 가치화와 맞물려 국가사의 일부로 재편성되
    고, 이러한 여행서사의 국가화가 국가주권의 자기 정당화를 강화시키는
    격이다.
    따라서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이 공간의 확장과 수렴을 통한 자기
    회귀적 구조로 기원의 진실성과정통성을 확립하는 국가사가 된다는 점
    은 여행서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이 말은 곧 여행
    서사가 국가행정적 장치로, 언제든 회수되고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이런 점에서 조병옥이 경무국장을 역임하며 경찰행정의 틀을 닦고
    대한민국을 경찰행정국가로 변모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이
    여행기와 그의 경력이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그는 자신
    이 경무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처음 착수한 사업이 한국 군사력의 결여
    내지 빈약함을 타파할 국립경찰의 창설과 확충이었으며, 이를 위해 국립
    경찰의 병력을 2만 5천명으로 책정하고 계통적인 경찰망을 조직 형성했
    다고 밝혔다.또한 러치가 군정장관으로 취임하고 나서 서북청년단의 해
    체를 명했지만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북한 공산치하에서 가혹한 비민주
    적 독재 정치에 시달려 갖은 고역을 다 맛본 점은 청년들이 고향과 부모
    형제들과 생이별을 하고 월남한 그들에게 다소 불법성이 있었다고 해서
    서북청년단과 같은 열렬한 우익단체를 해체”할 수는 없다는 근거로 서북
    청년단을 온존시켰다고 그는 자부했다.다른 단체와 기관들에 대해서는
    법의 엄정성을 강조하던 그가 이러한 서북청년단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32 연구논문
    “한민족의 자유독립”이라는 명목으로 눈감은 것은 월남한 대규모의 청년
    층을 (준)사설 청년단체와 경찰조직에 가담시켜 이들을 다른 계급을 감시
    하고 통제하는데 이용하려는 경찰행정의 필요성 때문이었다.37) 이러한
    경찰행정의 조직자와 책임자인 그가 1948년 9월에는 유엔특사로 1949년
    8월에는 이 여행기의 저자라는 특권화된 지위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을
    매개하고 중재하는 위임된 재현/대표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사유엔기행은 국제연합의 개최지 파리에서의 고투와 승전보를 전
    하는 것으로 서사를 마무리한다.그가 책의 서두에서부터 밝힌 대한민국
    정부 승인은 국제연합 총회에서의 48 대 6의 숫자로 모든 것을 정리하는
    완벽한 승리로 기록되고 있다.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가 확증되고
    보증되는 자리도 바로 이곳이다.그는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를 위
    임받아 파리에 왔고, 파리에서 이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대한민국과 국민
    의 일반의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여기서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사
    이의 차이와 간극은 없다.아니 그의 재현/대표성의 발화 위치는 출발 전
    과 하등의 변화가 없이 그를 여전히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를 대변
    하고 구현하게 한다.이 모든 것의 바탕에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가
    자리하고, 국제연합 총회의 승인으로 이 토대가 더욱 견고해지는 자기 회
    귀적 순환과 참조의 틀이 만들어진다.요컨대 여행기와 국가적 사명이 결
    부되어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반석 위에 올려놓
    게 되는 서사의 국가화, 국민적 일체감의 국가사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세계여론의 압도적 여론”(87)을 보여주는 국제연합에서의 48 대 6의
    우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조병옥에게 해석되고 있다.“소련의
    부정의가 한국의 정의앞에 굴복한 첫 계단의 승리”이며 “미국을 위시한
    민주주의진영에 속한 국가군이 소련 및 소련뿔럭에 대한 유화정책을 포
    37) 조병옥, 나의 회고록, 해동, 1986, 149쪽.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3
    기”(88)한 것이며, “한국이 그 정부의 수립으로써 최대최고의 목표인 남
    북통일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민주주의진영전체가 인정하는
    동시에 그 진영은 한국이 방공진영의 중요한 일익으로서 그 국력을 방공
    투쟁에 충실히 가담할 것을 믿고 기대하게”(93)되는 것이 그것이다.이것
    은 그의 여행기가 그려간 공간표상의 분절화 와 조형술이 정확하게 일
    치되는 의미생성의 연쇄를 이룬다.다시 말해 대한민국-태평양/대서양 동
    맹의 제 국가군-국제연합-대한민국의 여행 일정은 대한민국의 도덕적 승
    리-민주주의 진영과의 동맹-세계적 방공투쟁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교직
    하며 냉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 냉전적 네트워크의 분절선을 따라
    메시지와 사람과 부와 군사력이 이동하는 물적 제도적 담론적 통로가 재
    형성된다.이러한 역사지정학적 배치는 국제연합의 보편성과 국제연합의
    지역적 진영적(분파적) 이해관계가 모순 없이 일치한다는, 혹은 모순이
    있다 하더라도 이 모순을 없애기 위한 전 단계라는 대한민국 주창자들의
    입장을 반향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표상의 조형술이 최종적으로 귀일하게 되는 토대로
    서의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은 “평화적 통일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국권의
    발동으로써 통일을 꾀하는 최후수단까지 없어야 한다는 전제는 당당한
    주권정부가 수립된 금일에 이르러서는 용인치 못할 일”(95)이 되며, “남
    북통일의 유일한 방법은 국력을 배경으로 한 주권의 발동이란 것이 법리
    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규정되어야 하는”(96) 국가주권에 대한 전일적 긍정
    과 함께 국가주권에 대한 이견과 불만을 봉쇄하고 차단하는 방파제로 기
    능한다.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여행서사가 1949년의 신국면에서 갖
    는 의미라면, 곧 이러한 국가주권에 대한 현시와 국제연합과 지역적 동맹
    체간의, 국가와 국민간의 불일치와 간극을 이야기했던 다른 목소리와 서
    사들을 잠재우는 국가행정적 기술 장치로써 국가 통치술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점일 터이다.
    34 연구논문
    4.결론을 대신하며-여행기의 역사지정학과 전후의 ‘국민’국가
    이 글은 지금까지 국가주권과 국가-지역-지구를 횡단하는 공간표상의
    조형술로서 여행기가 갖는 의미를 추적해보았다.해방기 여행기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더구나 여행기의 문학적 특성이나 장르적 의미가
    아니라 여행기를 국가-지역-지구의 세 공간층위가 교차하는 공간표상의
    조형술과 연관시켜 이를 국가주권의 편재된 ‘현실’과 결부시키려는 연구
    는 처음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런 만큼 많은 무리와 한계를 내장하
    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가령 여행기는 국가사의 일부로만 작용하지 않는
    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될 수 있다.이 부분은 부인할 수 없는 측
    면으로, 여행서사는 타문화와 접촉하고 변용하는 수많은 변경과 경계지점
    들을 낳으면서, 국경의 제한된 폐쇄성을 민주화하는 역능과 잠재성의 유
    효한 장치로써 기능할 여지도 다분하다.더구나 젠더와 지역 및 지위 계
    층에 따른 차이와 분리는 이러한 주류 남성 국가행정 엘리트의 세계 인
    식과 국가 이해와는 분명하게 다른층위에서 여행서사의 또 다른 서사
    양태들을 창출한다.
    하지만 이 글은 이 부분까지 깊숙이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았다.그것은
    이 글이 여행서사를 제국의 서사 못지않게 국가사의 일부로 읽어내고자
    했던 목적과 필요성에서 기인한다.국가 재건 혹은 창설의 시기에 세계와
    자(自)국가를 비교하고 세계 속에서 자국가의 위치를 가늠하며 세계의 일
    부로 자국가를 위치 짓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중심적인
    열망과 욕구가 된다.이러한 욕망의 일단이 여러 갈래의 여행서사들을 생
    산하고, 이 여행서사의 출판과 담론화에 힘입어 사람들은 세계와 자국가
    를 조망하고 이해하는 시각을 획득하게 된다.따라서 여행서사가 대한민
    국 정부 수립 이후에 급증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충분히 해석 가능하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5
    며, 세계와 자국가와의 비교를 통한 인식의 확장이 국민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구축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글은 이러한 국가수립의 당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도, 다른 한편
    으로 특정 시기의 국면에서 여행기가 직간접적으로 국가행정의 한 장치
    로서, 권력의지의 실현과 통치술의 매개 수단이 되었던 사회역사적 맥락
    에 대해서 주목해보았다.여행기는 공간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주조하고
    신체와 삶의 형태들을 구성하는 공간의 개념적 틀로 작용하기 때문에, 시
    간과 더불어 공간표상을 구축하는 인간과 세계 이해의 수단이자 도구이
    다.여행서사를 단순한 이민족이나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이국취미로
    돌려버리는 일은 식민주의의 시기 동안 제국의 권력과 재현의 권위를 탈
    색하고 중화하여 이를 객관적 미학적 학문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온 지난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러한 반성적 관점
    에서 국가주권의 폭력적 행사와 전시가 극대화된 1949년의 시점에 조병
    옥의 특사유엔기행이 자리한다는 점은 재차 강조해도 좋다.비단 조병
    옥의 여행기만이 아니라 이 시기를 전후한 수많은 여행기들은 이 특정한
    국가폭력과 ‘국민’적 정체성의 강박적 정화와 맞물려 때로 생존서사와 때
    로 수난의 문학 및 발견과 탐험의 서사와 결합되어 국가사의 일부로써
    자리매김해 왔다.여행기를 특정한 사회역사적 맥락과 배경에서 탐구해야
    할 필요는 여기에 있으며, 이 특정한 사회정치사가 여행서사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행기는 인간 이해의 사회정치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국민국가 시스템 및 탈식민화와 포스트 제
    국 체제가 뒤얽히는 속에서 한반도는 몇 번의 굴절과 변동을 겪어왔다.
    이 변화의 지점에서 포착되는 삶의 결들은 이 전체적인 시대사와 조응하
    며 ‘국민’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해왔다.‘국민’이 상상되는 것이라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 개념의 배치와 변환이 국가주권의 현시와 맺는
    상호 관련성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한 편이다.이를 동시대적인 맥
    36 연구논문
    락에서 파악하고 해석하는 일은 전후를 사고하는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이 글은 이러한 국가주권과 국민적 아이덴티티의 형성을 염두에 두면서
    국가주권이 갖는 양의성에 대해서도 문제 삼고자 했다.국가주권은 국민
    을 정위하고 보호하는 힘이지만 동시에 국민을 절단하고 구속하는 권력
    장치의 구성물이며, 이 권력 장치의 일부로 여행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관
    여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 핵심어 : 국가주권, 국제연합, 태평양동맹, 국민, 자유민주주의,
    여행서사, 조병옥, 특사유엔기행, 국가사, 공간표상,
    냉전적 네트워크, 역사지정학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7
    <참고 문헌>
    강성현, 전향에서 감시 동원, 그리고 학살로-국민보도연맹 조직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2004.
    공임순, 빨치산과 월남인, 이승만의 재현/대표성의 두 기표, 스캔들과 반공국가
    주의, 앨피, 2010.
    국제연합한국위원단, 국제연합한국위원단보고서 1949 1950, 대한민국국회도서관,
    1965.
    김동춘, 전쟁과 사회, 돌베개, 2.
    김선호, 국민보도연맹사건의 과정과 성격, 경희대 석사논문, 2002.
    노기영, 이승만정권의 태평양동맹 추진과 지역안보구상, 지역과 역사, 2005.
    박기준, 남한 신국가와 세계-대한민국과 un, 신천지, 1948년 8월.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역사비평사, 1996.
    오기영, un과 조선독립-내조위원단에게 주노라, 신천지, 1948년 2월.
    오제도, 국가보안법실무제요 증보판, 남광문화사관, 1951.
    이봉범, 단정수립 후 전향의 문화사적 연구, 대동문화연구, 2008.
    이승만, 태평양동맹에 기대함, 1949년 3월 23일자, 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
    공보처, 1953.
    정일형, 태평양 동맹의 정치적 구상-북대서양조약의 분석 검토에서의 고찰-,
    신천지, 1949년 9월.
    조병옥, 특사유엔기행, 덕흥서림, 1949.
    , 나의 회고록, 해동, 1986.
    조헌영, 북대서양동맹과 태평양동맹, 신천지, 1949년 9월.
    최우근, 전쟁이냐 평화냐(미국진영동향), 신천지, 1949년 6월.
    마루카와 데쓰시, 백지운 윤여일 역, 리저널리즘, 그린비, 2008.
    미셀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 1994.
    사카이 나오키, 이득재 역, 사산되는 일본어 일본인, 문화과학사, 2003.
    에드워드 사이드, 박홍규 역,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199.
    월터 맆맨, 박기준 역, 냉정전쟁, 고려문화사, 1948.
    그 외 경향신문, 서울신문, 평화신문, 자유신문, 연합신문 등을 참조.
    38 연구논문
    접 수 일 : 2010.06.25.
    심사완료일 : 2010.07.16.
    게재확정일 : 2010.08.09.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9

