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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4일 일요일

지역문화와 국가의식 - 근대 광동문화 관의 형성,청메이바오

지역문화와 국가의식 근대 광동문화 관의 형성


청메이바오 지음 | 정진선, 최형섭 옮김 | 심산출판사 | 2014년 08월 25일 출간

목차

《추천의 글》
《목차》

해설: 근대 중국의 지식과 제도의 변화 / 7

제1장 프롤로그: 문화를 전시하다 / 39
문화의 전시 / 45
문화와 문인 / 55
‘천하’에서 ‘국가’로 / 64
‘국가’에서 ‘지방’으로 / 69
지방과 중앙 / 75
본서의 주제와 구성 / 86

제2장 영남지역의 중국화 과정 / 93
광동인의 범위 / 94
가르쳐 교화시키다 / 106
방언에서 종족으로 / 123
향토에서 국가로 / 161
소결: 문화―종족―국가 / 175

제3장 광동어로 창작하기 / 179
남쪽 오랑캐의 말에서 중원의 고음으로 / 180
구술에서 쓰기로 / 189
문인의 광동어 노래 부르기 / 200
월극의 특징 / 209
속어로 선교 활동을 하다 / 216
점차 규범이 되다 / 224
내 손은 내 입이 말하는 대로 쓴다 / 238
소결: 방언과 국어 / 246

제4장 영남 학술의 원류를 찾아서 / 249
영남 학술의 원류 / 250
학해당 내부 / 256
학해당 외부 / 269
학해당 이후 / 282
소결: 구문화에서 신문화로 / 311

제5장 민속에서 민족으로 / 315
중국에서의 민속학 / 317
광동에서의 민속학 / 321
학술과 정치 / 332
학자와 정계 인물 / 348
소결: 민족주의와 지방문화 / 368

제6장 구시대 사람이 편찬한 신시대의 지방지 / 371
『고요현지』의 편찬 / 374
용어와 내용 / 381
신구 교체기의 지방 지식인 / 390
지방지 속의 국가문화 / 394
지방의 이익과 민족의 의미 / 408
소결: 국민과 향인 / 417

제7장 에필로그: 문화 전시의 배후 / 419
문인의 위치 / 420
‘문화’란 무엇인가? / 428
‘광동문화’는 어디에 있을까? / 433
지역문화 연구에 대한 재검토 / 438

저자 후기 / 442
옮긴이의 말 / 447
참고 문헌 / 455
찾아보기 / 476

책 속으로

지식과 제도 체계의 전면적인 변화는 중국인의 사유와 행동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중국인이 과거를 대할 때에도 부지불식간에 현재의 사유 행동 방식으로 고찰하고 판단하게 한다. 만약 충분한 자각이 없다면 후대의 외재적인 척도를 가지고 과거를 평가하여, 전대 사람들의 사유와 행동의 본의와 진상을 살피거나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외래의 지식과 제도 체계가 유입되기 전에 중국인에게는 이미 고유의 사유와 행동 방식이 있었다. 그런데 변화가 일어난 후에 본래의 모습을 알려고 하면 오히려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된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무에서 유로 처음 생겨나서 발전·변화된 과정을 탐구하려면 먼저 본래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19쪽)

지식과 제도 변화의 커다란 배경은 동서 문명의 만남과 교류이다. 따라서 중국 고유의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서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하며, 일반적인 이해와 함께 그 당시로 되돌아가 각종 지식과 제도가 변화·발전한 연원과 맥락도 추적해야 한다. 그래야지 후대의 완정하게 체계화된 개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에 철학이 존재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근대 학자들이 벌였던 토론은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20쪽)

“현대의 의식적 체계를 가지고 고대의 단편적인 사상을 꿰맞추려고 하는 것이 현재 중국 사상사를 연구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폐단이다. 이런 견강부회는 사실 전혀 증명할 수 없는 대전제를 상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옛날 사람들의 사상이 모두 의식적이고 통일된 체계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상 발전의 과정을 통해 볼 때 그렇게 된 것은 실제로 매우 최근의 일이다. 원래의 단편적인 사상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사실 여러 가지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체계화라는 방법으로 고대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하면 할수록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다.”(張蔭麟의 인용, 20쪽)

일반적으로 개념은 대개 나중에 출현한다. 연구를 진행할 때 나중에 출현한 외래 개념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기는 어렵다. 근대를 거치면서 지식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이런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말을 이어 나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부득이한 상황에서 나중에 출현한 외래 개념을 사용하는 것과 모든 용어를 전부 받아들이거나, 혹은 용어가 규정하는 의미에 근거하여 온전히 사물을 파악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이들 개념이 본래의 의미와 모습을 제한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 법치 사회의 관점으로 청대의 법률과 그 실천을 고찰하여 사법과 행정을 분리한다면 이미 주제에서 멀리 벗어나게 되며, 억지로 형법과 민법을 구분한다면 더더욱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지게 된다. 사법적인 측면에서 고대 중국 사회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것은 실제와는 적잖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윤리 사회적인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 그것을 모두 법률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30쪽)

