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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8일 월요일

엔리케 두셀, 21세기 진보지식인 지도




<한겨레>(2010년 2월 27일자) 기사를 도서출판 난장 블로그에서 퍼온다. 이제 종반을 치닫고 있는 기획 시리즈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의 스물여덟 번째 글이다. 필자인 김은중은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멕시코국립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항, 새로운 연대, 다문화주의>(공저), <세계화와 라틴아메리카 이주와 이민>(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활과 리라>(공역), <흙의 자식들 외>, <라틴아메리카-그 이름 뒤에 감춰진 현실>(근간) 등이 있다.”
엔리케 두셀(1934~  )은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태어나 철학을 공부했다. 스페인 콤플루텐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대학에서 인류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던 중 1973년 극우집단의 살해 위협을 받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윤리학, 정치철학, 라틴아메리카사상사 분야의 저술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지금도 건축중인 해방철학의 기본 골격을 마련했다. 카를 오토 아펠, 잔니 바티모, 위르겐 하버마스, 리처드 로티,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과 철학적 대화를 나눴으며 50여권의 저서와 400편이 넘는 글을 발표했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철학>(1977), <말년의 마르크스(1863~1882)>(1990), <타자의 은닉>(1992), <철학을 넘어서: 역사, 마르크시즘, 해방신학>(2003), <정치학에 관한 20개의 명제>(2006), <해방정치학: 비판적 세계사>(2007) 등이 있다.”


식민성의 세계화…해방철학은 ‘진행형’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28. 엔리케 두셀(Enrique Dussel)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가 근대·식민 자본주의의 정점이라는 점에서 볼 때, ‘권력의 식민성’은 여전히 견고하게 지속되고 있다. 두셀은 해방철학이 근대성에 내재된 합리적 해방의 특성을 실재적으로 포섭하는 것이며 은폐되었던 타자성을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혁명 사상에 치명상을 입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뒤 인류는 혁명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고 있지만, 그 후 20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발생한 월가의 파산은 혁명 이후를 생각하기에도 너무 성급한 시점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의 범람은 옛것은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는 시대적 불안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표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면, 베냐민에게 혁명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역사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였다.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는 사회적 불의와 생태계의 파괴는 좌우를 불문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를 만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마르크스와 ‘더불어’, 마르크스를 ‘비판했던’ 베냐민의 새로운 혁명 개념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새로운 혁명 개념은 1960년대 말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서구 근대성의 본산인 유럽에서는 탈근대적 비판이, 서구 바깥에서는 라나지트 구하를 중심으로 포스트식민주의운동이 태동했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두셀을 중심으로 해방철학이 등장했다.
 해방철학 연구자들의 글을 모아 놓은 첫번째 책(1973)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문 형식의 글이 실려 있다.“해방철학은 ‘에고’(ego)로부터, ‘나는 정복한다’, ‘나는 생각한다’ 혹은 ‘권력의지로서의 나’로부터 사유하지 않는다.… 해방철학은 억압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주변화된 사람의 처지에서, 가난한 사람의 관점에서, 종속국가의 위치에서 사유한다.… 해방철학은 타자의 외부성으로부터 사유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해방철학은 레비나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근대적 주체와 가치, 진리와 형이상학을 붕괴시키기 위해 고투했던 니체와 현존재(Dasein)를 통해 주체의 주체성을 비판했던 하이데거가 완고한 내부성의 철학의 외부를 탐색하는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면, 레비나스는 이성의 외부가 타자임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레비나스는 외부를 근대적 범주(예컨대 이성의 외부로서의 광기)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푸코의 타자와도 달랐다. 그러나 해방철학은 레비나스가 유럽 내부에서 사유하고 타자에 대한 순수한 윤리적 책임만을 요구하는 지점에서 레비나스와 갈라진다.

두셀은 해방철학이 객관적·탈정치적 입장에 머물지 않고 체계의 희생자, 가부장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 황폐화된 지구를 상속받을 미래의 세대 등 가능한 모든 부류의 타자성을 위해 투쟁할 책임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방철학은 자기비판적 자세로 주변부에, 서발턴(하위주체)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두셀의 주장에는 비판철학자로서의 결기가 드러난다. “체계 안에서, 체계 앞에 서 있는 타자를 위한 책임은 모든 우선성보다 앞서는 우선성이다. 그것은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는 형이상학적 능동성이다. 그것은 세상의 시작보다 앞선 시작이고, 세상을 있게 한 시작이며, 세상의 선험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해방의 영웅은 체계의 반영웅이고 위험에 자신의 삶을 던진다. 따라서 (억압받는 타자에 대한) 책임은 최상의 용기이고, 부패하지 않는 요새며, 총체성의 구조를 드러내는 진정한 통찰력이자 지혜다.”

해방철학의 비판적 범주가 근대적 주체성을 겨냥한다면, 비판의 구체적 실천은 역사적 접근으로부터 얻는다. 역사적 접근이란 ‘장기 16세기’에 시작된 세계체제(world-system)를 뜻한다. 해방철학을 (푸코, 데리다, 바티모, 레비나스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데카르트가 1637년에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생각한다’를 말하기 훨씬 이전에, 스페인 국왕이 서류에 서명할 때 사용했던 ‘나’는, 코르테스가 1521년에 ‘나는 정복한다’라고 말했을 때 사용했던 ‘나’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프랑스 ‘고전 시대’의 인식론을 탐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난 500년 동안 근대성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세계체제 분석은 근대성, 식민주의, 세계체제, 자본주의, 아메리카의 발견·정복이 동시적이고 상호구성적 사건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계몽주의 근대성은 15세기 말 식민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성을 은폐하는 근대성의 신화다. 이런 맥락에서 두셀은 근대성의 신화가 독자적인 체제를 이루고 있었던 유럽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유럽을 마치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서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메리카의 발견·정복으로 시작된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근대성 신화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전지구적인 중심-주변 구도의 출발이었다. 아메리카 정복 초기에 ‘인디오 전쟁의 정당한 명분’을 주장했던 세풀베다가 최초의 옥시덴탈리즘 이데올로그였다면, 원주민의 인권을 옹호했던 라스 카사스는 중심-주변의 구도에서 근대성에 대한 대항담론을 설파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가 근대·식민 자본주의의 정점이라는 점에서 볼 때, 식민주의가 종식된 이후에도 ‘권력의 식민성’은 여전히 견고하게 지속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해방철학이 단지 라틴아메리카사상의 한 가지 양상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근대적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면서 동시에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착취 구조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두셀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럽중심적 ‘거대서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체계 외부의 타자들은 자신들을 대변하기 위해 단지 작은 이야기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리고베르타 멘추, 사파티스타, 아메리카의 흑인, 미국에 거주하는 라티노, 페미니스트, 주변인, 전지구화된 초국적 자본주의의 노동계급 역시 그들의 기억을 재건하고 그들의 ‘인정 투쟁’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서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두셀이 경계하는 것은 피상적이고 환원론적인 방식으로 적용되는 이원론(중심-주변, 발전-저개발, 종속-해방, 총체성-외부성 등)이다. 다시 말해,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전통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전근대로 회귀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주의자, 포퓰리스트, 파시스트 집단이 추구하는 반근대적 지향도 아니며, 파편화된 순수한 차이만을 긍정하는 탈근대적 비판도 아니라는 점이다. 두셀은 해방철학을 트랜스모던(transmodern)적 기획, 즉 근대성에 내재된 합리적 해방의 특성을 실재적으로 포섭하는 것이며 근대성이 저질렀던 희생제의적·신화적 특성을 부정함으로써 은폐되었던 타자성을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음화→문명화→근대화→세계화’라는 근대성의 신화와 수사학에 가려진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폭력과 불의를 비판할 수 있을 때 칸트가 설파했던 계몽의 이성은 비로소 해방의 원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계몽적 이성을 앞세운 유럽중심주의와 발전주의의 오류가 드러날 때 추상적 보편주의에 가려져 있는 현실의 다채로운 풍경이 온전하게 드러날 수 있다. 두셀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완의 기획은 근대성이 아니라 탈식민성이다. (김은중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우석균, 월터 미뇰로, 한겨레 21세기 진보지식인 지도



<한겨레>(2010년 2월 13일자) 기사를 도서출판 난장 블로그에서 퍼온다. 기획 시리즈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의 스물일곱 번째 글이다. 

필자인 우석균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페루 가톨릭대학교에서 석사, 스페인 콤플루텐세대에서 중남미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잉카 IN 안데스>,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공역),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마술적 사실주의>(공역) 등이 있다.”
월터 미뇰로(1947~  )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 고등연구원(Ecoles des Hautes Etudes)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미국 듀크대 교수이다. 기호학을 전공했으나 점차 연구 영역을 넓혀 문학이론, 문화인류학, 문화연구 등을 넘나들었다. 전 지구적 식민성, 지식의 지정학, 경계사유, 탈식민주의 등이 주요 관심사로, 대표적인 저술로는 <르네상스의 어두운 측면>(1995), <지역의 역사/전 지구적 설계>(1999), <라틴아메리카, 그 이름 뒤에 감춰진 현실>(2005) 등이 있다. 마지막 책은 번역 작업이 끝나 도서출판 그린비에서 곧 출간될 예정이며, 이에 맞춰 내한하여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서구지식 식민통치 맞선 ‘진보지식 해방투쟁’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27. 월터 미뇰로(Walter Mignolo)

미뇰로는 직접적인 식민통치 시대는 갔지만 지식의 지정학을 통한 식민지배는 오히려 강화됐다고 본다. 최근 탈식민주의 담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신자유주의를 배태한 서구 중심 지식이 결국은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한 현실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식하다. 그래서 들뢰즈, 네그리, 하트, 라캉, 지젝 등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이미  ‘포스트 -’가 붙은 이론들 때문에 현기증을 느끼던 터에, 마침내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유학 시절 페루,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 등으로 떠돌아다니던 내게 위험을 경고한 이가 있었는데도 깨닫지 못했으니 다 내 불찰이다. 그 사람은 그저 며칠 미국에 들렀을 때 만난 교포 택시기사였다. 그는 내게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중남미에서 뭐 배울 게 있느냐고.

