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메뉴

2014년 9월 21일 일요일

로크 - 자연 상태의 정치 원리 [통치론]

http://www.seelotus.com/gojeon/bi-munhak/cheol-hak-book/locke.htm

자연 상태의 정치 원리


인간의 자연상태는 또한 평등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일체의 권력과 지배권은 상호적인 것이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는 일은 없다. 즉, 조금도 다름없이 똑같은 종류와 등급의 피조물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무런 차별도 없이 모두 자연의 혜택을 똑같이 누리며, 똑같은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적어도 일체의 피조물의 주(主)이시며 지배자이신 신께서 어떤 한 사람을 지명하시어 그에게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지배권과 주권을 부여하시지 않는 한, 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 종속되거나 또는 복종하는 일이 없이 모두 평등해야 한다.
 저 현명한 두뇌의 소지자인 후커(Hooker)는 이와 같은 인간의 자연적인 평등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너무도 자명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러한 인간의 평등을, 사람들이 서로 남을 사랑해야 하는 도덕상의 구속력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위에다 사람들 서로가 짊어지게 되는 여러 가지 의무를 설정하고, 그곳으로부터 정의와 사랑이라는 위대한 원리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원래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자연적인 욕망을 갖도록 되어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남을 사랑하는 일은, 곧 그들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평등한 것들은 모두 똑같은 척도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서 바라게 되는 선(善)한 것을 나도 반드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이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만일 내가 남에게 어떤 해를 끼친다면, 나도 남으로부터 어떤 해를 입게 되리라는 것을 예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그들에게 표시한 것 이상의 사랑을 나에게 표시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래 자기와 평등한 사람들로부터 되도록 많은 사랑을 받고 싶으면, 당연히 그들에게 대해서도 전적으로 똑같은 사랑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과, 우리와 똑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들은 이와 같이 서로 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다.
 '(교회정치론) 제1권'
 그러나 이러한 자연상태는 자유의 상태(a state of liberty)이기는 하지만 결코 방종의 상태(a state of licence)는 아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사람들은 자기의 신체와 소유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잇는 완전한 자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살할 수 있는 자유와 또한 그의 소유로 되어 있는 어떠한 피조물(生物)도-그것을 살해해 보리는 편이 그것을 단순히 보전해 가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도움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해할 수 있는 자유는 결코 가질 수 없다. 자연의 상태에서는 그것을 지배하는 하나의 자연법이 있는데, 누구나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다름 아닌 자연법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성의 소리에 다소라도 귀를 기울이게 되면 ant 사람들은 모두 평등한 존재이므로-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유일한 전지전능하신 조물주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원래 유일 최고의 주(主)되시는 신의 명령에 따라서, 그리고 그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보내어진 종이며 또한 주님의 뜻에 부합되는 동안만 생존해 갈 수 있도록 지음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동일한 능력이 부여되어 있는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자연이라는 것을 공동재산으로 갖고 있다. 즉,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자연의 공동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급의 피조물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서로 상호간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생각하여, 남을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종속관계를 우리들 사이에 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가도록 해야 하며, 또한 자기의 담당 부서를 고의로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것과 똑같은 이유로, 적어도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가는 일이 위협을 당하지 않는 한, 되도록 다른 사람들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며, 또는 서로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평화와 모든 인류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자연법이 수호되도록 하기 위하여,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자연법의 진행이 각자의 손에 위임된다. 이리하여 각자는 이 자연법의 위반자들을 - 이법의 위반을 방지할 수 있는 정도에서 -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법은-만일 자연상태에 있어서 이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그것으로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며 또한 이 법의 위반자를 억제할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면-마치 이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관계되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완전히 평등한 사회에서는, 즉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 우월성이나 지배권을 갖는 일이 없는 완전히 평등한 사회에서는, 자연법의 시행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은, 그 밖의 모든 사람들도 역시 그것을 행할 수 있는 권리를 반드시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른 사람을 능히 제재할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범한 자를 붙잡았을 때, 자기의 격정이 발동되는 대로, 또는 터무니 없이 방자한 자신의 의사에 따라서 그를 처치해 버려도 좋은 절대적인 또는 자의적(恣意的)인 권력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단지 냉정한 이성과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서 죄  범한 자에게 그 범죄의 정도에 상응하는 것을, 즉 그 범죄에 대한 손해의 배상과 범죄의 억제라고 하는 이 두 가지는 한 사람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대해서 합법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즉 이른바 형벌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자연법을 위반한 자는 그 법을 위반함으로써 신이 인간 상호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규정해 주신 인간 행동의 기준이 되는 이성과 일반적 형평의 공정한 규칙 이외의 별개의 규칙에 따라서 살아갈 것을 스스로 선언하는 일이 된다. 이리하여 이러한 범법자는 인류에게 위험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위해와 폭행으로부터 수호해야 할 유대는 그런 자에 의해서 멸시를 당하며 또한 단절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인류와 또한 자연법에 의해서 이룩된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사람들은 인류 전체를 보전해 가기 위하여, 보유하고 있는 권리에 의거하여 인류에게 해로운 자들의 행동을 제지시키며, 필요한 경우에는 이들을 절멸(絶滅), 즉 살해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리하며 누구든지 자연법을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그러한 위법행위를 후회케 함으로써, 또한 그를 하나의 본보기로 보임으로써, 그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다시는 동일한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게 할 수 있는 벌을 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연법의 위반자를 능히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또한 자연법의 집행자로도 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이 책은 '시민적 통치(정치사회)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논문'이란 논제로 발표된 제2논문으로 흔히 '통치론'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로크는 정치권력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자연상태'의 설명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정치권력은 자연상태로부터 '모든 개인의 동의(同意)에 의서 (사회계약)'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 것이 그의 정치이론의 대전제가 된다. 로크의 자연상태는 홉즈(Hobbes)의 자연상태, 즉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와는 달리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이며, 결코 방종의 상태(a state of licence)는 아니다. 즉, 로크에 의하면, 자연상태라는 것은 각자가 자연법(自然法)의 범위 안에서 자기의 행동을 규율하며,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 소유물과 신체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며, 그곳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상태에서는 각자가 자연법에 따라서 생활하고 있으므로 그 상태는 본래 전쟁의 상태(state of war)가 아니라 평화적이며 목가적(牧歌的)인 상태이다.
 그러면 로크가 생각한 '자연법'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자연법이란, 그에 의하면 이성(理性)의 법칙이다. 이성은 신에 의해서 부여된 것이다. 이러한 이성은 인류에게 '각 사람은 모두 평등하며 독립인(獨立人)이며,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러한 이성에 입각한 법, 즉 자연법은 인류 상호간의 안전을 위하여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 준칙(準則)이며, 따라서 인류에게는 영원한 법칙으로 되는 것이다.
 또한 로크는 인간의 유일의 전지전능하신 조물주의 피조물이며 소유물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의 생명은 신의 뜻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자연상태에서는 각자에게 생존의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잘 보전(保全)해 갈 의무를 가진다. 따라서 각자는 마음대로 자기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 버릴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포기해 버릴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침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로크의 견해에 따르면, 신은 사람들에게 이 세계를 하나의 공유물(共有物)로서 부여하셨다.
 그러면 이와 같이 신이 공유물로서 부여한 것을 과연 어떻게 해서 각자는 그 중의 일부를 사적(私的)소유물로 가지게 된 것일까? 로크는 그와 같은 사유재산의 발생을 그 목적물에 가해진 각자의 '노동'에서 구하고 있다. 로크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오크나무 밑에서 도토리를 주워 가지거나, 숲 속에서 사과를 따 가질 때, 즉 노동을 했을 때, 그 토지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의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그런 것들을 소유해도 좋은 것일까? 그 소유권의 한계들을 소유해도 좋은 것일까? 로크는 우리들에게 자기보전을 위하여 먹을 것과 그 밖의 것들을 이용할 것을 인정해 준 저 자연법이 동시에 소유권의 한계도 정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자연의 혜택을 '향락하는' 정도이다. 즉, 적어도 이용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는 누구도 자기의 노동으로써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인구의 수는 적고 토지는 광대하고 자연의 산물도 풍부했었을 것이므로 전쟁상태로 되는 일도 없고 매우 평화로운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화폐라는 것이 발명되자 사태는 달라지게 되었다. 화폐는 썩지 않으며 얼마든지 축적할 수가 있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는 근면의 정도의 차이가 있으므로 마침내 사람들의 소유물(재산)에는 많고 적은 정도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으며, 그리고 화폐의 발명은 이러한 정도의 차이를 확대시키는 기회를 마련해 주게 되었다고 로크는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 사이에 소유물의 차이가 생기게 되면 다른 사람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자도 생기게 된다. 그런데 자연상태에서는 그것을 처벌할 수 있는 공통의 권력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이 생기게 되었다. 로크에 있어서의 자연상태는 투쟁상태가 아니라 평화로운 상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황금시대의 상태나 낙원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가끔 투쟁상태에 빠지기 쉬운 계기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상태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함이 있다고 로크는 말하고 있다.  즉, 첫째로 자연상태에서는 옳고 그른 것의 표준으로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판결할 상통의 척도(尺度)로서 일반의 동의(同意)에 의해서 승인되고 확정된 볍률(law)이 없다. 둘째로, 자연상태에서는 확립된 법률에 따라서 온갖 분쟁을 해결해야 할 권위를 가진 공평한 `재판관(judge)'이 없다. 셋째로, 자연상태에서는 판결이 적당했을 때 그것을 지지하고 집행해야 할 `권력(power)'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와 같이 자연상태는 `법률' `재판관' `권력' 의 셋이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향수(享受)하려고 해도 그것은 매우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를 받을 위험 앞에 놓이기가 쉽다. 이와 같은 자연상태의 불편이나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서 보다 더 안전한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사람들은 하나의 정치 사회를 설립하게 된다. 즉, 각자는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사회(community)를 결성할 것을 계약한다. 그 계약의 목적은 각자의 생명과 자유와 자산을 사회의 안과 밖의 침해자로부터 보호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케 하는 데 있다. 즉, 인간이 정치사회를 만든 목적은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소유'를 보다 더 잘 보호해 주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치사회에 있어서는 다수자의 의사 ㅡ 다수결 ㅡ 가 그 공동체를 움직여 나간다.
 이와 같이 정치사회의 기원을 각자의 생명과 자유 자산의 보호에서, 그리고 각자의 자발적 동의에서 찾으려는 생각은, 정치권력의 기초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 있다고 보는 국민주권론의 원형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이 `통치론' 속에서 전개되는 로크의 정치사상은 오늘날의 중요한 민주주의의 위대한 건설자였다. 그의 사상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현대의 우리들의 사상 속에서도 맥맥히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민주주의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로크의 이론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리라 믿는다.
로크/통치론  John Locke;Th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에서
참고 자료

