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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7일 화요일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캐럴 페이트만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캐럴 페이트만 지음 | 이충훈 외 옮김 | 이후 | 2001년 04월 11일 출간

책소개

결혼계약, 매춘계약, 그리고 대리모 계약 등을 구체적인 예로 하여 근대적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폭넓게 고찰한 책.18세기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사회계약론의 텍스트 분석과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사례 분석을 결합해 자본과 노동의 관계,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설득력 있게 기술하고 있다.

목차

서문 ...10
제1장 계약하기 ...15
제2장 가부장제에 대한 혼란 ...39
제3장 계약. 개인 그리고 노예제 ...67
제4장 창세기. 아버지 그리고 아들의 정치적 자유 ...119
제5장 아내. 노예 그리고 임금 노예 ...169
제6장 페미니즘과 결혼계약 ...219
제7장 매춘이 어때서? ...263
제8장 이야기는 끝나는가? ...303
주 ...324

출판사 서평

이 책을 쓴 페이트만은, 저명한 정치이론가이지만 통상 급진적 페미니즘의 학자로 분류되곤 한다. 급진적페미니즘은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여성운동의 한 조류로서, 가부장제의 변혁을 목표로 결혼, 가사노동,육아, 성 등에 대한 폭넓은 문제제기와 활발한사회운동을 전개했으며,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페미니즘의 또다른 조류로는 18세기부터 '개인의 자율성 실현'이라는 자유주의 사상의 연장선에서 여성의 억압을 다루어온 자유주의적 페미니즘,1970년대부터 맑스주의와 급진적 페미니즘을 결합하여 '여성의 노동'이란 문제를 제기하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공격했던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이 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급진적 페미니즘이란 '딱지'는 그녀의 사상을 규정하기엔 불충분하다.

페이트만은 이 책에서 '성적계약'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개념을 통해 여러 페미니즘의 이론적·실천적 한계를 드러내고 페미니즘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유주의를 아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개인의 자율성'이 실상 여성이 누락된 '남성의 자율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여 이를 급진화시키고자 하며,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남성들간의 관계'와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 입체화하여 사회주의의 문제의식까지 수용하면서 세련화시키고자 한다고에 따라 저자는 남성들간의 권력관계,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를 해체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실현을 꿈꾼다. 페미니즘은 곧 민주주의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이 책은 18세기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사회계약론의 텍스트 분석과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사례 분석을결합하여 이상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해간다.

근대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사회계약론, 그러나...
사회계약론은 시민사회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회계약론에서 남성과 여성의 계약, 즉 성적 계약의 이야기는 억압되어 있다. 이런 억압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은폐한다. "사회계약은 자유에 관한 이이디어다. 하지만 성적 계약은 예속의 이야기이다"(17쪽) 따라서 자유롭게 계약하는 '개인들'이란 실제로는 '남성들'일 뿐이다. 정치이론가들이 성적 계약에 관해 침묵하는이유는두가지이다. 첫째, 가부장제를 '아버지의 지배'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근대 시민사회에서 전근대적인 아버지의 지배는 소멸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가부장제는 아버지의 지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 사회는 아버지를 '살해'했지만 형제적 가부장제를 만들어냈고, 따라서 남성들의 권력은 여전히 다른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둘째,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분리하고 공적 영역만을 정치적인 영역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성적 계약은 사적 영역만의 문제라고, 공적 영역은 가부장제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제시된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을예속하는 성적 계약은 결혼계약, 고용계약, 매춘계약, 대리모계약 등의 형태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가로질러 맺어지고 있다.