 나는 정말 몰랐다. 지식에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줄을. 중심에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듣고, 또 믿는다. 하지만 변방에서 이야기하면 시큰둥하다. 중심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표절이라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 한다. 아니 보통은 듣지도 않는다. 세계사회포럼이 파국을 그렇게 경고했건만 사람들은 오직 다보스포럼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국제 금융위기였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스위스만 바라보며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이처럼 지식에서 왕후장상의 씨는 ‘무엇을 말하는가’와 전혀 상관이 없다. 오직 ‘어디서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지식의 진실 여부보다 발화 위치가 더 중요한 셈이다. 그래서 지식은 지정학적이다. 지식도 지정학적 요충지가 있는 것이다.
월터 미뇰로는 이런 현실을 단호히 거부한다. 지식의 영역에서 식민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뇰로는 직접적인 식민통치가 대세였던 제국주의 시대는 갔지만, 지식의 지정학을 통한 식민통치는 오히려 강화되어 정치나 경제 등의 영역에서 실효적인 식민통치를 뒷받침하고 작동시킨다고 본다. 미뇰로가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론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식민성, 즉 직접적인 지배 없는 식민통치를 타파하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사이드를 비판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고 억압하는 서구 담론인 오리엔탈리즘을 해부, 비판했다는 점에서 미뇰로는 사이드의 식민성 비판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미뇰로가 보기에 문제는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옥시덴탈리즘이다. 서구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거니 하면서, 비서구를 기술하고 개념화하고 서열화해도 되는 특권이 있다는 인식인 옥시덴탈리즘이 있었기에 오리엔탈리즘도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드 예찬론자들은 수긍하지 못하겠지만, 미뇰로에게 옥시덴탈리즘은 모든 사유의 범주와 세계를 분류하는 지정학적 담론인 반면, 오리엔탈리즘은 그 결과 파생된 하나의 연구 영역일 뿐이다. 그래서 미뇰로는 사이드의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 대신 포스트옥시덴탈리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아가 탈식민주의(decolonialism)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포스트-’가 ‘후기’인지 ‘탈’(脫)인지는 논란거리겠지만 아무튼 포스트식민주의보다 더 완벽한 식민성 극복이 탈식민주의의 꿈이다. 1990년대 엔리케 두셀, 아니발 키하노, 월터 미뇰로 등이 탈식민주의 논의에 중요한 구실을 했고, 이로부터 근대성/식민성/탈식민성 연구 그룹이 탄생되었다. 미뇰로는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포함하는 국제적인 탈식민주의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면서 그룹의 좌장 구실을 하고 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대한 이 그룹의 비판은 그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월러스틴은 우리가 사는 현대의 기원이 1450~1640년이며, 이때부터 작동한 체제를 근대 세계체제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이 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작동원리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지식(월러스틴은 이를 지문화 geoculture라고 부른다)이 18세기 프랑스혁명 즈음에 확고하게 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근대성/식민성/탈식민성 연구 그룹은 1450년이라는 기점, 지문화의 18세기 정립론, 근대 세계체제라는 명칭 등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월러스틴을 비판한다.

이 그룹이 보기에 근대 세계체제의 1450년 태동론은 근대성이 서구 고유의 것이라는 서구 중심적 시각의 산물이다. 철학자 엔리케 두셀은 근대성 자생론은 서구가 만든 신화일 뿐이며, 사실은 복수의 근대성이 소통하는(trans) 전 지구적 현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문화의 18세기 정립론에 대해서도 두셀은 2단계 근대성론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아메리카 정복으로 1단계 근대성이,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등으로 18세기에 2단계 근대성이 발현되었다는 것이 요지이다. 월러스틴의 18세기론을 배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 지식의 우월함만 부각시키고, 그 지식이 원주민 수탈을 정당화시켰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뇰로는 르네상스 시대에 가톨릭, 서적, 판화, 지도 등이 어떻게 인종 차별과 정복 등을 정당화시키는 지식을 구축했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식이 오늘날까지도 작동함으로써 식민성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근대 세계체제라는 명칭에 대한 비판에는 사회학자 키하노가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아메리카 정복을 서구 근대성의 기원으로 본다. 이를 계기로 인종차별에 입각한 국제적인 노동분업 시스템, 즉 오늘날과 같은 폭력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잉태되고 가동되었다는 이유에서이다. 특별히 수탈 구조를 부각시키는 것은 근대성의 뒤에 감추어진 식민성을 직시하라는 주문이다. 키하노가 보기에 근대성과 식민성은 동시에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양자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근대 세계체제라는 명칭은 식민성을 누락시킴으로써 진실을 호도하는 효과를 야기한다. 이에 키하노는 근대/식민 세계체제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표현에서 연구 그룹이 어떤 진영에 속해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중심의 발전과 주변의 저발전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을 비유하기 위해 종속이론가인 군더 프랑크가 사용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연구 그룹은 페루의 마르크스주의자 마리아테기, 프란츠 파농, 종속이론, 해방철학 등으로 이어진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사유를 계승하고 있다. 실제로 두셀은 해방철학의 대표적 학자이고, 키하노도 저명한 종속이론가였다. 1980년대의 경제위기와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이념의 시대가 갔을 때 학계의 중심에서 당연히 밀려났어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건재,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주목을 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두셀과 키하노가 과거의 문제의식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유연한 연구물을 산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문제의식이 옳다고 믿는 이들을 다시 증가시킨 현실 때문이다. 
몇 년 전 <고삐 풀린 현대성>이라는 책이 번역된 적이 있다.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볼 것을 주문한 대목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재작년 탈식민주의 그룹이 다수 참여한 <고삐 풀린 식민성>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세계화가 사실은 식민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물론 필자들이 염두에 둔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이다. 신자유주의를 배태한 서구 지식이 결국은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하고만 오늘날의 현실에서 식민성이 고삐가 풀려 미쳐 날뛰고 있다는 진단은 설득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우석균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라틴아메리카 근대성, 식민성, 탈식민성 그룹의 계보


라틴아메리카 식민성 연구 그룹에 관한 기사를 그린비 블로그에서 옮겨 놓는다.
http://greenbee.co.kr/blog/946?utm_source=feedburner&utm_medium




ㅡ근대성, 식민성, 탈식민성 기획 간략사


번역 우석균(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1996년경 페루 사회학자 아니발 키하노는 뉴욕주립대학(SUNY) 빙엄턴 캠퍼스에서, 당시 페르낭 브로델 센터 소장이던 미국인 동료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1960년대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키하노는 종속이론과 관련된 라틴아메리카 사상가 그룹의 적극적인 활동가였고, 월러스틴은 서구 사회학에서 가장 혁신적인 관점인 세계체제론의 창시자였다. 키하노는 빙엄턴 캠퍼스의 사회학과에서 강연을 하고 세미나 수업을 진행했으며, 켈빈 산티아고가 주도하는 식민성 연구그룹이 조직한 일련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켈빈 산티아고는 푸에르토리코의 사회학자로 당시에 같은 나라 출신인 라몬 그로스포겔(사회학 교수)과 아구스틴 라오 몬테스(박사과정 학생)와 함께 빙엄턴 사회학과에 적을 두고 있었다. 식민성 연구그룹에는 미국에서 식민잔재 연구로 저명한 실비아 윈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1998년 12월 그로스포겔과 라오 몬테스는 빙엄턴 캠퍼스에서 ‘트랜스모더니티, 역사적 자본주의, 식민성: 포스트-분과학문적 대화’라는 국제회의를 조직했다. 이 회의에는 키하노와 월러스틴 외에도 아르헨티나인들인 철학자 엔리케 두셀과 기호학자 월터 미뇰로가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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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발 키하노, 엔리케 두셀, 월터 미뇰로

두셀은 1970년대 해방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미 저명한 학자였다. 반면 미뇰로는 저서 『르네상스의 어두운 측면』(The Darker Side of the Renaissance)을 계기로, 점점 증가 추세에 있던 포스트식민주의 학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두셀, 키하노, 미뇰로가 한자리에 모여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잔재에 대한 각자의 시각을 토론한 것은 이 국제회의가 처음이었다. 이듬해 빙엄턴 그룹은 ‘식민주의적인 분과학문 실천의 역사적 터전: 국민국가, 부르주아 가족, 기업’이라는 행사를 거행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 행사에는 반다나 스와미, 찬드라 모한티, Zine Magubane, 실비아 윈터스, 월터 미뇰로, 아니발 키하노, 베네수엘라의 인류학자 페르난도 코로닐이 참가했다. 세계체제 분석과 라틴아메리카 식민성 이론 사이의 이러한 접근은 2000년 3월에 라몬 그로스포겔이 보스턴에서 제24차 세계체제 정치경제학(PEWS) 분과를 조직하면서, 콜롬비아 보고타의 하베리아나 대학 사회문화연구 연구소인 펜사르의 철학자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와 오스카르 과르디올라 리베라를 초청하면서 계속되었다. 이 만남의 결실이 2002년 그로스포겔과 아나 마르가리타 세르반테스 로드리게스가 편찬한 저서 『20세기 근대적/식민적/자본주의적 세계체제』(The Modern/Colonial/Capitalist World-System in the Twentieth Centur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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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대성/식민성 그룹의 모든 구상이 미국에 거주하는 라티노 학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는 위에 언급한 전개 과정과 병행해서 새로운 접속점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베네수엘라 사회학자인 에드가르도 란데르의 활동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란데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연구협의회(CLACSO)의 지원으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소재한 센트랄 대학에서 미뇰로, 에스코바르, 두셀, 코로닐을 초청하여 학술행사를 가졌다. 연구그룹이 그때까지 산출한 책들 중 가장 중요한 저술이 이 학술행사에서 비롯되었다. 란데르가 편찬하여 200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간행된 『지식의 식민성: 유럽중심주의와 사회과학』(La colonialidad del saber: eurocentrismo y ciencias sociales)이라는 책이다.