근대 중국의 지식과 제도 체계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은 더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청 시기, 특히 5·4 이후로는, 서구의 체계로 중국의 자료를 체계화하는 것이 주도적인 흐름이었다. 지금 사람들의 모든 지식은 대부분 이때 체계화된 것이다. 근대 학자들도 서학을 끌어다 억지로 꿰맞추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학자들은 더욱 외국을 모방하기를 좋아한다. 이는 학풍이 왕성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식의 구조가 서구화되었다는 것이 더 심층적인 원인이다. 외국의 학문이 현대 학술의 전반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중국의 학문도 장점은 드러내고 단점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주로 중국 내의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직접 연구 조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은 버려두고 남의 의견만을 따른다면, 장점을 발휘할 수도 없고 방법과 문제의식이 잘못되기 쉽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중국인들은 맹목적으로 구미의 뒤꽁무니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들의 학문을 더 잘 모방하면 할수록 중국의 역사 문화에서는 더 멀어지게 된다. 근본에서부터 철저히 개혁하여 중국 고유의 사유 행위를 파악할 방법을 하루빨리 찾지 못한다면,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어도 중국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외국에 의존하게 되어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당혹스런 상황이 출현할 수도 있다.(34쪽) 닫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2006년 싼롄서점(三聯書店)에서 출간된 『지역문화와 국가의식: 만청 이래 ‘광동문화’관의 형성(地域文化與國家認同: 晩淸以來‘廣東文化’觀的形成』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인 청메이바오(程美寶, 1968~)는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 중원대학(中文大學)을 졸업한 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중국 근대사가 전공으로 1997년부터 광주(廣州) 중산대학(中山大學)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은 ‘근대 중국의 지식 및 제도 변화 총서(近代中國的知識與制度轉型叢書)’ 중 첫 번째로 출간된 것이다. 총서 시리즈의 전체적인 구상과 기획 의도는 쌍빙(桑兵)의 ‘해설’에 비교적 상세히 밝혀져 있다. 총서에서 다루고자 하는 시기는 동서 문명의 충돌과 융합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근대’의 중국이다. 서구의 지식과 제도 체계가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중국 고유의 지식과 제도 체계는 어떠한 제약과 영향을 미쳤는가? 서구와는 다른 어떤 독특한 중국적 변형을 낳았고, 그것은 중국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처럼 서구 지식과 제도의 원래 모습을 이해하고,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과 중국 고유의 전통으로 인해 야기된 변화, 변화가 만들어 낸 발전 양상 등을 전반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전체적인 기획 의도이다. 그리고 이 야심 찬 거대한 프로젝트 이면에는 서구 중심의 학문 연구 방법과 시각에서 벗어나, 중국 학계 나름의 관점과 방법론을 찾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숨겨져 있다. 
이 책은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전반기 1백여 년 동안, 광동 문인들이 지방에 대한 관심과 국가의식의 이중주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히 논조를 조절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덧붙이고, 자신들이 동일시했던 지역문화를 정의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여기에서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누구에 의해 광동문화가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가에 대한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광동문화란 무엇인가?’에 답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지역문화가 연구가 아니다. 둘째, 이 책은 문헌 자료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관련 인물의 구체적인 활동에 입각하여 그들이 ‘광동문화’라고 하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순수한 ‘관념사’ 연구가 아니다. 셋째,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광동’은 개별적인 사례로, 만청 이래 중국의 지방 문화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분석틀을 제시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광동문화를 예로 들어 청 말 이래 중국의 지방문화가 어떤 권력들의 상호작용 하에 어떤 내용이 취사선택되어 지방문화를 정의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순수한 지방사 연구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지역문화 연구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론 및 분석틀과 함께 경계해야 할 점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거시적인 문제의식을 가지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에 따라 거시적인 관점을 연구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수준이 높은 독자들은 구체적인 서술 너머에 있는 각 사람의 ‘거시적인 틀’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총서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들의 이러한 대의에 대한 깨달음에는 차이가 있으며, 어쩌면 서로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독립적인 것이다. 독자가 그 가운데서 깨닫는 것도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니, 어떤 사람에게 고개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봉우리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처음 시작은 뒷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는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총서의 출판은 표본을 제공하기보다 길을 탐색하여 방향의 윤곽을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 동료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커다란 잠재적인 의미를 지닌 이 연구에 동참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연구 방향에 따라 각자 지혜와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구체적인 연구 성과도 낼 수 있고 연구 방법도 점차 완정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본 연구 계획이 완료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관련 연구가 끝났음을 뜻하지 않으며, 오히려 학자들에게 광활한 연구 영역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 즉, 이 총서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동료 학자들이 힘써 추구하는 또 다른 목표는 사유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사유 능력을 제고시키는 데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는 대략 1820년대부터 1940년대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광동문화’에 대한 서술 방식이나 틀이 1930, 40년대 전후에 확립되었다면, 그 형성 과정은 대략 1820, 3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제1장 ‘프롤로그: 문화를 전시하다’에서는 1940년 2월에 홍콩대학 펑핑산(馮平山) 도서관에서 열린 ‘광동문물전시회’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광동문화’의 기본적인 내용은 대략 20세기 전반기에 형성되었는데, 이 전시회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전시회에서 표현하고 있는 사실과 관념을 언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광동문화 관념이 구체적인 역사 과정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근대 광동문화 관념의 형성 과정을 서술하면서 문헌 기록에 나타난 서술 내용과 함께 관련된 역사 인물 간의 사승(師承)?지연(地緣) 등의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아울러 지역문화와 역사를 기술하고 정의하는 지식인의 지역적 정체성과 국가문화, 국가인식 간의 긴장과 변증법적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제2~4장에서는 주로 청대 도광(道光, 1821~1850) 연간에서부터 청 말 민국 초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2장 ‘영남지역의 중국화 과정’에서는 먼저 고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광동인’의 범위와 광동문화 서술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문화진화론과 문화전파론은 역대 지방역사 서술에서 중요한 해석 논리였다. 중원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영향으로 광동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점진적으로 문명화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이전 광동문화와 역사서술의 주도권은 광부인(廣府人)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객가인(客家人)의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서, 그들은 중원기원설(中原起源說)을 바탕으로 정통 한족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고, 광동인과 광동문화에 대한 정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청 말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학당(學堂)이 설치되었으며, 헌정(憲政)이 실시되고 의회 제도가 수립되었다.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지 대신에 향토지와 향토교과서의 편찬을 장려하였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지방 저작들을 통해서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관과 향토를 연결시키고자 시도하였다. 그들은 또한 자신이 동일시하는 지역문화와 족군(族群), 국가의식 간의 관계를 연계시키고자 하였고, 광동인과 광동문화, 나아가 국가관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제3장 ‘광동어로 창작하기’에서는 국가 관념이 방언의 발전과 지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하고 있다. 전통 시기 중국 정부는 방대한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지식인들의 국가에 대한 동질감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문언과 ‘관화(官話)’는 그런 역할을 하였다. 민국 시기에 이르러 그것은 백화와 국어로 대체되었다. 17~19세기 유럽에서는 민족국가의 출현과 함께 국어의 보급이 본격화되었고, 중국은 1920년대에 적극적으로 국어 보급운동을 추진하였다. 한편 방언의 상황을 살펴보면 광동의 지식인들은 광동어가 중원의 고음(古音)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문화 및 국가전통과의 연관성을 강조하였다. 청 말부터 민국 시기까지 광동어를 포함한 방언은 유신혁명의 상징으로 혁명가들도 방언을 빌어 국가 관념을 표현하였다. 또한 19세기 중엽 이후 광동인들이 상해, 홍콩, 동남아, 북미로 이주하여 광동어 문학 시장이 확대되면서 많은 광동어 문학 작품이 출현하였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오락, 선교, 부녀자와 아동 교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방언의 전복성은 새로운 국가 관념을 확립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지만, 결국 국가 관념은 방언의 발전을 억압하여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도록 하였다. 
제4장 ‘영남 학술의 원류를 찾아서’에서는 학해당(學海堂)을 중심으로 사회정치적 상황과 국가 관념의 변화가 광동의 학술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루고 있다. 1820년 양광총독(兩廣總督) 완원(阮元, 1764~1849)이 광주(廣州)에 학해당을 설치한 것은 광동의 학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도광(1821~1850) 이후 학해당은 광동의 학술 문화계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계(政界)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청 말 경학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과거제도와 관료 체계가 와해되고, 민족주의가 보급되어 반만(反滿) 정서가 확산되면서, 확고하던 학해당의 위치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청 정부의 실각과 함께 관방적 색채를 띠고 있던 학해당은 보수의 상징이 되었다. 동치(同治, 1856~1874) 연간 진례(陳澧, 1810~1882)와 명성을 나란히 하던 주차기(朱次琦, 1807~1881)는 학해당 학장에 취임하지 않으려 했다는 과거의 행적 덕분에 반만 인사들에게 광동 학술계의 고결한 선비로 인식되었다. 신해혁명 후 학해당의 불씨는 식민지 홍콩에서 다시 타오르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만청 유로(遺老)’들이 있었다. 정치 무대에서 밀려난 만청 유로들은 전통 문화를 복원하는 것으로 구시대의 유물을 부활시키고자 하였다. 1903년 학해당은 폐쇄되었지만, 학해당 학장에 의해서 편찬된 광동 학술사와 제자?후손들이 편찬한 문집 총서와 열전(列傳) 등으로 인해 학해당의 영향력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제5장과 제6장에서는 주로 1920~1940년대를 다루고 있다. 제5장 ‘민속에서 민족으로’에서는 민속학 운동에 내재되어 있는 지역?민중에 대한 관심과 국가의식 간의 관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5·4’ 운동의 세례를 받은 새로운 시대의 지식인들은 중국에 대한 개혁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였고, 유가 예교와 봉건 미신을 중국의 진보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간주하였다. 문언은 백화로 대체되었고, 서구의 민주주의와 과학은 이 시기 지식인들의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되었다. 이들은 ‘민중’이란 개념을 만들어 내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 향촌 생활을 통해 영감을 얻고 백화문 창작을 풍부히 하고자 하였다. 1920년대 그런 관심이 대학 연구의 범주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그 일부가 ‘민속학’으로 발전하였다. 북경에서 시작된 민속 연구는 민간문학을 수집하는 것에서 점차 민속 조사로 확대되었다. 광동에서의 민속학 연구는 1927~1933년 구제강(顧?剛, 1893~1980), 룽자오쭈(容肇祖, 1897~1994), 중징원(鍾敬文, 1903~2002) 등에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 시기 민속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지식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농촌의 민중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식의 수립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과학’과 ‘진보’의 이미지를 자처하며, 민간 풍속과 문학의 ‘봉건 미신’적인 요소에 대해 오히려 혐오감을 드러냈다. 여기에서 저자는 특히 객가학(客家學)을 창시한 뤄상린(羅香林, 1906~1978)이 새로운 정치적 세력의 비호 속에서 객가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강화시켜 나가고 있는지를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제6장 ‘구시대 사람이 편찬한 새 시대의 지방지’에서는 민국 시기에 편찬된 『고요현지(高要縣志)』를 대상으로 새롭게 형성된 국가의식과 지방문화 관념이 지방지 편찬과 내용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중국은 역대로 지방지를 편찬하는 전통이 있었고, 청대부터는 지방관의 주도 하에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문인들을 모아 집단적으로 기술하였다. 지방지는 지방문화 관념과 국가의식이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사회·정치 세력 간의 경쟁과 대화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국 이후에도 국민당 정부는 지방지편찬관이나 문헌위원회를 두어 지방지 편찬을 적극 장려하였다. 민국 시기에 반포된 지방지 편찬조례는 새로운 국가 체제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지방지 체계와 내용에 어떻게 반영해야 되는지 규정하고 있다. 1948년에 편찬된 『고요현지』는 내용이 상세하고 체제가 완정한 민국 시기 전형적인 지방지이다. 이 지방지 편찬자들은 모두 청조 때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면서, 민국 시기에 새롭게 관료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지방지에 ‘현대’, ‘민족’, ‘국민’ 의식을 부여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의 풍속과 습관이 미신적이고 낙후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미신적이고 낙후된’ 풍속이 바로 국민의 약점이자, 국가의 진보를 가로막는 원인이라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모어(母語)와 일상어가 모두 광동어임에도 월곡(?曲)과 월극(?劇)을 폄하하고 ‘국악(國樂)’을 제창하였다. 지방의 지식인들은 지방의 풍속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새로운 중국문화를 건설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제7장 ‘에필로그: 문화 전시의 배후’는 결론 부분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중국의 근대 지방 문화관의 형성과 관련된 지방?국가?문인?문화 등 몇 가지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또한 이후 중국의 지역문화 연구를 진행할 때 주의해야 될 점들을 언급하고 있다.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국민사회국가(État national-social)

2011년 11월 통권 007호 | 사람과 글 人ㆍ文
[제7회] 국민사회국가(État national-social)
진태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피노자를 비롯한 근대 철학에 관심이 있으며,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저서에 『서양근대철학의 열 가지 쟁점』(공저), 『서양근대윤리학』(공저) 등이 있다.


   국민사회국가(État national-social)

   국민사회국가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에티엔 발리바르가 최근 저작에서 근대 국가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매뉴월 월러스틴과 공동으로 저술한 『인종, 국민, 계급: 애매한 정체성들』(Race, nation, classe: Les Identité ambiguës, Éditions La Découverte, 1988; 진태원 외 옮김, 그린비, 근간)에서 처음 도입된 이래 이 개념은 점점 더 발리바르의 정치철학 연구의 중심 범주로 자리 잡고 있다.
   발리바르가 이 개념을 도입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2차 대전 이후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서유럽이나 북미의 국가들을 지칭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복지국가”(welfare state) 내지“사회국가”(Sozialstaat)라는 개념, 또는 프랑스에서 이 두 용어에 상응하는 용어인 “에타 프로비당스”(’État-providence)라는 개념(이것은 말 그대로 하면 “섭리국가”라는 뜻이다)를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왜 “복지국가”나 “사회국가”라는 말 대신 “국민사회국가”라는 생소한 용어를 도입할까?
   그에 따르면 이 개념은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함의를 내포하고 있지만(이는 나치즘의 약자가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zialismus)라는 점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는 최근 우리나라나 일본의 몇몇 지식인들(임지현, 김철, 권혁범, 니시가와 나가오, 또는 부분적으로는 사카이 나오키 등)이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에서 주장하듯이 모든 국민국가는 그 자체로 전체주의적이거나 파시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개념은 왜 2차 대전 전후의 정세에서 복지국가가 전체주의 국가의 대안적인 형태로 제시되었는지 해명하고, 왜 국민국가가 사회국가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는지, 또 반대로 왜 사회국가는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만 가능했는지 좀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안된 개념이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복지국가 내지 사회국가라는 표현 대신 이 개념을 쓰는 이유는, 복지 국가나 사회 국가라는 개념이 서유럽의 특정한 국가들의 성격 및 정책을 표현하기 위한 한정된 개념인 데 반해, 이 개념은 19세기 이래 국민국가의 역사 전체를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곧 서유럽이든 동유럽이든 아니면 다른 주변부 국가들이든 관계없이 국민 국가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설명하고 더 나아가 국민국가가 20세기 후반 이래 직면한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국민사회국가라는 개념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국민사회국가의 정의

   국민사회국가는 “사회정책이 정착되고 국민적 틀 속에 말하자면 녹아들었으며, 그리하여 국민에 소속되는 것이 사회적 권리들을 향유하기 위한 본질적 조건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역으로 이런 사회적 권리들에 대한 인정(이런 인정의 원리는 이제 헌법 속에 명문화되어 있다)은, 그런 인정이 힘을 중심으로 하고 국민주권을 긍정하는 정치 속에 구현되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티엔 발리바르, 『정치체에 대한 권리』,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1, 136쪽)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이는 다음과 같은 점을 의미한다.
   첫째, 이것은 19세기 말 이래로 국가의 “국민적 형태”, 곧 국민국가(사실은 국가 그 자체)를 보존하는 데서 계급투쟁의 조절이 결정적인 문제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자본에 의한 착취와 과잉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내적인 위협)과 함께 식민지를 둘러싼 제국주의적인 경쟁과 전쟁(외적인 위협)에 맞서 국민국가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정책과 안전보장 제도를 마련하여 노동자 계급을 국민국가 내부로 통합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의미다.
   둘째, 반대로 이러한 계급투쟁 및 사회적 갈등을 지배 계급에 이익이 되도록 조절하기 위해서는 “국민”이라는 특권적인 공동체 형태를 부과하고 작동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하면 각각의 개인에게 그들이 노동자이기 이전에, 농민이기 이전에, 부르주아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또 각종의 이데올로기 장치들을 통해 실제로 그들을 한 사람의 국민으로 형성하고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민사회국가의 효과
 