로크(1632~1704)

로크
영국의 철학자 ·정치사상가.
 브리스틀 근교의 링턴 출생. 계몽철학 및 경험론철학의 원조로 일컬어진다. 아버지는 소지주 ·법률가로서 내란 때는 의회군에 참가하여 왕당군과 싸웠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배웠고, 한때 공사(公使)의 비서관이 되어 독일 체류 중에 애슐리경(뒤의 샤프츠베리 백작)을 알게 되어 그의 시의(侍醫) 및 아들의 교사 그리고 고문이 되었다. 백작이 실각되자 반역죄로 몰려, 1683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가, 1689년 사면되어 귀국하였다. 망명생활 동안 각지를 전전하면서 여러 학자들과 친교를 맺고, 귀국 후 《종교 관용에 관한 서한》(1689) 《제2서한》(1690) 《제3서한》(1692) 《통치이론》(1690)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1690) 등을 간행하여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 후 관직에 있었으나 1700년 이후 은퇴하여 에식스의 오츠에서 사망하였다.
 데카르트 철학과 I.뉴턴에 의해 완성된 당시의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고 반(反)스콜라적이었다. 《인간오성론》은 그의 영향을 바탕으로 G.버클리, D.흄에게로 계승되었던 경험론과 내재적 현상론(內在的現象論)의 입장에서, I.칸트에 이르러 결실을 보게 되는 인식을 근본 과제로 제기하여 논술한 저서이다.
 제1권에서는, 먼저 R.데카르트나 케임브리지 플라톤파(派)의 본유관념(本有觀念)과 원리를 부정하고, 그 위에 제2권에서는, 인지(人智)는 모두 감각과 반성이라는 경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단순관념에 유래하며, 그로부터의 복합관념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실체(實體)’ 개념도 단순관념의 복합이며, 기체(基體)는 그 배후에 상정되는 불가지(不可知)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단, 색(色)·향(香)·음(音)과 같이 감각에 대하여 상대적인 제2성질과, 연장(延長)·운동 ·고체성(固體性)과 같이 물(物) 자체에 구비된 제1성질과 구별하여, 전자(前者)는 후자가 감각기관에 자극을 줌으로써 생긴다고 생각하여, 당시의 과학적 실재론을 전제로 삼았다. 또, 불가지인 물적 실체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정신에 대해서도 반성의 관념과 기능적 인격에 의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정신실체나 신의 존재를 인정한 점에서, 그 문제를 다음의 버클리와 흄에게 남겨 놓았다.
 제3권의 언어론은, 스콜라적 실체형상(實體形相)의 비판, 개념론 또는 유명론적(唯名論的)인 보편개념의 설명 ·정의에 대해서의 견해 등 현대 의미론(意味論)에 통하는 중요한 고찰을 포함시켰다. 제4권은 제3권까지 논술한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지식의 확실성 ·가능성 ·종류 등을 논했다. 제4권에서 자아의 직각지(直覺知)를 지식의 근원으로 하는 것 등 이성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나, 지식을 관념과 대상 간이 아니라 관념간의 일치 또는 불일치의 지각(知覺)이라는, 관념간의 관계라고 한 것은 후의 경험론의 방향을 보인 것이다.
 그에게는 《인간오성론》에서 단편적으로 취급된 이외에는 정리된 윤리서(倫理書)는 없다. 그러나 도덕의 심리적 해명 방법이나 쾌락주의 ·행복주의의 경향과, 도덕을 신(神)의 법, 자연법, 국법과의 일치에서 구하려고 한 방향 등은 영국 고유의 윤리와 공통된 성격을 보인다. 또, 계시(啓示)의 뜻을 인정하면서도 이성적 논증(理性的論證)의 한계를 넘는 것을 개연적(蓋然的)이라 생각하는 점에서 종교상 이신론(理神論)을 조장하는 입장에 섰다.
 법 ·정치 사상에서는 계약설을 취하지만, 홉스의 전제주의(專制主義)를 자연상태보다도 더 나쁘다고 생각하여 주권재민(主權在民)과 국민의 반항권을 인정하여 대표제에 의한 민주주의, 3권분립, 이성적인 법에 따른 통치와 개인의 자유 ·인권과의 양립 등을 강조하여 종교적 관용을 역설했다. 그의 정치사상은 명예혁명을 대변하고 프랑스혁명이나 아메리카 독립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서유럽 민주주의의 근본 사상이 되었다.
 또 교육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의 교육법을 통렬히 비판하여 그리스 ·라틴어 집중주의, 암기식 주입주의를 반대하고 수학적 추리와 유용한 실제적 지식, 신체 ·덕성의 단련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그 사람의 소질을 본성에 따라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여 가정교사에 의한 교육을 주장했다. 저서로 《금리저하와 화폐가치와 화폐가치 앙등의 결과에 관한 고찰》(1691) 《교육론》(1693) 등이 있다.
보조 자료