또한 보고타 펜사르 연구소의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가 선도한 활동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카스트로 고메스는 1999년 8월 ‘안데스 국가 사회과학의 재구성’이라는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근대성/식민성 네트워크의 여러 접속점에서 그때까지 일어난 모든 일의 촉매가 되었다. 이 행사를 기점으로 보고타 하베리아나 대학, 듀크 대학,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키토의 시몬 볼리바르 안데스 대학이 지식의 지정학과 권력의 식민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 활동과 출판을 하자는 상호협력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보고타 심포지엄에는 미뇰로, 란데르, 코로닐, 키하노, 카스트로 고메스, 과르디올라 외에도 두 명의 여성학자가 참석했다. 아르헨티나 기호학자 술마 팔레르모와 독일 로망스연구 학자 프레야 쉬비(Freya Schiwy)로 후에, 분과학문을 가로지르고 다양한 국적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 연구그룹의 멤버가 되었다. 보고타 심포지엄의 결과 두 권의 책이 간행되어, 앞서 언급한 란데르의 책과 더불어 근대성/식민성 그룹의 최초의 발간물이 되었다. 『틈새 사유하기.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이론과 실천』(Pensar [en] los intersticios: Teoría y práctica de la crítica poscolonial, 1999)과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의 재구성』(La reestructuración de las ciencias sociales en América Latina, 2000)으로 펜사르 연구소가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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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연구그룹의 1차 만남을 조직하고 그 동안의 성과를 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행사 겸 회합은 월터 미뇰로가 듀크 대학에서 ‘참지식과 알려진 지식’이라는 제목으로 개최했고, 학술지 ≪네판틀라≫(Nepantla)의 도시어가 마이클 엔니스와 Freya Schiwy가 간사가 되어 탄생하였다. 듀크 대학 행사에는 볼리비아의 문화 이론가인 하비에르 산히네스와 미국인 언어학자이자 시몬 볼리바르 안데스 대학 교수인 캐서린 월시가 그룹에 합류했다. 

월시는 2002년 키토에서 열린 제2회 연구그룹 모임을 개최한 학자이기도 하다. 2차 모임에서 멤버들은 에콰도르의 원주민 혹은 아프리카계 지식인들과 소통에 나섰으며, 그 산물로 『사회과학의 탈규범. 지식의 지정학과 권력의 식민성』(Indisciplinar las ciencias sociales : geopolíticas del conocimiento y colonialidad del poder)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캐서린 월시, 프레야 쉬비,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가 편찬했으며 키토의 아브야-얄라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3차 모임은 2003년 라몬 그로스포겔과 호세 다비드 살디바르에 의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열렸다. 이 대회를 통해 푸에르토리코 철학자 넬손 말도나도 토레스가 연구그룹에 합류했으며, 이 모임의 결실인 저서 『포스트식민성 해체하기: 식민성, 트랜스모더니티, 경계사유』(Unsetting Postcoloniality: Coloniality, Transmodernity and Border Thinking)를 그로스포겔과 살디바르와 함께 편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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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모임은 2004년 4월에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열렸으며, 그 결과 두 권의 간행물이 나왔다. 하나는 『세계체제 속의 Latin@s: 21세기 미국 제국 내부의 탈식민 투쟁』(Latin@s in the World-System: Decolonization Struggles in the 21st Century US Empire, Paradigm Press, 2005)이라는 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주도하는 학술지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에서 탈식민주의 연구로≫(From Postcolonial Studies to Decolonial Studies)의 19권 2호(2006년)인데, 그로스포겔이 편찬을 맡았다. 그로스포겔, 말도나도 토레스, 살디바르가 개최한 이 학술회의는 21세기 미국 제국의 탈식민화를 주요 주제로 잡은 것이었다. 이 학술회의를 통해 근대성/식민성 그룹은 아프로카리브 철학자이며 카리브철학학회 회장 루이스 고든, 포르투갈 사회학자로 세계사회포럼의 핵심 조직자이자 이론가인 보아벤투라 데 소우자 산투스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5차 모임은 몇 달 후인 2004년 6월에 채플힐(노스캐롤라이나 대학)과 더럼(듀크 대학)에서 아르투로 에스코바르와 월터 미뇰로에 의해 ‘비판이론과 탈식민성’이라는 이름으로 거행되었다. 이 결과물은 래리 그로스버그가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학술지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한 호를 통해, 『세계화와 탈식민적 사유』(Globalization and De-colonial Thinking)라는 제목으로 2006년 간행되었다. 미뇰로와 에스코바르가 출간을 위해 간사를 맡았다.

6차 모임은 2005년 4월에 또다시 버클리에서 ‘탈식민적 전환 지도그리기’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이 회의의 결과물로 나온 책 제목도 동일하다). 이번에는 넬손 말도나도 토레스가 진두지휘를 하고, 그로스포겔과 살디바르도 간사로 기여했다. 카리브철학학회 회원들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아프로아메리카, 치카노 지식인들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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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활동과 간행물들이 근대성/식민성 그룹의 산물이다. 그러나 몇몇 구성원의 개인적 공헌도 부각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엔리케 두셀의 『1492년. 타자의 은닉. 근대성 신화의 기원』(1492. El encubrimiento del otro. Origen del mito de la modernidad, 1992), 월터 미뇰로의 『르네상스의 어두운 측면』(1995)과 『지역의 역사/전 지구적 설계』(Historias locales/Diseños globales, 2003), 아니발 키하노의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 정체성, 유토피아』(Modernidad, identidad y utopía en América Latina, 1988)와 핵심적인 논문들인 「식민성과 근대성/합리성」("Colonialidad y modernidad/Racionalidad") 및 「권력의 식민성, 유럽중심주의, 라틴아메리카」("Colonialidad del poder, eurocentrismo y América Latina"), 아르투로 에스코바르의 『제3세계의 발명』(La invención del Tercer Mundo, 1998)과 『야만인의 종말』(El final del salvaje, 1999), 페르난도 코로닐의 『마술적 국가』(The Magical State, 1997), 에드가르도 란데르의 『정치적 사안으로서의 과학과 기술』(La ciencia y la tecnología como asuntos políticos, 1994), 라몬 그로스포겔의 『식민적 주체』(Colonial Subjects, 2003),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의 『라틴아메리카 이성비판』(Crítica de la razón latinoamericana, 1996)와 『0도의 히브리스』(La hybris del punto cero, 2005)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대성/식민성 그룹이 전문가용 책 출간에만 전문가가 아니라, 다양한 학술적ㆍ정치적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룹의 멤버 몇 사람은 캐서린 월시가 이끄는 키토의 시몬 볼리바르 안데스 대학의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 박사과정을 활성화시키고 있으며, 세계사회포럼의 틀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카라카스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앎의 탈식민성: 다른 앎, 다른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 개의 패널을 조직했다. 버클리에 있는 그룹 멤버들은 치카노 활동가들과 문화기획, 인식기획, 정치기획과 관련된 연계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에서는 원주민 운동과, 카리브에서는 흑인 운동들과 연계 활동을 벌인다.

월터 미뇰로, 엔리케 두셀, 존 베벌리의 최근동향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 연구 그룹의 학자들의 동향에 관한 기사를 그린비 블로그에 퍼온다.
http://www.greenbee.co.kr/blog/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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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미뇰로, 엔리케 두셀, 존 베벌리의 행보

우석균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필자는 지난 달 스페인 타라고나에서 근대성/식민성 연구 그룹의—혹은 탈식민주의 연구(Decolonial Studies) 그룹—대표적인 학자인 월터 미뇰로를 만났다. 그는 7월 8일에서 7월 22일까지 “지식의 탈식민화: 포스트식민주의연구, 탈식민적 지평”(Decolonizing Knowledge: Postcolonial Studies, Decolonial Horizons)이라는 주제로 타라고나에서 열린 탈식민주의 하계학교에 와 있던 참이다. 이 하계학교는 라틴아메리카, 이슬람, 아프리카 연구자들이 강의를 맡아 전 지구적인 맥락에서 탈식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강의 대상자들은 학부생 혹은 탈식민주의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었다. 미뇰로는 하계학교 기간 내내 강의진과 학생들은 물론 그에게 혹은 하계학교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접대하면서 사실상 교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뜻밖이었다. 1년 전에 미리 초청하지 않으면 시간을 내기 힘들 정도의 저명한 학자가 학술대회나 특별초청강연이 아닌 행사를 위해 그렇게 여러 날을 할애한다는 것도 그렇고, 어디 가나 대접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학자이고 학생이고를 가리지 않고 탈식민주의를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정치인이 조직을 다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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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미뇰로