    fetishism of national sovereignty by the un and nationalizing
    of travel narative
    -historical geopolitics of cho byong ok’ travelogue of the un
    special envoy-
    kong imson
    this essay focused that national sovereignty has been making/compositing
    nation in june 1949 or so and this sanctification of national sovereignty has
    been made on universal sovereignty model of the united nations(the un) so
    called the approval of 48 countries in the un.this universal placeness of the
    un has become socio-historical backdrop forming a certain way of spatial
    representation of cold war, be serving as foundation on eradication/removal of
    another forces doubting and criticizing about the perfect modern
    nation-statenes of rok(대한민국) and the universal position of the un.cho
    byong ok’ travelogue of the un special envoy(특사유엔기행) exemplified
    that the repatriate narratives of travelogue could be square with national
    history in a certain socio-historical phase, and travelogue could be nationalized
    or travel narative could worked as parts of art of governor in those context.
    raising a question asymmetric and complicated complicity and coexistence
    between travel narative and national history, this essay tried to introduce a
    new awarenes about travel narrative and national sovereignty.
    ■ key words : national sovereignty, the united nations(the un), pacific pact
    policy, nation, liberal democracy, travel narative, cho byong ok,
    travelogue of the un special envoy(특사유엔기행), national
    history, spatial representation, cold war network, historical
    geopolitics
    40 연구논문
    ■ 필 자 :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전자우편 :
    ■ 주소 : 서울 동작구 상도 5동
    ■ 전화번호 : 02) 705-8229

2014년 9월 23일 화요일

중국연구 사이트 - 미국 및 영어권 연구기관 및 잡지

미국 및 영어권 연구기관 및 잡지
 중국정치연구실 | 2005·06·07 23:07 | HIT : 1,735 | VOTE : 122 |
  
Internet Guide for Research

Institutes

    * 다음은 Internet을 통해 접근 가능한 주요 연구기관 및 전문 잡지들 중에서 특히 중국 및 동아시아 연구 활동으로 유명한 해외 연구기관 및 잡지들을 선별, (I) 미국과 영어권 연구기관 및 잡지; (II) 일본 연구기관 및 잡지; (III) 중국 및 중국어권의 연구기관 및 잡지; (IV) 대만 관련 연구기관 및 잡지등으로 분류 소개한다.

    * 2004년 3월 5일 현재 정리 작업 ; 필요하면 추후에 계속 수정 보완 할 것
(I) 미국 및 영어권 연구기관 및 잡지 



  • AAS-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1941년 당시 <계간 극동> (the Far Eastern Quarterly) 창간 기관으로 출발하여 현재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시아 전문가들의 학회로 발전

    -현재에도 매년 4번씩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을 발간하면서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 등에 관한 학술활동을 장려

  • AEI -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for Public Policy Research

    -미국 기업가 집단의 공공정책에 대한 관점을 대변하는 연구원; 1943년에 미국 와싱턴에 설립, 약 50여명의 상주 연구원들이 각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와 저술 활동 전개

    -대체로 정부의 규제철폐와 사기업 활동 장려, 그리고 강력한 대외정책과 국방정책을 주장하는 보수 지향적 연구와 정책 제안으로 유명;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자주 기업가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여 정책 로비 활동오?주도하기도 하고, 연구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 AFPC-The American Foreign Policy Council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자문하는 비영리 민간 연구단제로서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탈 사회주의 과정에 관심이 많고, 중국에 대해서도 개혁과 중미관계에 대해 관심 표명.

    -1997년 클린턴과 장쩌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개혁과정을 모니터하기 위해 China Reform Monitor 를 운영하고 있는데, 1997년부터 2003년까지의 주요 사건 개요가 정리되어 있다.

  • Asia Society 

    -아시아 연구의 확산과 미국과 아시아 제국의 문화 및 지식인 교류로 유명한 비영리 단체; 1956년 록커펠러 3세가 주도하여 뉴욕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는 단체

    -이 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AsiaSource 는 아시아 각국의 현황은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 정치 및 경제 사회와 교육등 각 분야의 최근 연구업적과 각종 자료에 대해 안내 하고 있다.

  • Asian Studies WWW Virtual Library 

    -호주 국립대학 (Th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이 1994년에 설립,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 아시아 관련 On Line 도서관.

    -현재는 Dr T.Matthew Ciolek와 51명의 Co-editors가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각국 및 각 지역 연구 관련 자료에 On Line 접근이 가능함.

  • Asian Survey 

    -미국 버클리의 칼리포니아 대학 동아시아연구소가 계간으로 발간하고 있는 아시아 문제 전문 연구지

  • BCAS/CAS -The Bulletin of Concerned Asian Scholars/ Critical Asian Studies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1967년에 젊고 진보적인 아시아 전공자들의 집단을 결성하고, 1968년부터 기존의 아시아 연구를 비판하는 내용의 연구잡지인<아시아에 관심있는 학자들의 잡지 (Bulletin of Concerned Asian Scholars)>를 발간

    -2001년 1월 이후 그 명칭을 <비판적 아시아 연구 (Critical Asian Studies)>로 변경, 현재까지 활발하게 아시아 연구에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 Brookings : The Brookings Institution 

    -1927년에 현재 이름으로 통합 발족한 미국 최초의 민간 연구기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문제에 대한 중요한 연구논문이나 저술, 자료 등 발표

  • The Carnegie Endowment 

    -1910년에 창설된 개인 재단으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대외정책, 법치의 원칙과 정부의 투명성 제고등과 관련된 개혁, 환경과 무역 질서등에 관심;

    -그러나 또 한편 최근 사회주의권의 대변혁과 더불어 러시아와 동구 프로그램, 그리고 중국 프로그램을 확장; 특히 중국프로그램은 중국의 중앙 당교와 상해 사회과학원과 협동으로 연구사업을 추진

  • CECC -Congressional-Executive Commission on China 

    -2000년 10월 중국의 인권과 법치를 감시하기 위해 조직된 미국 의회-행정부 공동 위원회로서 매년 대통령과 의회에 중국 인권과 민주화 상황에 대해 보고할 의무가 있음

    -따라서 수시로 중국의 인권과 민주화를 포함, 중국의 WTO가입등 관련 주요 쟁점에 대한 청문회 등을 운영하면서 연중 보고서와 청문회 자료등을 수집 공표

  • CEFC- The French Centre for Research on Contemporary China 

    -불란서 정부가 지원하는 홍콩 주재 연구기관으로 중국, 대만, 홍콩과 마카오의 정치, 경제등에 대한 자료수집과 연구활동을 지원 -1992년부터 영문으로 된 China Perspective 발간

  • CFP Net-Chinese Foreign Policy Net 

    -스텐포드 대학 Taylor Fravel교수가 운영하는 중국 외교정책 관련 홈페이지이고, 중국외교 개괄-안보-교역-인권-쌍무적 관계 (미국-일본-한반도-러시아-대만-인도등)-WTO 가입문제등에 대한 영문 자료 제공

  • CHGIS-The China Historical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미국의 Luce 재단의 지원으로 2000년 12월이후 활동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 지도 관련 인터넷 연구기관

  • The China Business Review 

    -미국과 중국의 기업가들의 친목 및 협력관계를 증진시키는 목적으로 설립된 중미기업협회 (US-China Business Council)가 1974년이후 발간하고 있는 잡지

  • China Leadership Monitor 

    -미국 스텐포드 대학 후버 연구소가 지원하는 인터넷 사이트로서 2002년 겨울호를 창간호로 낸 이후 현재 매년 4번 중국 국내외 정치, 경제, 군사 안보등에 대한 논평을 발표

  • China WWW Virtual Library -Internet Guide for China Studies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 중국연구소 (the Institute of Chinese Studies at Heidelberg University)가 운영하고 있는 중국 관련 On Line 도서관, 1995년에 설립

    -현재는 네델란드 Leiden 대학의 Hanno Lecher박사를 중심으로 중국에 대한 각종 자료와 문헌들을 정리, 소개

  • The Chinese Military Power Page 

    -미국의 국방정책의 대안을 모색하는 시민단체 성격의 민간 국방연구단체인 Project on Defense Alternatives 가 운영하는 중국 군사문제 관련 웹사이트

    -중국 군사 및 국방 문제 전문가들의 명단, 이들의 연구활동과 관련 자료등을 찾아 볼 수 있다.