 로크(1632~1704)는 1632년 8월 9일 브리스톨 부슨 월링톤이라는 촌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청교도의 소지주였고 또한 시골 변호사였다. 그는 1652년 당시 독립교회파 세력 밑에 있었던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B.A, M.A 학위를 받았다. 그는 독립교회파의 신학자이고 동대학의 학장인 존 오웬의 많은 감화를 받았다. 또 휘그당의 창설자인 샤프츠베리 백작의 시상적 영향을 입었고 1666년 백작의 청으로 최초의 정치논문인 ‘관용론’을 썼고 또 정치생활을 하게 되었다. 만년에는 주로 성서의 연구와 종교적 사색으로 돌아갔다. 그는 인식론 철학분야에서는 영국 경험주의철학의 아버지로서, 법철학 분야에서는 위대한 자연법 사상가로서, 정치이론, 정치철학분야에서는 근대정치 이론의 확립 자로서 높이 평가된다. 
“정치권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또한 그것의 기원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대체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고찰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다. 즉, 그것은 사람들이 일일이 다른 사람의 허가를 얻는 다는가 또는 다른 사람의 의사에 전적으로 따른다는가 하는 일이 없이, 자연법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데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며 또한 자기의 소유물과 자기의 몸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인 것이다.” 
1704년 10월 28일 교육・신학・자연과학 등 각 분야에 30여의 저서를 남기고 교구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테크 기업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로비
2013년 7월 8일  |  By:   |  Economy / BusinessIT  |  댓글이 없습니다
조지메이슨 대학(George Mason University)의 연구자들은 최근 미국의 테크 기업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역사를 조명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저자들은 만약 정치인들이 테크 회사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중지하지 않으면 실리콘 밸리는 혁신의 상징에서 경쟁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부에 기대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산업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최근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대정부 로비를 위해 엄청난 돈을 쓰고 있습니다. 구글의 경우 작년 한 해만 로비에 1,820만 달러를 썼는데 이는 AT&T, 보잉, 그리고 록히드 마킨(Rockheed Martin)과 같은 전통적으로 로비를 활발히 해 온 기업들보다 많은 수준입니다. 이는 연방 정부를 대상으로 한 로비 지출이고 테크 기업들의 실질적 영향력은 주정부나 지방 정부와의 관계를 통해서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다음은 몇 가지 사례입니다.
* 일리노이주는 그루폰(Groupon)사에 시카고에 25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조건하에 2010년 350만 달러의 세제 혜택을 주었습니다.
* 샌프란시스코시는 트위터사가 회사를 옮길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자 2011년 트위터사에 6년간 지불급여세를 면제해주는 조건을 내 걸었는데 이는 규모로 따지만 2,200만 달러의 세수가 그냥 없어진 셈입니다.
* 워싱턴주는 2012년에 리빙소셜(Living Social)사에 2012년 3,250만 달러에 달하는 5년간의 세재혜택을 주기로 했습니다. 리빙소셜은 워싱턴주에서 1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세제혜택을 받은 몇 개월 안에 큰 규모의 해고를 단행했습니다.
* 텍사스주는 애플사가 오스틴시 근처에 운영센터를 하나 여는 조건으로 세금 혜택뿐만 아니라 2,100만 달러에 달하는 주정부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텍사스 주정부와 협상 과정에서 애플사는 오스틴시외에 다른 도시들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실제로 애플이 다른 곳을 고려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 텍사스주는 아마존과도 계약을 체결했는데 텍사스주가 4년 반동안 판매세를 거두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아마존 물류센터가 텍사스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논문의 저자들은 디지털 기업들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은 현명한 정책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 이유는 첫 번째, 가장 성공적인 기업들은 이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둘째, 디지털 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은 빠르게 회사의 위치를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이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투자라는 것입니다. (Business Week)
테크 기업들의 로비 관련 지출 연간 추이, 1998 - 2012. 출처: Washington Post.
테크 기업들의 로비 관련 지출 연간 추이, 1998 – 2012. 출처: Washington Post.

무엇이 언론을 편향되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언론을 편향되게 만들었는가
2014년 5월 12일  |  By:   |  IT경영경제  |  댓글이 없습니다
시카고 대학의 매튜 갠츠코우(Mathew Gentzkow) 교수와 제시 샤피로(Jesse Shapiro)가 미국 400개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객관적으로 각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을 측정하기 위해 먼저 민주당과 공화당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조사했습니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은 ‘최저임금’ ‘정유회사’ ‘야생동물 보호’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데 비해 보수적인 공화당은 ‘감세’ ‘사유 재산권’ ‘경제 발전’ 같은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민주당은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인 로사 파크스를 즐겨 인용하는 반면 공화당은 컨츄리 뮤직을 들려주는 가장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민주당/공화당에 부합하는 단어를 선정한 후 2005년부터 발행된 모든 신문에서(사설 제외) 각 단어가 언급된 횟수를 산정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진보, 워싱턴타임즈와 오클라호마일보는 보수, 뉴욕타임즈는 중도 진보,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도 보수 등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문사의 ‘성향’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조사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정은 신문사 소유주의 입김입니다. 특정 사주가 언론을 장악하면 다양한 견해를 보장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신문사 인수 합병에 규제를 두는 정책도 많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갠츠교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특정 사주가 보유한 여러 개의 신문이 같은 정치적 견해를 펼칠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소유주의 정치 기부금으로 가늠한 소유주의 정치적 성향과 보유 신문사의 성향이 같을 가능성도 낮았죠.
그렇다면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 신문을 받아보는 독자들의 구성이었습니다. 민주당을 찍는 유권자들이 많은 소위 블루 스테이트의 지역지는 진보 성향을 띄었으며, 반대로 공화당이 우세한 지역의 언론은 보수 성향을 띄었습니다. 그런 언론 때문에 지역 정치색이 결정된건 아니냐고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처럼 보이는 이 문제는 사실 언론이 종교까지 바꾸어놓지는 않을 거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색채가 강한 지역일수록 보수적인 주민이 많고 신문사도 보수적이었습니다. 신문사가 지역 주민의 종교까지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신문사가 독자에 영향을 끼쳤다기보다 독자가 신문사의 논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결국 신문 사업도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따라 소비자가 원하는 걸 제공하고 있다는 거죠.
이 현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시민들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줄어들고, 내 의견을 강화시키는 글에만 노출된다면 견해를 바꿀 일이 생기기나 할까요? (NYT)

http://newspeppermint.com/2014/05/11/media-slant/?utm_source=related_news&utm_medium=inner&utm_campaign=yarpp

2014년 9월 20일 토요일

앤서니 기든스,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

"국가 간 협력 없으면 위험 사회는 계속된다"

[英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 발간]

"위험은 개별 국가 수준 넘어 한·중·일도 협력해야 생존
스코틀랜드 독립해도 EU 견고… 시장·정부 균형이 제3의 길"


기든스는 지난해 낸 신작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Turbulent and Mighty Continent)'에서 "유럽연합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륙을 단결시켰다. 개별 회원국이 발휘하는 정치력 이상의 것을 국제정치에서 발휘할 수 있게 됐다"면서 "나는 확고한 유럽연합 지지자다. 더 큰 주권이 주는 혜택의 증거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어판(책과함께)은 이달 중 출간된다.

―1990년대 말 당신이 주창한 '제3의 길'은 영국 블레어 정부, 미국 클린턴 정부 등에 영향을 줬다. 지금도 유효한가.

"내가 주장한 '제3의 길'은 세계의 정당들이 제도화한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정당과 미디어에서 사용한 제3의 길 개념은 부드러운 대처리즘의 한 형태였다. 반면 내가 주장한 제3의 길은 전후 세계 정치철학을 지배한 두 이념, 즉 자유시장 근본주의(대처리즘)와 국가지배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중도 좌파 정치철학이다. 그 핵심은 시장·정부·시민사회라는 세 사회제도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임무는 더 중요하다. 시장을 규제하지 않으면 부(富)와 소득의 정당한 분배를 이룰 수 없다. 불평등은 한 국가 수준에서 교정할 수 없다.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정치 혐오도 유발한다고 했는데.

"'제3의 길'을 썼을 때인 1998년에는 인터넷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십억 인구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이 이끄는 변화는 인류사에 전례가 없는 것으로 향후 어디로 갈지 알기 어렵다. 명확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수평적이고 지속적인 소통이 전통적 정치의 속성인 위계 구조, 몇 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단속성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전자 참여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확산은 다양한 형태의 적대감, 분열과 증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첨단 기술이 가장 퇴행적이고 폭력적인 정치철학과 결합하는 것이다. 중동의 IS(이슬람국가)가 극명한 사례다."


―한국·중국·일본은 역사 문제와 영토 분쟁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동아시아 통합이 가능할까.

"동아시아의 개별 국가들은 기회를 증진하고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협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EU를 그대로 복제하는 방식의 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개별 국가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거의 없다. 미국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국민국가는 큰 문제를 풀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했는데 정곡을 찌른 말이다."

2014년 9월 14일 일요일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

http://cafe.naver.com/ccejoda/3397

시민사회와 개발 NGO에 관란 연구 초록입니다.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한성대 교양학부)


  1.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civil anthropology)은 인류학과 발전의 관계와 같이 또 하나의 ‘사악한 쌍둥이’(evil twin) 관계에 있다. 인류학과 시민사회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동시에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서구 중심적이고 규범적인 슬로건으로서,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화, 민주화, 신사회 운동 등과 관련하여 실천적이고 이념적인 수준에서 사회 지향의 모델로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에, 인류학이란 학문은 보편주의적 시민사회 개념을 수용하고 적용하기보다는 이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시민사회 개념을 해체하고 경험적 수준에서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서구 모델에 도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Hearn(2001)의 주장에서와 같이 인류학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항상 시민사회를 전공하여 왔다. 시민사회는 인류학의 떠오르는 새로운 연구분야와 주제가 아니다. 전통적 인류학의 연구대상인 마을, 이웃관계, 빈민가와 농촌조직, 교회, 조합, 사회운동집단, 공장, 시장, 병원.... 등의 모든 공사 영역이 광의의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이야말로 사회조직, 관료제, 정책과정, 사회운동 등의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찾아내고 그 속성을 심층 기술할 수 있다. 광의의 시민사회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인류학은 국가가 어떻게 ‘시민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를 밝힐 수 있으며, 이러한 시민화 프로젝트가 문명화, 식민주의, 근대화, 발전과 진화주의라는 거대한 지식체계와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해명할 수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전통적인 인류학적 연구 대상인 ‘경계지워진 공동체’나 ‘문화’들이 국가와 시장간의 권력 관계에서 어떻게 규정되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인류학의 분과이고 연구방법론이다. 즉,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새로운 연구대상과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인류학적 연구대상, 특히 정치인류학적 연구 대상들이 국가-시장관계, 지방-세계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비판적 연구방법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적으로나 한국사회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NGO들은 전통적인 사회조직과 관계망, 가치체계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는 조직유형으로서 사회 변화의 추동력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유용한 연구 대상이 된다.