그 모습을 보면서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2008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석학강좌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라틴아메리카 석학에게 듣는다>의 첫번째, 두번째 강연자인 철학자 엔리케 두셀과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대표적 학자인 존 베벌리였다. 7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자신은 밤을 새워서라도 강연에 임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질문하라고 청중을 독촉하던 두셀이나, 연구소 교수들과 좀더 많은 토론을 하지 못한 점이 한국 방문에서 유일한 아쉬움이었다고 말하던 베벌리의 모습이 타라고나의 미뇰로의 모습과 대단히 닮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론을 알리고 싶어 하고, 라틴아메리카 이외의 지역에서도 그 이론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야 물론 학자로서의 당연한 욕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베벌리는 연구소 석학강연 초청 대상자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월터 미뇰로를 추천했다. 추천의 변은 미뇰로가 자기 이론의 아시아 전파에 대단히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타라고나 하계학교에서 엿볼 수 있었듯이 아랍권이나 아프리카권에는 이미 교두보를 마련했으니 아시아를 그 다음 목표로 정한 듯싶다. 실제로 미뇰로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학자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으며, 특정 현안에 대한 사례 수집이 필요한 경우에는 필자에게도 심심찮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베벌리나 두셀은 또 어떤가? 베벌리는 자신의 이론을 통해 하위주체의 세계적 연대가 가능하기를 간절히 바란 인물이다. 두셀은 젊었을 때부터 히브리 철학에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는 이슬람 철학과 중국으로 연구지평을 넓히더니, 2008년 여름 방한 때는 영어로 번역된 함석헌 책을 몇 권 샀다면서 대단히 기뻐했다. 이들의 행보를 되짚어 보면 라틴아메리카연구에 몸담고 있는 학자들이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의 세계화에 얼마나 열정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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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 두셀(좌)과 존 베벌리(우)
_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에서 추진하고 있는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석학에게 듣는다> 석학강좌

그들의 세계화 의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러 가지 진단이 가능하다. 학자로서의 욕심, 서구어 사용에 따른 용이함, 라틴아메리카연구가 활성화된 미국을 통한 이론 수출의 용이함, 1960~1970년대 종속이론의 세계화 경험 등등이 세계화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자극제가 되고, 또 그 의지를 무리 없이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한때의 아픈 경험과 이를 통해 얻은 새로운 현실인식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사실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종속이론의 세계화 경험은 1980년대 이래 족쇄로 작용하였다.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해방’, ‘민중’, ‘트리컨티넨탈리즘’ 등의 화두로 한때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 호소력을 발휘하였고 서구에도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 이론이었지만, 라틴아메리카가 1980년대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극단적인 이념 갈등을 부추긴 사이코패스 혹은 서구/비서구의 이분법적 문제설정으로 서구식 발전 모델의 도입을 가로막은 척사파 취급을 받았다. 이어 베를린장벽 붕괴는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에게는 거의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무기력 속에서 ‘세계화’라는 화두를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선점당했다.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데도 그 변화의 흐름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두셀, 베벌리, 미뇰로 등을 비롯한 여러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의 세계화 열망은 바로 이러한 뼈아픈 경험에 대한 반성이다. 가르시아 칸클리니 등의 문화연구가 먼저 세계화 논의에 합류하게 될 계기를 마련하자,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세계화 국면에서의 프락시스(praxis), 즉 이론적 실천을 통한 전 지구적 변혁의 모색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오로스코 作 <상처입은 원주민>
_ 미뇰로는 두셀, 키하노와 더불어 서구의 근대성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여 자원 약탈과 노예노동 착취로 이윤을 극대화한 자본주의의 토대인 식민주의와 불가분적임을 강조하면서 근대성/식민성의 해체를 위한 공동작업에 임하고 있다.
그렇다면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은 ‘잃어버린 10년’과 세계화를 거치면서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어떤 면에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가령 탈식민주의는 1960~1970년대의 제3세계 민족주의 노선과 마찬가지로 서구/비서구의 대립각을 날카롭게 설정하고 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이 목표로 하는 하위주체의 국제적 연대란 것도 계급 이론에 입각해 전 세계적인 혁명을 꿈꾸던 과거와 근본적인 단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이 이념이나 서구/비서구의 구태의연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현실이 그러니 그런 이분법이 계속 유효한 것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화와 함께 전 세계적인 풍요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전 지구적 식민성(global coloniality)의 시대가 아닌가? 서구/비서구의 문제설정을 경직된 이분법적 사고로 단정 짓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서구/비서구의 구분은 양자의 ‘관계’를 문제 삼기 위함이지 우월을 가리려는 ‘비교’의 관점이 결코 아니다. 또한 1960~1970년대의 일부 과격파처럼 서구와의 관계 단절이 라틴아메리카 해방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경직된 이분법적 사고 운운하며 서구와 비서구의 불평등한 관계를 선결 과제로 삼지 않고 세계화의 달콤한 과실만을 약속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을 은폐하는 비과학적 태도일 것이다. 그래서 두셀, 베벌리, 미뇰로의 최근 관심사가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더 적극적인 방법을 공통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윤리학과 해방철학에서 성가를 올리던 두셀은 현실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정치철학을 생애 마지막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베벌리는 하위주체 연구자답게 국가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규정한 과거의 입장을 어느 정도 유보하고 차베스나 모랄레스의 실험이 사회변혁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미뇰로는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의 시대를 회고하면서 해방신학마저 서구의 기독교적 가부장주의, 즉 식민주의와 뭐가 다르겠냐고 비판하고 있다.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지식이 무기력했던 시절 혹은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던 시절 자신들이 더 선명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는 듯한 행보이다.

월터 미뇰로와 인종적 순수성 담론, 그린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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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엔리케 두셀의 해방철학은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식민주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과 비판적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획에서 가장 차이 나는 점, 즉 프랑스 혁명 이전에 근대 히스패닉-가톨릭 지문화(geoculture)가 출현했다는 두셀의 사유는 더 심층적인 작업이 필요했다. 이 작업을 주로 수행한 이가 아르헨티나의 기호학자 월터 미뇰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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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뇰로는 월러스틴의 기념비적 저작인 『근대세계체제』가 1970년대 사회과학 이론 분야에서 일어난 인식론적 배치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한다. 월러스틴은 종속이론의 기여와 브로델의 지중해 연구를 연결시키면서, 16세기 근대세계체제 형성에서 대서양 권의 중심적 역할을 분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헤겔의 주장처럼 지중해는 이제 세계사의 축이 될 수 없었고, 사회과학 이론에서 유럽은 ‘지방화’되었다. 중요한 것은 유럽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세계체제와 그 구조적 다양성(중심, 주변, 반주변)이 되었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기획은 주변부를 지역사나 지경제 단위로 보았을 뿐 지문화 단위로는 보지 않았다. 비록 월러스틴이 근대세계체제가 1500년경에 출현한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는 아직도 유럽중심적 시각을 고수한다. 월러스틴은 이 체제—자유주의— 최초의 지문화는 프랑스 혁명의 세계화의 결과로 18세기에야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미뇰로는 월러스틴이 여전히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구축한 신화의 포로라고 믿는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두셀과 미뇰로가] 두번째 근대성이라고 부른 것(18세기와 19세기의 근대성)은 유일한 근대성이었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 볼 때 첫번째 근대성(역주: 두셀과 미뇰로가 말하는 16, 17세기 근대성)의 지문화는 묵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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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뇰로는 자신의 책 『지역의 역사/전 지구적 구상』(Local Histories/Global Designs)에서 아메리카 정복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통합시키는 상권의 출현으로) 새로운 ‘세계-경제’의 창설만 의미한 것이 아니라, 근대세계 최초의 거대 ‘담론’(사이드와 푸코의 어법에서의 ‘담론’)을 형성했다. 미뇰로는 자본의 전 지구적 팽창을 정당화시킨 보편적 담론은 유럽의 부르주아 혁명들의 토대 위에 18~19세기에 출현한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전에 근대/식민 세계체제의 발전과 함께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근대 최초의 보편적 담론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심성(mentality)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귀족적·기독교적 심성과 관계가 있다. 미뇰로에 따르면, 이 심성은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담론이다. 인종적 순수성 담론은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분류 도식이었다. 이 담론은 비록 16세기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독교 중세 시대에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서양을 넘은 스페인의 상업적 팽창과 유럽의 식민지 만들기 초기에 ‘전 기구적’ 담론이 되었다. 이리하여 지역의 역사(중세 유럽의 기독교 문화)에 속하던 분류 매트릭스가, 스페인이 16~17세기에 획득한 전 지구적 헤게모니 덕분에 전 지구적 구상이 되었고, 국제노동분업 하에서 특정 인종의 지위에 입각해 세계인을 분류하는 데 기여했다.

인식론적·사회적 분류도식으로서의 인종적 순수성 담론은 16세기의 산물은 아니다. 그 뿌리는 헤로도토스가 주장한 ―그리고 에라토스테네스, 히파르코스, 에스트라본, 플리니우스, 마리노, 프톨레마이오스 등 고대 최고의 사상가들이 받아들인― 세계 3분(分)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세 지역으로 나뉜 하나의 거대한 섬(orbis terrarum: 세계)으로 인식되었다. 오르비스 테라룸 남쪽의 대척점에 다른 종류의 인간이 사는 또 다른 섬들이 존재하리라고 추정한 이들도 있었지만, 고대 역사가와 지리학자의 관심은 그들이 아는 세계와, 3대 지역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형태에 집중됐다. 이리하여 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계서적ㆍ질적인 사회적 분할로 이어졌다. 이 위계질서에서 유럽은 가장 우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스와 로마인이 ‘야만인’이라고 여긴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보다 유럽인은 교육을 더 많이 받고 문명화되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기독교 지식인들은 이 사회적 분류 도식을 전용하면서 몇 가지 변화를 주었다. 가령 (모든 인간은 아담의 자식이라는) 단일 인류 도그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오르비스 테라룸에 다른 섬들이 존재하고, 그곳에 거주민이 있다면, 이들을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인들만 ‘신국’(City of God)의 주민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고대의 위계적 세계 분할을 재해석했다. 유럽은 이제는 신학적 이유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위에 있는 특권적 자리를 여전히 차지했다. 이 세 지역은 대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이 정착한 곳으로 여겨졌고, 이런 이유로 완전히 다른 세 종류의 주민이 살게 됐다.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야벳의 자손들이 각각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이는 유럽인에게 알려진 세계의 세 지역이 종족에 따라 계서적으로 분류됐음을 의미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인은 ―성경에 따르면, 노아의 눈 밖에 난 두 아들의 자손들―  노아가 총애하는 아들 야벳의 직계 자손보다 인종적ㆍ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보았다.
 