  • CPS -Communist and Post-Communist Studies 

    -중국의 개혁개방과 변화 뿐만 아니라 소련이나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특히 사회주의 몰락이후 구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개방과 변화에 대한 비교 연구 논문을 수록

  • CQ--The China Quarterly 

    -영국의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원의 현대중국연구소 ( Contemporary China Institut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가 계간으로 발간하고 있는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현대중국 전문 학술지

  • CR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미국 의회조사연구소에서도 중국 관련 연구 자료와 논문, 그리고 보고서등을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관점에서 중미관계에 중요한 경제적, 군사-안보적 이슈에 대해서는 상당히 심층적인 조사 연구 결과를 제공

  • CSIS-th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190여명의 연구자와 직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전략 안보 연구기관 -1994년부터 Bates Gill 박사를 중국 전문 의장으로 임명하고, 중국 관련 홈페이지 Freeman Chair in China Studies 를 운영

  • FA/CFR -Foreign Affairs/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1921년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민간 자문 기구로 출발한 외교관계 위원회 (CFR)는 전직 대통령이나 국무장관, 국방장관등 고위 관료들과 학자 및 전문가를 비롯한 민간단체의 대표자들로 구성

    - 현재 약 340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외교관계 위원회가 1922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Foreign Affairs는 이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 잡지

  • FAS-The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1945년 핵물리학자들의 반핵 운동단체로 출발, 현재로는 약 58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하는 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

    -과학자들의 전문적 지식과 공공정책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과학자 중심의 시민운동 단체로서 핵과 미사일등 대량파괴 무기의 세계적 확산 방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

  • FEER-Far Eastern Economic Review 

    -아시아지역의 경제 및 기업 관련 기사 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적 이슈에 대한 기사도 주목되는 홍콩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 Hoover Institution 

    -1919년 미국 31대 대통령 후버가 창설한 연구소로서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연구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 보관, 활용, 스텐포드대학이 전쟁과 혁명, 평화 연구 의 구심역할을 하게 했고,

    -특히 2002년부터 앞에서 소개한 China Leadership Monitor를 운영하고 , 또한 각종 연구 프로젝트, 이를 테면, The End of Communism / Transition to Democratic Capitalism / The End of Communism / The National Security Forum/ International Rivalries and Global Cooperation 등을 추진

  • IISS- 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1958년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군사전략, 군비통제, 지역안보 및 갈등해소등에 대한 연구활동으로 유명

    -이 연구소가 매년 발행하는 세계 각국의 군비확장 및 축소에 대한 보고서 The Military Balance 를 비롯하여 역시 연구소가 매년 발행하는 정치 군사동향에 대한 Strategic Survey; 전략문제와 지역안보등에 대한 논문집 Adelphi Paper 시리스; 그리고 계간지 Survival등은 모두 유용한 자료원

  • Nautilus Institute-The Northeast Asia Peace and Security Network (NAPSNet)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 비핵화와 관련된 각 국의 동향과 뉴스자료를 제공;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남북한의 관련 뉴스도 영문으로 제공

  • NBR-The 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 

    -미국 시애틀 소재 와싱턴 주립대학이 주도하는 아시아 관련 연구기관으로 중국, 일본, 한국등에 대한 연구가 주목

  • NED-Journal of Democracy 

    -1983년 비영리 민간 단체로 설립된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 기금 (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이 1990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민주주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학술적 전문지

  • Rand 

    -미국 국방과 안보 관련 연구에 집중하였지만, 점차로 관심 영역이 다각화되면서 넓은 의미에서 미국의 안보적 이익의 차원에서 중국의 군사 안보전략을 포함?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등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도 진행

  • UCLA 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중국 및 아시아 관련 자료는 크게 (1) Asia via the Web-동아시아 연구와 관련된 on-line 참고자료들; (2) Today in Asian History-동아시아의 역사 및 현재에 대한 자료들; (3) Asian Studies Documents-주요 역사적 사건과 문건 자료? (5) Statistical Information on Asia- 도표와 통계자료; (6) Asian Language Study Programs; (7) Asian Studies Journals등으로 분류 관리

  • University of Michigan-China Data Center 

    -미국 미시간 대학이 소장하고 중국 관련 각종 자료; 특히, 최근 발표된 중국의 통계자료를 비롯해서 중국 지도와 환경 관련 자료 제공

  • USCC: United State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 Charter

    -2000년 10월, 미국 의회 결의로 조직; 미국과 중국간의 경제와 안보 문제에 대해 폭넓은 연구, 조사, 매년 연차보고서도 제출하고, 미-중간 주요 경제-안보 문제에 대한 연구와 청문회도 운영

  • USIP- The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1984년이후 미국 의회의 기금 지원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민간 연구기관으로 국제적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촉진하기 위한 연구활동 전개

  • 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 Asia Program 

    -1968년 민간 학술 교류기관으로 설립된 윌슨 센터의 아시아 프로그램은 저명한 아시아 문제 학자와 전문가들의 다양한 세미나와 논문 발표 및 저술등을 소개하는 이벤트와 사업 전개

  • World Politics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이 출판하는 국제정치 분야의 저명한 계간지

세계화에 대한 중국 내 연구 동향

세계화에 대한 중국 내 연구 동향
 중국정치연구실 | 2005·05·06 11:30 | HIT : 2,002 | VOTE : 351 |
  
세계화에 대한 중국 내 연구 동향1.들어가며.
 
1990년대 초부터 서방에서 핫 이슈가 된 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중국에서도 1990년 초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다가 90년대 중반부터 학계의 핫 이슈가 되고있다.
1990년대 초 세계화에 관한 논의가 서방 학계의 핫 이슈로 등장하자,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세계화에 대한 서방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하면서 세계화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중국내 학자들에게 제기하였다. 이처럼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중국에 등장하게 된 하나의 중요한 계기는 1993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편역국(編譯局)이 초청한 미국의 듀크대학의 드리크 교수가 서방의 세계화에 대한 이론을 소개한 강연이었다. 이 강연에서 드리크 교수는 세계는 이미 세계경제시대로 접어들었고,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은 반드시 경제의 세계화에 기반하여 분석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같은 전제 하에서 그는 세계화의 특징으로 자본과 생산과정의 세계화, 생산의 무국적화, 다국적 기업이 일국 시장을 대체하여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 세계가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통합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보편적인 생산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연설 내용은 얼마 후 {戰略與管理} 창간호에 발표되었고, 중국 내 학자들의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 1994년 원래 중국의 사회과학원 부원장이었던 리선즈(李愼之)교수가 {東方}과 {太平洋學報} 잡지에 세계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것을 제창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중국 내에서 가장 일찍 세계화에 관한 연구를 주창한 학자로 인식되었다.

특히, 중국 내 학자들로 하여금 세계화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켜 세계화에 대한 연구가 학계의 핫 이슈가 되도록 한 사건은 1997년에 폭발한 동아시아 금융위기이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속에서도 중국은 어렵게 위기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경제의 세계화로 인한 국내 금융부문의 취약성은 중국의 지도자들과 학자들에게 높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리하여 1998년 3월 9일 장쩌민 국가 주석은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홍콩대표단 토론회에서 "경제의 세계화에 대한 문제를 반드시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경제의 세계화는 세계경제발전의 객관적인 추세로 그 어느 나라도 피할 수 없으며, 모두 참여하여 나아갈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이같은 세계화의 추세를 변증법적으로 대처하여 세계화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이익과 문제점을 동시에 보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에 처해 있는 국가들에게는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최고지도자인 장쩌민의 지적으로 인해 세계화에 대한 연구는 중국 학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편역국 당대연구소는 세계화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각종 논쟁을 종합하여 총 7권으로 이루어진 세계화에 대한 논집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全球化的悖論], [全球化時代的馬克思主義], [全球化時代的社會主義], [全球化時代的資本主義], [全球化與中國] ,[全球化與世界], [全球化與后殖民批評])

그 후 1999년 말 중국의 WTO가입을 위한 미국과의 쌍무적 협상이 완료된 이후 WTO가입을 위한 준비가 본격화되면서, 중국내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세계화라는 불가피한 역사적 추세에 어떻게 대응해 갈 것인가 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인민일보는 바로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여 2000년부터 세계 각 국의 학자와 관료 및 기업인을 초청하여 '세계화 포럼'을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이 포럼은 2001년 1월 15일에 두 번째로 개최되어 세계 10여 개 국에서 온 관료, 학자, 기업인들이 WTO 가입을 앞두고 있는 중국의 발전전략을 모색하고 세계경제 속에서 중국의 위치를 정립하기 위한 각종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처럼 중국 학계의 핵심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크게 다음 4가지 문제를 둘러싸고 이루어지고 있다. 1. 세계화의 개념. 즉, 세계화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그 본질은 무엇인가?  2. 세계화의 유형. 즉, 경제의 세계화 외에 민족국가의 정치, 문화 역시 경제의 세계화에 영향을 받고 있는가? 문화의 세계화와 정치의 세계화라는 추세가 존재하는가? 3. 중국에서 세계화가 가지는 의의는 무엇인가? 즉, 중국은 세계화의 영향과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은 세계화에 대응하여 어떠한 대응책을 강구할 것인가? 4. 세계화는 중국의 발전과 근대화 과정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인가? 아래에서 이같은 쟁점을 둘러싼 논쟁의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살펴 볼 것이다.


2. 세계화란 무엇인가?
 
중국 내 학자들이 내리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정의는 대략 다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세계화란 인류 생활의 통합과정이고, 지역 특히 민족국가의 주권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전 세계의 정체성(整體性)의 발전 추세, 혹은 인류 사회 생활이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뛰어 넘어 전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는 전방위적 교류 및 상호영향이라는 객관적인 역사적 추세로 간주하는 시각이다(蔡拓,"全球化與當代國際關系", 兪可平 主編,『全球化的悖論』, 中共編澤出版社, 1998年). 더 나아가 혹자는 세계 통합의 실질적인 의의는 인류가 공간의 장애와, 제도와 문화의 장애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 범위에서 더욱 더 많은 공통 인식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교통과 통신이 발전함에 따라 전 세계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고 국가와 지역간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 되어 간다. 동시에 세계 각 국은 갈수록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다시 말하면 인류가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협조와 협력의 정신을 통하여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고 주장한다(譚君久, " 關于全球化的思考與討論",兪可平 主編,『全球化的悖論』,中共編澤出版社, 1998年).

둘째, 세계화를 자본주의화, 자본주의의 일종의 새로운 형식 혹은 발전단계로 간주하는 시각이다. 이 시각에 따르면 "세계화는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산물이고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보편화이다. 오늘날 경제의 세계화는 실제로 자본주의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로, 세계화의 문제 역시 현대 자본주의 특히 선진 자본주의의 문제"이다(紀玉祥,"全球化與當代資本主義的新變化",『馬克思主義與現實』,1998年 第4期). "세계화의 과정이 비록 사회 생활의 모든 주요한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그 동력의 메카니즘과 현실적인 기초를 볼 때, 세계화 진행 과정의 역사적 필연성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부터 찾아야 하고, 시장경제의 비밀로부터 찾아야 한다."(楊朝仁, 韓志偉, "全球化,制度開放與民族復興",『馬克思主義與現實』,1998年 第4期) ). 따라서 이 시각에 근거하면 세계화는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또 다른 형식이고, 자본주의의 일종의 별칭이다. 그것은 또한 후기 자본주의, 발달된 자본주의, 비조직적 자본주의, 다국적 자본주의, 세계적 자본주의 등등으로 칭해질 수 있다(王逢振, "全球化, 文化認同和民族主義", 王寧 等 主編,『全球化與后殖民批評』 中共編澤出版社, 1998年).