아버지는 죽었으나 형제들은 살아 남았다
가부장제에 대한 입장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전통적 가부장제. 이는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의 지배를 자연적인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둘째, 고전적 가부장제. 이는 전통적 가부장제를 확대하여,왕이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왕이라는 식으로 정치적 권력과 아버지의 지배를 동일시한다. 셋째, 근대 가부장제. 사회계약론은 근대 사회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계약은 아버지의 지배를 소멸시킨다고 주장한다.전통적·고전적 가부장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표어 중 하나가'우애'(통상 '박애'로 번역되는 '형제애')인 것에서 보여지듯, 근대 사회는 아버지의 지배를 소멸시키는 대신 형제적 가부장제를 만들어냈다. 우애는 시민사회에 남성적인 질서와 남성적인 연대를 구성하는 원리이며, 여성에 대한 성적 지배를 의미한다.

계약은 권력을 생산한다
근대 사회는 온갖 계약을 통해 움직인다. 그러나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자유릅게 계약을 맺는다는 이야기는 정치적 허구일 뿐이다. 이 정치적 허구의 모순은 계약론적 관점에서 노예제를 옹호했던 주장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과 노예가 계약을 맺어 주인은 노예의 안전을 보호하고, 그 대가로 노예는 자신의 예속상태를 받아들인다는 논리는 실상 계약 이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계약론적 관점은 노예의 자유(계약을 맺을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노예의 자유 박탈(단 한번의 계약에 따른 평생에 걸친 예속상태)을 인정해야 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

성적계약은 노예계약이 아니지만, 계약이라는 명목 아래 권력관계를(재)생산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여성은 분명 계약의 한 당사자여야 하지만 동시에 정치사회·시민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여성은 계약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계약론의 논리적 모순은 근대 사회가 여성의 예속이라는 가부장적 질서 위에서 개인(중성적인 개인, 따라서 남성 성인일 뿐인 개인)의 시민적 자유를 획득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대적인 형제적 가부장제를 지탱시키는 성적계약은 공적·사적 영역을 가로질러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것은 결혼계약이지만, 고용계약, 매춘계약, 최근에 나타난 대리모계약도 빼놓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위한 페미니즘
기존의 페미니즘의 주장처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법적·계약적 권리를 성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으며, 그 동안 많은 권리를 획득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적 계약에 따른 남성에 의한 여성의 정치적 지배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성이 남성과 계약상의 동등한 당사자가 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법률적 개혁이 일어난지 한 세기 이상 지난 지금, 여성들은 거의 남성과 법률적으로 동등해졌다고 할 수 있으나 여전히 남편의 보호 아래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들은 여전히 광범위한권력을 누리며 아버지의 신분에서 나오는 이익까지 얻는다'(314쪽). 따라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예속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자유와 예속의 관계'를 이해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자유로운 사회"(321쪽), 즉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기획의 출발선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성적 계약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소개
지은이 : 캐럴 페이트만(Carole Patenman) 
UCLA 정치학 교수.
영국 서섹스에서 노동계급의 자녀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정치학회 회장, 아메리카 정치학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책은 1989년 아메리카 정치학회의 빅토리아 슈크 상을 수상했고 현재 6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는《여성의 무질서:민주주의, 페미니즘, 정치 이론》(1989),《정치 적 의무의 문제·자유주의 이론의 비판적 분석》(1979),《참여와 민주주의 이론》(l970)이 있으며, 민주주의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4년 10월 1일 수요일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양극화