  2. 초국가 시대의 INGO와 NGOgraphy

  NGO 중에서도 국제 NGO, 개발 NGO 혹은 국제개발 NGO 라고 부르는 국제비정부기구와 단체(International NGO; INGO)1)들은 초국가 시대의 지식과 정보 네트웍을 형성하는 핵심 매개체이다. 세계와 지역(global/local)을 매개하는 통로이고, 초국가 시대의 집단적 행위자로서 INGO는 시민사회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류학적 연구 대상이며 새로운 필드(field)이다. 때문에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INGO들에 관한 NGO 문화지(NGOgraphy)들이 출간되고 있다(Fox 1998; Crewe and Harrison 1998; Hulme and Edwards eds). 일부 학자(Markowitz 2001)들은 이러한 연구방법을 상층연구나 하층연구와 대비하여 전반연구(studying up and over) 또는 관통연구(studying through)라고 부르며, 프로젝트를 추적하는(following project) 방식의 다지역 문화지(multi-sited ethnography) 방법론이 유용하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초국가 시대의 INGO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첫째, INGO는 세계적 담론 형성과 문화창조자로서 기능한다(김영수 2002). INGO는 특정한 제도의 강제적 확산이나, 모방, 규범적 압력을 통해 특정의 제도와 담론을 확산해가는 통로이자 매개자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GS) 논의와 개념들, 시민사회 뿐 아니라 정부와 시장 영역에서도 보편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책과 개념들(거버넌스, 투명성, 효율성, 신뢰, 사회자본, 파트너쉽, 오너쉽, 지속가능발전, 유연성...)은 국제정부간기구(IGO) 뿐 아니라 INGO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민들에게 확산되고 담론화된다. 그러므로 INGO는 세계화 정책의 담론확산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고 매개자이다. INGO는 세계화의 행위주체로서 정부, 기업 및 정부간 기구들과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특수한 지식과 권력관계를 재창조한다.
  둘째, INGO는 지역 경험을 토대로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 이념과 대안 담론을 만드는 지역-세계의 매개 조직이다. INGO는 적어도 3개국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NGO들과 마찬가지로 INGO도 지역사회의 경험과 인적자원을 그 기반으로 한다. 이미 씨에틀에서의 WTO에 대한 저항운동과 코펜하겐에서의 사회개발정상회의, 요하네스버그의 지속가능세계정상회의(WSSD) 등에서 INGO들의 저항과 대안 담론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 바 있으며, 선진국 INGO와 개발도상국 INGO들은 지역사회 경험을 토대로 각각 상이한 발전 이념을 제안하고 있다. INGO들의 조직활동과 이념은 지역지식과 세계화 전략간의 상호 모순적이며 이질적인 담론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장을 제공한다.
  또한, INGO는 대표적인 이념경관(ideoscapes)으로서 정보와 지식 및 가치관들이 교류되고 넘나드는 공간이다. INGO를 통해 인력, 기술, 물자, 재정, 미디어들이 교류될 뿐 아니라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이 INGO 활동을 통해 교환되고 재생산된다. 특히, INGO는 발전과 저발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남과 북, 국가사회와 시민사회라는 대립적이고 호환 불가능한 두 세계가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INGO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세계화와 국가전략 및 통치수단 연구,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과 대안 담론 및 지역과 세계간의 상이한 지식체계 연구,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의 교류와 재생산 과정을 연구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며, 초국가 시대의 새로운 인류학적 필드와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3. 시민사회인류학과 인류학적 시민사회론의 가능성

  한국에서의 시민사회 연구에는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는 시민사회에 대한 이념 논쟁과 현실분석의 괴리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사회주의적 시민사회론의 비판과 반비판과정을 통해 시민사회를 하나의 운동 지향적 이념으로 형성해나가고 있으나 정작 시민사회운동의 현실태에 관한 분석은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둘째는 시민사회 개념이 지니는 서구의 발전론적이고 진화론적인 함축이 거의 여과되지 않고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마치 문명전환적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것과 같이 신비화되어 있다. 반면에 실재로 시민사회가 어떠한 양태로 존재하고 조직원리와 특성, 가치관과 신념체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파편적인 수준이다(연고주의,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 셋째는 지나치게 규범적인 논의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사회자본, 신뢰, 거버넌스, 파트너쉽, 성찰적 근대성과 성찰적 자본, 세계시민 등에 관한 논의들은 얼마나 시민사회 논쟁이 규범적이고 개념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그러한 지적 구성물들이 한국사회의 조직원리나 문화적 정체성과 특수성을 얼마나 올바로 해석해내고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주는지에 대하여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은 문제중심의 인류학, 이슈중심의 인류학,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인류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민사회인류학은 한국사회의 문제와 이슈중심의 실천적 인류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학은 개발, 환경, 인권, 분쟁, 편견, 허위의식과 지배, 신화와 상징, 인종과 성, 세대와 지역차별, 문화자본, 공동체와 규범, 관용과 신뢰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경험적으로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라는 이상과 반국가, 반시장, 반서구 중심의 사상을 암묵적으로 실천하여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인류학은 본질적으로 문화비평적인 학문이다. ‘문화비평으로서의 인류학의 귀환’이라고 적시하지 않더라도 인류학은 시민사회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와 이슈, 비젼과 규범, 슬로건과 현실사이에서 다른 학문분과에서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비교문화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처음부터 내세워 문화적 환원주의나 무모한 총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현실적 주체들과 요소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현실 분석을 통해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시민사회 인류학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 분리되어 연구되어 왔던 가족, 종족, 생계와 기술, 신념체계와 도덕, 지역정치가 ‘시민사회’를 통해 비로소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통합적으로 위치 지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적 연구란 부분들에 대한 의미 짓기 작업이며, 인류학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을 통해 ‘복합총체’를 보여주고 전체에서 의미 지워진 부분들의 실천이 가능하도록 기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실천적이고 정책 함의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발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학은 학적, 현실 정치적 담론 경쟁을 통한 권위의 확보뿐 아니라 대중적 지지기반의 확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시민사회인류학은 그 동안 국내에서 연구되어 왔던 사회운동관점의 시민사회론, 규범적인 시민사회론, NGO 조직관리론 등이 한국정치의 ‘전통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왔던 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를 시장과 법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보편주의 이상과 한국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상대주의의 양극단에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현실적이고 다원적인 모델을 구축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김영수, 2002. 「세계 사회의 거버넌스 형성과 국제 NGO의 역할: 세계담론의 형성 주체와          문화창조자로서의 INGO」, 2002년도 한국NGO 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자료『NGO          의 활동현황과 발전과제』
Crewe, Emma and Elizabeth Harrison, 1998. Whose Development? : An Ethnography of          Aid, London: Zed Books.
Fox, Diana Joyce 1998. An Ethnography of Four Non-Governmental Development               Organizations, The Edwin Mellen Press.
Hann, Chris and Elizabeth Dunn eds. 1996. Civil Society : Challenging Western                 Models, London: Routledge.
Hearn, Jonathan 2001. "Taking Liberties : Contesting Visions of the Civil Society                Project",Critique of Anthropology 21(4): 339-60
Hulme, David and Michael Edwards eds. 1997. NGOs, States and Donors: Too Close for          Comfort?, New York: St. Martin's Press.
Markowitz, Lisa  2001. "Finding the Field: Notes on the Etnography of NGOs",                  Human Organization 60(1):40-6

시민사회인류학의 가능성 / 시민사회와 문화


시민사회인류학의 가능성


http://www.hansung.ac.kr/web/mana/509641?p_p_id=EXT_BBS&p_p_lifecycle=0&p_p_state=normal&p_p_mode=view&p_p_col_id=column-1&p_p_col_count=1&_EXT_BBS_struts_action=%2Fext%2Fbbs%2Fview_message&_EXT_BBS_sCategory=&_EXT_BBS_sKeyType=&_EXT_BBS_sKeyword=&_EXT_BBS_curPage=1&_EXT_BBS_messageId=275759