셋째, 세계화를 서방화 혹은 미국화로 간주하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세계화는 인류 가치의 동질화와 보편화로 표현되고, 서방국가 특히 미국의 가치가 인류의 공통가치로 대변되고 있다. 그리하여 세계화 또한 바로 서방화 혹은 미국화"라고 주장한다.(『環球時報』(2000年9月22日) "全球化背景下的國家利益改變了 ?"). 그리하여 어떤 학자들은 "중국어권에서 자유주의 학자들이 세계사조, 보편가치와 같은 말을 사용하여 세계화를 설명하고 있지만,  이러한 설명은 서방 혹은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인류의 궁극적인 공통 가치로 변화시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는 서방화 혹은 미국화로 한정되어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張 武, "全球化:亞洲危機中的反思",『全球化與后殖民批評』,中共編澤出版社, 1998年).

넷째, 상술한 3가지 시각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세계화를 모순의 통일체로 간주하는 시각이다. 즉 이 시각은 상술한 3가지 관점은 단지 세계화의 본질적 속성 가운데 특정 특성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세계화 과정을 내재적으로 모순이 충만한 과정이고, 모순의 통일체로 간주한다. 구체적으로 이 시각은 다음 3가지 점을 통하여 세계화의 성격을 규정짓고 있다. 첫째, 세계화의 내재적 모순은 객관적 사실이지만, 이러한 모순은 합리적인 것이다. 즉, 세계화는 통합과 분열의 추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으며, 단일화와 다양화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세계화는 집중화이고 분산화이며, 국제화이고 본토화이다. 따라서 세계화는 하나의 모순의 통일체이고,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서로 보완적인 과정이며, 하나의 상충되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합리적 충돌이다. 둘째, 세계화의 내재적 모순은 필연적이다. 세계화의 배경 하에서 개방의 정도가 가장 높은 국가 역시 자기 민족의 민족적 뿌리와 색채가 완전히 없을 수가 없다. 반대로 가장 보수적인(혹은 폐쇄적인) 민족도 세계화의 흔적이 완전히 없을 수가 없다. 셋째, 세계화의 모순은 인류 사회의 진보에 유리하며, 사회는 원래 다양성의 통일이고, 다원적인 것의 통합화 과정이든, 일원적인 것의 다원화 과정이든, 이들 모두는 인류 발전의 진리이다(兪可平, "全球化硏究的中國視角", 『戰略與管理』, 1999年3期).

 
3. 세계화의 다양한 유형
중국 내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세계화의 주요 지표를 경제의 세계화 및 정보 통신의 세계화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정치와 문화의 세계화에 대해서도 동시에 거론하고 있다. 즉 "경제 생활이 통합되어 가면서 각 국의 정치와 문화 역시 그 속도가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지만 통합의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는 경제적 함의와 정치 문화적 함의를 동시에 가진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고 정치적 현상이며, 경제적인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李林,"全球化背景下的中國立法發展",『學習與探索』1998年 第1期;朱景文,"善于法律與全球化的  問題",胡元梓 主編,『全球化與中國』 中共編澤出版社,1998年). 이같은 시각에 대하여 중국 내의 학자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세계화를 엄격하게 경제적 영역에 한정시키고, 세계화를 경제의 통합 혹은 국제화로 한정시키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일반적인 세계화 개념, 특히 정치와 문화적 세계화 개념을 중국의 현재의 기본적인 정치적 가치와 정치제도를 방치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반대하기도 한다. 중국 내의 세계화의 유형에 관한 논의는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경제의 세계화이다. 경제의 세계화는 "경제성장요소, 특히 자본과 기술 및 인력자원이 시장 법칙의 작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적 이동과 조합으로, 개별 국가경제와 지역경제가 갈수록 세계경제체제로 통합되어 인류의 사회경제발전의 상호 보완성, 관련성 및 의존성 역시 이로 인해서 증대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각 국의 상품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을 통하여 판매되고, 인류에 의해서 공통으로 향유되는 것을 말한다"(穆光宗,"經濟全球化與中國人口",『當代世界與社會主義』1998年 第3期). 어떤 학자들은 이를 더욱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세분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1. 생산활동의 전 세계적 차원의 통합으로, 전통적인 국제적 분업이 세계적인 분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2. 세계의 다변적인 무역체계가 형성되고 국제무역이 통합되어 가고 있다. 3. 각 국의 금융이 갈수록 통합되고 금융의 국제화 과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4. 투자활동이 전 세계에 걸쳐서 진행되고, 세계적인 투자 규범이 형성되고 있다. 5. 다국적 기업의 역할이 강화되고, 갈수록 국제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민족국가의 국제시장에서의 전통적인 역할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6. 국제 무역 전문가와 고급 경영자들인 이른바 '세계인'이 갈수록 늘어나 각 국 정부와 회사가 이들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쟁하고 있다(薛榮久,"經濟全球化的影響與挑戰",『管理經濟』1998年 第4期).

또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같은 경제의 세계화 추세는 어느 국가도 피할 수 없는 추세로, 중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중국이 피동적으로 경제의 세계화 흐름에 합류하기보다 능동적으로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국이 경제의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며, 동시에 중국경제의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경제의 세계화가 세계 자원의 효과적인 배치를 가능하게 하였고, 따라서 세계화는 중국이 선진국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한다( 劉力, "經濟全球化:發展中國家后來居上的必由之路', 『國際經濟評論』1997年 第11-12期).

둘째, 정치의 세계화이다. 중국내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정치의 세계화를 각 국의 정치적 가치와 정치제도에 대한 인식의 동질화 추세로 간주하고, 이것은 우선 자유와 평등을 핵심으로 한 민주적 가치의 일치와 자유, 평등, 인권이 충분히 실현되는 민주제도의 보편화로 나타난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일부학자들은 정치의 세계화를 정치의 민주화로 간주하고, 민주화와 동의어로 간주한다. 이들에 따르면 이러한 정치의 세계화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냉전의 종말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같은 이해에 기초하여 이들은 "세계화의 유형적인 동력은 경제의 세계화이고, 세계화의 무형적인 동력은 가치의 통합이고, 민주정치와 세계적 가치의 통합"으로 주장한다(劉軍寧,"全球化與民主政治", 『當代世界與社會主義』 (季刊) 1998年 第3期). 더 나아가 일부 학자는 세계화 시대의 민주정치를 '善治'로 그 성격을 규정짓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선치'란 공공이익을 최대화하는 통치과정으로, 이는 정부와 시민들(혹은 공민)이 협력하여 공공 생활을 관리하고,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일종의 새로운 관계로써 양자간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간주한다. 이들은 '선치'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다음 6가지를 들고 있다. 1.정당성으로, 사회 질서와 권위가 최대한도로 시민들의 자발적 복종과 인정을 통하여 유지되어야 한다. 2. 투명성, 정치정보의 공개성으로, 모든 주민이 자기의 권리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권리를 가진다. 3. 책임성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4. 법치로, 법률이 정치적 통제의 최고의 준칙이고, 정부의 관료와 시민들이 모두 법에 의거하여 행동해야 하며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5. 행위에 대한 보상과 효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兪可平,"從善政到善治", 『方法』1999年 第1期)

셋째, 법률의 세계화이다. 각 국이 공통적으로 준수해야 할 국제 관례가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하면서, 법률의 세계화의 문제가 중국 법률학자들의 중요한 관심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 내 일부 학자들은 법률적인 관점에서 즉 세계 경제와 국가 이익의 충돌, 전통문화와 근대화와의 괴리 및 국가주권과 세계화와의 관계, 법률 다원주의, 국가의 입법자와 법률 연원으로서의 지위 등의 정치 법률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법률의 세계화를 법률 발전의 새로운 단계로 간주하고, 법률의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세계적 법률 의식을 확립하고, 세계의 문제해결을 입법의 중요한 근거로 삼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국가주권개념을 개혁하고, 국가의식을 완화하며, 입법의 비국가화를 주창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朱景文,"善于法律與全球化的  問題",胡元梓 主編,『全球化與中國』 中共編澤出版社, 1998年).

넷째, 문화의 세계화이다. 개혁개방 이후 서방의 유행가나 의상, 새로운 사상이 급속하게 유입되면서 문화의 세계화는 중국 내에서 사실상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 내의 학자들이 말하는 문화의 세계화는 주요하게 일국의 문화와 가치를 초월한 세계적 차원의 공통된 문화와 가치의 형성 혹은 소위 말하는 '세계 문화'의 형성이다.  어떤 학자들은 세계화 과정 중 '세계 가치'의 확립의 필연성과 현실성을 주장한다. 즉, "인간의 사회적 과정은 일정한 문화적 환경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오늘날 인간들이 근거하고 있는 문화적 환경은 이미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였다. 한사람의 세계인은 출생부터 세계의 문화와 정보에 의해서 포위되어 있으며, 세계의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받아들이고 누린다. 이러한 세계적 사회화 과정은 개인으로 하여금 우선 세계인이 되도록 하고, 그 다음으로 중국인 혹은 미국인 등 한 국가의 국민이 되도록 한다. 비록 모든 국가와 민족의 문화가 여전히 상당정도 각자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문화 또한 부분적인 융합이 이루어졌고, 세계문화는 바로 이러한 융합의 산물이다. 세계문화의 형성은 국경과 사회제도,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가 이미 일종의 현실로서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譚君久, " 關于全球化的思考與討論",兪可平 主編,『全球化的悖論』, 中共編澤出版社, 1998年 )

4. 세계화가 중국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
이 문제는 중국 내 학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중의 하나이다. 대다수의 중국 내 학자들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세계화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들이 지적하는 긍정적인 측면은 세계화가 세계적 차원에서의 자원의 효과적인 배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국제 협력의 질을 제고시키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며, 과학 기술과 정보의 전 세계적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데 유리한 영향을 미치고, 대기오염, 마약의 남용, 불법 이민 등의 세계적인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도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한편,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패권적인 지위의 강화, 국내경제에 외자와 국제금융이 끼치는 위협요소 증가, 남북 차이의 확대 등으로 인해 후진국가의 경제가 더욱 쉽게 국제자본의 종속과 영향하에 놓이는 점 등이다(兪可平, "全球化硏究的中國視角",『戰略與管理』,1999年3期).