[매경포럼]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양극화
기사입력 2006.09.28 17:18:02                                                                                                http://news.mk.co.kr/newsRead.php?no=421693&year=2006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1958년 출간된 그의 미래소설 '메리토크라시의 반란(Rise of Meritocracy)'에서 실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가리켜 '메리토크라시(실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실력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실력은 '능력+노력'에 따라 결정되며 실력있는 자들은 사회적으로 더 잘 되고 경제적으로 보다 윤택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메리토크라시는 경쟁원리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부유층이나 지식층 자녀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아 사회 요직에 진출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은 출세의 길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저소득층이나 교육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녀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데다 자극을 받을 기회도 적어 하루하루를 체념하면서 사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빈곤의 대물림 현상도 고착되고 있다.
'개천에 용나기'식 출세는 옛말이 돼 가고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확대되고 있는 소득격차도 메리토크라시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우리나라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계층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비율)은 1996년 4.28배에서 2003년에는 6.49배로 늘었다.
미국은 납세자 중 소득금액 상위 1%가 벌어들인 소득비중이 2003년 16.8%에서 2004년 19%로 높아졌다.
일본은 소득분배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1979년 0.271에서 2004년 0.308로 상승했다.
모든 국가에서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 얇아지는 반면 빈곤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소득이 전국 가구 소득 중간값의 50% 미만인 가구 비율을 나타내는 '빈곤율'이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 16.9%에서 지난해에는 18%로 높아졌다.
미국 아일랜드에 이어 빈곤율이 선진국 3위라는 일본 15.3%보다 높다.
빈곤층이 빠르게 증가하는 데는 실력주의 이외 요인들도 물론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바버라 엘렌라이크는 '니켈과 다임(Nickel and Dime)'이라는 최근 저서에서 5센트, 10센트 주화로 하루 하루를 사는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이 빈곤에서 탈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은 일자리나 임금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교통수단 제약으로 지리적 이동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시정하기가 쉽지 않다.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빈곤층에 대해 나눠주기식 분배정책을 취한다면 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 될 뿐이다.
참여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리기 위해 4년 연속 적자재정을 편성한 것은 그 효과 면에서나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볼 때 적절치 않다.
정부는 빈곤층에 물고기를 직접 나눠주기보다는 교육ㆍ훈련 등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소득의 다과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회의 균등은 보장해줘야 한다.
정부는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빈곤층을 양산하는 정책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부자들에게 유리한 교육ㆍ입시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가장 시급하다.
공교육을 내실화해 사교육비를 줄여야 하며 수능, 내신, 논술 등 복잡하게 돼 있는 대입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입시제도가 복잡하고 다단계일수록 경제적 여유가 없어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는 저소득층 자녀는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입시 성적이 부모 학력과 소득에 비례한다는 최근 한 연구결과는 입시제도 개선 필요성을 말해 준다.
정부가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요란하게 시작했다가 용두사미 식이 되고 있는 EBS 수능방송이나 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방과후 학교 제도를 재점검하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고소득층 소비가 저소득층 소득증가로 이어지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반(反)부자 정서를 없애 부자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돈을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것이 한 방편일 것이다.
부자를 미워하고 억누른다고 빈곤층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세계적, 시대적 조류에 맞서 평등주의를 고집하고 복지 일변도의 정책을 밀고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중요한 것은 약자와 빈곤층이 재활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그들에게 소득을 높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의해 가능하다.
[온기운 논설위원]
 

2014년 9월 7일 일요일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  김항
  •  2008.03.17부터 10회
  •  화요일 19:00~22:00
  •  180,000원

강의 소개

이탈리아의 철학자 아감벤의 사상을 소개하고, 그의 저서 『호모 사케르』를 강독하는 강의. 아감벤의 사상을 1920년대 독일 지성사와 연관시켜 이해하고, 『호모 사케르』에서 주장된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체제의 상관관계를 보다 넓은 지성사적 맥락에 위치시킨다.
신칸트학파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될 수 있는 1920년대 독일 사상계의 문제의식을 우선 소개한다. 구체적으로는 칼 슈미트, 발터 벤야민, 하이데거 사이에 흐르는 공통의 물음을 되짚어 본 뒤, 아감벤이 이들 사상가에 주목하면서 풀어내려 하는 정치적 실타래를 추적한다. 이러한 사전 작업을 바탕으로 『호모 사케르』를 현대의 지성사적 맥락 속에서 독해해 나가기로 한다.
*강좌의 전반부 5주는 강의 전에 간략한 강의 내용을 배포하고, 아감벤의 슈미트, 벤야민, 하이데거론을 중심으로 그 기저에 흐르는 정치-사상적 문제의식을 포착한다.
**강좌의 후반부 5주는 『호모 사케르』를 숙독하면서 진행되고, 『호모 사케르』가 국민국가론 등의 문화론적 국가론을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한다.