1. 인류학과 시민사회 - 연구성과와 동향


    광의의 시민사회란 국가나 시장을 제외한 사회조직과 자발적 결사체, 혹은 개인과 국가를 매개하는 모든 사회를 지칭한다. 시민사회는 최근에 NGO나 시민사회운동 단체들과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협의의 개념이다. 그러면 광의의  개념으로 볼 때, 시민사회란 인류학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가? 전통적인 인류학의 연구 대상은 시민사회와 다른 어떤 것인가? 아니면 시민사회가 바로 전통적 인류학의 연구 대상과 동일한 것인가? 자본주의가 발아되지 않았거나 세계자본주의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했던 과거의 전통사회 혹은 비서구사회에는 시민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Ernst Gellner가 주장하듯이 아랍사회는 시민사회가 부재한 사회인가? 아프리카는 시민사회를 결핍한 사회인가? 남태평양의 쿨라제도나 화물숭배 의례집단은 시민사회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의 동학이나 향약, 계나 두레와 같은 전통적 조직들은 시민사회가 아닌가? 동남아시아의 승가 sangha 조직과 같은 것은 시민사회와 다른 것인가? 또한 과거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시민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북한에는 시민사회가 없는가? 등의 계속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Hann(1996)은 시민사회 개념이 극히 자민족중심주의적이고 모순적이기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이 개념을 무시하여 왔다고 말한다. 그는 시민사회가 서구의 역사적 조건에서 하나의 이념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오늘날 다른 사회에 복사할 수 없는 비현실적 개념이라고 본다. Seligman(1992)에 의하면 시민사회 개념은 세 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첫때는 슬로건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으로서 이는 국가에 대항하는 '마술'(Steven Sampson)과 같은 것이고, '빛나는 상징'(Ernst Gellner)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사회과학적으로 분석적이고 실증적인 용법으로서 경험적 연구에 의해 시민사회 개념이 밝혀질 수 있다는 입장인데, 이에 반해 Kumar와 같은 학자는 시민사회가 매력적인 용어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외양만 그럴 듯한 무모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용법은 바람직한 사회질서를 표현하는 규범적 개념으로서 '근대성의 자기 이미지'(Keith Tester)라고 시민사회의 규범성을 강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Hann은 지금까지의 시민사회 논쟁이 지나치게 협의의 개념인 서구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모델에 한정되어 왔다고 비판하고, 시민사회 연구는 다른 학문분과에서 간과해 온 광범한 비공식적인 대인관계와 관행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사회 논쟁은 근대성, 개인주의, 다원주의, 공사 영역의 경계등의 논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가지 인류학적인 경험적 사례연구들을 통해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사이에서 시민사회가 어떠한 의미로 나타나고 있는가에 대한 정치인류학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인류학자들은 권력의 도덕적 측면과 현대사회의 결속과 사회질서를 연구하는데 기여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사례연구로 편집한 논문들은 유타주 몰몬교에서의 돈과 도덕성, 시민사회 모델에 관한 사례, 전후 일본애서의 시민 만들기, 중국 농촌의 공동체적 가치와 국가, 시민사회의 관계, 요르단과 시리아 등 아랍사회의 시민사회, 폴란드에서의 시민사회의 의미 변화 등이다.

    지난 5-6년 동안에 인류학자들이 편집한 시민사회에 관한 책은 세 가지로 대표된다. Hann and Dunn(1996)은 시민사회 개념이 극히 자민족중심적이고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그람시를 비판하는 여러 논문들을 통해, 특히 구 동구권 사회에서 자아와 사회를 매개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제도들을 연구하고 있다. Comaroff(1999)의 책은 '시카고 바로크'로 불릴 만큼 화려하고 강렬한 문체인데, 이들은 시민사회 개념에 일관성과 특이성이 없다는 것은 시민사회 개념의 난잡성, 다의성과 변화무쌍한 상충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Clayton(1996)은 시민사회가 민주사회를 위한 토대로서 정치학 이론사로부터 재발견된 개념임을 언급하고 있다.