중국내 학자들은 이러한 이중적인 영향은 중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우선, 세계화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유리한 기회를 제공한다. 즉, 세계화는 중국으로 하여금 외자의 유치, 선진 국가의 선진적인 과학 기술과 관리 경험 및 제도적인 배치를 배우고, 중국의 상품이 세계로 진출하는 데 유리한 영향을 미치며, 각종 형식의 국제적인 협력에 참여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화가 중국 발전에 끼치는 부정적인 측면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중국 내 많은 학자들은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폭발과 함께 세계화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1. 중국의 경제 안전의 위협이다. 외자의 국내 경제에 대한 통제 강화와 기술 독점이 중국의 산업구조조정과 고도화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또한 외채가 일정 한도를 초월했을 때 큰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무역과 자본의 대외 의존도가 증가됨으로써 중국경제가 세계경제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대규모의 금융시장의 개방이 금융 위기를 증가시킬 수 있다. 2. 국가 주권의 약화이다. 세계화에 참여하는 기본적인 조건 중의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국제적인 관례, 국제적인 공약, 관련 협정을 반드시 준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부분의 국제적인 계약은 선진국가의 이익과 기준에 근거하여 제정된 것으로, 서방 선진 국가의 제도적 배치를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따라서 개발도상국가는 경제의 세계화가 가져온 이익을 획득하기 위하여 부득이 하게 일부 통제 권한을 양보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결과 국가의 주권은 일정 정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5. 중국은 어떻게 세계화 과정에 대처해야 하는가?
중국은 현재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세계화 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중국 내 학자들은 이같은 참여에 동의한다. 이는 세계화 과정에의 참여는 중국과 같은 개발 도상국가에겐 스스로가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 시기와 방식을 어떻게 선택하는가의 문제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같은 인식에 기초하여 중국 내 학자들은 선진국가가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 과정이 중국에게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세계화 과정이 개발도상국가가 자본과 기술을 흡수하고 무역을 발전시키고 경제의 시장화를 추진하면서 점진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입하는 데 역사적인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본다. 이들은 중국이 개혁 개방을 통하여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한 것은 바로 주동적으로 이같은 기회를 움켜진 전형적인 모범 사례로 간주한다. 반면에, 이들은 세계화 과정은 개발도상국가의 전통적인 주권을 침해하고, 개발도상국가의 경제적 패권을 위협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에 따르면, 개발도상국가의 세계화 과정은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는 과정이다. 이같은 인식은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통하여 중국내 학자들에게 더욱 더 각인되었으며, 동아시아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중국 내 학자는 중국이 세계화 과정에 더욱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참여해 가야 한다고 느끼도록 하였다. 중국이 세계화 과정에 어떻게 참여해 갈 것인가에 대한 중국 내 학자들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사회, 경제적 수준이 아직 낙후되어 있다는 점과 현재의 세계화 과정이 소수 선진국가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는 점에 비추어서, 중국은 선진국가와 같은 보폭으로 세계화 과정에 참여해 갈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일부 학자들이 "중국은 이미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 진입하였기 때문에, 시장경제체제가 발전된 국가들과 같은 보폭으로 세계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개혁 개방과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장경제체제가 발전된 국가와 같은 속도로 세계화 과정에 참여해 갈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같은 주장이 세계화 및 그 조건을 개혁과 발전의 전제로써 간주하고 있지만, 이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중국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李克穆,"關于經濟全球化進程的 点認識",胡元梓 主編,『全球化與中國』 中共編澤出版社, 1998年).

둘째, 중국은 전방위적으로 세계화 과정에 참여할 수 없으며, 선택적이고 유보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하여 중국의 구체적인 상황에서부터 출발하여, 독립적인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국제경제와 국제무역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며, 서방 선진국가의 경제와 정치에서의 패권을 시종 경계하고, 자본시장과 상품시장, 금융시장을 일정한도로 개방하며, 중국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경제의 세계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각이다.

셋째, 경제의 세계화는 경제의 민족화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우선적으로 민족 공업을 발전시키고, 민족경제의 우세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의 세계화는 현재 민족국가의 전통적인 장벽을 깨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통합과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 경제의 민족화 추세 역시 세계화에 따라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지역경제의 신속한 발전에 따라 선진국가의 보호무역주의는 강화되고 있으며, 모든 국가는 모두 자기의 민족 공업을 보호할 방법을 강구하면서, 각 국 간의 각종 형태의 치열한 무역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경제의 세계화와 민족화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즉 경제 발전의 중점을 세계경제와의 연결을 강화하는 데 두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민족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일부 학자들은 경제의 민족화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각 국이 경제의 세계화에 참여하는 주요한 목적은 본국의 민족경제 발전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본국의 경제적인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경제의 세계화는 각 국 경제가 독립적인 의의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반되게 각 국이 모두 자국의 경제적인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세계 경제는 갈수록 세계화되어 가고 있으며, 동시에 민족경제의 이익도 두드러져 가고 있다. 따라서 개방만을 강조하는 것은 민족경제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상과 노력을 무시하는 것으로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高德步,"全球化還是民族化?",『中國黨政干部論壇』 1997年 第期).
 
상술한 바와 같이 현재 중국 학계에서는 세계화란 무엇인가, 세계화는 어떠한 다양한 유형이 있는가, 세계화가 세계정치경제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세계화는 중국의 경제발전과 근대화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중국은 세계화라는 불가피한 역사적인 추세에 어떻게 대응해 갈 것인가에 대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글은 바로 이들 논쟁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2014년 9월 14일 일요일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

http://cafe.naver.com/ccejoda/3397

시민사회와 개발 NGO에 관란 연구 초록입니다.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한성대 교양학부)


  1.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civil anthropology)은 인류학과 발전의 관계와 같이 또 하나의 ‘사악한 쌍둥이’(evil twin) 관계에 있다. 인류학과 시민사회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동시에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서구 중심적이고 규범적인 슬로건으로서,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화, 민주화, 신사회 운동 등과 관련하여 실천적이고 이념적인 수준에서 사회 지향의 모델로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에, 인류학이란 학문은 보편주의적 시민사회 개념을 수용하고 적용하기보다는 이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시민사회 개념을 해체하고 경험적 수준에서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서구 모델에 도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Hearn(2001)의 주장에서와 같이 인류학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항상 시민사회를 전공하여 왔다. 시민사회는 인류학의 떠오르는 새로운 연구분야와 주제가 아니다. 전통적 인류학의 연구대상인 마을, 이웃관계, 빈민가와 농촌조직, 교회, 조합, 사회운동집단, 공장, 시장, 병원.... 등의 모든 공사 영역이 광의의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이야말로 사회조직, 관료제, 정책과정, 사회운동 등의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찾아내고 그 속성을 심층 기술할 수 있다. 광의의 시민사회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인류학은 국가가 어떻게 ‘시민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를 밝힐 수 있으며, 이러한 시민화 프로젝트가 문명화, 식민주의, 근대화, 발전과 진화주의라는 거대한 지식체계와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해명할 수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전통적인 인류학적 연구 대상인 ‘경계지워진 공동체’나 ‘문화’들이 국가와 시장간의 권력 관계에서 어떻게 규정되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인류학의 분과이고 연구방법론이다. 즉,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새로운 연구대상과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인류학적 연구대상, 특히 정치인류학적 연구 대상들이 국가-시장관계, 지방-세계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비판적 연구방법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적으로나 한국사회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NGO들은 전통적인 사회조직과 관계망, 가치체계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는 조직유형으로서 사회 변화의 추동력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유용한 연구 대상이 된다.

  2. 초국가 시대의 INGO와 NGOgraphy

  NGO 중에서도 국제 NGO, 개발 NGO 혹은 국제개발 NGO 라고 부르는 국제비정부기구와 단체(International NGO; INGO)1)들은 초국가 시대의 지식과 정보 네트웍을 형성하는 핵심 매개체이다. 세계와 지역(global/local)을 매개하는 통로이고, 초국가 시대의 집단적 행위자로서 INGO는 시민사회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류학적 연구 대상이며 새로운 필드(field)이다. 때문에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INGO들에 관한 NGO 문화지(NGOgraphy)들이 출간되고 있다(Fox 1998; Crewe and Harrison 1998; Hulme and Edwards eds). 일부 학자(Markowitz 2001)들은 이러한 연구방법을 상층연구나 하층연구와 대비하여 전반연구(studying up and over) 또는 관통연구(studying through)라고 부르며, 프로젝트를 추적하는(following project) 방식의 다지역 문화지(multi-sited ethnography) 방법론이 유용하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초국가 시대의 INGO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첫째, INGO는 세계적 담론 형성과 문화창조자로서 기능한다(김영수 2002). INGO는 특정한 제도의 강제적 확산이나, 모방, 규범적 압력을 통해 특정의 제도와 담론을 확산해가는 통로이자 매개자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GS) 논의와 개념들, 시민사회 뿐 아니라 정부와 시장 영역에서도 보편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책과 개념들(거버넌스, 투명성, 효율성, 신뢰, 사회자본, 파트너쉽, 오너쉽, 지속가능발전, 유연성...)은 국제정부간기구(IGO) 뿐 아니라 INGO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민들에게 확산되고 담론화된다. 그러므로 INGO는 세계화 정책의 담론확산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고 매개자이다. INGO는 세계화의 행위주체로서 정부, 기업 및 정부간 기구들과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특수한 지식과 권력관계를 재창조한다.
  둘째, INGO는 지역 경험을 토대로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 이념과 대안 담론을 만드는 지역-세계의 매개 조직이다. INGO는 적어도 3개국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NGO들과 마찬가지로 INGO도 지역사회의 경험과 인적자원을 그 기반으로 한다. 이미 씨에틀에서의 WTO에 대한 저항운동과 코펜하겐에서의 사회개발정상회의, 요하네스버그의 지속가능세계정상회의(WSSD) 등에서 INGO들의 저항과 대안 담론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 바 있으며, 선진국 INGO와 개발도상국 INGO들은 지역사회 경험을 토대로 각각 상이한 발전 이념을 제안하고 있다. INGO들의 조직활동과 이념은 지역지식과 세계화 전략간의 상호 모순적이며 이질적인 담론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장을 제공한다.
  또한, INGO는 대표적인 이념경관(ideoscapes)으로서 정보와 지식 및 가치관들이 교류되고 넘나드는 공간이다. INGO를 통해 인력, 기술, 물자, 재정, 미디어들이 교류될 뿐 아니라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이 INGO 활동을 통해 교환되고 재생산된다. 특히, INGO는 발전과 저발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남과 북, 국가사회와 시민사회라는 대립적이고 호환 불가능한 두 세계가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INGO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세계화와 국가전략 및 통치수단 연구,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과 대안 담론 및 지역과 세계간의 상이한 지식체계 연구,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의 교류와 재생산 과정을 연구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며, 초국가 시대의 새로운 인류학적 필드와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3. 시민사회인류학과 인류학적 시민사회론의 가능성