강의 계획

1주: 근대유럽 주권국가 체제란 무엇인가
주로 칼 슈미트와 한스 켈젠의 논쟁을 중심으로 근대유럽 주권국가 체제의 역사적 구조를 살펴본다.
2주: 발터 벤야민과 칼 슈미트
벤야민과 슈미트 사이에 공유된 ‘주권’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이 생명정치와 갖는 내재적 연관성에 대해 살펴본다.
3주: 하이데거와 헤겔,언어와 죽음
하이데거의 헤겔과의 대결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헤겔과 하이데거가 서구 형이상학의 심연에 언어와 죽음의 문제가 있음을 공유했음을 드러내고, 아감벤의 생명정치가 바로 이 문제의식에 기초한 사유임을 확인한다.
4주: 바이마르의 정치-사상적 문제
그 전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슈미트, 벤야민, 하이데거가 공유한 문제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아감벤의 생명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5주: 생명정치 : 발가벗은 삶과 주권국가
『호모 사케르』 강독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감벤의 생명정치를 그의 다른 텍스트들과의 연관 속에서 살펴본다.
6주: 『호모 사케르』강독 1
주권의 논리 1 : 홉스와 주권자
교재: 조르지오 아감벤,『호모 사케르』(박진우 역, 새물결)
7주: 『호모 사케르』강독 2
주권의 논리 2 : 법, 노모스, 형식
8주: 『호모 사케르』강독 3
호모 사케르 : 신성함, 생명, 추방, 늑대
9주: 『호모 사케르』강독 4
생명정치와 수용소 1 : 생명, 인권, 단순한 삶
10주: 『호모 사케르』강독 5
생명정치와 수용소 2 : 죽음의 정치화, 수용소, 노모스

강사 소개

김항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연세대, 서울대 대학원, 도쿄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표상문화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지역과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문화/사상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정치적인 것’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일을 주된 관심으로 삼고 있다. 저서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새물결, 2009)이, 역서로 <근대초극론>(민음사), <미시마 유키오 vs. 동경대 전공투>(새물결), <예외상태>(새물결)가 있다.

2014년 9월 6일 토요일

근대 한국의 국가사상

김효전 (지은이) | 철학과현실사 | 2000-07-01

머리말

국가와 헌법

근대국가의 성립과 좌절
1. 서설
2. 개국의 국제법
3. 서양헌법사상의 초기수용
4. 절대군주제냐. 입헌군주제냐
5. 군주제의 원리
6. 조선군주제의 변모과정

국가권력의 제도와 기능
1. 군주의 지위
2. 행정의 여러 영역
3. 입법의 정비와 기능
4. 사법제도의 근대화

인권사상의 보급
1. 신분체제의 붕괴과정
2. 천부인권사상의 수용
3. 주권의 제약과 국가사상
4. 보호조약의 체결
5. 통감부의 설치

국가이론의 초기수용

1. 서설
2. 국가의 개념
3. 국가요소설
4. 국가유기체설
5. 국가형태
6. 입헌주의
7. 군주제
8. 국가목적

국가결합과 보호국
1. 국가결합론
2. 보호국의 문제
3. 이상과 현실
4. 국가사상에 관한 논설
5. 정당론
6. 사회주의와 국가사상
7. 결론

국가학의 교육

1. 서설
2. 국가사상의 보급과 말살
3. 국가사상의 보급
4. 국가사상의 말살

국가학의 교육기관
1. 관립학교
2. 사립학교
3. 지방 소재 학교
4. 강습소. 야학 기타


문학작품에 나타난 국가사상
1. 이인직의 작품세계
2. 이해조의 작품세계
3. 정치학시험과 연구자
4. 국가시험과 정치학
5. 정치학 연구의 선구자들
6. 결론