미뇰로는 기독교가 고대의 사회적 분할 도식을 재정의하여 인간의 종족적ㆍ종교적 분류학으로 변모시켰고, 16세기에 이 분류학이 확연히 작동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콜럼버스의 항해로 아메리카가 지리적 실체이며 오르비스 테라룸과 다른 지역임이 입증되자, 즉각 아메리카 주민과 영토를 둘러싼 대논쟁이 촉발되었다. 신이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후에, 인간이 살아야 할 영토로 ‘지구의 섬’(isle of earth)―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지역―만을 지정했다면 새로 발견된 땅은 어떤 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말인가? 새로 발견된 땅이 교황의 보편적 통치권 하에 있고, 따라서 기독교 왕이 점령해도 정당한 것인가? 노아의 아들들만이 아담의 직계 후손이고 인류의 아버지라면, 새로운 땅의 주민들은 어떤 인류학적 지위를 가지는가? 새로운 영토의 주민들이 이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유럽인이 노예로 삼아도 정당한가? 에드문도 오고르만(Edmundo O'Gorman)이 이미 주장했듯이, 미뇰로는 새로운 영토와 주민은 존재적으로 유럽과 다른 것이 아니라 유럽의 자연적 연장(natural extension), 즉 ‘신대륙’으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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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지도

16세기에 ‘아메리카’가 스페인 왕실이 아닌 북의(이탈리아와 프랑스) 지식인에 의해 개념화되었을 때, 아메리카는 셈의 땅(오리엔트)도 함의 땅(아프리카)도 아니라, 야벳의 땅이 확대된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도의 T/O지도가 세계를 지정학적으로 배분할 때 4개의 대륙으로 인식하고, ‘아메리카’를 야벳의 영역, 즉 서쪽(옥시덴테)에 포함시킨 것이다. 옥시덴탈리즘은 말하자면 근대/식민 세계체제를 지배한 지정학적 상상이다.

피식민자에 대한 유럽의 종족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은 인종을 셋으로 나누는 인식론적 도식과 기독교의 보편적 세계관에 입각한 상상력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이 미뇰로의 핵심적 지적이다. 아메리카 영토를 야벳의 땅의 연장(延長)으로 간주한 이런 시각은 아메리카의 자연자원 약탈과 아메리카인 복속을 ‘정의롭고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오직 유럽만이 신의 은총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는 ‘구 기독교도’(old Christians)(함과 셈의 후손인) 유태인, 무어인, 아프리카인과 섞이지 않은 사람들—가 정당하게 아메리카로 건너가 정착할 수 있는 지상과제였다. 신세계는 유럽 백인과 기독교 문화의 자연적 연장 무대가 되었다. 종족적 순수성 담론—미뇰로의 해석에 따르면 유럽인 이주자의 하비투스에 각인된, 세계체제 최초의 지문화적 상상력—은 이내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종족적 노동분업, 인적 자원과 자본의 교환을 정당화시켰다. 미뇰로의 해석은 사이드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연속성도 있고 차이도 있다. 사이드와 마찬가지로(그리고 마르크스와 달리) 미뇰로는, 지배자는 물론 피지배자의 하비투스에도 각인된 담론 구축물(construct)이 없었다면, 유럽 식민주의는 불가능했으리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드와 대조적으로 미뇰로는 이 담론을 오리엔탈리즘이 아닌 옥시덴탈리즘으로 보았다. 특정 식민유산(이 경우에는 히스패닉 식민유산)을 고려하여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을 기입할(inscribe)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을 전형적인 식민담론이라고 주장할 때, 사이드는 프랑스와 대영제국이 생산한 타자 담론이 두번째 근대성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사이드는 16~17세기 스페인의 지문화적ㆍ지정학적 헤게모니를 간과했을 뿐만 아니라, 두셀이 비난한 18세기의(유럽중심적) 근대성을 결과적으로 정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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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발견 이후의 세계지도

나는 사이드 저술의 엄청난 영향과, 이로 인해 가능해진 엄청난 학문적 변화를 무시할 의도는 없다. 또한 아이자즈 아마드(Aijaz Ahmad)에 동조할 의도도 없고, 사이드의 저술이 정확히 내가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았다 해서 그를 신랄하게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이드의 저술이 강화시킨 엄청난 침묵을 재생산할 의도도 없다. 옥시덴탈리즘이 없었다면 오리엔탈리즘도 없고, 유럽의 “위대하고 풍요롭고 오랜 식민지”는 ‘오리엔트’가 아니고 ‘옥시덴탈’이다. 즉 서인도(Indias Occidentales)와 아메리카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심장’(영국, 프랑스, 독일)이 15세기~17세기 중반의 ‘기독교 유럽’(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을 대체하던 두번째 근대성 시대에 근대세계체제의 지배적 문화 상상력일 뿐이다.... 사이드의 주장처럼 오리엔트는 18세기 이후 빈번하게 반복되는 유럽 타자의 이미지가 되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옥시던트(Occident)는 결코 유럽의 타자가 아니라, 동일성 내의 차이(difference within sameness)였다. (이름 자체에서 볼 수 있듯이) 서인도(Indias Occidentales), 그리고 이후 (뷔퐁, 헤겔 속의)아메리카는 서쪽의 극단(extreme West)이지 유럽의 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달리 아메리카는 유럽의 연장으로 편입되었지, 유럽과 다른 지역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래서 옥시덴탈리즘이 없었다면 오리엔탈리즘도 없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다.

양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이드와 미뇰로의 이론은 식민주의 현상을 설명하면서 식민성에 중요성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미뇰로의 옥시덴탈리즘 모두 문화적 상상력이요 문화적 담론이며, 규율 ‘장치’(법, 제도, 식민지 관료제도)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형태의 주체성에 투영된다.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은 (엄격한 마르크스적 의미에서의)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삶의 양식이고, 사유와 행동의 구조이다. 이러한 상징적인 인식 환경 속에서 ‘식민성’ 범주는 종족적 정체성을 말한다.

미뇰로는 이런 방식으로 ‘첫번째 근대성의 주체성은 부르주아의 출현과 전혀 관계가 없고, 그 대신 귀족적 백인성 상상력(aristocratic imaginary of whiteness)과 관계 있다’라는 두셀의 논지를 강화시킨다. 타자와의 종족적 차이에 입각한 정체성이야말로 근대/식민 세계체제 최초의 지문화이다. 이 지문화는 타자에 대한 특정 인종의 우월성뿐만 아니라, 다른 지식에 대한 특정 지식의 우월성을 진실로 간주한다. 사실 미뇰로는 18세기 과학적 인식론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한 키포인트는 유럽 지리학자들이 먼저 종족적 중심과 기하하적 중심을 분리한 것이라고 확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16세기까지의 대부분의 지도에서 기하학적 중심과 종족적 중심은 동일했다. 가령 중국 지도 제작자들은 황제의 궁이 중심을 차지하고, 그 주위에 영토를 배치하는 공간적 재현을 보여 주었다. 중세 기독교도의 지도도 마찬가지여서, 세계가 예루살렘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13세기 아랍 지도에서는 이슬람 세계가 세계의 중심이다. 이 모든 지도에서 “중심은 이동 가능했다.” 관찰자가 자신만의 관점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재현에서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관찰자에게 있어 기하학적 중심은 당연히 자신의 지시 지점(중국 문화, 유태 문화, 아랍 문화, 기독교 문화, 아스텍 문화 등등)에 복무하는 종족적ㆍ종교적 중심과 일치해야만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 정복으로 뭔가 다른 양상이 발생했다. 식민자가 통제와 경계 정하기를 필요로 하면서, 새로운 영토를 정확하게 재현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지도 제작에 원근법이라는 수학이 도입됐다. 이는 당시 지중해 가톨릭 국가(특히 이탈리아)의 회화 기법에 혁명을 일으켰다. 원근법은 고정된 하나의 점, 다시 말해 재현 대상에 외부적인 지상의(sovereign) 시선을 채택하기를 요구한다. 원근법은 누군가가 대상을 보지만, 자신은 보이지 않는 도구이다. 이리하여 원근법은 하나의 관점을 가지되, 그 관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점도 가질 수 없는 가능성을 제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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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 <화가의 작업실>_

이는 지도 제작의 과학에 근본적인 혁명을 야기한다. 비가시적인 관찰점을 만들어 내면서, 기하학적 중심은 더 이상 종족적 중심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 대신, 이제 정확한 측량 도구를 소유하게 된 지도 제작자와 유럽의 항해자들은 종족적 중심에서 유래한 재현은 특정 문화적 특수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전(前) 과학적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재현으로 자기 자신을 관찰점에서 제거하는 대신 ‘보편적 관점’(universal point of view)을 탄생시킨다. 바로 이 시선이 스스로의 문화적 관찰 중심에서 자기 자신을 독립시키려는 시도이며, 나는 이를 ‘제로에 대한 오만’(hubris of zero degrees)이라고 부르련다.