   이처럼 국민국가가 국민사회국가로 전환되면서 다음과 같은 효과가 산출된다. 우선 사회권이 시민권으로 통합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곧 여러 가지 사회권들(무상교육, 의료보험, 실업수당, 양육비, 주거 보조비 ...)이 시민권 자체 속으로 통합되었으며, 각각의 시민 또는 국민은 개인적 권리와 정치권 이외에 사회권을 기본권으로 향유하게 되었다. T. H. 마샬의 고전적인 정식화에 따르면 이때부터 시민권은 사회적 시민권이 되었다.[T. H. Marshall,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in Citizenship and Social Class and Other Essays,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0. 마샬에 따르면 시민권의 역사는 18세의 공민권 내지 개인적 시민권(사유재산의 자유, 신체의 자유, 계약 체결의 자유, 언론ㆍ출판의 자유, 집회ㆍ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법 앞에서의 평등)에서 19세기의 정치권(선거권, 피선거권 등)으로, 그리고 20세기에는 사회권(교육, 사회적 서비스 등)으로서 진화해온 과정이다. 마샬의 논문은 시민권을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요소로 파악하고 그 역사적 전개과정을 최초로 이론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목적론적인 성격을 띠며 국민국가를 불변의 제도적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곧 사회권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시혜나 구제(이는 또 하나의 차별이 된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나라의 모든 시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를 뜻한다. 따라서 사회적 시민권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진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사회권을 기본권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사회권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에 가장 첨예한 정치적 쟁점 중 하나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발리바르는 사회권들이야말로 “시민권에서 가장 정치적인 부분”(E. Balibar, “Communisme et citoyenne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UF, 2010, p. 190)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사회국가의 또 다른 효과는 사회권의 귀속에서 국민이냐 아니냐가 기본적인 판단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시민권=국적”(또는 ‘국민됨’, nationalité)이라는 등식이 국민국가의 핵심을 이룬다는 발리바르의 말은 이를 가리킨다. 이는 각각의 국민 국가, 특히 발전한 국가들 내에는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 및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이들에게는 시민권이 제대로 부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이들에게는 일체의 정치적 권리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국민국가에서 국민사회국가로 전화된 것은 국민국가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을 나타내지만 그러한 권리를 국민에게 제한했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차별의 전개 과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민사회국가의 두 가지 효과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가 전개되고 국민사회국가가 위기에 빠지면서 첨예한 갈등을 낳게 된다. 한편으로 사회권이 축소되고 사회적 시민권이 약화되면서 노동자 계급 중 다수가 “재프롤레타리아화”되고 빈곤이 확대되는 경향이 발생한다.[프랑스 사회학자인 로베르 카스텔(Robert Castel)은 새로운 종류의 빈곤 대중을 가리키기 위해 “프레카리아”(précariat)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연약한”, “취약한”을 의미하는 “précaire”라는 말과 “프롤레타리아”의 합성어다.] 이는 단지 주변부나 저발전 국가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중심부 내지 발전된 국민국가들 내부에서 “중심-주변”과 “부유-빈곤”의 차이가 확대되는 현상으로 발전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 시민권 자체로부터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집단들이 출현한다. 유럽을 비롯한 발전된 국민국가들에서 이것은 이주자 및 이민자들이다. 그 근본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각 국민국가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집단들에게 특히 증오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권에 제일 많이 의존하는 이 후자의 집단들은 사회권의 보존 및 획득의 문제를 보편적 권리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제로섬 경쟁의 문제로 간주한다. 따라서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과 불안은 자신의 경쟁자들인 이들 외국인 이민자들 및 이주자들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들에 대해 증오심과 배척감을 갖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 이들과의 차별을 통해 자신들의 우월성 내지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얻게 된다. 유럽의 극우파 정당들이 이들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나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사회국가의 위기 속에서 진보 세력은 단지 기존의 사회적 권리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민과 비국민 사이의 차이와 불평등을 그대로 방치하게 되며, 이는 다시 그러한 차이와 불평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 우월감과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사회적 취약 집단들이 극우파를 지지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국민과 비국민 사이의 불평등을 강화하고 사회적 차별을 구조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진보 세력은 한편으로 사회적 권리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국민의 차원을 넘어서 외연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외연적 보편주의와 내포적 보편주의
 
   이 점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민사회국가 개념이 지닌 또 다른 의의에 주목해야 한다. 이 개념의 의의 중 하나는 근대 국민국가의 역사를 보편적 시민권의 진전 및 확대 과정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물론 이는 국민국가의 역사가 아무런 문제점이나 모순도 없는, 순조롭고 평화로운 발전의 역사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발리바르와 프랑스 사회학자인 도미니크 쉬나페르(Dominique Schnapper) 사이의 논쟁을 검토해보면 이점을 좀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쉬나페르는 프랑스의 신공화주의를 대표하는 사회학자로서 국민국가의 위기 시대를 맞아 공화주의적 전통에 입각하여 “국민”(nation) 개념을 옹호하려고 시도한다.(D. Schnapper, La Communauté des citoyens, Gallimard, 2003) 그녀에 따르면 “시민들의 공동체”로 이해된 국민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삶에 대한 개인들의 능동적 참여라는 의미를 지닌 시민권의 본질적인 토대이며 또한 세계화 시대에 채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해법이다.
   그녀의 핵심 논거는 두 가지다. 첫째, 근대적인 의미의 국민은, 특수한 신분이나 위계, 민족적(ethnique)ㆍ문화적 차이에 기초하지 않고 “개인들의 존엄성을 ... 그들이 지닌 보편적 인간이자 시민으로서의 자격과 연계한다”(D. Schnapper, La Communauté des citoyens, p. 106)는 점 때문에 다른 어떤 정치공동체보다 더 보편적이다. 둘째, 따라서 국민은 다른 집단들보다도 덜 배타적이며 덜 폐쇄적이다. 국민이라는 정치 공동체가 모종의 배타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외국인이라는 타자에 대해서다. 하지만 이러한 배타성은 배척이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식별”(discrimination)을 뜻한다. 곧 모든 정체성은 불가피하게 타자들과의 차이, 타자들과의 거리를 통해 정의되듯이, 국민 역시 자신의 타자로서 외국인을 통해 정의된다는 의미에서 국민은 외국인이라는 타자에 대해 배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민족적이거나 문화적ㆍ언어적 실체에 기반을 둔 정치 공동체나 “헌법 애국주의”에 근거를 둔 하버마스식의 포스트 국민적 정치체보다 국민이야말로 여전히 현실적이면서도 민주주의적인 정치 공동체의 기초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발리바르는 국민국가가 보편주의적인 정치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국민국가가 배타성이나 배제성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배제적인 성향을 띤다는 점, 따라서 정치 공동체의 보편적 형태가 지닌 모순을 첨예한 형태로 드러낸다는 점이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민국가 또는 국민사회국가가 보편적이면서 배제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발리바르는 외연적(동화적) 보편주의와 내포적 보편주의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이를 해명한다.외연적 보편주의은 『인권선언』에서 주장되었던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가 인종이나 성별,계급, 종교,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이러한 보편주의는 식민화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국민국가들의 형성 및 그들 사이의 패권 경쟁은 식민지 경쟁으로 이어졌는데, 식민화에 나선 각각의 국민국가들은 이를 보편성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식민화는 단순한 약탈이나 침략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선교의 사명 내지 인류 전체의 문명화라는 사명의 관점에서 수행되었으며, 더욱이 내면화된 신념에 따라 수행되었다. 하지만 식민주의가 내세운 보편주의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비유럽의 피식민지 인구들은 식민화를 통해 지배자들의 국적에는 포함되었지만, 식민지 본국의 시민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지는 못했다. 따라서 같은 국적을 지닌 시민들이기는 하지만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비시민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외연적 보편주의의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은 내포적 보편주의를 통해 좀더 첨예한 형태를 띠게 된다. 발리바르가 내포적 보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인권선언』에서 주장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것, 곧 평등=자유라는 명제를 가리키며, 또한 모든 인간은 시민이라는 것, 곧 인간=시민이라는 명제를 가리킨다.(『인권선언』에 대한 발리바르의 해석은 E. Balibar, “Droits de l’homme et droits du citoyen: la dialectique moderne de l’égalité et de la liberté”, in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La Découverte, 1992; 「인권과 시민권. 평등과 자유의 현대적 변증법」, 윤소영 엮음,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공감, 2003 참조)
   내포적 보편주의가 함축하는 모순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면, 그리고 각각의 개인들이 누리는 평등과 자유는 그가 시민으로 존재하는 한에서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는 한에서만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낳는다. “시민권의 배제 ... 는 인간성 또는 인간 규범 바깥으로의 배제와 달리 해석되고 정당화될 수 없다.”(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 127쪽—강조는 발리바르)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은 그가 사람인 한에서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따라서 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원초적인 권리를 갖고 있지만, 역으로 이러한 권리는 그가 시민으로 존재하는 경우에만, 곧 특정한 정치체, 특정한 국민국가의 성원으로 존재하는 한에서만 실제로 향유되고 행사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그가 어떤 국가의 국적을 갖고 있지 않는 한에서는, 곧 그가 이러저러한 국민이 아닌 한에서는 인간성을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무수히 생겨난 국적 없는 사람들이 이러한 모순을 실제로 체험하고 구현했음을 보여준 바 있다(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Harcourt, 1951; 『전체주의의 기원 1』,박미애ㆍ이진우 옮김, 한길사, 2006, 9장 참조). 또한 이른바 “보트 피플”이 바로 이러한 국적 없는 사람들=인간성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모순은, 보편적인 시민권의 체계로서 근대 국민국가에게는 항상 그것과 맞짝을 이루는 배제의 체계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뜻한다. 국민국가에서 국민사회국가로의 전환은 이러한 모순을 한층 더 강화한다. 왜냐하면 이미 국민국가 체계에서 시민권이란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커다란 특권(권리들에 더하여 누릴 수 있는 자격이자 심지어 신분.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원정 출산을 떠나는 수많은 임산부들의 행렬은 시민권 내지 국적이 신분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이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자신의 본래 의미와 모순되는 것이었지만, 국민 사회 국가에서 사회권이 기본권으로 포함됨으로써 시민권을 누리는 본래적 의미의 시민들과 그것에서 배제된 비시민들(소수자들 및 이주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이 훨씬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정부는 이러한 차별을 폐지하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욱 더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값싼 노동력의 수요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미등록(불법)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수입 제한과 고용 금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불법) 수입과 고용은 관행적으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들을 합법화하는 데서 생기는 사회적 비용과 법적ㆍ행정적 문제점 때문에 각 국가들은 이들을 계속 불법적인 상태에 놓아두려고 한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이들의 노동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불법 행위를 조장하고 그것을 구실로 하여 주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치안을 강화하려는 국가의 기만적인 이중적 행태가 전개된다.
   유럽 연합의 건설로 인해 이러한 모순은 한층 더 첨예해진다. 왜냐하면 유럽 연합의 건설은 지금까지 국민국가에서 이루어졌던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발전 정도를 질적으로 넘어서는 훨씬 더 진전된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유럽 건설에서는 유럽 회원국 소속 국민들에게만 유럽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 회원국 소속 국민들이 아닌 사람들, 곧 주로 이주 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각 국가의 시민권에서 배제되는 것과 동시에 유럽 시민권으로부터도 배제되는 이중의 배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자처하는 유럽의 한 가운데에서 일체의 권리로부터 배제된 새로운 종류의 인구들이 또한 구성되는 셈이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배제 상황을 지칭하기 위해 유럽의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이라는 초국민적 정치체가 내포하는 모순은 국민국가를 넘어선 시민권의 보편화 대 아파르트헤이트 사이의 모순으로 집약된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와“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근대 국민국가 사이에는 명백한 모순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 불가피한 양자택일로 인도한다. 사회국가 및 사회적 시민권을 완전히 해체하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국민적인 정의에서 시민권을 전진적으로 분리시키고 관국민적(trans-national)인 성격을 지닌 사회적 권리들을 보증하거나.”(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앞의 책, 221쪽)