    Hearn(2001)에 의하면 인류학자들은 시민사회 개념을 어떤 사회조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기보다는 이 개념의 상징적이고 담론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시민사회는 개인과 집단들이 국가 통제의 외부에서 사적이고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족과 시장, 주체와 규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구분 등에 있어서 개념적 혼란이 있다. Hegel은 가족과 가구와 같은 가사부문은 시민사회에서 배제하였고, Gellner는 '왕과 사촌'의 전제정치에 저항하는 방식으로서 시민사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국가 뿐 아니라 친족의 지배를 막는데도 시민사회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한편, 헤겔과 맑스에게 시장은 시민사회에 가장 중요한(시민사회를 규정하는) 것인데 반해 Cohen과 Arato등은 국가-시장-시민사회의 삼분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시민사회는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분화된 비계급적, 자발적 집단행동의 형태를 의미한다. 한편 주체의 문제에 있어서도 시민사회는 사적인 선과 공공선의 종합, 개인과 사회가 절실히 요구하는 것의 종합이라고 정의되고 사회질서의 이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과 친족이 사적인 영역인가의 문제가 있으며, Seligman과 같이 사적인 개인들이 공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시민사회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민사회 논쟁에서 인류학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Hearn의 주장과 같이 "어떤 의미에서 인류학자들은 항상 '시민사회'를 전공하여 왔다". 전통적인 인류학의 현장연구 대상인 마을, 이웃, 빈민가, 농가들 뿐 아니라 인류학자들이 자주 연구하고 있는 교회, 가구, 조합, NGO, 선거운동집단, 병원, 공장, 가내공업, 시장 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사회와 불가분 연관되어 있으며, 인류학자들은 사회조직, 관료제, 정책과정, 사회운동 등의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산지대 씨족집단과 같이 전시 형태의 사회조직도 국가밖에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인류학자에게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분법보다는 Schneider와 같이 국가-시민사회(법치영역)-무법사회로 구분하는 것도 타당하다. 
    그는 시민사회에서는 계급적 위계에서 중간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간계급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인종, 종족, 종교, 성에 의해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집단들이 법을 통해 국가로부터 시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점차 이들 집단의 사회적 동원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시민사회 사례는 시민사회가 국가에 대한 제도적 통로 역할을 통해 사회민주주의적인 케인즈적 공감대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시민사회는 아래로부터의 합법적 권력의 진정한 중심을 의미하기도 하며, 막강한 세계적 이해집단에 의해 주도된 이념적 의제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권력을 위와 아래의 양극단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위계적으로 계층화된 복잡한 권력체계에서 중간계급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라틴 아메리카와 같은 권위주의적 국가체계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와 중간계급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대중적 동원을 위해 활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시민사회 논의에서는 1960년대 이후 1989년에 이르기까지의 특정 세대집단과 신계급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문가, 테크노크라트, 경영자들로 구성된 신계급과 베트남 전쟁 이후 신세대의 부상은 시민사회에서의 지적자본과 문화자본의 중요성을 확산시켰으며, 신사회운동과 정체성의 정치가 대두되었다. 한편, 역사적으로 시민사회는 개혁과 시민성, 구원, 문명화과정 등과 같은 도덕적 비젼을 함축하며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나 '민족을 깨우는' 의미를 지닌다. 마치 시민사회라는 종교와도 같으며 성스러움을 지니기도 한다. 시민성은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구원의 메시지를 지니고 시민사회는 구원자이다. 시민사회의 '시민화' 작업은 인류학에서의 오래된 고민인 문명과, 발전, 진보의 개념에 대한 논의를 다시 제기한다. 시민사회와 문명의 문제는 19세기의 억측적인 진화론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민사회 개념에는 사적 소유권과 국가, 문명의 발전과정에 대한 영미의 진화론적 함의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Doane(2001)의 사례연구는 멕시코 옥사카주, 치말라파스에서의 생태보전 시민사회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국가, 국제원조기관, 지방 NGO 및 다양한 행위주체들간의 협력과 견제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하여 Doane은 담론적 수준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에 대항하는 민주화와 사유화의 이념을 나타내지만, 현실적 분석 수준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경쟁적으로 NGO 레토릭을 사용함으로써 국가-시민사회의 경계가 중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담론으로서 시민사회는 그 자체로서 지방을 옹호하는 낭만적인 프로젝트인 반면에 근대적 시민권의 개념이 파생되는 보편주의와 계몽적 비젼을 나타내기도 하는 역설을 함축한다. 흔히 시민사회는 특정 지방의 '민초'나 'NGO섹타'와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지방에서의 프로젝트는 외부의 재원과 전문가들에 의해 규정되고 수호된다. 담론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에는 보편적 권리와 지방의 토착적 정체성과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시민권간의 대립이 내재해 있다. '오랜 전통'이라고 생각되는 지방의 정체성은 각 지방 수준에서 매우 경쟁적이며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구성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1990년대에 멕시코는 구조조정에 반대하여 좌파 운동가들은 시민사회를 국가에 대항하는 주민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시민사회는 권력을 드러내는 국가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민중' 이라는 말과 같이). 멕시코에서의 시민사회는 1968년 집권당 PRI의 통제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조직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로 집권당의 조직으로 통합되었던 학생, 노동자 조직은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직으로 분화되었으며, 1970년대의 오일파동과 1982년 외환위기 및 IMF 구조조정 이후 멕시코는 더 이상 사회적 프로그램을 지닌 법인국가 corporate state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신사회운동과 NGO 섹타들이  확산되었으며 국가의 공백을 채웠다. 멕시코의 고객주의 clientalism와 파벌 흡수정치 cooptation는 국가와 정당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으며, 사회운동이 기존의 정당정치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민주적 변혁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멕시코는 1992년 헌법 개정으로 농업개혁을 마무리하고 1994년부터 NAFTA 체계와 자유시장 정책이 수행되었다. 이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탈냉전 이후 최초의 혁명적 얼굴을 한 자파티스타 무장 게릴라 운동이 발발하였다. 자파티스타와 치말라파스는 공히 토지, 자율, 인권과 같은 이슈를 들고 나왔으며, 정글에서의 회의와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 시민사회 담론을 매개로 하고 있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치말라파스는 무장하지 않았고 NGO에 의해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자파티스타 운동과는 상이하다.
    이 논문에서는 1996년 10월에 열린 '치마팔라스 산림에 대한 지역공동체와 시민사회 포럼'(Foro) 행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담론들을 분석함으로써, NGO 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다른 행위주체들이 시민사회를 경쟁적으로 전유함으로써 합법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치말라파스 산림과 관련된 주요 주체들은 정부, 시민사회, 지역공동체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정부이고 시민사회이고 공동체인가? 그리고 무엇이 '심각한 생태적, 사회적 문제'인가에 대한 담론은 매우 중첩되어 나타나며 각 주체들은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
    치말라파스 산림 지역은 매우 낙후되어 빈곤하고 도로가 없고 식수나 전기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도 공급되고 있지 않은 지역이며 인근 지역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이주하여 온 외부인들은 벌채, 마리화나 재배, 목축 등을 일삼고 있어 산림파괴가 심각한 지역이다. 치말라파스의 가장 유력한 환경 NGO인 MPS는 캄페시노 생태보호지구 사업을 계획하고 WWF와 USAID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사업을 수행하고자 하며, 이들의 계획은 국립공원계획이나 생물환경보존지구 계획과는 상이하여, 치말라파스 산림을 주민들이 통제하고 관리하여 40여개의 마을이 하나의 공동 자산을 이루어 토지경계 분쟁과 토지이용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반면에 지방정부는 여러 기관을 통해 이 지역을 플랜테이션 영농과 임업을 통해 개발하고자 하였다. 가난한 지역 주민들은 NGO와 연합하였으나 지방정부는 MPS의 생태보호 계획을 거부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자 하였다. 주민들은 벌채권을 가질 수 없었고 일상적인 생계농업도 지속할 수 없게 되어 시민사회가 제시하는 대안과 자율, 생태의 비젼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 연방정부의 환경관련 정부기관과 대학의 연구소 및 NGO들간에는 인적유대와 정보 교류 및 협력이 지속되었으며, 정부기관의 전문가들은 이전에 환경운동 연합의 회원으로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캄페시노 MPS 구성원들 조차도 이전에 정부 집권당이 지원하는 조직에 몸담았었다. MPS에 동정적이었던 치말라파스 지방정부는 1995년에 MPS 사업에 완전히 적대적인 간부들로 교체되었으며(지방 선거에서 집권당은 주민들에게 200페소씩 주고 표를 매수하였음), 결국 MPS는 치말라파스에서 축출되었고, 다시 돌아오면 교수형에 처한다고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1996년부터 97년의 현장연구 동안에 MPS와 지방정부, 정부기관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어 서로 섞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일체 협상도 없었고 정부 관료들은 MPS를 '성인'인체 하는 사람들로 비아냥거렸으며 겉은 녹색인데 속은 빨갱이인 '수박'들이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그들은 치말라파스 문제를 팔아 국제원조자금을 타먹는 사람들이라고 했으며, 게릴라들과 연계한 극단적 편향주의자들이라고 했다.
    문제는 정부나 NGO 모두 지역 주민들로부터 합법성을 부여받아야 했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를 상상하고 창조하고 재현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포럼 행사의 초청장에 나타난 문구들은 15개의 상이한 종족집단들의 이질적 정체성 보다는 공동의 지역정체성과 소속감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역주민의 자율과 토지환경의 공동 소유권이 강조한다. NGO들은 '정치는 더럽고 공동체는 깨끗하다'고 말하며 지역사회 공동의 도덕적 공동체가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지방정부 관료들이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믿을 수 없으며 문명화되지 않은 무례한 성차별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였다. 정당은 모두 부패한 파벌주의자들이라고 했다. 반면에 지역의 주민들은 국가와 정부, 정당의 권력과 달리 여성, 어린이, 노인, 동물들의 이미지로 표현되며 천진난만한 사람들과 취약하고 낙후한 장소들의 연합으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양극단에서 시민사회는 양자를 중개하는 브로커 역할을 한다. 탈정치의 자기의식을 지닌 NGO의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지방의 정치적 주체들도 시민사회에 스스로를 결부시키고, 어떤 '전통적인' 공동체 조직 양식에 근거한 미래의 자율적 이상을 시민사회를 통해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 논문에서는 포럼 행사의 초청장 문구와 한 일간지에 게재된 포럼에 대한 비난의 글을 병치시키고 있다. 행사 이틀전에 발표된 이 신문 기고문에서는 '사이비 생태주의자 pseudo ecologists', 분파주의자, 탐욕스러운 외부인들의 개입, 치마 Chima 사람들을 팔아먹는 자들과 같은 표현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방정부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이들 가짜 생태주의자들을 축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포럼 행사도 사악한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포럼 행사에서 시민사회와 공동체의 담론은 더욱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포럼은 자파티스타의 이미지와 같이 산골 오지에서 임시 가옥를 짓고 개최되었다. 행사에서 MPS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캄페시노 주민들만이 회원 모자를 쓰고 발언하였다. 프로그램에서 발표자들은 지역 주민들의 과거와 현재의 투쟁,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토지에 대한 권리, '치마스'라는 지역 정체성으로 표현된 사람들에 관해 강조하였고 불법적인 외지인들의 개발행태와 살인 사건 등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화된 치말라파스와 남성 권력인 국가를 대비하였다. 그리고 NGOㅇ[ 대한 지역 주민의 환대를 거듭 강조함으로써 NGO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기도 하였다. 또한 슬라이드 쇼를 통해 녹색, 황색, 붉은 색으로 확연히 구분된 이 지역의 생태환경을 보여주었고, 한 마리의 재규어가 암놈의 짝을 찾지 못해 멸종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생태학적, 생물학적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 강력한 메타포를 구사하였다. 이들은 산림 파괴의 원인이 결국 불법 개발업자와 외부인들의 벌채,  목축 때문이라고 규정하였고, 화전농법과 같은 전통적인 생계경제활동은 산림파괴와 무관하며 지역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자율통치권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였다. 분과회의는 농업문제, 생태보전 문제, 자치, 자원의 소유와 관리, 인프라와 사회문제 등의 주제로 진행되었고이 지역의 빈곤과 정치적 무력감은 제국주의적인 정부와 외부의 개입 때문이라고 하였다. 글로발 문제를 지역정치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행사가 끝나고 '노인과 어린이들의 행진'을 통해 캄페시노 생테계획의 시행을 주장하였고 록 컨서트를 열어 치말라파스 문제를 알리기도 하였다.
    이 행사는 군인들의 정찰활동과 정부의 언론을 통한 비난 등으로 기대한 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며 WWF는 결국 MPS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였다. 중단이유는 정부와의 협상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MPS는 NAFTA와 대지주, 목축업자,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며, 오히려 지방정부는 시민사회의 전유를 통해 지역정치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중재사무소를 설치하여 다양한 주체들간의 협상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주민들은 MPS에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정부 관료들은 주장하며, 다양한 주체들간의 협력과 조정을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합법적인 중립적 조직은 바로 지방정부라고 말한다. 1997년 말에 현장을 떠날 때는 치말라파스에는 생태지구도 없고, 더 이상 협상도 없었다. 