두셀과 미뇰로의 논지를 밀착해서 좇자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자 하는 제로에 대한 오만은 두번째 근대성과 함께 출현한 것이 아니라, 첫번째 근대성의 지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나 부르주아 개인주의의 효과가 아니라, 유럽의 경쟁자와 맞서 대서양 지역을 통제하고, ‘우상숭배’로 간주된 오랜 신앙 체계를 주변부에서 근절시키려 한 스페인의 국가적 필요성에서 제로에 대한 오만이 비롯된 것이다. 다른 세계관들은 더 이상 공존할 수 없었다. 공간과 시간의 위계질서에 따라 분류돼야만 했다. 16~17세기의 세계지도들은, 관찰되지 않는 관찰자의 지상(至上)의 관점에 따라, 공간을 조직했다. 커다란 단위는 ‘대륙’, 더 작은 단위는 ‘제국’이라 불렀는데, 이는 실제 지리와는 완전히 무관하다. 이 지도들은 지정학적 구축물이며, 과학적이지 않은 지상과제(extrascientific imperatives)에 따라 조직된 셈이다. 유럽은—세비야의 성 이시도로(Isidoro)의 T/O지도 속에 이미 나타난 것처럼—문화의 중심적 생산자이자 배급자로 기능하는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수용’의 장소로 고정된다. 세계를 이렇게 대륙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 계몽주의 인류학, 사회학, 진화론을 야기한 인식론적 토대가 되었다. 미뇰로는 “공간(그리고 언어와 기억)의 식민화는, 차이는 가치로 측정되어야 하고, 가치는 연대의 진화(chronological evolution)로 측정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준 신호였다”는 논지를 강화한다. 서구 문자와 역사 기술과 지도 제작법은, 지역적인 것은 보편화되고, 발전 정도를 평가하기 위한 잣대로 측정해야 한다는 커다란 틀의 일부가 되었다.

미뇰로가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지식의 지정학은 바로 이 지점과 관련된 범주이다. 제로에 대한 오만의 결과 중 하나가 특정 언술 장소의 비가시화이다. 이 장소는 장소 없는 장소로, 나아가 보편적 장소로 화한다. 지역의 역사(local history)를 전 지구적 구상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경향은 특정 장소를 지정학적 권력의 중심으로 정립시키는 과정과 병행되고 있다. 자신만의 지역의 역사를 지식의 독보적ㆍ보편적인 언술ㆍ생산 지점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스페인 세계체제의 중심성, 나중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현재 미국의 세계체제의 중심성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생산되지 않은 지식, 권력의 중심이 통제하는 곳에서 생산되지 않은 지식은 부적절하고 ‘전(前) 과학적’인 것으로 선언된다. 제로가 재현하는 지식의 역사는 지도 위에 위치가 있고, 나름대로의 지리학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시도로의 T/O지도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이 지도의 바깥에 위치해 있고, 지식의 생산자가 아니라, 중심이 창출한 지식의 소비자로 간주된다.


* 이 글은 콜롬비아의 철학자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Santiago Castro Gómez)의 「꼭두각시들을 위한 (포스트)식민성: 근대성, 식민성, 지식의 지정학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시각 (Post)Coloniality for Dummies: Latin American Perspectives on Modernity, Coloniality, and the Geopolitics of Knowledge」에서 필자의 허락을 얻어 월터 미뇰로 부분을 번역한 것으로 다음 책에 실려 있다. Mabel Moraña, Enrique Dussel and Carlos A. Jáuregui(eds.), 『고삐 풀린 식민성』(Coloniality at Large), Durham &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08

2014년 9월 7일 일요일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  김항
  •  2008.03.17부터 10회
  •  화요일 19:00~22:00
  •  180,000원

강의 소개

이탈리아의 철학자 아감벤의 사상을 소개하고, 그의 저서 『호모 사케르』를 강독하는 강의. 아감벤의 사상을 1920년대 독일 지성사와 연관시켜 이해하고, 『호모 사케르』에서 주장된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체제의 상관관계를 보다 넓은 지성사적 맥락에 위치시킨다.
신칸트학파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될 수 있는 1920년대 독일 사상계의 문제의식을 우선 소개한다. 구체적으로는 칼 슈미트, 발터 벤야민, 하이데거 사이에 흐르는 공통의 물음을 되짚어 본 뒤, 아감벤이 이들 사상가에 주목하면서 풀어내려 하는 정치적 실타래를 추적한다. 이러한 사전 작업을 바탕으로 『호모 사케르』를 현대의 지성사적 맥락 속에서 독해해 나가기로 한다.
*강좌의 전반부 5주는 강의 전에 간략한 강의 내용을 배포하고, 아감벤의 슈미트, 벤야민, 하이데거론을 중심으로 그 기저에 흐르는 정치-사상적 문제의식을 포착한다.
**강좌의 후반부 5주는 『호모 사케르』를 숙독하면서 진행되고, 『호모 사케르』가 국민국가론 등의 문화론적 국가론을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한다.

강의 계획

1주: 근대유럽 주권국가 체제란 무엇인가
주로 칼 슈미트와 한스 켈젠의 논쟁을 중심으로 근대유럽 주권국가 체제의 역사적 구조를 살펴본다.
2주: 발터 벤야민과 칼 슈미트
벤야민과 슈미트 사이에 공유된 ‘주권’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이 생명정치와 갖는 내재적 연관성에 대해 살펴본다.
3주: 하이데거와 헤겔,언어와 죽음
하이데거의 헤겔과의 대결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헤겔과 하이데거가 서구 형이상학의 심연에 언어와 죽음의 문제가 있음을 공유했음을 드러내고, 아감벤의 생명정치가 바로 이 문제의식에 기초한 사유임을 확인한다.
4주: 바이마르의 정치-사상적 문제
그 전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슈미트, 벤야민, 하이데거가 공유한 문제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아감벤의 생명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5주: 생명정치 : 발가벗은 삶과 주권국가
『호모 사케르』 강독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감벤의 생명정치를 그의 다른 텍스트들과의 연관 속에서 살펴본다.
6주: 『호모 사케르』강독 1
주권의 논리 1 : 홉스와 주권자
교재: 조르지오 아감벤,『호모 사케르』(박진우 역, 새물결)
7주: 『호모 사케르』강독 2
주권의 논리 2 : 법, 노모스, 형식
8주: 『호모 사케르』강독 3
호모 사케르 : 신성함, 생명, 추방, 늑대
9주: 『호모 사케르』강독 4
생명정치와 수용소 1 : 생명, 인권, 단순한 삶
10주: 『호모 사케르』강독 5
생명정치와 수용소 2 : 죽음의 정치화, 수용소, 노모스

강사 소개

김항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연세대, 서울대 대학원, 도쿄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표상문화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지역과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문화/사상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정치적인 것’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일을 주된 관심으로 삼고 있다. 저서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새물결, 2009)이, 역서로 <근대초극론>(민음사), <미시마 유키오 vs. 동경대 전공투>(새물결), <예외상태>(새물결)가 있다.

야만과 인간성 - 법과 도덕의 경계에 있는 전쟁 (위르겐 하버마스 99.4.29 디차이트 기고)

[철학]

하버마스의 코소보 관련 기고(99.4.29)

http://www.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germany&wr_id=506&sca=%EC%B2%A0%ED%95%99&page=10
작성일 : 1999/10/21  조회수 : 93

■야만과 인간성 - 법과 도덕의 경계에 있는 전쟁
(위르겐 하버마스 99.4.29 디차이트 기고)

독일군의 첫번째 참전과 함께 오랜 소극성의 시대가 지나갔는데, 이 시대는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인의 정서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다. 물론 나토의 '공습'은 전통적 의미의 전쟁과는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실제로 공습의 '외과수술적인 정확성'과 민간인에 대한 계획적인 보호는 매우 높은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는 지나가는 20세기를 특징짓는 전면전으로부터 작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코소보 분쟁을 텔레비젼을 통해 매일 밤 지켜보는 '반쯤 참여자'들인 우리들도 공습 아래서 몸을 숨기고 있는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에게 이는 전쟁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다행히도 독일 여론에서 둔감한 말투들이 보여지지 않고 있다. 운명에 대한 그리움, 훌륭한 동지들을 위한 지식인들의 북치기 등이 없다는 것이다. 걸프전 당시에만 해도 긴급 사태(Ernstfall)라는 수사법, 국가적 파토스와 위엄과 비극과 남성적 성숙에의 주술들이 소리 높은 평화운동에 반대해 울려 퍼졌다. 이 양진영은 현재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쪼그라든 평화주의에 대해 약간의 심술이 여기저기서 보여지고 있으며 "우리는 도덕의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라는 강력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고는 있다.그러나 참전에 대한 옹호자나 반대자 모두 매우 분명한 규범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은 별로 끄는 맛이 없다.