 
   모순의 역사로서 국민국가의 역사
 
   따라서 국민사회국가 개념의 또 다른 의의는 그것이 국민국가의 역사를 모순과 갈등의 전개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국민국가 비판론자들은 국민국가의 역사를 분석하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제시하는 사례들은 억압과 배제의 권력으로서 국민국가가 자신의 전일적 지배를 관철하고 자신의 힘을 증대해온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국민국가는 그 역사 전체에 걸쳐 동일한 본질과 동일한 기능, 동일한 효과를 산출해 왔을 뿐이다(이들의 주장에 대한 좀더 상세한 비판은 진태원, 「국민이라는 노예?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민족문화연구』 51호, 2010년 참조). 반면 국민사회국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국민국가는 역사적으로 동일하지 않을뿐더러, 국민국가의 형태들이 변화해온 것은 바로 사회적 적대와 갈등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이래, 특히 20세기 중엽 이래 서유럽 국가들이 사회보장 제도를 실시하고 노동자들에게 광범위한 사회적 권리들을 허용한 것은,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과 세력 확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의 성과는 헌법을 비롯한 사회적 제도들 속에 물질적으로 각인되어 있다.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사회적 투쟁이 강력하게 전개됐던 서유럽 국가들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노동자들의 사회권이 헌법 자체 내에 명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사회권을 헌법 속에 명문화한 나라는 이탈리아인데, 1948년 헌법은 “이탈리아는 노동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 공화국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1958년 프랑스 헌법은 “주권”이라는 조항에서 “프랑스는 분할될 수 없고 정교분리적이며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적인 공화국이다”(제 2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연방공화국의 1949년 기본법(오늘날에는 독일 전체로 확장되었다)은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적인 연방국가”라고 명시하며, 28조 1항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이를 좀더 정확히 명시한다. “각각의 주에서 헌법적인 지위를 지니는 조항들은 이 기본법이 정의하고 있는 공화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사회적인 법치국가의 근본원리와 일치해야 한다.”(에티엔 발리바르,『우리, 유럽의 시민들?』, 앞의 책, 360쪽)
   이처럼 사회권이 명문화되었다는 것은 첫째, 사회권이 인권 및 기본적인 정치권 등과 동등한 인간의 기본권으로 제도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보장과 교육권, 의료권, 노동권 등은 단순히 빈자들에 대한 시혜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또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권리로서 확립되었다. 따라서 둘째, 이는 노동자들을 비롯한 대중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누리고 더 확장하기 위한 중요한 물질적 거점을 마련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난 1990년대 이후 유럽에도 강하게 밀어닥친 신자유주의적인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광범위한 사회권이 영위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물질적 토대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국민국가 내에서 확립된 사회권이 여전히 모순에 빠져 있음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권리를 누릴 자격은 해당 국가의 시민들 또는 국민들에게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 각국의 시민들 내지 국민들이 누리는 사회권은 다른 나라의 국민들은 배제한 가운데, 특히 유럽 각국에 거주하는 비유럽(및 비서유럽) 지역 주민들에 대한 차별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사회국가 개념은 앞으로 사회적 투쟁의 방향과 목표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 시사해주는 지표의 구실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에티엔 발리바르와 국민적 인간 (호명)

http://rikszine.korea.ac.kr/front/article/submain_human.minyeon

2011년 08월 통권 004호 | 사람과 글 人ㆍ文
[제4회] 호명 III-1. 에티엔 발리바르와 국민적 인간 1부
진태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피노자를 비롯한 근대 철학에 관심이 있으며,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저서에 『서양근대철학의 열 가지 쟁점』(공저), 『서양근대윤리학』(공저) 등이 있다.
   알튀세르의 호명 개념은 그의 제자였던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에 의해 국민 형태 개념으로 새로운 굴절을 겪는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 이후 이데올로기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론가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 중 하나가 이데올로기론이라고 간주할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 자신을 포함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모순의 중심에 이데올로기의 동요가 놓여 있다고 볼 만큼 [ "대중들의 공 ", 서관모 · 최원 옮김, 도서출판b, 2007 중 제 3부 "맑스주의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동요" 참조. 덧붙인다면, 이 책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나, 이 3부의 번역은 꽤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학술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반드시 불어본 E. Balibar, La crainte des masses, Galilée, 1997이나 영역본 Masses, Classes, Ideas, Routledge, 1994를 참고해야 한다], 따라서 이 문제가 마르크스주의 전화(轉化)의 핵심을 이룬다고 간주할 만큼 이데올로기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발리바르의 개조는—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호명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계기로 이루어져 있다.
  • - 이데올로기론에서 대중의 존재론적 우위
  • - 종속화와 주체화의 변증법: 신민-개인-시민
  • - 이데올로기의 역사화: 국민 형태의 변증법

   1. 이데올로기론에서 대중의 존재론적 우위
   이데올로기론에서 대중의 존재론적 우위라는 관점은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라는 논문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기능작용 속에서 특권적인 능동적 역할을 피억압자들 또는 피착취자들에게 (적어도 잠재적으로) 부여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 이론, 1993, 183-84쪽—강조는 발리바르)
   이데올로기의 기능작용에서 피억압자들 내지 피착취자들에게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유물론적 성격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념론적 인식, 곧 이데올로기를 오류나 환상 단순한 허위의식이나 왜곡된 관념과 단절하고 이데올로기의 실재성 내지 물질성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데올로기를 지배 계급에 의한 조작과 기만 또는 주입과 강제로 보는 관점과 단절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왜곡된 관념이나 환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러한 왜곡된 관념이나 환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하고 무지한 대중들이라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이데올로기를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지배 계급의 능력이라는 생각을 전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할 때 품고 있었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상상계로, 곧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자연적 조건(생활세계)으로 정의하면서 이러한 두 가지 관념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적인 관념이나 표상들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개인들과 대중들이 모두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상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또는 그람시의 개념을 원용하자면 헤게모니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이어야 한다.”(발리바르,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같은 책, 186쪽) 그런데 어떤 상상적 경험이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일 수 있는가? 곧 사회에서 일반화됨과 동시에 의식들로 관념화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선 지배자들의 ‘체험된’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세계’에 대한 인정 또는 승인과 저항 또는 반역을 동시에 함축하는(마르크스는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피지배대중들의 ‘체험된’ 경험이라고 반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같은 곳)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효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에 뿌리를 두고 그러한 상상계를 자기 나름대로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를 지배하는 어휘들은 자유와 평등, 정의, 박애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지배어들은 사실은 지배 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대중들의 혁명적 봉기를 통해 선언되고 또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 (이하 인권 선으로 약칭)은 이를 대표하는 문건 중 하나다. 발리바르가 이데올로기에서 대중들의 존재론적 우위라고 부른 것은, 이러한 지배어들이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되고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되었다는 사실(인권 선언은 프랑스 헌법의 전문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정치적 근대성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킨다. 물론 이러한 원리는 그 자체로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제도적 매개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지 선언적으로 언표되었을 뿐 실제 제도에서는 최소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정치적 선거권이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개인들(이른바 ‘능동 시민들’)에게만 허가되었다는 점이나 여성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권리를 향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사례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근대 사회의 어떤 지배 집단도 피지배대중들의 이러한 상상계를 무시하고서는 또는 그러한 상상계를 재구성하고 활용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혁명의 지배어들은 이데올로기에서, 따라서 정치적 상상계 및 제도화에서 피지배대중들이 (제도적으로는 열등한 위치에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계적으로 배제될 수도 있지만) 존재론적으로 우위를 지닌다는 점을 표현해준다.