    Fisher(1996)는 NGO운동을 신사회운동(NSM)과 세계화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실제로 NGO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밝혀줄 뿐 아니라 공동체의 개념, 지방과 초국적인 네트웤, 통제 기술, 지식인들의 정치적 역할 등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NGO를 하나의 유동적 조직으로 파악하면서 지방과 지역, 국가, 세계를 연계하는 지식과 정보들의 흐름이 NGO의 미시 정치와 현실을 규정한다고 설명한다. '특혜받은 어린이'로서의 NGO 이미지를 극복하고 국가 관료제와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운동으로서 NGO 연구를 위해 다지역 문화지와 같은 인류학적 연구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Markowitz(2001)는 세계화로 인한 초국적 과정은 인류학이 이러한 변화를 주민들이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규명하고 상호연관된 체계를 분석할 수 있는 보다 혁신적이고 다지역적인 연구 전략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게 NGO는 세계와 지방의 중개자이다. 그녀는 페루 NGO에서의 필드 경험을 토대로 현장연구 방법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세계와 지방을 매개시키는 고리로서의 NGO에 관한 문화지 작성은 상층연구와 마찬가지로 전반적 문제의식(studying up and over)을 필요로 하며 프로젝트를 추적(following project)하는 방법론이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Junghans(2001)는 헝가리에서의 시민사회 만들기 사례연구를 통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이후 시민사회 슬로간은 주민들이 스스로를 기업가 혹은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행위주체로서의 자아를 강요하게 하였다고 분석한다.

    Orvis(2001)는 아프리카에서 지난 10여 년간 가장 특징적이었던 시민사회 논쟁을 다루면서, 아프리카의 시민사회는 보다 광의로 이해되어야 하고 현실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민주적이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집단적 행동과 규범들을 다루어야 하며 고객관계(patron-client) 네트웍, 종족조직, 전통적 권위체계 등이 포괄적으로 아프리카의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시민사회를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자율적인 공식적, 비공식적인 집단 행동으로 이루어진 공적 영역'으로 규정할 때, 아프리카의 '전통적' 영역은 시민사회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논쟁의 핵심이다. 여기서 Orvis는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규범과는 다른 '도덕적 종족성'에 기초한 아프리카의 전통적 조직과 집단 행동들은 시민사회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시민사회는 일방적으로 민주화를 창출하는, 또는 내적으로 민주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국가의 권한을 잠재적으로 제한하는 자율적인 집단적 정치 활동을 통해 정치적 책임 요소와 정치참여 수단을 창출하는 것이다.
    Schneider(2001)은 이탈리아 시실리에서의 반마피아 운동에서 나타나는 '시민사회'의 의미와 담론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시민사회 담론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냉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사회운동에서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와 투명성, 인권을 요구하는 우산 역할을 하는 레토릭임을 설명한다. 또한 그는 시민사회가 공립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헤게모니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Medeiros(2001)는 볼리비아에서의 시민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대중참여법'을 다루면서, 이 법이 안데스 농민과 인디언들을 민족국가에 통합시키는 헤게모니 과정으로서 이들 농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대중참여법에 의한 '농촌시민사회' 구축은 지방 권력과 종족관계를 재정립하게 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Mindry(2001)은 남아공에서의 여성운동 NGO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해 초국적 NGO에 대한 제도적 문화지를 주창하고 있다. 남아공에서의 여성 NGO 연구는 역사적 격변기에 여성의 초국적 네트웍이 어떻게 조직화되는지를 보여주며, 민주국가가 새로운 성과 인종정치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Ong(1999)은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문명의 충돌과 같은 담론분석을 통해 인류학이 21세기에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적 차이의 해명, 지정학적 충돌과 글로발 문화현상에 대한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민권과 국가의 개인과 사회의 재생산문제를 인류학이 회피한다면 정치, 사회, 문화간의 내적 연관성을 결국 탐구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인류학자들은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넘어서 상이한 형태의 자유주의와 지구상에 존재한은 '대안적 근대성'을 찾는데 기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Fox(1998)는 Oxfam, Grassroots International, ACCION International, Cultural Survival 등 4개의 국제개발민간기구(INGO)에 관한 현장연구 문화지를 출판하였다. 그녀는 행동주의 인류학(anthropology of activism)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문화지는 인류학자 자신의 정치적 실천이면서 문화비평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조직에 대한 문화지를 통해 '정보제공자'가 아닌 '협력자'로서의 현장과 원주민의 개념, 서구에 대한 인류학(anthropoloze the West)(Rabinow), 발전의 문화적 연구와 발전 전문가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 조직 이데올로기, 대안적 발전과 담론으로서의 발전분석을 인류학자들이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 국내에서의 시민사회 연구

    한국에서의 시민사회 연구에는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는 시민사회에 대한 이념 논쟁과 현실분석의 괴리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사회주의적 시민사회론의 비판과 반비판과정을 통해 시민사회를 하나의 운동 지향적 이념으로 형성해나가고 있으나 정작 시민사회운동의 현실태에 관한 분석은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둘째는 시민사회 개념이 지니는 서구의 발전론적이고 진화론적인 함축이 거의 여과되지 않고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마치 문명전환적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것과 같이 신비화되어 있다. 반면에 실재로 시민사회가 어떠한 양태로 존재하고 조직원리와 특성, 가치관과 신념체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파편적인 수준이다(연고주의,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 셋째는 지나치게 규범적인 논의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사회자본, 신뢰, 거버넌스, 파트너쉽, 성찰적 근대성과 성찰적 자본, 세계시민 등에 관한 논의들은 얼마나 시민사회 논쟁이 규범적이고 개념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그러한 지적 구성물들이 한국사회의 조직원리나 문화적 정체성과 특수성을 얼마나 올바로 해석해내고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주는지에 대하여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3. '시민사회 인류학'의 가능성과 실천
  
    지난 한세기 동안 한국사회의 변화는 지구상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격한 것이었다. 한말 왕조의 붕괴와 혼란, 서세동점의 시기에 서양과 서학을 통한 문화충격과 식민지, 독립, 전쟁, 냉전과 좌우 대립, 빈곤과 개발독재, 학생운동과 민중민주화운동, IMF와 구조조정, 세계화, 시민운동...등 역사적 격변은 혼란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변동과정을 한국의 인류학은 아직 이슈화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격동과 주요한 사회문화적 이슈를 지나치거나 연구대상이 아니라고 외면하기까지 한다. 소위 제1세계 인류학의 수입과 번역 작업에도 아직 큰 성과를 보이지 못했지만, 제3세계의 문화론은 차치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도 인류학적인 담론으로 만들어 가고 있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점에서 '시민사회 인류학'은 문제중심의 인류학, 이슈중심의 인류학,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인류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민사회인류학은 한국사회의 문제와 이슈중심의 실천적 인류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학은 개발, 환경, 인권, 분쟁, 편견, 허위의식과 지배, 신화와 상징, 인종과 성, 세대와 지역차별, 문화자본, 공동체와 규범, 관용과 신뢰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경험적으로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라는 이상과 반국가, 반시장, 반서구 중심의 사상을 암묵적으로 실천하여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인류학은 본질적으로 문화비평적인 학문이다. '문화비평으로서의 인류학의 귀환'(Marcus)이라고 적시하지 않더라도 인류학은 시민사회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와 이슈, 비젼과 규범, 슬로건과 현실사이에서 다른 학문분과에서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비교문화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처음부터 내세워 문화적 환원주의나 무모한 총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현실적 주체들과 요소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현실 분석을 통해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시민사회 인류학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 분리되어 연구되어 왔던 가족, 종족, 생계와 기술, 신념체계와 도덕, 지역정치가 '시민사회'를 통해 비로서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통합적으로 위치지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적 연구란 부분들에 대한 의미짓기 작업이며, 인류학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을 통해 '복합총체'를 보여주고 전체에서 의미지워진 부분들의 실천이 가능하도록 기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실천적이고 정책 함의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발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학은 학적, 현실정치적 담론 경쟁을 통한 권위의 확보뿐 아니라 대중적 지지기반의 확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시민사회인류학은 그 동안 국내에서 연구되어 왔던 사회운동관점의 시민사회론, 규범적인 시민사회론, NGO 관리와 조직론 등이 한국정치의 '전통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왔던 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를 시장과 법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보편주의 이상과 한국과 아시아 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상대주의의 양극단에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현실적이고 다원적인 모델을 구축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http://www.hansung.ac.kr/web/mana/509641?p_p_id=EXT_BBS&p_p_lifecycle=0&p_p_state=normal&p_p_mode=view&p_p_col_id=column-1&p_p_col_count=1&_EXT_BBS_struts_action=%2Fext%2Fbbs%2Fview_message&_EXT_BBS_sCategory=&_EXT_BBS_sKeyType=&_EXT_BBS_sKeyword=&_EXT_BBS_curPage=1&_EXT_BBS_messageId=275760