권리사상의 발전
1. 서설
2. 권리 관념의 보급과정
3. 국제법상의 '권리'
4. 자유와 통의의 권리 관념
5. 신문에 나타난 권리 관념

권리 관념의 체계화와 정착
1. 권리사상을 고취한 서적
2. '민권' 개념의 정착
3. 이론과 현실의 불일치
4. 의무 관념의 강조
5. 결론

2014년 9월 4일 목요일

“역사에서 배우는 한민족 생존과 번영의 길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시대가 오고 있다, 김기협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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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3/11/22 | 글쓴이 하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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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강연,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시대가 오고 있다”

k211월20일 역사평론가 김기협의 강연이 노원문고 지하 북카페에서 열렸다. ‘근교원공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내용으로, 한민족 생존과 번영의 한 방법론을 나름의 독특한 시각으로 2시간 펼쳤다. 노원문고, 노원포럼, 뉴스카페 나우온 공동주최의 특강으로 40여명이 참석하여 진지한 담론이 오고갔다.
역사평론가 김기협은 동양사를 전공하고 학자를 거쳐,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많은 책을 썼다. 《해방일기》, 《밖에서 본 한국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뉴라이트 비판》 등. 특히 아버지인 역사학자 김성칠의 일기를 묶어낸 책 《역사 앞에서》는 해방 후부터 6.25전쟁 초기까지의 꼼꼼한 체험담으로 주목받았다. 2009년 《뉴라이트 비판》을 출판하면서 ‘좌파’로 공격받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부르고 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강연회였다.
그의 강연 논지를 요약해 본다.
“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우선 편안하게 풀어내는 것이 잘 살아가는 비결이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을 잘 표현한 말이 근교원공(近交遠攻)이다. 정상상태에서는 그것이 정답이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근대’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근대는 ‘서양화’를 의미했다. 중국에서는 양무운동, 변법운동, 신문화운동의 단계를 거치면서 근대에 대응했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도 수구세력과 개화세력이 충돌했다. 내용을 따져보면 그 충돌은 일본의 급진적 개화 모델과 청나라의 점진적 개화 모델의 갈등이었다.
근대화가 곧 서양화라는 관점에 대한 수정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Edward Said의 ‘Orientalism’이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어진 연구에서 동양의 ‘자본주의 맹아론’들이 탄생한다.
k5
중국은 11C 남송시절부터 자본주의적 요소가 발견된다. 하지만 중국은 그 자본주의적 발전을 완만한 과정으로 진행시켜 왔다. 이유는 천하의 질서를 중시한 것이었다. 콜롬부스의 대항해보다 앞섰던 중국 명나라 함대 ‘정화의 탐험’을 중지시켰던 것도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던 중국 조정의 선택이었다.
중국의 조정과 같은 질서유지의 주체가 없었던 유럽에서는 근대화가 급격한 변화로 치달았다. 물질 획득을 위한 무한경쟁 시대가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300년 동안 진행되어온 이런 근대화는 알고 보면 미숙한 근대, 일종의 가근대(pseuo-modern)로 판단한다. 안정된 사회, 정상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원과 환경의 한계에 부딪쳐도 안정된 체제를 유지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이론에서는 장기간의 정상상태와 단기간의 패러다임 전환기를 설정한다. 사회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3백년은 안정된 근대로의 전환기였고, 정상적인 근대체제는 이제부터 펼쳐질 것이라 본다.