   2. 종속화와 주체화의 변증법: 신민(subject)-개인-시민
   1) 신민에서 개인으로
   이데올로기론에서 대중들의 존재론적 우위는 종속화와 주체화의 변증법으로 좀더 구체화된다. 우리는 호명 I에서 알튀세르 호명 이론의 아포리아 중 하나는 ‘개인’이라는 범주의 지위가 아주 애매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알튀세르의 이론에서는 호명의 대상이 되는 ‘개인’이 호명에 선행하는 존재론적 실체인지 아니면 사후적으로 설정된 가상적 항인 것인지 불분명하게 남아 있다.
   발리바르는 이 문제에 대해 역사적인 해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형식상으로는 알튀세르의 호명에 대한 정식을 전도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곧 더 이상 알튀세르가 말하듯 “개인들을 주체들로 호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체들/신민들을 개인들로 호명v(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 335쪽—강조는 발리바르)하는 것이 문제다. 단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알튀세르의 명제에서 ‘주체’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sujet(또는 영어의 subject)가 발리바르의 문장에서는 일차적으로 ‘신민’(臣民)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프랑스어의 sujet나 영어의 subject는 이처럼 한편으로 ‘주체’라는 의미, 곧 자율적인 인식과 행위의 중심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복종’이나 ‘종속’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sujet/subject를 신민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신민들을 개인들로 호명"하기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중세의 신분적 예속 질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표준적인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이 사람들은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들이다. 곧 그들은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자유롭게 되었지만 동시에 일체의 생산 수단을 박탈당했다는 의미에서도 자유롭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개인들’로서 역시 ‘자유로운 개인들’인 자본가와 임노동 계약을 맺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자유의 의미를 절대화하는 것, 다시 말해 근대적 개인의 자유를 단순히 중세적인 신분적 예속하고만 대비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를 은폐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알튀세르는 여전히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다. 주지하다시피 알튀세르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1번은 법 이데올로기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때의 법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바로 평등과 자유 같은 것이다. “법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개인은 법인으로서 법률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의무가 있는 법적 인격이다. 법 이데올로기도 외관상 이와 유사한 담론을 펼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은 본래(본성상, par nature) 자유롭고 평등하다. 따라서 법 이데올로기에서는 (법인들이 아니라) ‘인간들’의 자유와 평등에 ‘토대가 되는’ 것이 법이 아니라 자연이다.”(루이 알튀세르,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121-122쪽. 강조는 알튀세르) 따라서 알튀세르에게 ‘평등’과 ‘자유’는 법 이데올로기이며, 이러한 법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이 강제 없이도 자발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또 그것이 ‘정상적으로’ 재생산되도록 그 체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끔 해준다.
   반면 발리바르가 알튀세르의 정식을 전도시켜 "신민들을 개인들로 호명"하기라고 말했을 때 염두에 둔 것은 근대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갖는 혁명적인 성격이다. 이 점에서 발리바르는 특히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의 저작에 영향을 받고 있다. 르포르는 근대 민주주의 및 인권 개념에 대한 재해석에서 인권과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반박한다(C. Lefort, Essais sur le politique, Seuil, 1986;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홍태영 옮김, 그린비, 근간).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근대적 평등과 자유의 원칙이 착취 및 억압 관계를 은폐하는 측면만을 부각시켰을 뿐, 그것 자체가 지닌 혁명적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근대 민주주의와 인권 개념은 추상적이며, 또한 그 담지자로서 ‘개인’ 역시 추상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상성은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조건과 독립적인 정치 영역의 구성을 (사고)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인권 선언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자로 선언된 인간은 추상적 개인이다. 왜냐하면 그는 국적과 관계없이(프랑스인이든 영국인이든 인도인이든, 또는 국적 없는 난민이나 망명객이든 간에), 재산 유무에 관계없이(부자든 가난뱅이든, 재벌이든 노숙자든 간에), 피부색에 관계없이(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종이든 간에), 종교에 관계없이(기독교 신자든 불교 신자든 무슬림이든 간에), 성별에 관계없이(여성이든 남성이든 아니면 트랜스젠더이든 간에), 또 연령에 관계없이(어른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간에), 사람이라는 사실 그 자체로 인해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자로 간주되며 또 그렇게 간주되고 존중받을 권리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 없고 ~ 없고 ~ 없는 존재자라는 점, 다시 말해 아무런 특성도 없는 존재자라는 점에서 인권의 담지자인 또는 인권의 ‘주체’인 사람은 추상적 개인인데, 역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권 선언이 보편적 선언으로서 효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추상성 덕분이다. 만약 여기에 어떤 제한이 붙는다면, 가령 인간은 그가 가난한 한에서, 또는 생산수단이 없는 존재자인 한에서, 약소국 국민이거나 피식민지인인 한에서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보편적인 성격을 지닐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발리바르의 전도된 호명 공식, 곧 "신민들을 개인들로 호명"하기가 일차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알튀세르가 호명의 대상으로 간주한 개인은 생물학적 개인도 아니고 단순히 사후에 가상적으로 설정된 개인도 아니며, 봉건적인 신분적 예속 관계에서 벗어난 근대의 추상적 개인이라는 점이다. 이 개인은 일체의 신분적·사회적 규정과 무관한 개인, 따라서 아무런 구체적인 정체성도 지니지 않은 개인, 인권 선언에 의해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자라고 막 선언된 개인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알튀세르가 말하는 호명이란 이러한 추상적 개인들에게 이러저러한 제도적 매개들을 통해 이러저러한 정체성들을 부여하는 것, 또는 이러저러한 사회적 관계 속으로 추상적 개인들을 편입시켜 이러저러한 ‘주체들’로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개인들은 어떠한 제도적 매개 내지 사회적 관계 속으로 편입되는 것일까?

2011년 09월 통권 005호 | 사람과 글 人ㆍ文
[제5회] 호명 III-2. 에티엔 발리바르와 국민적 인간 2부
진태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피노자를 비롯한 근대 철학에 관심이 있으며,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저서에 『서양근대철학의 열 가지 쟁점』(공저), 『서양근대윤리학』(공저) 등이 있다.

  2. 종속화와 주체화의 변증법: 신민(subject)-개인-시민
   2) 시민으로서의 인간, 시민으로서의 개인
   추상적 개인은, 마르크스에서 알튀세르에 이르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가정했던 것처럼, 단순히 부르주아 계급 지배의 질서를 은폐하고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적 통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봉건적인 신분적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진보적ㆍ보편적 함의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추상적 개인이 지닌 해방적 의미는, 그러한 개인을 고전적인 자연권 이론에서 파악하듯이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존재론적 단위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개인으로 이해할 때 좀더 정확히 드러날 수 있다.
   발리바르는 두 편의 텍스트에서 이 점을 좀더 분명하게 설명한다. 「시민 주체」라는 글(“Citoyen sujet”, Cahiers Confrontations, vol. 20: Après le sujet qui vient?, ed., Jean-Luc Nancy, 1989)에서는 주체 개념의 계보학에 대한 기존의 철학사적 관점을 정정하면서, 주체 개념의 계보학이 현실의 정치적 역사와 맺고 있는 내적 연관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흔히 근대 주체성의 시작을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개념에서 찾는다. ‘나는 생각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코기토 개념은 주체가 생각한다는 사실을 모든 진리 및 확실성의 토대로 삼는 근대 철학의 기본 원리를 최초로 정식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데카르트의 저작에서 ‘주체’(sujet 또는 라틴어로는 subjectum)라는 단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또 설령 사용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자율적인 주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 스콜라 철학의 용법에 따라 ‘실체’라는 의미로 쓰이거나 논리학적 주어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를 철학적 근대성의 시조로 간주하는 관점은 사후에 회고적으로 투영된 것이며, 그것은 근대성을 이해하는 특정한 관점을 함축한다. 발리바르는 자신의 철학적 선구자를 데카르트에서 발견하는 칸트 철학이나, 이러한 칸트의 관점을 기반으로 하여 데카르트에서 니체에 이르는 철학적 근대성의 계보(또는 좀더 확장할 경우에는 플라톤에서 니체에 이르는 서양 형이상학의 계보)를 구성하는 하이데거의 철학사적 재구성이야말로 이러한 회고적 투사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철학사의 재구성을 통해 망각되거나 은폐되는 것은 철학적 근대성과 정치적 근대성 사이의 관계, 그리고 주체 개념에 고유한 양면성이라는 문제다. 이 점을 해명하기 위해 발리바르는 프랑스어의 ‘sujet’나 영어의 ‘subject’에 담긴 두 가지 함의를 지적한다. 이 두 단어는 한편으로 오늘날 철학에서 쓰이는 것과 같은 ‘주체’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복종’이나 ‘종속’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의미는 사실은 sujet나 subject라는 현대어가 라틴어의 두 가지 단어, 곧 subjectum(주권적 주체)과 subjectus(종속적 주체)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따라서 subject라는 개념은 자기 자신 안에 주권자와 신민이라는 정치적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처음부터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발리바르는 subject라는 개념이 오늘날과 같은 ‘주체’라는 의미를 포함하게 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연원을 전도하는 역사적 사건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과 같은 피지배자들의 정치적 해방 선언이라는 사건이다.
오랜 역사적ㆍ철학적 전통은 ... 우리에게 1776년과 1789년의 인간들, 곧 자유와 혁명의 인간들은, 그들이 보편적으로 주체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되었다고 설명해왔다. ... 나는 정반대의 해석을 선택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러한 인간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고 구성하면서 자신들의 종속 원리, 곧 종속자가 되거나 신민이 되는 원리를, 저항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어쨌든 돌이킬 수 없게 철폐했기 때문에 자신들을 자유로운 주체들로 사고하기 시작할 수 있었으며, 자유와 주체성을 동일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E. Balibar, “Subjection and Subjectivation”, in Supposing the Subject, ed. Joan Copjec, Verso, 1994, pp. 11-12—강조는 발리바르)
   따라서 발리바르가 재구성하는 주체의 계보학은 한편으로는 철학적 근대성에 관한 지배적 서사에 함축된 주체 개념의 발생사에 대한 왜곡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 주체와 정치적 주체의 발생적 상관 관계를 밝혀준다. 이것은 주체의 자율성을 그 타율적 조건 속에서 해명하려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일반적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근대적 주체성의 역사 속에서 구체화하려는 그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다른 한편, 「평등자유 명제」라는 글(“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UF, 2010; 『평등자유 명제』, 진태원 옮김, 그린비, 근간)에서는 근대의 정치적 질서를 정초하는 텍스트인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1789)(이하 「인권선언」으로 약칭)에 대한 재독해를 시도한다. 이러한 독해의 목표는 「인권선언」에 나타나는 두 개의 주어, 곧 ‘인간’과 ‘시민’이 두 개의 상이한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주체임을 밝혀내는 것이다.
   「인권선언」에 대한 통상적인 독해에 따르면 이 텍스트는 한편으로 인간이 지닌 기본적 권리, 곧 인권의 자연적, 본래적 성격을 천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들이 근대적 정치체를 구성할 경우 그러한 정치체의 주체로서, 곧 시민으로서 지니게 되는 시민권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텍스트는 자연적 존재자로서 인간이 지닌 기본 권리와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이 지닌 기본 권리를 천명하는 텍스트이며, 이 텍스트 속의 주체는 자연적 주체인 인간과 정치적 주체인 시민 두 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독해는 이미 에드먼트 버크가 「인권선언」에 대해 제기한 비판(『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이태숙 옮김, 2008)에 대해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특히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근대 인권 개념의 역설에서 좌초하게 된다.
   아렌트는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의 정세, 특히 유럽에서 파시즘이 출현하던 위기의 시대에 발생한 거대한 “무국적”(stateless) 난민들의 비참한 상태를 관찰하면서, 근대 국민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인 인권 이념이 근본적으로 진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전체주의의 기원』 1권, 이진우ㆍ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9장 참조). 근대적 인권 이념에 따르면 실정적이고 특수한 시민권은 그에 앞서 존재하는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의 제도화이며, 이러한 인권은 시민의 권리와 정치적 제도에 대해 보편적인 정당성의 원리를 제공해 준다. 따라서 인권은 시민권보다 더 광범위하고 또 그로부터 독립적이다. 이 때문에 인권은 국가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권리들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점점 더 중요해진다. 하지만 아렌트가 볼 때 사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볼 때 시민의 권리가 제거되거나 역사적으로 파괴되면 인권 역시 파괴되었다. 왜냐하면 인권이 시민권을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권이 인권을 기초하며, 따라서 국가나 제도가 보장하지 않는 자연적 권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렌트가 제시하는 ‘권리들을 가질 권리’는 추상적 인권 개념에 대한 반박이며 그것의 전도가 된다.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는 이 개념은 권리 주체로서의 인간 또는 개인이 그 자체로 시민이며, 또 시민으로서의 개인만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함축한다(발리바르는 이것을 “아렌트의 정리”(Arendt’s theorem)라고 부른 바 있다. E. Balibar, “(De)Constructing the Human as Human Institution”, Social Research, vol. 74, no. 3, Fall 2007 참조). 이는 다시 말하면 각각의 개인들이 서로 협력하여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지 못하는 한, 그 개인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보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으로 정치 공동체가 실존하는 한,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정치 공동체 내에서 각각의 개인들이 실정적인 권리들을 누릴 권리”)는 모든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서 존중받고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권리가 의미하는 것은 정치 공동체의 구성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대중들 자신의 과제라는 점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봉기적 권리를 뜻한다. 헌법을 비롯한 모든 정치 제도는 이러한 대중들 자신의 공동체 설립의 행위(곧 봉기)에 의존하며, 거기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의 근거를 얻는다. 근대 정치체의 독특성은 이전의 정치체들과 달리 자연적이거나 초월적인 근거(혈통, 신 및 더 나아가 인간 본성 등)에 근거를 두지 않고, 오직 정치체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설립행위 자체, 곧 각각의 시민들이 서로 권리를 부여하고 그러한 권리의 타당성을 인정해주는 행위 자체에 기초를 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개인은 이러한 시민들 각자의 상호 구성 행위 속에서만 개인으로서 성립하고 또 존립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근대적 개인은 항상 이미 근대적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데올로기의 역사화: 국민형태의 변증법
   하지만 이러한 시민들이 구성하는 근대 정치 공동체는 국민(nation)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국민이라는 공동체는 신분적인 예속 관계에서 벗어난 시민 개인들(곧 데모스)의 상호 구성 관계를 통해 정초된다는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혈통과 언어를 비롯한 공통의 문화(곧 에트노스)를 자신의 결속의 토대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라는 정치 공동체는 모순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한편으로 근대적인 의미의 국민국가는 특수한 신분이나 위계, 민족적(ethnic)ㆍ문화적 차이에 기초하지 않으며, “개인들의 존엄성을 ... 그들이 지닌 보편적 인간이자 시민으로서의 자격과 연계한다”(Dominique Schnapper, La Communauté des citoyens, Gallimard, 2003, p. 106)는 점 때문에 다른 어떤 정치공동체보다 더 보편적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민국가는 이러한 시민의 자격을 국민 성원에게만 한정한다는 점에서 또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더욱이 개별 국민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혈통과 언어, 공동의 생활양식과 문화, 역사 및 신화 등에 기반을 둔 민족(ethnie)에 기반을 두고 형성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국민됨/국적(nationality)의 자격을 이러한 민족적 요소들에 기초 지으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배타성은 더욱 강력하게 유지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이라는 근대의 정치 공동체는 데모스와 에트노스라는 이중의 호명 양식이 모순적으로 결합돼 있는 역사적 구성체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호명이론( 및 이데올로기론)을 역사화하려는 발리바르의 이론 작업은 국민형태(forme nation) 개념에 대한 가공으로 전개된다. 월러스틴과 공동으로 저술한 『인종, 국민, 계급』(1988)에서 처음 사용된 국민형태 개념은 “그 자체로는 공동체도, 심지어 공동체의 이념형도 아니며, 규정된 ‘공동체 효과’를 생산할 수 있는 구조 개념”(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51쪽―강조는 발리바르)이다. 이러한 규정은 몇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다.