  한국에서의 시민사회 연구에는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는 시민사회에 대한 이념 논쟁과 현실분석의 괴리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사회주의적 시민사회론의 비판과 반비판과정을 통해 시민사회를 하나의 운동 지향적 이념으로 형성해나가고 있으나 정작 시민사회운동의 현실태에 관한 분석은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둘째는 시민사회 개념이 지니는 서구의 발전론적이고 진화론적인 함축이 거의 여과되지 않고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마치 문명전환적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것과 같이 신비화되어 있다. 반면에 실재로 시민사회가 어떠한 양태로 존재하고 조직원리와 특성, 가치관과 신념체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파편적인 수준이다(연고주의,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 셋째는 지나치게 규범적인 논의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사회자본, 신뢰, 거버넌스, 파트너쉽, 성찰적 근대성과 성찰적 자본, 세계시민 등에 관한 논의들은 얼마나 시민사회 논쟁이 규범적이고 개념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그러한 지적 구성물들이 한국사회의 조직원리나 문화적 정체성과 특수성을 얼마나 올바로 해석해내고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주는지에 대하여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은 문제중심의 인류학, 이슈중심의 인류학,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인류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민사회인류학은 한국사회의 문제와 이슈중심의 실천적 인류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학은 개발, 환경, 인권, 분쟁, 편견, 허위의식과 지배, 신화와 상징, 인종과 성, 세대와 지역차별, 문화자본, 공동체와 규범, 관용과 신뢰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경험적으로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라는 이상과 반국가, 반시장, 반서구 중심의 사상을 암묵적으로 실천하여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인류학은 본질적으로 문화비평적인 학문이다. ‘문화비평으로서의 인류학의 귀환’이라고 적시하지 않더라도 인류학은 시민사회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와 이슈, 비젼과 규범, 슬로건과 현실사이에서 다른 학문분과에서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비교문화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처음부터 내세워 문화적 환원주의나 무모한 총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현실적 주체들과 요소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현실 분석을 통해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시민사회 인류학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 분리되어 연구되어 왔던 가족, 종족, 생계와 기술, 신념체계와 도덕, 지역정치가 ‘시민사회’를 통해 비로소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통합적으로 위치 지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적 연구란 부분들에 대한 의미 짓기 작업이며, 인류학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을 통해 ‘복합총체’를 보여주고 전체에서 의미 지워진 부분들의 실천이 가능하도록 기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실천적이고 정책 함의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발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학은 학적, 현실 정치적 담론 경쟁을 통한 권위의 확보뿐 아니라 대중적 지지기반의 확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시민사회인류학은 그 동안 국내에서 연구되어 왔던 사회운동관점의 시민사회론, 규범적인 시민사회론, NGO 조직관리론 등이 한국정치의 ‘전통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왔던 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를 시장과 법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보편주의 이상과 한국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상대주의의 양극단에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현실적이고 다원적인 모델을 구축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김영수, 2002. 「세계 사회의 거버넌스 형성과 국제 NGO의 역할: 세계담론의 형성 주체와          문화창조자로서의 INGO」, 2002년도 한국NGO 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자료『NGO          의 활동현황과 발전과제』
Crewe, Emma and Elizabeth Harrison, 1998. Whose Development? : An Ethnography of          Aid, London: Zed Books.
Fox, Diana Joyce 1998. An Ethnography of Four Non-Governmental Development               Organizations, The Edwin Mellen Press.
Hann, Chris and Elizabeth Dunn eds. 1996. Civil Society : Challenging Western                 Models, London: Routledge.
Hearn, Jonathan 2001. "Taking Liberties : Contesting Visions of the Civil Society                Project",Critique of Anthropology 21(4): 339-60
Hulme, David and Michael Edwards eds. 1997. NGOs, States and Donors: Too Close for          Comfort?, New York: St. Martin's Press.
Markowitz, Lisa  2001. "Finding the Field: Notes on the Etnography of NGOs",                  Human Organization 60(1):40-6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 한국동남아연구소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총서 5

김예겸 , 박번순, 박승우, 윤진표, 이동윤 지음 | 명인문화사 | 2010년 07월 15일 출간

목차

서문

제1장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 현황 및 평가
1. 서론
2.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의 연구 의미
3.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의 현황
4. 동남아 지역 거버넌스의 축으로서의 아세안
5.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의 지역 거버넌스 평가
6. 동남아 지역 거버넌스의 향후 과제

제2장 동남아 빈곤해소를 위한 지역 거버넌스
1. 서론
2. 동남아에서의 빈곤의 실태
3. 빈곤에 대한 동남아의 지역적 거버넌스
4. 결론

제3장 동남아 테러방지 협력의 지역 거버넌스: 국제적 압력과 내부적 인식 사이에서
1. 서론
2. 이론적 논의: 테러방지의 지역 거버넌스
3. 동나아의 테러리즘 현황과 테러방지정책
4. 테러방지를 위한 동남아의 지역협력과 거버넌스
5. 결론

제4장 동남아 환경문제와 지역 거버넌스:
인도네시아 밀림화재와 연무(Smoke Haze) 문제를 중심으로 국제적 압력과 내부적 인식 사이에서
1. 서론
2. 선행 연구
3. 인도네시아 밀림/임야 화재 및 연무 현황
4. 연무문제의 인과적 요인
5. 연무 문제의 맥락적(Contextual) 상황
6. 연무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중재적 시도
7. 다양한 인식들의 갈등 상황
8. 결론

제5장 동남아 전염병과 지역 거버넌스: 조류인플루엔자를 중심으로
1. 서론
2. 조류인플루엔자의 동향: 세계 및 지역 현황
3. 동남아 지역 국가들의 대응전략과 한계점
4. 지역 거버넌스 차원의 대응전략과 방안
5. 결론

제6장 메콩강 수자원 개발에 관한 지역 거버넌스: 초국가적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1. 서론
2. 초국가적 수자원과 지역 거버넌스에 대한 기본논의
3. 메콩강의 초국가적 환경문제의 실태: 수력발전을 중심으로
4. 메콩강의 지역 거버넌스: '물의 정치'
5. 결론: 바람직한 지역 거버넌스를 위한 과제

제7장 동남아의 초국가적 노동이주와 지역 거버넌스: 현황과 모색
1. 글로벌리제이션, 동남아의 노동이주, 지역 거버넌스
2. 동남아 이주노동의 역사적 전개와 현황
3. 동남아시아 초국가적 노동이주의 주요 이슈
4. 동남아 노동이주에 관한 거버넌스의 현황
5. 동남아 노동이주에 관한 모범적 지역 거버넌스의 모색

제8장 반인신매매 정책담론과 로컬 사회: 인도네시아 사례를 중심으로
1. 서론
2. 인신매매에 관한 선언적 정의와 사태의 복잡성
3. 인신매매 정책 담론: 문제 접근 시각을 중심으로
4. 글로벌의 문제정의와 로컬 현장: 인도네시아 사례를 중심으로
5. 결론

찾아보기
저자약력

출판사 서평


이 책은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동남아 차원의 지역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역내에서 부각된 7개의 초국가적 이슈인 테러리즘, 빈곤, 연무, 인신매매, 전염병, 수자원개발, 이주노동 문제에 대한 현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초국가적 이슈에 대하여 해당 동남아 전문가들이 과거와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과 각 이슈의 해결을 위한 동남아 지역차원의 협상 및 협력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초국가적 이슈의 해결 방안에 대하여 거버넌스라는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문제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연구되었던 글로벌 거버넌스나 국가 거버넌스 중심의 연구가 아닌 국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협력하는 지역 거버넌스로 분석하며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사회를 위한, 환경을 위한 동남아의 새로운 지역 거버넌스를 찾아나가는 노력과 방향을 같이하고 있다.
그동안 획기적으로 발전한 한국과 동남아의 관계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더욱 긴밀한 지역협력을 필요로 한다. 동남아 지역의 초국가적 이슈는 한국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할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과제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성에 바탕을 두고 실증적인 분석과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동남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동남아 지역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에 대한 현장감 있는 분석과 함께 우리의 정책방안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비판적 지역주의 - 자료



1차 세계대전이 국제 관계의 기본 규칙을 와해시켰고,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수많은 중간 계급의 몰락을 낳았으며, 대규모의 “집단 이주”(Ibid., 267; 489쪽)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자마자 노숙자(homeless)가 되었고 국가를 떠나자마자 무국적자(stateless)가 되었다. 인권을 박탈당하자마자 그들은 무권리자들(rightless)이 되었으며 지구의 쓰레기가 되었다.”(Ibid., 267; 489~90쪽)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적을 상실한 소수 민족들과 망명자들, 이주민들이 겪은 사태는 그의 지적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의 권리 상실은 어떤 경우에든 인권의 상실을 수반했다. 최근의 사례인 이스라엘 국가가 입증하듯이, 인권의 회복은 국민적 권리의 확립이나 회복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인권 개념은 인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인권을 믿는다고 고백한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사실 외에는 모든 다른 자질과 특수한 관계들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마주치는 순간, 인권 개념은 파괴되었”(Ibid., 299; 537쪽)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권이라는 것은 어떤 개인이 어떤 나라의 국민이나 시민이든 간에,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로 인해 지니게 되고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며, 따라서 시민의 권리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임에도, 실제로는 어떤 개인이 이러한 인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특정한 나라의 시민 내지 국민의 자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인권은 시민의 권리와 독립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시민의 권리에 논리적으로 선행하고 그것을 근거 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의 권리에 의존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이것이 아렌트가 말하는 인권의 역설이다.



Judith Butler & Gayatri Chakravorty Spivak, Who Sings the Nation-State? ─ language, politics, belonging, London and New York: Seagull Books, 2007.

[국역] 주해연 역,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서울: 웅진씽크빅, 2008.