이런 관점을 이해하려면 원자론적 세계관과 유기론적 세계관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자연과학에서의 원자론에 영향 받은 사회과학들이 있었다. 원자처럼 궁극적 진리가 있다고 믿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개인의 자유를 중심에 놓았었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조차도 이런 원자론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천하 체제는 만국공법의 도전 앞에서 무너졌다. 천하체제는 ‘사대-자소’의 구체적 관계를 중시하는 유기론적 체제이지만, 만국공법 체제는 각국 주권의 평등한 관계를 주장하는 원자론적 체제이다. 만국공법은 현실에서는 없는 허구의 평등을 내세워, 강자의 이익을 실현하는 ‘정글의 법칙’이다. 일본과 조선이 맺은 강화도조약의 제1조는 ‘조선은 독립국이다’로 되어 있다. 이 조항은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조선을 중국과의 유기적 관계에서 단절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각개격파하기 위한 논리가 만국평등, 만국공법이다.
초강대국 미국과 다수의 무정부상태가 그 동안의 세계체제였다.
k1미국의 에너지 소비량은 2011년 기준으로 세계평균의 5배가 넘는다. 한국의 산업화는 그 목표가 미국의 에너지 소비수준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중국 역시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13억 인구가 미국의 1/3 수준의 에너지만 소비한다고 해도 지구가 3개쯤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인류문명의 지속을 위해서는 이런 성장 일변도를 수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책임 보다는 권리의 주체로서만 개인을 내세우던 원자론적 인간관이 지배하던 세상은 끝나가고 있다.
2008년 금융공황은 미국 패권주의 중심의 세계적 무정부상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중국은 이제 세계사의 중심무대로 등장했다. 지구의 자원과 환경의 한계에 부딪힌 중국은 미국과는 다른 발전방향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변화 발전을 바로 보고자, 나는 중국에서 3~4년을 살아 보았다.
《100년의 급진》이라는 책으로 중국의 현대를 성찰한 중국의 지식인 ‘원톄쥔(溫鐵軍)’을 보고 나는 놀랐다. 비서양식 발전방향을 제시한 그의 사상도 주목했지만, 그가 다양한 학문적 도구들을 사용하여 사물을 분석하는 능력이 더 놀라웠다. 원톄쥔의 사상을 중국의 지도부도 받아들였다. 앞으로 중국이 안정된 근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느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절대자유, 절대평등은 허구이다. 분수를 알고, 어느 정도에서 선택해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유기론적 세계관이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일어난 근대로의 변화와 유사한 시기가 중국의 전국시대이다. 당시 철기의 전면적 사용으로 생산력이 급등했다. 생산력의 급등으로 초래된 근 300년의 전쟁 끝에 천하 체제가 완성되었다. 천하와 조정을 봉건적이라고만 볼 수 없다. 그 봉건적 전통이 이제는 오히려 학습의 대상이다. 산업화로 일어난 생산력의 급등을 안정된 질서로 만들어나갈 때 근대는 완성된다.
이웃나라 공략에 국력을 집중하는 정책이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원교근공은 소모적인 정책이다.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는 원교근공이 중심원리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정부와 문명권의 통합추세는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원리에 따라 일어나고 있다. 가까운 이웃과 잘 지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도. ”
k3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중국이 무너지지 않는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김기협씨는 ‘전통시대의 선비정신과 유사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중국의 엘리트 그룹은 가지고 있다’며, 그 엘리트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라고 답했다. 중국의 천하와 UN과 같은 세계정부를 비교해달라는 질문에는 ‘국가가 구성원들이고, 동일하게 중층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답했다.
전체적으로 어려운 내용이고 다소 논쟁적인 언급들이 많았지만, 중국 중심의 관점과 세계질서로서의 근대를 보는 관점을 일관되게 전개하여 참석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는 강연이었다.
엘리트, 선비정신, 근대적 질서, 유기체적 통합 등을 강조하는 김기협은 과연 좌파일까, 보수주의자일까?
나우온 Ⓒ 하영권 기자 soopul33@naver.com