   1)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구조 개념으로서 국민형태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국민(nation) 문제를 해명하지 못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무능력을 지양하기 위해서다. 마르크스주의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의 핵심 논점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알튀세르 이전의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를 사회적 생산관계 및 계급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담론이나 의식, 환상 등으로 환원했고, 따라서 국민이라는 상상적 공동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효력과 실재성, 곧 그것이 국가 형태의 구성 및 재생산에서 수행하는 핵심적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에서 국민은 부르주아 계급이 계급 적대의 현실을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현상으로 이해되든가 아니면 식민지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수행하기 위한 계급 동맹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 이해된 반면, 사회주의에서 국민은 ‘전 인민’이 형성되면서 계급적 적대가 소멸되는 역사적 형태로 간주되었다. 국민이라는 범주를 환원한 결과 사회주의 국가는 스스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소련 인민, 중국 인민 ...)에 체계적으로 사로잡힌 셈이다. ‘국민형태’는 전통적인 경제결정론에서 벗어나 경제와 이데올로기라는 이중의 토대 위에서 국민을 물질적인 이데올로기적 현상으로 해명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두 번째는 사회구성체라는 개념이 지닌 애매성이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마르크스 자신이 사용한 사회구성체 개념은 “사회 또는 시민사회 개념의 현학적 쌍생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러시아 사회구성체’나 ‘프랑스 사회구성체’ 또는 ‘중국 사회구성체’에 대해 그것들이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처럼 말할 때, 이는 우리가 곧바로 네이션[이 경우에는 ‘민족’을 의미한다―인용자]의 초역사적 실존이라는 공리를 흡수했다는 것을 뜻한다. 네이션을 그 안에서 생산양식의 역사가 일어나는 틀로 변전시키면서 말이다.”(Etienne Balibar &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e: Les identités ambiguës, Éditions La Découverte, 1988; 「민족형태: 역사와 이데올로기」, 『이론』 제 6호, 1993, 103-104쪽)(이 글의 국역본 제목은 「민족형태」라고 되어 있는데, 이하에서는 필자의 관점에 따라 「국민형태」로 수정해서 인용하겠다)
   따라서 사회구성체 개념은 사실은 ‘민족’으로서의 네이션의 상이한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를 쇄신하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관점을 제안한다. “그럴 게 아니라 우리는 사회구성체를그 통일성이 여전히 의심스러운 채로 있는 한 구성물을 뜻하는 것으로서, 적대적인 계급들의 형세, 곧 전적으로 자율적이지는 않으며 다른 사회구성체들에 대한 대립 속에서만, 또 바로 이 적대를 통해 장기에 걸쳐 발전한 권력 투쟁, 갈등하는 이해 집단들, 갈등하는 이데올로기들과 같은 것을 통해서만 상대적으로 종별적이게 되는 그런 형세를 뜻하는 것으로서 사용해야 한다.”(같은 글, 104쪽) 국민형태라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도입되었다.

   2) 이데올로기적 형성체로서 국민형태
   국민형태 개념의 강점은 네이션을 역사적 실체, 그것도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지니고 있고 장구한 진화 과정을 거쳐 온 실체로 이해하지 않고 어떤 구조적 메커니즘에 의해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생산되고 또 그 이후 경쟁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 것으로서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네이션은 대략 16세기 중반 이후, 곧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의 형성과 비슷한 시기에 “비가역성의 문턱”을 넘어서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그것과 경쟁적인 다른 국가 형태들(제국이나 몇몇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초국민적인 정치ㆍ상업 복합체 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근대 부르주아 혁명들 이후 약 200여년에 걸친 격렬한 갈등을 거쳐 보편적인 근대적 국가형태 또는 그러한 국가형태를 특징짓는 상상적 공동체로 정착되었다. 국민형태는 이러한 상상적 공동체로서의 네이션이 어떤 의미에서 근대적인 국가형태를 규정했으며, 그것의 지속적인 재생산에 기여했는지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착안한 몇몇 반(反)국민국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국민국가라는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라거나 순전한 이데올로기적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핵심 논점은 네이션에 이데올로기적 가상(곧 오래된 기원을 가진 단일한 실체로서 ‘민족’)에 의거하지 않으면서 네이션이 근대 국가 형성에서 수행한 규정적 역할, 따라서 그것의 상상적 (또는 제도적) 실재성을 설명하고, 그러한 역할을 위해 왜 네이션에 고유한 이데올로기적 상상계가 필요한 것인지 해명하는 것이다. 또한 왜 오늘날 네이션이 역사적 한계에 봉착했고, 그것을 내재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제시하는 것이다.
   국민형태 개념은 근대 국민구성체들의 형성 과정을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보다 좀더 정확히 설명해준다. 이 점과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페르낭 브로델과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역사적 자본주의론의 기여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강조한다. “통합된 세계 시장의 틀 안에서 정의되는 국민국가의 경제적ㆍ행정적 기능은 사회적 ‘형태’ 또는 ‘구성체’로서의 국민에 대한 이해의 반쪽만 보여줄 뿐이다.”(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47쪽) 왜 국민이 근대 국가의 헤게모니적인 형태가 되었는지, 다시 말해 근대 국가가 왜 단지 국민국가가 아니라 국민사회국가인지 이해하려면 역사적 자본주의론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론이 필수적이다.
   알튀세르에서 유래하는 이데올로기론은 앞에서 말했듯이 상상과 현실을 조야하게 대립시키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대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생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토대 내지 경제만이 실재적이고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나 왜곡된 표상, 심지어 가상 및 환상이다. 이렇게 되면 민족주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족 내지 국민 자체도 순전히 대중들의 착각 내지 왜곡된 표상(계급적 관점의 부족에서 생겨나는)의 산물로 이해되며, 민족주의나 민족 또는 국민과 관련된 문제들은 진짜 문제가 아니라 가짜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반면 발리바르는 상상계의 실재성, 물질성을 강조하는 알튀세르의 관점(이는 무엇보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유래한다. 진태원, 「스피노자와 알튀세르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 상상계라는 쟁점」, 『근대철학』 3권 1호, 2008 참조)에 충실하게 국민 또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회적 공동체가 상상적 공동체라고 규정한다. “제도들의 기능작용을 통해 재생산되는 모든 사회적 공동체는 상상적이다. 다시 말해 이 공동체들은 개인적 실존을 집합적 이야기의 짜임 속에 투사하는 것에, 공통의 이름을 인정하는 것에, 기억도 할 수 없는 과거의 흔적으로 체험되는 전통들(이러한 전통들이 근래의 상황 속에서 제작되고 주입된 경우에도)에 의거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일정한 조건들 속에서는 오직 상상적 공동체들만이 현실적 공동체들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국민형태」, 앞의 책, 126쪽) 사실 모든 공동체는 어떤 공동의 정체성에 대한 결속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공동의 정체성을 그 성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면화함으로써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동체의 현실적 기반은 바로 상상계의 효력 및 실재성에 있다는 것이 납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상적 공동체로서 국민 공동체의 생산 및 재생산의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발리바르는 그것을 상상적인 것으로서 인민(peuple)의 생산과 재생산에서 찾는다. 이것은 인민이 자신들을 국민으로서 (재)인지하고, 인민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인들이 바로 이러한 국민에 대한 소속을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것은 인민의 생산과 재생산이 상호 연관되어 있지만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계기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선 집합적 ‘주체’로서, 곧 국민으로서 인민의 형성이다. 근대 정치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인민을 정치권력의 기원 내지 정당성의 토대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인민주권이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인민주권은 근대 정치의 지배적인 제도적 틀로서의 국민국가에서는 국민주권으로 나타난다. 곧 인민이 자신이 속한 국가를 바로 자신의 국가로서, 다른 나라들과 대립하는 나의/우리의 조국으로서 (재)인지하고, 그것과 동시에 이러저러한 사회적 집단의 차이 및 특히 적대적인 계급적 구별에 선행하는 동일한 집단으로서 (그리고 이러한 동일한 집단에 한 성원으로 속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평등한 개인들로서) 자신을 (재)인지하게 되는 것은 인민이 국민으로 또는 민족으로 자신을 “표상/재현/상연하는”(이것들은 ‘représenter’라는 개념에 모두 함축된 의미들이다) 한에서다. 따라서 집합적인 주체로서의 인민 및 국민의 구성은 “정복, 인구 이주, ‘영토 확정’과 같은 행정적 실천 등을 기술하는 것”(같은 글, 119쪽)으로는 제대로 해명될 수 없다. 통일적인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민/국민이 구성될 수 있기 위해서는 종별적인 이데올로기의 모델, 곧 국민주의 내지 민족주의[네이션과 마찬가지로 내셔널리즘은 우리말 한 단어로 번역하기는 매우 까다로운 용어들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기본적으로 네이션은 ‘국민’으로, 그리고 내셔널리즘은 ‘국민주의’로 옮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네이션이 민족적 정체성(ethnic identity)의 측면을 주로 표현할 때는 ‘민족’이나 ‘민족주의’로 옮길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점에 관한 좀더 자세한 논의로는 진태원, 「어떤 상상의 공동체? 민족, 국민 그리고 그 너머」, 『역사비평』 96호, 2011년 가을호를 참조]나 애국주의가 필요하다.