"우리는 왜 이 시점에서 '비판적'인 '지역주의'를 논하고 있는 것일까요? 비판적 지역주의는 민족주의를 넘어서 혹은 민족주의 아래에서 작동하면서, 동시에 국가와 비슷한 추상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적 지역주의는 단순히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인권침해 사례를 모으거나, 스스로 행동할 수 없는 대중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공익소송을 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자신이 실질적인 헌법적 부정의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91)

2014년 9월 7일 일요일

야만과 인간성 - 법과 도덕의 경계에 있는 전쟁 (위르겐 하버마스 99.4.29 디차이트 기고)

[철학]

하버마스의 코소보 관련 기고(99.4.29)

http://www.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germany&wr_id=506&sca=%EC%B2%A0%ED%95%99&page=10
작성일 : 1999/10/21  조회수 : 93

■야만과 인간성 - 법과 도덕의 경계에 있는 전쟁
(위르겐 하버마스 99.4.29 디차이트 기고)

독일군의 첫번째 참전과 함께 오랜 소극성의 시대가 지나갔는데, 이 시대는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인의 정서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다. 물론 나토의 '공습'은 전통적 의미의 전쟁과는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실제로 공습의 '외과수술적인 정확성'과 민간인에 대한 계획적인 보호는 매우 높은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는 지나가는 20세기를 특징짓는 전면전으로부터 작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코소보 분쟁을 텔레비젼을 통해 매일 밤 지켜보는 '반쯤 참여자'들인 우리들도 공습 아래서 몸을 숨기고 있는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에게 이는 전쟁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다행히도 독일 여론에서 둔감한 말투들이 보여지지 않고 있다. 운명에 대한 그리움, 훌륭한 동지들을 위한 지식인들의 북치기 등이 없다는 것이다. 걸프전 당시에만 해도 긴급 사태(Ernstfall)라는 수사법, 국가적 파토스와 위엄과 비극과 남성적 성숙에의 주술들이 소리 높은 평화운동에 반대해 울려 퍼졌다. 이 양진영은 현재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쪼그라든 평화주의에 대해 약간의 심술이 여기저기서 보여지고 있으며 "우리는 도덕의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라는 강력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고는 있다.그러나 참전에 대한 옹호자나 반대자 모두 매우 분명한 규범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은 별로 끄는 맛이 없다.

평화주의적 반대자들은 작위와 무작위 간의 도덕적 구분을 상기시키면서 정확한 군사 공격에도 불구하고 '감수해야 하는' 민간인 희생자들의 고통에 시선을 돌리려 하고 있다. 그 호소는 그러나 이번에는 국시를 중시하는 냉담한 현실주의자들의 양심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 호소는 적녹 연정의 '법률적 평화주의(legal pacifism)'를 겨냥한 것이다. 우리들보다 이성법적 전통이 더 지배적인 전통적 민주주의 국가들 옆에서 우리 독일의 피셔와 샤르핑 장관은 국가들 간의 자연상태를 인권의 측면에서 문명화시킨다는 이념을 끌어오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법이 세계시민의 법(ein Recht der Weltbuerger)로 전환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법률적 평화주의는 주권국가들 간의 잠재적 전쟁 상태를 단지 국제법 상으로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히 법률화된 세계시민적 질서 안에서 지양하려고 한다. 독일에서도 칸트에서부터 켈젠까지 이러한 전통이 존재했다. 그러나 독일의 정부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시민(Weltbuerger)의 연합체에 직접 가입한 한 국가의 국민(Staatsbuerger)은 이를 통해 자국 정부의 자의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 국가들의 주권을 초월하는 하나의 법률의 가장 중요한 귀결은, 피노체트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지도자들이 그들의 지배와 전쟁 행위에서 행했던 범죄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한편에서는 '신념 평화주의(Gesinnungspazifist)'와 다른 한편에서는 법률 평화주의가 공공의 토론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현실주의자'들도 규범적 수사의 외투 아래로 숨어들었다. 찬반 입장들은 각각 서로 반대되는 동기들을 묶어내고 있기도 하다. 주권적 국가 권력에 대한 규범적 제어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힘의 정치 신봉자들이 평화주의자들과 연대하고, 다른 편에서는 순수하게 (나토) 동맹에의 신의를 중시하는 '대서양주의자'들이 인권에 대한 열광을 보여주는 정부 당국자들에 대한 불만을 억지로 감추고 있다. 이 정부 당국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퍼싱 2 미사일 배치에 반대해서 가두 시위를 벌였던 사람들이다. Dregger와 Bahr가 Stroebele 옆에 서있고, Schaeubler와 Ruehe가 Eppler와 손잡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독일의 좌파 정부와 이들의 규범적 논변의 선호는 본래적인 전투 대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공적 토론과 분위기가 다른 서유럽 국가에서와 다르지 않다는 다행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다른 길'이나 '다른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유럽 대륙과 앵글로색슨 간의 분열이 다소 보여지고 있는데, 적어도 유엔 사무총장의 자문을 구하고 러시아와의 협의를 추구하는 측과 주로 자신의 무기를 신뢰하는 측의 분열이 보여지고 있다.

물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과 EU 회원국들은 공동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랑부예 협상이 실패한 이후 그들은 코소보 자치를 위한 리버럴한 규정을 세르비아 내에서 관철시킨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나서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적 처벌을 강행하고 있다. 전통적 국제법에서는 이를 주권 국가의 내정에 대한 개입, 즉 내정간섭 금지의 위반 행위로 여겨질 것이다. 한편 인권 정책의 전제 하에서는 이번 공격은 국제사회로부터 (유엔 위임 없이도 묵인 하에) 권한을 부여받은 평화유지를 위한 군사적 행위로 이해될 것이다. 이러한 서방의 해석에 따르면 코소보 전쟁은 고전적 국제법에서 하나의 세계시민 사회의 세계시민적 법률로의 도약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발전 양상은 이미 유엔 결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동서 냉전기간 중 정체되었고 그 이후 걸프전과 그 외의 군사개입에 의해 가속화되어왔다. 물론 1945년 이후 인도적 개입은 유엔의 이름 하에, (아직 국가 권력이 기능하는 한에서) 해당 국가 정부의 형식적 동의와 함께 이루어져왔다. 걸프전에서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 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치하고 이라크 북부에 쿠르드 난민을 위한 '보호구역'을 설치함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한 주권국가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은 명시적으로 박해받는 소수파를 자국 정부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91년 4월 결의안 688호에서 유엔은 '국제 안보상 위협'이 있는 경우에 가능한 개입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상황이다. 나토는 유엔 안보리 위임 없이 행동하고 있으면서 이 개입을 박해 받은 민족적(그리고 종교적) 소수파를 위한 긴급 구조로 정당화하고 있다.




코소보에서는 이미 공습 수개월 전부터 약 30만명에 대해 살인, 테러, 추방이 가해졌다. 이제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로 향하는 난민 행렬의 충격적 장면들이 조직적인 인종 청소의 증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난민들을 인질로 쓰기 위해 붙잡아두는 경우도 있다. 밀로셰비치가 나토 공습을 자신의 정책을 쓰디쓴 종말까지 계속 밀고 나가기 위한 기회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난민들을 담은 장면들이 이러한 인과적 관련성을 거꾸로 인식하게 할 수는 없다. 협상의 목표가 바로 이러한 살인적인 인종 민족주의를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1948년 민족학살에 대한 협약의 원칙들이 지금 공습 하의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적용되고 있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와 동경의 전범 재판의 원칙에서 '인간성에 대한 범죄'로서 국제법에 포함되게 된 그러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이다. 얼마전부터 유엔 안보리는 이러한 범죄도 경우에 따라서는 무력 조치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 '평화 위협'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위임이 없는 이번 경우에 군사개입하는 국가들은 오직 그들이 의무지워져 있는 국제법의 원칙들로부터만 이러한 원조 조치에 대한 권한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코소보인들의 동등한 공존에의 권리와 불의한 폭력적 추방에 대한 분노는 서방의 군사 개입에 대해, 다양한 편차는 있지만 폭넓은 동의를 가능케 했다.CDU의 외교 대변인 Karl Lamers는 이러한 동의에 처음부터 수반되어온 이중성을 잘 표현했다. "이렇게 우리 양심은 진정될 수 있다라고 우리의 이성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은 이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많은 불안정의 근원이 있다. 무력 개입 외의 어떠한 대안도 허용하지 않았던 협상 전략이 현명했던가에 대한 회의가 강하게 떠올랐다. 왜냐하면 군사 공격의 목표에 대한 회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에게서 야당에까지 밀로셰비치의 강경노선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의 위험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근 국가인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 그리고 몬테네그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불안정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핵 폭탄으로 강력하게 무장한 러시아에서는 여러 그룹들의 '형제 민족'과의 연대가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군사적 수단의 적절함이 문제가 되고 있다. 모든 '불가피한 피해', 다뉴브강 교량 파괴로 강으로 떨어진 모든 기차들, 알바니아 난민을 실은 모든 트랙터들, 세르비아인 거주지를 비롯해서 미사일 공격의 희생이 된 모든 민간 시설들은 전쟁의 어떤 익명의 부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군사개입한 '우리들이' 양심에 거리껴하는 그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다.

적절함의 문제는 결정하기가 어렵다. 나토가 국영 라디오 파괴를 30분 전에 고지해야 했던 것은 아닌가? 또한 의도적인 파괴- 불타는 담배 공장과 가스시설, 폭격받은 고층빌딩과 거리와 다리, 유엔 경제제재로 그렇지 않아도 타격을 입은 유고슬라비아의 경제 인프라의 폐허화- 역시 (공습에 대한) 동요를 더욱 크게 한다. 피난 중에 죽어간 모든 아이들은 우리의 신경을 찢어놓는다. 왜냐하면 파악될 수 있는 인과적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이제 책임의 실마리가 엉클어져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참한 추방 속에서 한 국가 테러리스트의 무자비한 정책의 결과들은 그에게 피묻은 무기를 버리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변명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공습의 결과들과 쉽게 풀어버릴 수 없게 엉클어지고 있다.

또한 이제 혼란스러워진 정치적 목표에 대한 회의가 있다. 물론 밀로셰비치에 대한 5가지 요구는 자유롭고 다문화적 보스니아를 위해 데이튼 협정이 상정했던 요구들과 동일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 만일 알바니아계 코소보인의 세르비아 내 자치 요구가 충족된다면 이들은 전혀 분리 독립에 대한 권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대알바니아 민족주의는 나토 군사개입이 억누르고자 하는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다. 이제 하루 하루 인종 청소의 상처가 깊어질수록 여러 민족의 동등한 공존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재고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코소보를 분단하는 것은 아무도 원할 수 없는 분리일 뿐이다. 게다가 보호위원회 설치는 전략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즉 지상전과 수십년에 걸친 평화유지군 주둔을 의미한다. 만일 이러한 예견치 않았던 결과가 나타난다면, 이번 작전의 정당화 문제는 사후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물어져야 할 것이다.

독일 정부의 발언에는 어떤 날카로운 음향이 섞여있다. 이는 논란이 되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례에 대해 지나친 염려를 하는 것이며, 마치 피셔와 샤르핑의 강력한 수사와 함께 어떤 다른 목소리가 내부에서 들려오는 것과 같다. 이것은 군사 개입이 정치적으로 실패할 경우 이 개입을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몰아가게 되고 국가 간의 관계를 법제화하려는 노력을 수십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인가? 그렇다면 나토가 국제사회를 위해 짊어진 이러한 '경찰 역할'은 기껏 하나의 '전쟁', 그것도 발칸을 더 심각한 참극으로 몰아넣는 더러운 전쟁이 될 뿐인가? 그리고 이는 이에 대해서 언제나 잘 알고 있던 Carl Schmitt의 말처럼 될 것인가? 그는 "인간성을 말하는 사람은 속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반휴머니즘을 유명한 말로 표현한 바 있다."인간성은 야수성"이라고. 법률 평화주의는 결국 잘못된 기획이 아닌가라는 회의가 이러한 불안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다.