2014년 9월 2일 화요일

싸가지의 오해? - 지식문제


요즘 많이 하는 말, "진보가 싸기지 없다"는 지적은 전혀 쓸 데가 없다. 싸가지 있어보일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고, 지식의 유무의 문제인데, 진보가 보통 지식이 많다보니 진보가 싸가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진보가 왜 지식이 더 많은지는 일단 젖혀두고, 지식이 있으면 왜 싸가지없어 보이는지를 말해보려 한다. 글이 기니까, 한줄요약부터 제공한다: "지식있는 사람을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므로 어쩔 수 없다"
다음은 본문.
지식은 힘의 대체물이다. 주변을 완벽하게 콘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지식이 별로 필요가 없다. 내게 해가되는 일이 생기면 즉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이 없으면 해가 되는 일이 생길지 어떨지 미리 알아야 한다. 그래야 피할 수 있다. 전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신 말고는 없으니,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지식과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불안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내가 모르는 것은 쓸데 없는 것들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게 낫다. 내가 모르는 어떤 위험이 존재할 수 있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간, 육체적 해를 당하기 전에 정신건강을 해치게 되므로. (동굴속에 머리만 박고, 자기에겐 위험이 없다고 믿는 타조를 생각해보면 된다. 타조로서는 그게 매우 합리적인 전략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식에대한 추구는 육체적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고, 전지에 대한 포기는 정신적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이 두가지는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후자, 즉 전지에 대한 포기가 바로 지식을 가진자를 싸가지 없게 보게 만든다.
누군가 나의 무지를 지적한다. 나로서는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결국 그 문제는 쓸데 없는 문제이어야 하고, 그 문제를 지적한 사람은 쓸데 없는 걸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싸가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결국 지식을 가진사람이 지식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이 단순 잘난체를 위해서이건, 이타적인 이유에서건 간에, 싸가지 없게 보이게 되어있다. 어쩔 수가 없다. 보는 사람이 그렇게 보겠다는데 어쩌겠나. 보는 사람들의 본능이 그런 것을 어쩌겠나.
싸가지 있어보이려면, 지식을 드러내지 않으면 된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문제를 말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를 알면서 지적하지 않기는 참 어렵고, 그럴 거면 문제를 알 필요도 없다. 차라리 무지해지는 것이 더 쉽다.
진보가 싸기지 있어 보이려면 진보가 무지해지면 된다.

2014년 8월 28일 목요일

단산 : 천명(天命) = 부성지명(賦性之命) + 득위지명(得位之命)

다산은 천명을 둘로 나누어서, 선천적으로 호덕치악(好德恥
惡)의 본성으로 품부된 부성지명(賦性之命)과, 후천적으로 생사⋅
화복 등 득실(得失)로 주어지는 득위지명(得位之命)으로 보았
다.88) 전자가 불후의 가치와 관련된 내적인 본성적 천명이라면,
후자는 유한한 가치와 관련된 외적인 결과적(結果的) 천명이다.
전자는 누구에게나 천부적으로 주어졌고 어떤 경우에도 상실될
수 없으므로 수기하여 성인(聖人)이 되느냐 않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에게 달려있는 반면에, 후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나 원의와 상
관없이, 때로는 노력이나 선악과도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
다.89) 그런데 득위지명(得位之命)은 부성지명(賦性之命)을 실
현하기 위한 방편과 길로서 주어지기에, 천(天)은 수덕(修德)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지위의 고하에 의해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90) 이렇게 볼 때 세상의 빈부⋅귀천⋅
요수(夭壽)가 천차만별하고 불공평한 것 같으나 달관한 군자의
눈으로 볼 때는 모두 일치하니, 󰡔周易󰡕의 말대로 자아완성(自我
完成)이라는 목표는 동일하고 거기에 달하는 방도(方道)가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91) 그러므로 인간은 부성지명(賦性之命)을 경
건히 받들어 성실히 솔성(率性) 수덕(修德)함으로써 낙천지명
(樂天之命)의 성인 경지에 이르고, 득위지명(得位之命)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순수(順受)함으로써 안위(安位)하는 진인사대천
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보았다.92) 이렇게
사는 군자(君子)는 요수(夭壽)와 화복을 초탈하게 되어 그 마음
이 늘 넓고 즐거운 반면에, 소인(小人)은 득실에 관심을 두기에
그 마음이 항상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