평화주의적 반대자들은 작위와 무작위 간의 도덕적 구분을 상기시키면서 정확한 군사 공격에도 불구하고 '감수해야 하는' 민간인 희생자들의 고통에 시선을 돌리려 하고 있다. 그 호소는 그러나 이번에는 국시를 중시하는 냉담한 현실주의자들의 양심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 호소는 적녹 연정의 '법률적 평화주의(legal pacifism)'를 겨냥한 것이다. 우리들보다 이성법적 전통이 더 지배적인 전통적 민주주의 국가들 옆에서 우리 독일의 피셔와 샤르핑 장관은 국가들 간의 자연상태를 인권의 측면에서 문명화시킨다는 이념을 끌어오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법이 세계시민의 법(ein Recht der Weltbuerger)로 전환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법률적 평화주의는 주권국가들 간의 잠재적 전쟁 상태를 단지 국제법 상으로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히 법률화된 세계시민적 질서 안에서 지양하려고 한다. 독일에서도 칸트에서부터 켈젠까지 이러한 전통이 존재했다. 그러나 독일의 정부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시민(Weltbuerger)의 연합체에 직접 가입한 한 국가의 국민(Staatsbuerger)은 이를 통해 자국 정부의 자의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 국가들의 주권을 초월하는 하나의 법률의 가장 중요한 귀결은, 피노체트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지도자들이 그들의 지배와 전쟁 행위에서 행했던 범죄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한편에서는 '신념 평화주의(Gesinnungspazifist)'와 다른 한편에서는 법률 평화주의가 공공의 토론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현실주의자'들도 규범적 수사의 외투 아래로 숨어들었다. 찬반 입장들은 각각 서로 반대되는 동기들을 묶어내고 있기도 하다. 주권적 국가 권력에 대한 규범적 제어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힘의 정치 신봉자들이 평화주의자들과 연대하고, 다른 편에서는 순수하게 (나토) 동맹에의 신의를 중시하는 '대서양주의자'들이 인권에 대한 열광을 보여주는 정부 당국자들에 대한 불만을 억지로 감추고 있다. 이 정부 당국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퍼싱 2 미사일 배치에 반대해서 가두 시위를 벌였던 사람들이다. Dregger와 Bahr가 Stroebele 옆에 서있고, Schaeubler와 Ruehe가 Eppler와 손잡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독일의 좌파 정부와 이들의 규범적 논변의 선호는 본래적인 전투 대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공적 토론과 분위기가 다른 서유럽 국가에서와 다르지 않다는 다행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다른 길'이나 '다른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유럽 대륙과 앵글로색슨 간의 분열이 다소 보여지고 있는데, 적어도 유엔 사무총장의 자문을 구하고 러시아와의 협의를 추구하는 측과 주로 자신의 무기를 신뢰하는 측의 분열이 보여지고 있다.

물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과 EU 회원국들은 공동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랑부예 협상이 실패한 이후 그들은 코소보 자치를 위한 리버럴한 규정을 세르비아 내에서 관철시킨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나서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적 처벌을 강행하고 있다. 전통적 국제법에서는 이를 주권 국가의 내정에 대한 개입, 즉 내정간섭 금지의 위반 행위로 여겨질 것이다. 한편 인권 정책의 전제 하에서는 이번 공격은 국제사회로부터 (유엔 위임 없이도 묵인 하에) 권한을 부여받은 평화유지를 위한 군사적 행위로 이해될 것이다. 이러한 서방의 해석에 따르면 코소보 전쟁은 고전적 국제법에서 하나의 세계시민 사회의 세계시민적 법률로의 도약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발전 양상은 이미 유엔 결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동서 냉전기간 중 정체되었고 그 이후 걸프전과 그 외의 군사개입에 의해 가속화되어왔다. 물론 1945년 이후 인도적 개입은 유엔의 이름 하에, (아직 국가 권력이 기능하는 한에서) 해당 국가 정부의 형식적 동의와 함께 이루어져왔다. 걸프전에서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 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치하고 이라크 북부에 쿠르드 난민을 위한 '보호구역'을 설치함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한 주권국가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은 명시적으로 박해받는 소수파를 자국 정부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91년 4월 결의안 688호에서 유엔은 '국제 안보상 위협'이 있는 경우에 가능한 개입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상황이다. 나토는 유엔 안보리 위임 없이 행동하고 있으면서 이 개입을 박해 받은 민족적(그리고 종교적) 소수파를 위한 긴급 구조로 정당화하고 있다.




코소보에서는 이미 공습 수개월 전부터 약 30만명에 대해 살인, 테러, 추방이 가해졌다. 이제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로 향하는 난민 행렬의 충격적 장면들이 조직적인 인종 청소의 증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난민들을 인질로 쓰기 위해 붙잡아두는 경우도 있다. 밀로셰비치가 나토 공습을 자신의 정책을 쓰디쓴 종말까지 계속 밀고 나가기 위한 기회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난민들을 담은 장면들이 이러한 인과적 관련성을 거꾸로 인식하게 할 수는 없다. 협상의 목표가 바로 이러한 살인적인 인종 민족주의를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1948년 민족학살에 대한 협약의 원칙들이 지금 공습 하의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적용되고 있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와 동경의 전범 재판의 원칙에서 '인간성에 대한 범죄'로서 국제법에 포함되게 된 그러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이다. 얼마전부터 유엔 안보리는 이러한 범죄도 경우에 따라서는 무력 조치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 '평화 위협'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위임이 없는 이번 경우에 군사개입하는 국가들은 오직 그들이 의무지워져 있는 국제법의 원칙들로부터만 이러한 원조 조치에 대한 권한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코소보인들의 동등한 공존에의 권리와 불의한 폭력적 추방에 대한 분노는 서방의 군사 개입에 대해, 다양한 편차는 있지만 폭넓은 동의를 가능케 했다.CDU의 외교 대변인 Karl Lamers는 이러한 동의에 처음부터 수반되어온 이중성을 잘 표현했다. "이렇게 우리 양심은 진정될 수 있다라고 우리의 이성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은 이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많은 불안정의 근원이 있다. 무력 개입 외의 어떠한 대안도 허용하지 않았던 협상 전략이 현명했던가에 대한 회의가 강하게 떠올랐다. 왜냐하면 군사 공격의 목표에 대한 회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에게서 야당에까지 밀로셰비치의 강경노선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의 위험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근 국가인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 그리고 몬테네그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불안정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핵 폭탄으로 강력하게 무장한 러시아에서는 여러 그룹들의 '형제 민족'과의 연대가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군사적 수단의 적절함이 문제가 되고 있다. 모든 '불가피한 피해', 다뉴브강 교량 파괴로 강으로 떨어진 모든 기차들, 알바니아 난민을 실은 모든 트랙터들, 세르비아인 거주지를 비롯해서 미사일 공격의 희생이 된 모든 민간 시설들은 전쟁의 어떤 익명의 부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군사개입한 '우리들이' 양심에 거리껴하는 그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다.

적절함의 문제는 결정하기가 어렵다. 나토가 국영 라디오 파괴를 30분 전에 고지해야 했던 것은 아닌가? 또한 의도적인 파괴- 불타는 담배 공장과 가스시설, 폭격받은 고층빌딩과 거리와 다리, 유엔 경제제재로 그렇지 않아도 타격을 입은 유고슬라비아의 경제 인프라의 폐허화- 역시 (공습에 대한) 동요를 더욱 크게 한다. 피난 중에 죽어간 모든 아이들은 우리의 신경을 찢어놓는다. 왜냐하면 파악될 수 있는 인과적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이제 책임의 실마리가 엉클어져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참한 추방 속에서 한 국가 테러리스트의 무자비한 정책의 결과들은 그에게 피묻은 무기를 버리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변명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공습의 결과들과 쉽게 풀어버릴 수 없게 엉클어지고 있다.

또한 이제 혼란스러워진 정치적 목표에 대한 회의가 있다. 물론 밀로셰비치에 대한 5가지 요구는 자유롭고 다문화적 보스니아를 위해 데이튼 협정이 상정했던 요구들과 동일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 만일 알바니아계 코소보인의 세르비아 내 자치 요구가 충족된다면 이들은 전혀 분리 독립에 대한 권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대알바니아 민족주의는 나토 군사개입이 억누르고자 하는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다. 이제 하루 하루 인종 청소의 상처가 깊어질수록 여러 민족의 동등한 공존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재고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코소보를 분단하는 것은 아무도 원할 수 없는 분리일 뿐이다. 게다가 보호위원회 설치는 전략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즉 지상전과 수십년에 걸친 평화유지군 주둔을 의미한다. 만일 이러한 예견치 않았던 결과가 나타난다면, 이번 작전의 정당화 문제는 사후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물어져야 할 것이다.

독일 정부의 발언에는 어떤 날카로운 음향이 섞여있다. 이는 논란이 되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례에 대해 지나친 염려를 하는 것이며, 마치 피셔와 샤르핑의 강력한 수사와 함께 어떤 다른 목소리가 내부에서 들려오는 것과 같다. 이것은 군사 개입이 정치적으로 실패할 경우 이 개입을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몰아가게 되고 국가 간의 관계를 법제화하려는 노력을 수십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인가? 그렇다면 나토가 국제사회를 위해 짊어진 이러한 '경찰 역할'은 기껏 하나의 '전쟁', 그것도 발칸을 더 심각한 참극으로 몰아넣는 더러운 전쟁이 될 뿐인가? 그리고 이는 이에 대해서 언제나 잘 알고 있던 Carl Schmitt의 말처럼 될 것인가? 그는 "인간성을 말하는 사람은 속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반휴머니즘을 유명한 말로 표현한 바 있다."인간성은 야수성"이라고. 법률 평화주의는 결국 잘못된 기획이 아닌가라는 회의가 이러한 불안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다.




현실정치의 모순

코소보의 전쟁은 정치학과 철학에서도 논쟁이 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민주주의적 법치국가는 정치권력을 법적으로 길들인다는 위대한 문명의 성취를 국제법상 인정된 주체들의 주권이라는 근거 위에서 이룩했다. 한편 '세계시민적' 상태가 이러한 민족국가의 독립성을 의문시하고 있다. 계몽주의의 보편성이 여기서 특정 공동체의 집단적 자기 주장을 가능케하는 정치권력의 고집에 부딪히게 되는가? 이는 인권 정책의 살에 박힌 현실적 가시이다.