   3) 정체성 생산 및 재생산 메커니즘으로서 국민주의/민족주의
   근대 국민국가의 유기적 이데올로기로서 국민주의는 단지 상상적인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 및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 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국민주의가 단지 이러한 믿음과 감정 등에 불과하다면, 서구의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가 확립된 ‘선진국’ 사람들이나 우리나라의 일부 지식인들이 (이른바 ‘남쪽’ 국가들 또는 ‘후진국들’에 특유한) ‘민족주의’를 마치 질병이나 집단적 광기 등으로 폄훼하는 것이 수긍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우 ‘민족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서구식으로 합리적 개인주의를 도입하거나 사회적 차이 및 소수자들에 대한 존중을 확립하는 것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지극히 자유주의적이고 서구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국민주의에 관한 설명 및 대응 방식으로는 커다란 한계를 지닌다.
   발리바르의 국민형태 개념은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이러한 관점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관점에 깔려 있는 고유한 서구 중심주의 내지 서구식 국민주의(및 인종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발리바르는 국민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주의를 집합적이고 개인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메커니즘의 효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 국민국가의 핵심 목표는 “다른 모든 정체성을 압도하는 ‘국민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고, 국민적 소속이 다른 모든 소속과 일치하고 그것들을 통합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일”이며, “정의상 국민주의는 이것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55쪽) 근대 국민국가 내에서 각 개인들은 (자유주의에서 가정하듯이) 국민에 대한 소속 이전에 자신의 독자적인 개인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국민적 개인으로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 개인성을 얻게 된다. 국가를 구성하는 각 집단들 및 개인들은 자신들을 이러저러한 집단의 구성원이자 이러저러한 개인들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모두 똑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곧 그들은 국민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이고 국민으로서의 자본가이고 국민으로서의 선생이고 학생이고 가정주부이고 범죄자 등등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모든 국민국가(프랑스나 미국 같은 ‘이민자 국가’를 포함하는)는 정의상 국민주의적이며, 또한 그 국민 국가의 성원들은 자신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국민주의적이다.
   가령 프랑스 국적을 가진 아프리카계 흑인 이주자가 프랑스 월드컵에서 열렬하게 프랑스 대표팀을 응원하면서 끝내 프랑스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하자 감격에 겨워 ‘토종’ 프랑스 백인과 같이 어깨를 걸고 프랑스 대표팀 응원가를 목청 높이 부를 때, 그는 우리가 보통 쓰는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에 유학 간 한국인 유학생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을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한미 야구 대표팀 간에 야구 경기가 벌어질 때 열렬히 미국팀을 응원할 때 그 역시 ‘민족주의’라기보다는 ‘국민주의’를 드러내는 셈이다. 또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도미니크 쉬나페르(Dominique Schnapper)가 민족적인 기원 및 소속과 무관한 시민들의 공동체로서 ‘국민’을 옹호하고 그러한 국민들 사이의 결속감의 표현으로서 ‘nationalisme’을 말할 때 그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nationalisme’은 또한 좀더 좁은 의미에서 민족주의를 뜻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국민 성원들 사이의 일체감, 동질성이 필연적으로 그러한 동질성의 기원 및 주체에 대한 보충적인 상상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 같이 이른바 ‘단일 민족’의 경우에는 더욱 더 사실이다. 여기서 허구적 민족체(또는 의제적(擬制的) 민족체)(ethnicité fictive)라는 발리바르의 또 다른 개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개념은 국민이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고 연속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온 역사적 실체 또는 심지어 (유일한) 역사적 주체라는 민족주의에 고유한 상상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이 개념에서 우선 주의해야 할 점은 ‘상상적’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발리바르가 사용하는 ‘허구적’이라는 개념이 미망(illusion)이라거나 가짜 또는 단순히 공상이라는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제도적 효과라는 의미, 곧 제작”(「국민 형태」, 121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로 이해된 허구적 민족성은 실존하는 어떤 국민이 오래된 민족적 기원(ethnic origin)을 지니고 있으며(가령 골족의 후손, 단군의 자손 등), 그 국민은 동일한 기원을 공유하면서 오랫동안 세대를 거치면서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유구한 역사적 실체로서의 민족으로 표상된다. 바로 이러한 허구적 민족성 때문에 국민 국가 내의 집단들 및 개인들은 자신들이 이러저러한 사회적 조건의 차이를 초월한 이해관계의 동일성을 지닌 같은 국민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표상이나 인식이 단순히 공상적이거나 가상적인 의식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교육제도나 가족제도 같은 사회적 제도를 통해 체계적으로 훈육되고 각종 의례나 절차, 관행 등을 통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재생산된다(발리바르는 「국민 형태」에서는 특히 언어와 계보가 허구적 민족성을 산출하는 두 가지 지주라는 점을 보여준 바 있다). 따라서 국민주의는 특히 그것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필연적으로 이러한 허구적 민족성을 더 강하게 반영하기 마련이며, 허구적인 또는 상상적인 역사적 실체로서의 ‘민족’을 자신의 기초로 삼게 된다.
   그렇다면 호명의 문제는,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일방적인 종속의 메커니즘으로서 호명에서 벗어나는 또는 탈주하는 것의 문제일 수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경쟁적인, 또는 모순적인 다수의 호명 양식들을 분석하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곧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호명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는 일은 그것이 억압하거나 종속시키는 좀더 해방적이고 좀더 개방적인 다른 호명의 양식의 가능성들을 탐색하고 발전시키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 형태에 관한 발리바르의 분석의 의미는 무엇보다, 근대의 지배적인 호명의 메커니즘이 바로 ‘국민’이라는 점, 그리고 국민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호명의 양식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2014년 9월 7일 일요일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  김항
  •  2008.03.17부터 10회
  •  화요일 19:00~22:00
  •  180,000원

강의 소개

이탈리아의 철학자 아감벤의 사상을 소개하고, 그의 저서 『호모 사케르』를 강독하는 강의. 아감벤의 사상을 1920년대 독일 지성사와 연관시켜 이해하고, 『호모 사케르』에서 주장된 생명정치와 주권국가 체제의 상관관계를 보다 넓은 지성사적 맥락에 위치시킨다.
신칸트학파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될 수 있는 1920년대 독일 사상계의 문제의식을 우선 소개한다. 구체적으로는 칼 슈미트, 발터 벤야민, 하이데거 사이에 흐르는 공통의 물음을 되짚어 본 뒤, 아감벤이 이들 사상가에 주목하면서 풀어내려 하는 정치적 실타래를 추적한다. 이러한 사전 작업을 바탕으로 『호모 사케르』를 현대의 지성사적 맥락 속에서 독해해 나가기로 한다.
*강좌의 전반부 5주는 강의 전에 간략한 강의 내용을 배포하고, 아감벤의 슈미트, 벤야민, 하이데거론을 중심으로 그 기저에 흐르는 정치-사상적 문제의식을 포착한다.
**강좌의 후반부 5주는 『호모 사케르』를 숙독하면서 진행되고, 『호모 사케르』가 국민국가론 등의 문화론적 국가론을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한다.

강의 계획

1주: 근대유럽 주권국가 체제란 무엇인가
주로 칼 슈미트와 한스 켈젠의 논쟁을 중심으로 근대유럽 주권국가 체제의 역사적 구조를 살펴본다.
2주: 발터 벤야민과 칼 슈미트
벤야민과 슈미트 사이에 공유된 ‘주권’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이 생명정치와 갖는 내재적 연관성에 대해 살펴본다.
3주: 하이데거와 헤겔,언어와 죽음
하이데거의 헤겔과의 대결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헤겔과 하이데거가 서구 형이상학의 심연에 언어와 죽음의 문제가 있음을 공유했음을 드러내고, 아감벤의 생명정치가 바로 이 문제의식에 기초한 사유임을 확인한다.
4주: 바이마르의 정치-사상적 문제
그 전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슈미트, 벤야민, 하이데거가 공유한 문제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아감벤의 생명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5주: 생명정치 : 발가벗은 삶과 주권국가
『호모 사케르』 강독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감벤의 생명정치를 그의 다른 텍스트들과의 연관 속에서 살펴본다.
6주: 『호모 사케르』강독 1
주권의 논리 1 : 홉스와 주권자
교재: 조르지오 아감벤,『호모 사케르』(박진우 역, 새물결)
7주: 『호모 사케르』강독 2
주권의 논리 2 : 법, 노모스, 형식
8주: 『호모 사케르』강독 3
호모 사케르 : 신성함, 생명, 추방, 늑대
9주: 『호모 사케르』강독 4
생명정치와 수용소 1 : 생명, 인권, 단순한 삶
10주: 『호모 사케르』강독 5
생명정치와 수용소 2 : 죽음의 정치화, 수용소, 노모스

강사 소개

김항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연세대, 서울대 대학원, 도쿄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표상문화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지역과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문화/사상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정치적인 것’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일을 주된 관심으로 삼고 있다. 저서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새물결, 2009)이, 역서로 <근대초극론>(민음사), <미시마 유키오 vs. 동경대 전공투>(새물결), <예외상태>(새물결)가 있다.