시민사회와 문화

1. 시민사회란
  -어떤 것이 시민사회인가
   (노조/농협/빈민단체/교회/사찰/언론사/방송/의사회/변화사회/학교/조기축구회/동성애자회/부인회/상조회/계/..)
  -2분법론 :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립
  -3분법론 : 국가-시장(경제토대)-시민사회 /정치사회-경제사회-문화사회
    
2. 시민사회의 구분
 -협의/광의
 -시민운동적 / 사회서비스적 시민사회
 -즉자적/대자적 시민사회
 -귀속적/ 성찰적 시민사회
 -선진국/동유럽/신흥공업국/제3세계

3. 시민사회의 특성과 문화
 -자유로운 개인
 -결사의 자유와 참여(자원적 결사체)
 -다양성과 관용
 -경쟁
 -의사소통과 수평적 관계
 -공공선/공공영역(public sphere)/공공재
 -행위자 중심이론(의미, 가치, 담론, 자율성 중시)
 -비영리성
 -감시와 견제기능 
 -지적, 도덕적, 문화적 헤게모니가 중요(동의의 정치)
3. 시민주체 형성과 시민문화(civic culture)
 -유교적 가부장제는 자발적 사회성을 결여하는가?
 -사회자본(social capital)과 상징자본/ 문화자본
 -사생활과 국가의 개입(침뱉기, 경범죄, 종교자유-파룬공, 군대거부..) : 싱카폴 사례
 -좋은 정치와 지배구조(good governance)
 -권력과 돈의 지배에서 탈피할 수 있는가?
 -도덕적 사회와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 문화주체와 문화적 시민권
 -공공선과 참여민주주의
 -한국인의 일상문화(연고주의, 연줄, 준법정신, 질서의식, 토론문화..)
 -대안문화운동/비젼운동/이슈운동

4. 신세대 문화특성과 시민사회
 -탈가족화 현상
 -탈지역화/ 탈정치화/ 탈이념화 현상
 -문화산업 소비층
 -이동성과 동시성
 -세계시민교육과 다문화교육
 -다중정체성

5. 비교문화적 논쟁들
 -아프리카에는 시민사회가 없는가?
 -중국의 사대부적 공공영역(하버마스)과 시민사회
 -후쿠야마의 신뢰(trust)-수평적/수직적 신뢰 , 폐쇄적/개방적 신뢰
 -강한 국가, 약한 사회 - 약한 국가, 강한사회 - 강한국가, 강한사회
 -시민사회, 생활세계와 문화(영역인가 행위자인가)

유럽좌파는 왜 기회를 놓쳤나, 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 도널드 서순

등록 : 2014.08.24 20:16수정 : 2014.08.25 14:26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52543.html?recopick=5

툴바메뉴

<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

한 주를 여는 생각

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
도널드 서순 지음, 강주헌 등 옮김
황소걸음·전 2권 9만2000원
오늘날 좌파 정당의 무기력함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미를 제외하면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좌파 정당이 늘 무기력했던 건 아니다. 특히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집권 경험이 풍부하다. 오스트리아 좌파 정당은 1970년부터 89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정권을 잡았다. 독일과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같은 기간 동안 거의 절반가량을 집권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패망 뒤인 1990년대 후반에도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들은 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더구나 신자유주의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사망선고를 받은 지금 말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역사가 도널드 서순은 <사회주의 100년>에서 좌파 정당이 과거에 안주할 뿐 미래를 향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좌파의 부진이 (…) 더욱 의외인 이유는,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유럽인 절대다수(70% 이상)가 빈부 격차가 늘었고, 현재의 경제 제도가 부자에게 유리하며,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이용할 능력이 없는지, 의지가 없는지 모르겠으나 좌파의 전망은 암울하다.”
그리고 상상을 보탠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유례없는 호기를 활용해 유럽 대륙 차원에서 공동 정책을 개발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예컨대 그들이 공동으로 유럽연합(EU)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거나 재분배를 위한 재정 정책을 개발했다면, (…) 사회민주주의가 살아남아 번성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 그러나,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우리의 현실이라니.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자본주의가 강해진 건 사민주의 덕분이었다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국민국가’와 ‘복지국가’의 딜레마에 빠졌다. ‘자본주의 폐지’라는 목표는 버린 지 오래다. 이들은 완전히 실패한 것일까. 지은이는 하버마스의 말을 빌려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인간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1904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한 국제 사회주의자들. 앞줄 가운데가 러시아 대표 게오르기 플레하노프(13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세기 이후 카를 마르크스만큼 세계사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은 인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결과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명제 자체에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탁월한 자본주의 분석가인 것은 맞지만, 공산주의 이론가나 혁명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은 그가 주장한 대로 ‘과학’이었지만, 공산주의 사회의 필연적 도래를 예견한 대목에서는 ‘종교’에 가까웠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라는 비전을 던져놓았을 뿐 ‘어떻게’는 설명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설명하지 않은 ‘어떻게’의 두가지 길 중 하나가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이며, 다른 하나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폭력혁명 대신 ‘자본주의 고도화’를 택했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시작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에 좀더 충실한 선택이었다. 레닌의 실험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증명됐다. 그렇다면 서유럽의 길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 같은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개혁이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 폐지를 위해 싸웠지만
강한 자본주의를 만들고 만 아이러니
자본주의의 승리는 사실상
자본주의에 대한 규제의 승리였다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규제를 철폐한
후과는 2008년 금융위기로 나타났다
<유럽 문화사>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집트 출신의 역사가 도널드 서순은 1996년작 <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황소걸음 펴냄, 원제: One Hundred Years of Socialism)에서 서유럽의 실험에 대한 평가를 시도한다. 무려 1778쪽, 2권의 방대한 부피로 국내에 첫 출간 된 이 책에서 지은이는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딜레마를 집중 분석한다. 결론은 이들이 ‘국민국가’와 ‘복지국가’의 틀에 갇혀 기껏해야 ‘일국적 자본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적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딜레마는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 같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개혁이 사회의 평화와 소비재 시장을 확대해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 이들은 자신들의 개혁이 성공할수록 자본주의의 번영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자본주의의 뒤를 따라다니며, (드물지 않게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압제와 불의도 포함해서) 압제와 불의, 착취와 차별에 대항하는 수많은 투쟁에 불을 지피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덕분에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지만, 스스로 결점을 치유하고 되살아나는 ‘터미네이터’가 됐다.
자본주의 폐지를 위해 싸웠지만(적어도 1989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스톡홀름 선언문’ 이전까지는 그랬다) 더욱 강력한 자본주의를 만들고 만 아이러니! 그러나 인권을 개선하고 민주주의를 확대한 그들의 기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복지 제도 확립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을 뿐 아니라, 사형제도 폐지와 동성애 합법화, 낙태의 비범죄화를 위해 싸웠으며, 다른 어떤 정당보다 일관되게 투표권 확대와 여성의 권리 확장을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섰다.
지은이는 엄밀하게 말해서 더 강해진 자본주의는 ‘규제에 의해 더 강해진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그 규제가 주로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해 도입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19세기 사상가들은 크게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에 대해 기술했다. 완전한 실패작인 이런 자본주의는 국제적 전쟁, 권위주의 체제, 대량 실업 등 끔찍한 정치적 영향과 더불어 끊임없는 경제적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 자본주의의 승리는 사실상 자본주의에 대한 규제의 승리였다.”
최근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나타났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전세계는 “규제를 철폐하고,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고, 국유재산을 민영화하고, 보조금을 없”앴다. 그 결과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였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한 것은 우파 신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잠시 고개를 숙였을 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사회주의 100년>의 지은이 도널드 서순 <한겨레> 자료사진
이에 대해 지은이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과거에 머물러 새로운 시도를 게을리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유럽 전역에 효력을 미치는 ‘사회안전망’ 구축 같은 노력을 했다면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늘 해오던 방식으로 그 일을 했다. 일상의 정치에서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들과 선거를 고려해야 한다는 압력에 쫓겨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확실한 패배를 약속한다.”
도널드 서순의 잠언 같은 말은 마치 우리나라 야당들한테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들은) 무능하고 조직력 없는 과두제 지도부에 의해 운영되는 것으로 보였고, 그 지도부는 자신들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보통 사람들’의 대표와 거리가 멀었으며, 생경하고 낯선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 (…) 사회집단은 정권을 잡기 전에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 실제로 국가권력을 잡는 ‘순간’은 혁명 과정의 한순간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말해 잘못된 순간에 권력을 잡으면 장기적인 패배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