현실주의 학파들도 물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과 함께 등장한 독립 국가들 체제가 구조적으로 변동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1)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 사회의 상호의존성 2) 국가들이 서로 협력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의 등장 3) 초국가적 기관과 절차의 숫자와 그것이 가지는 권위의 증가(이는 집단안보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4) 외교의 경제화와 내정/외교의 고전적 구별의 혼돈 등등이다. 그러나 비관주의적 인간 이념과 본래부터 불투명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 등이 상호 불개입의 국제법적 원칙을 고수하는 독트린의 배경을 이룬다. 국제적인 사냥터에서는 독립적 민족국가들이 가능한 한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이해 관계라는 잣대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다. 왜냐하면 이는 한 집단의 안보와 생존은 그 집단 구성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 어떤 것과도 교환할 수 없는 가치이며, 합리적인 자기 주장의 당위성은 집단적 주체들의 관계를 가장 잘 제어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입적인 인권정책은 범주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권정책은 자기 주장이라는 어느 정도 '자연적' 경향을 과소평가하고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규범이라는 기준을 규범화에서 벗어나는 권력 위에 배치하려고 한다. Carl Schmitt는 이런 논변을 자신의 정치적인 것의 '본질 규정'을 통해 끝까지 밀고 갔다. 원래부터 가치중립적인 국가 이념을 '도덕화'하려는 시도를 통해 인권 정책은 국가 간의 자연적 투쟁을 '악에 대항한 투쟁'으로 타락시킨다고 슈미트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반론들이 있다. 즉 (인권 정책은) 이제 국가 시대가 끝났으며 국제사회의 규칙이 힘을 겨루는 민족국가들을 조종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입을 부르는 것은 오히려 국가 권위의 침식이며 무너졌거나 권위주의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한 국가 내의 내전과 종족 분쟁이라는 것이다. 이는 소말리아와 루완다 뿐 아니라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그러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의심도 별 근거가 없다. 현재의 사례는 보편주의적 정당화가 언제나 이해관계들의 특수성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공격에 있어 이러한 의심들이 지적하는 것은 매우 빈약하다. 경제의 세계화 때문에 국내정치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정치인들에게 외교적인 힘의 과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공격에 있어 미국의 동기는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고, 나토의 동기는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며, 소위 '유럽 요새'의 동기는 새로운 이민의 물결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개입에의 결정을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에 대한 반론은 무엇보다 국제법의 주체들이 20세기 참극의 역사에 있어 남겨온 피의 흔적은 고전적 국제법의 무죄 주장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창설과 유엔 인권선언, 그리고 침략과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처벌 위협, 또한 이의 결과로 일정 정도 불개입 원칙을 제한하는 것 등은 금세기의 중요한 윤리적 경험, 즉 전체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경험에 대한 필연적이고 적절한 응답인 것이다.

나아가 정치의 도덕화라는 비난은 개념적 불명확성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시민적 상태를 안정시키려는 노력은 인권 침해 범죄에 대해 도덕적 관점에서 맞서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국가의 법 체계에서 범죄행위를 처벌하듯이 처벌하려는 것이다. 국제 관계의 완전한 법제화(eine durchgreifende Verrechtlichung internationaler Beziehung)은 분쟁 해결을 위해 제도화된 절차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은 오히려 인권 문제를 법적으로 다루는 것이지 권리를 도덕적 차원에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는 소위 '적'을 도덕적 측면에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지탄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또한 하나의 세계국가에 있어 폭력의 독점(Gewaltmonopol)과 세계정부(Weltregierung)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제대로 기능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하며, 국제 형사재판소 판결의 기속력이 필요하며, 각 정부 대표자들의 회담을 '두번째 단계'의 세계시민의 대의 기구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엔을 이렇게 개혁하는 것은 아직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법제화와 도덕화 간의 구분을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기는 하지만 두 날을 가진 칼과 같다. 왜냐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의 제도화가 덜 이루어져 있는 한, 법과 도덕의 경계는 현재의 경우처럼 모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리가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나토는 국제법의 도덕적 정당성에 호소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정당성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승인된, 효율적인 법 적용 및 집행 기관이 결여되어 있다.

세계시민 사회의 미비한 제도화는 예를 들어 평화 유지 및 정착을 위한 개입에 있어 정당성과 효율성 간의 간격에서 잘 나타난다. 유엔은 Srebrenica를 보호 항구로 선언했다. 그러나 그곳에 정당하게 주둔한 군대는 세르비아인의 진주 이후 잔인한 학살을 막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나토는 이러한 유엔 안보리의 위임이라는 정당성 없이 실질적인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정부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인권정책의 딜레마

인권정책은 이러한 상황의 간격을 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인권정책은 세계시민법의 제도화 미비로 인해 단지 미래의 세계시민적 상황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역설적 조건 하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군사적 수단을 써서라도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정책을 어떻게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이 세계 전역 모든 곳에 쿠르드 민족이나 체첸이나 티벳을 위해서 개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바로 우리의 문 앞인 발칸에서는 이러한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인권정책을 이해하는데 있어 재미있는 차이가 미국과 유럽 간에 존재한다. 미국은 인권의 전세계적 관철을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사명으로 생각하면서 이러한 목표를 힘의 정치라는 전제 하에서 추구한다. EU의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인권 정책를 오히려 국제관계의 전면적인 법제화 프로젝트로 이해하는데 이러한 프로젝트는 힘의 정치라는 변수도 변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유엔이 허약하게 규제하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잡는 역할을 넘겨 받았다. 여기서 정치적 목표를 평가하는데 있어 인권이 윤리적 가치 지향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언제나 이와 반대되는 고립주의적 경향도 있으며 다른 국가들처럼 미국도 우선적으로 자국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데, 이는 언제나 앞서 선언한 규범적 목표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잘 보여졌으며 이는 계속 미국의 '뒷 마당'의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울리히 벡이 "인도주의적 이타성과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의 새로운 혼합 형태"라고 명명한 이런 형태는 미국의 전통이 되어 있다. 1차대전 당시 윌슨 대통령과 2차대전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동기들에는 실용주의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이상의 추구도 존재한다. 독일이 1945년 패전과 동시에 해방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러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러한 매우 미국적인, 즉 규범적 지향성을 가진 힘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와의 전쟁을,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비타협적으로 밀고 나가고 필요한 경우 지상군도 투입하는 것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이는 최소한 일관성이라는 장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아시아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 군사동맹체가, 국제법이나 유엔 헌장에 대한 완전히 다른 그들의 해석에 근거해서, 군사적 수단으로 인권 정책을 진행시켜 나간다면 그때 우리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권이 자신의 정치 행위를 윤리적으로 지향시키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의미에서 하나의 권리로 나타난다면, 상황은 달리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인권은, 그 윤리적 내용과는 무관하게, 기속력 있는 법률 체계 속에서 효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개인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권이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민주주의 법치 체제 안에서 마치 한 국가의 헌법에서처럼 위치지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권리의 수취인이 곧 이의 발신인으로 이해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의 기구들은 기속력 있는 법 적용과 민주적 입법을 완성시키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규범은 그것이 아무리 내용적으로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폭력적으로 강제되는 제한에 불과할 것이다. 코소보에 개입한 국가들은 물론 유고 정부가 인권을 짓밟은 사람들의 권리를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베오그라드 거리에서 춤추는 세르비아인들은 Slvoj Zizek이 말했듯이 "민족주의의 저주에서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변장한 미국인들이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 질서가 군사력으로 강요되고 있다. 유엔이 회원국인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결정하지 않는 이상 이는 규범적 관점에서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19개의 의심할 바 없이 민주주의적 국가들 역시 그들이 스스로 개입을 결정한다면 한 정파에 머물게 된다. 그들은 오직 독립적 기관에만 주어지는 개입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한 이상 그들은 가부장적(paternalistisch)으로 행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적절한 도덕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적 가부장주의가 불가피하다는 의식 속에서 행위한다면 그가 행하는 폭력이 아직 민주적 세계시민사회의 틀에서 정당화된 법률 행위의 성격을 얻고 있지 못함도 알고 있어야 한다. 도덕적 규범들은 우리들의 보다 나은 통찰에 호소하지만, 제도화된 법률적 규범인 것처럼 강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힘의 정치에서 세계시민 사회로

제도화된 세계시민 상태는 앞으로 추구되어야 하는데 마치 그것이 이미 현존하는 것처럼 행위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희생자들을 외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국가 권력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테러가 될 때 고전적 의미의 내전은 인민에 대한 범죄가 된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민주주의적 이웃국가들은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되는 긴급구조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세계시민 상태의 미완성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이미 존재하는 제도와 절차는 전체를 위해 행동하는 한 특정 정파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오해들의 한 원천은 예를 들어 정치적 정서들이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에 있는 것처럼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나토의 공중전과 세르비아의 지상전에 엔첸스베르크가 말하는 것처럼 4백년의 시간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있어서 내게는 그림멜하우젠보다는 에른스트-모리츠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새로운 의미에서 '제1' 세계와 '제2' 세계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오직 평화적이고 부유한 OECD 국가들만이 자신의 국가적 이해관계를 유엔의 거의 세계시민적인 요구 수준과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새로운 의미에서의) '제2 세계'는 유럽 민족주의의 힘의 정치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리비아, 이라크, 세르비아와 같은 국가들은 국내의 불안정한 상황을 권위주의 통치와 자기정체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통해 보완하는데, 이들은 외부적으로 팽창주의를 펴고 있으며 국경 문제에 예민하고 주권 문제에 있어 신경과민을 보이고 있다. 이런 종류의 관찰은 서로 간의 교류에 있어 문턱을 더욱 높이게 된다. 현재 이러한 문턱이 외교적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주목할만한 정치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헤게모니를 움켜쥔 질서의 수호자로서 인권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다른 한편 우리(유럽인)들은 전통적 힘의 정치로부터 현재의 무력 분쟁을 넘어 세계시민적 상태로 가는 과도기를 함께 풀어나가야 할 배움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장기적 전망을 볼 때 우리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나토가 자기 자신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