현실정치의 모순

코소보의 전쟁은 정치학과 철학에서도 논쟁이 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민주주의적 법치국가는 정치권력을 법적으로 길들인다는 위대한 문명의 성취를 국제법상 인정된 주체들의 주권이라는 근거 위에서 이룩했다. 한편 '세계시민적' 상태가 이러한 민족국가의 독립성을 의문시하고 있다. 계몽주의의 보편성이 여기서 특정 공동체의 집단적 자기 주장을 가능케하는 정치권력의 고집에 부딪히게 되는가? 이는 인권 정책의 살에 박힌 현실적 가시이다.

현실주의 학파들도 물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과 함께 등장한 독립 국가들 체제가 구조적으로 변동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1)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 사회의 상호의존성 2) 국가들이 서로 협력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의 등장 3) 초국가적 기관과 절차의 숫자와 그것이 가지는 권위의 증가(이는 집단안보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4) 외교의 경제화와 내정/외교의 고전적 구별의 혼돈 등등이다. 그러나 비관주의적 인간 이념과 본래부터 불투명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 등이 상호 불개입의 국제법적 원칙을 고수하는 독트린의 배경을 이룬다. 국제적인 사냥터에서는 독립적 민족국가들이 가능한 한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이해 관계라는 잣대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다. 왜냐하면 이는 한 집단의 안보와 생존은 그 집단 구성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 어떤 것과도 교환할 수 없는 가치이며, 합리적인 자기 주장의 당위성은 집단적 주체들의 관계를 가장 잘 제어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입적인 인권정책은 범주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권정책은 자기 주장이라는 어느 정도 '자연적' 경향을 과소평가하고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규범이라는 기준을 규범화에서 벗어나는 권력 위에 배치하려고 한다. Carl Schmitt는 이런 논변을 자신의 정치적인 것의 '본질 규정'을 통해 끝까지 밀고 갔다. 원래부터 가치중립적인 국가 이념을 '도덕화'하려는 시도를 통해 인권 정책은 국가 간의 자연적 투쟁을 '악에 대항한 투쟁'으로 타락시킨다고 슈미트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반론들이 있다. 즉 (인권 정책은) 이제 국가 시대가 끝났으며 국제사회의 규칙이 힘을 겨루는 민족국가들을 조종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입을 부르는 것은 오히려 국가 권위의 침식이며 무너졌거나 권위주의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한 국가 내의 내전과 종족 분쟁이라는 것이다. 이는 소말리아와 루완다 뿐 아니라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그러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의심도 별 근거가 없다. 현재의 사례는 보편주의적 정당화가 언제나 이해관계들의 특수성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공격에 있어 이러한 의심들이 지적하는 것은 매우 빈약하다. 경제의 세계화 때문에 국내정치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정치인들에게 외교적인 힘의 과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공격에 있어 미국의 동기는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고, 나토의 동기는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며, 소위 '유럽 요새'의 동기는 새로운 이민의 물결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개입에의 결정을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에 대한 반론은 무엇보다 국제법의 주체들이 20세기 참극의 역사에 있어 남겨온 피의 흔적은 고전적 국제법의 무죄 주장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창설과 유엔 인권선언, 그리고 침략과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처벌 위협, 또한 이의 결과로 일정 정도 불개입 원칙을 제한하는 것 등은 금세기의 중요한 윤리적 경험, 즉 전체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경험에 대한 필연적이고 적절한 응답인 것이다.

나아가 정치의 도덕화라는 비난은 개념적 불명확성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시민적 상태를 안정시키려는 노력은 인권 침해 범죄에 대해 도덕적 관점에서 맞서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국가의 법 체계에서 범죄행위를 처벌하듯이 처벌하려는 것이다. 국제 관계의 완전한 법제화(eine durchgreifende Verrechtlichung internationaler Beziehung)은 분쟁 해결을 위해 제도화된 절차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은 오히려 인권 문제를 법적으로 다루는 것이지 권리를 도덕적 차원에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는 소위 '적'을 도덕적 측면에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지탄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또한 하나의 세계국가에 있어 폭력의 독점(Gewaltmonopol)과 세계정부(Weltregierung)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제대로 기능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하며, 국제 형사재판소 판결의 기속력이 필요하며, 각 정부 대표자들의 회담을 '두번째 단계'의 세계시민의 대의 기구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엔을 이렇게 개혁하는 것은 아직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법제화와 도덕화 간의 구분을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기는 하지만 두 날을 가진 칼과 같다. 왜냐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의 제도화가 덜 이루어져 있는 한, 법과 도덕의 경계는 현재의 경우처럼 모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리가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나토는 국제법의 도덕적 정당성에 호소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정당성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승인된, 효율적인 법 적용 및 집행 기관이 결여되어 있다.

세계시민 사회의 미비한 제도화는 예를 들어 평화 유지 및 정착을 위한 개입에 있어 정당성과 효율성 간의 간격에서 잘 나타난다. 유엔은 Srebrenica를 보호 항구로 선언했다. 그러나 그곳에 정당하게 주둔한 군대는 세르비아인의 진주 이후 잔인한 학살을 막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나토는 이러한 유엔 안보리의 위임이라는 정당성 없이 실질적인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정부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인권정책의 딜레마

인권정책은 이러한 상황의 간격을 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인권정책은 세계시민법의 제도화 미비로 인해 단지 미래의 세계시민적 상황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역설적 조건 하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군사적 수단을 써서라도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정책을 어떻게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이 세계 전역 모든 곳에 쿠르드 민족이나 체첸이나 티벳을 위해서 개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바로 우리의 문 앞인 발칸에서는 이러한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인권정책을 이해하는데 있어 재미있는 차이가 미국과 유럽 간에 존재한다. 미국은 인권의 전세계적 관철을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사명으로 생각하면서 이러한 목표를 힘의 정치라는 전제 하에서 추구한다. EU의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인권 정책를 오히려 국제관계의 전면적인 법제화 프로젝트로 이해하는데 이러한 프로젝트는 힘의 정치라는 변수도 변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유엔이 허약하게 규제하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잡는 역할을 넘겨 받았다. 여기서 정치적 목표를 평가하는데 있어 인권이 윤리적 가치 지향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언제나 이와 반대되는 고립주의적 경향도 있으며 다른 국가들처럼 미국도 우선적으로 자국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데, 이는 언제나 앞서 선언한 규범적 목표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잘 보여졌으며 이는 계속 미국의 '뒷 마당'의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울리히 벡이 "인도주의적 이타성과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의 새로운 혼합 형태"라고 명명한 이런 형태는 미국의 전통이 되어 있다. 1차대전 당시 윌슨 대통령과 2차대전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동기들에는 실용주의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이상의 추구도 존재한다. 독일이 1945년 패전과 동시에 해방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러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러한 매우 미국적인, 즉 규범적 지향성을 가진 힘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와의 전쟁을,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비타협적으로 밀고 나가고 필요한 경우 지상군도 투입하는 것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이는 최소한 일관성이라는 장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아시아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 군사동맹체가, 국제법이나 유엔 헌장에 대한 완전히 다른 그들의 해석에 근거해서, 군사적 수단으로 인권 정책을 진행시켜 나간다면 그때 우리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권이 자신의 정치 행위를 윤리적으로 지향시키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의미에서 하나의 권리로 나타난다면, 상황은 달리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인권은, 그 윤리적 내용과는 무관하게, 기속력 있는 법률 체계 속에서 효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개인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권이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민주주의 법치 체제 안에서 마치 한 국가의 헌법에서처럼 위치지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권리의 수취인이 곧 이의 발신인으로 이해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의 기구들은 기속력 있는 법 적용과 민주적 입법을 완성시키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규범은 그것이 아무리 내용적으로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폭력적으로 강제되는 제한에 불과할 것이다. 코소보에 개입한 국가들은 물론 유고 정부가 인권을 짓밟은 사람들의 권리를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베오그라드 거리에서 춤추는 세르비아인들은 Slvoj Zizek이 말했듯이 "민족주의의 저주에서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변장한 미국인들이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 질서가 군사력으로 강요되고 있다. 유엔이 회원국인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결정하지 않는 이상 이는 규범적 관점에서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19개의 의심할 바 없이 민주주의적 국가들 역시 그들이 스스로 개입을 결정한다면 한 정파에 머물게 된다. 그들은 오직 독립적 기관에만 주어지는 개입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한 이상 그들은 가부장적(paternalistisch)으로 행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적절한 도덕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적 가부장주의가 불가피하다는 의식 속에서 행위한다면 그가 행하는 폭력이 아직 민주적 세계시민사회의 틀에서 정당화된 법률 행위의 성격을 얻고 있지 못함도 알고 있어야 한다. 도덕적 규범들은 우리들의 보다 나은 통찰에 호소하지만, 제도화된 법률적 규범인 것처럼 강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힘의 정치에서 세계시민 사회로

제도화된 세계시민 상태는 앞으로 추구되어야 하는데 마치 그것이 이미 현존하는 것처럼 행위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희생자들을 외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국가 권력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테러가 될 때 고전적 의미의 내전은 인민에 대한 범죄가 된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민주주의적 이웃국가들은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되는 긴급구조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세계시민 상태의 미완성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이미 존재하는 제도와 절차는 전체를 위해 행동하는 한 특정 정파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오해들의 한 원천은 예를 들어 정치적 정서들이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에 있는 것처럼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나토의 공중전과 세르비아의 지상전에 엔첸스베르크가 말하는 것처럼 4백년의 시간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있어서 내게는 그림멜하우젠보다는 에른스트-모리츠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새로운 의미에서 '제1' 세계와 '제2' 세계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오직 평화적이고 부유한 OECD 국가들만이 자신의 국가적 이해관계를 유엔의 거의 세계시민적인 요구 수준과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새로운 의미에서의) '제2 세계'는 유럽 민족주의의 힘의 정치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리비아, 이라크, 세르비아와 같은 국가들은 국내의 불안정한 상황을 권위주의 통치와 자기정체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통해 보완하는데, 이들은 외부적으로 팽창주의를 펴고 있으며 국경 문제에 예민하고 주권 문제에 있어 신경과민을 보이고 있다. 이런 종류의 관찰은 서로 간의 교류에 있어 문턱을 더욱 높이게 된다. 현재 이러한 문턱이 외교적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주목할만한 정치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헤게모니를 움켜쥔 질서의 수호자로서 인권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다른 한편 우리(유럽인)들은 전통적 힘의 정치로부터 현재의 무력 분쟁을 넘어 세계시민적 상태로 가는 과도기를 함께 풀어나가야 할 배움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장기적 전망을 볼 때 우리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나토가 자기 자신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