야만과 인간성 - 법과 도덕의 경계에 있는 전쟁 (위르겐 하버마스 99.4.29 디차이트 기고)

[철학]

하버마스의 코소보 관련 기고(99.4.29)

http://www.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germany&wr_id=506&sca=%EC%B2%A0%ED%95%99&page=10
작성일 : 1999/10/21  조회수 : 93

■야만과 인간성 - 법과 도덕의 경계에 있는 전쟁
(위르겐 하버마스 99.4.29 디차이트 기고)

독일군의 첫번째 참전과 함께 오랜 소극성의 시대가 지나갔는데, 이 시대는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인의 정서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다. 물론 나토의 '공습'은 전통적 의미의 전쟁과는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실제로 공습의 '외과수술적인 정확성'과 민간인에 대한 계획적인 보호는 매우 높은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는 지나가는 20세기를 특징짓는 전면전으로부터 작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코소보 분쟁을 텔레비젼을 통해 매일 밤 지켜보는 '반쯤 참여자'들인 우리들도 공습 아래서 몸을 숨기고 있는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에게 이는 전쟁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다행히도 독일 여론에서 둔감한 말투들이 보여지지 않고 있다. 운명에 대한 그리움, 훌륭한 동지들을 위한 지식인들의 북치기 등이 없다는 것이다. 걸프전 당시에만 해도 긴급 사태(Ernstfall)라는 수사법, 국가적 파토스와 위엄과 비극과 남성적 성숙에의 주술들이 소리 높은 평화운동에 반대해 울려 퍼졌다. 이 양진영은 현재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쪼그라든 평화주의에 대해 약간의 심술이 여기저기서 보여지고 있으며 "우리는 도덕의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한다"라는 강력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고는 있다.그러나 참전에 대한 옹호자나 반대자 모두 매우 분명한 규범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은 별로 끄는 맛이 없다.

평화주의적 반대자들은 작위와 무작위 간의 도덕적 구분을 상기시키면서 정확한 군사 공격에도 불구하고 '감수해야 하는' 민간인 희생자들의 고통에 시선을 돌리려 하고 있다. 그 호소는 그러나 이번에는 국시를 중시하는 냉담한 현실주의자들의 양심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 호소는 적녹 연정의 '법률적 평화주의(legal pacifism)'를 겨냥한 것이다. 우리들보다 이성법적 전통이 더 지배적인 전통적 민주주의 국가들 옆에서 우리 독일의 피셔와 샤르핑 장관은 국가들 간의 자연상태를 인권의 측면에서 문명화시킨다는 이념을 끌어오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법이 세계시민의 법(ein Recht der Weltbuerger)로 전환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법률적 평화주의는 주권국가들 간의 잠재적 전쟁 상태를 단지 국제법 상으로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히 법률화된 세계시민적 질서 안에서 지양하려고 한다. 독일에서도 칸트에서부터 켈젠까지 이러한 전통이 존재했다. 그러나 독일의 정부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시민(Weltbuerger)의 연합체에 직접 가입한 한 국가의 국민(Staatsbuerger)은 이를 통해 자국 정부의 자의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 국가들의 주권을 초월하는 하나의 법률의 가장 중요한 귀결은, 피노체트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지도자들이 그들의 지배와 전쟁 행위에서 행했던 범죄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한편에서는 '신념 평화주의(Gesinnungspazifist)'와 다른 한편에서는 법률 평화주의가 공공의 토론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현실주의자'들도 규범적 수사의 외투 아래로 숨어들었다. 찬반 입장들은 각각 서로 반대되는 동기들을 묶어내고 있기도 하다. 주권적 국가 권력에 대한 규범적 제어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힘의 정치 신봉자들이 평화주의자들과 연대하고, 다른 편에서는 순수하게 (나토) 동맹에의 신의를 중시하는 '대서양주의자'들이 인권에 대한 열광을 보여주는 정부 당국자들에 대한 불만을 억지로 감추고 있다. 이 정부 당국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퍼싱 2 미사일 배치에 반대해서 가두 시위를 벌였던 사람들이다. Dregger와 Bahr가 Stroebele 옆에 서있고, Schaeubler와 Ruehe가 Eppler와 손잡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독일의 좌파 정부와 이들의 규범적 논변의 선호는 본래적인 전투 대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공적 토론과 분위기가 다른 서유럽 국가에서와 다르지 않다는 다행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다른 길'이나 '다른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유럽 대륙과 앵글로색슨 간의 분열이 다소 보여지고 있는데, 적어도 유엔 사무총장의 자문을 구하고 러시아와의 협의를 추구하는 측과 주로 자신의 무기를 신뢰하는 측의 분열이 보여지고 있다.

물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과 EU 회원국들은 공동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랑부예 협상이 실패한 이후 그들은 코소보 자치를 위한 리버럴한 규정을 세르비아 내에서 관철시킨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나서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적 처벌을 강행하고 있다. 전통적 국제법에서는 이를 주권 국가의 내정에 대한 개입, 즉 내정간섭 금지의 위반 행위로 여겨질 것이다. 한편 인권 정책의 전제 하에서는 이번 공격은 국제사회로부터 (유엔 위임 없이도 묵인 하에) 권한을 부여받은 평화유지를 위한 군사적 행위로 이해될 것이다. 이러한 서방의 해석에 따르면 코소보 전쟁은 고전적 국제법에서 하나의 세계시민 사회의 세계시민적 법률로의 도약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발전 양상은 이미 유엔 결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동서 냉전기간 중 정체되었고 그 이후 걸프전과 그 외의 군사개입에 의해 가속화되어왔다. 물론 1945년 이후 인도적 개입은 유엔의 이름 하에, (아직 국가 권력이 기능하는 한에서) 해당 국가 정부의 형식적 동의와 함께 이루어져왔다. 걸프전에서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 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치하고 이라크 북부에 쿠르드 난민을 위한 '보호구역'을 설치함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한 주권국가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은 명시적으로 박해받는 소수파를 자국 정부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91년 4월 결의안 688호에서 유엔은 '국제 안보상 위협'이 있는 경우에 가능한 개입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상황이다. 나토는 유엔 안보리 위임 없이 행동하고 있으면서 이 개입을 박해 받은 민족적(그리고 종교적) 소수파를 위한 긴급 구조로 정당화하고 있다.




코소보에서는 이미 공습 수개월 전부터 약 30만명에 대해 살인, 테러, 추방이 가해졌다. 이제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로 향하는 난민 행렬의 충격적 장면들이 조직적인 인종 청소의 증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난민들을 인질로 쓰기 위해 붙잡아두는 경우도 있다. 밀로셰비치가 나토 공습을 자신의 정책을 쓰디쓴 종말까지 계속 밀고 나가기 위한 기회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난민들을 담은 장면들이 이러한 인과적 관련성을 거꾸로 인식하게 할 수는 없다. 협상의 목표가 바로 이러한 살인적인 인종 민족주의를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1948년 민족학살에 대한 협약의 원칙들이 지금 공습 하의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적용되고 있는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와 동경의 전범 재판의 원칙에서 '인간성에 대한 범죄'로서 국제법에 포함되게 된 그러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이다. 얼마전부터 유엔 안보리는 이러한 범죄도 경우에 따라서는 무력 조치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 '평화 위협'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위임이 없는 이번 경우에 군사개입하는 국가들은 오직 그들이 의무지워져 있는 국제법의 원칙들로부터만 이러한 원조 조치에 대한 권한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코소보인들의 동등한 공존에의 권리와 불의한 폭력적 추방에 대한 분노는 서방의 군사 개입에 대해, 다양한 편차는 있지만 폭넓은 동의를 가능케 했다.CDU의 외교 대변인 Karl Lamers는 이러한 동의에 처음부터 수반되어온 이중성을 잘 표현했다. "이렇게 우리 양심은 진정될 수 있다라고 우리의 이성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은 이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많은 불안정의 근원이 있다. 무력 개입 외의 어떠한 대안도 허용하지 않았던 협상 전략이 현명했던가에 대한 회의가 강하게 떠올랐다. 왜냐하면 군사 공격의 목표에 대한 회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에게서 야당에까지 밀로셰비치의 강경노선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의 위험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근 국가인 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 그리고 몬테네그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불안정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핵 폭탄으로 강력하게 무장한 러시아에서는 여러 그룹들의 '형제 민족'과의 연대가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군사적 수단의 적절함이 문제가 되고 있다. 모든 '불가피한 피해', 다뉴브강 교량 파괴로 강으로 떨어진 모든 기차들, 알바니아 난민을 실은 모든 트랙터들, 세르비아인 거주지를 비롯해서 미사일 공격의 희생이 된 모든 민간 시설들은 전쟁의 어떤 익명의 부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군사개입한 '우리들이' 양심에 거리껴하는 그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다.

적절함의 문제는 결정하기가 어렵다. 나토가 국영 라디오 파괴를 30분 전에 고지해야 했던 것은 아닌가? 또한 의도적인 파괴- 불타는 담배 공장과 가스시설, 폭격받은 고층빌딩과 거리와 다리, 유엔 경제제재로 그렇지 않아도 타격을 입은 유고슬라비아의 경제 인프라의 폐허화- 역시 (공습에 대한) 동요를 더욱 크게 한다. 피난 중에 죽어간 모든 아이들은 우리의 신경을 찢어놓는다. 왜냐하면 파악될 수 있는 인과적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이제 책임의 실마리가 엉클어져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참한 추방 속에서 한 국가 테러리스트의 무자비한 정책의 결과들은 그에게 피묻은 무기를 버리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변명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공습의 결과들과 쉽게 풀어버릴 수 없게 엉클어지고 있다.

또한 이제 혼란스러워진 정치적 목표에 대한 회의가 있다. 물론 밀로셰비치에 대한 5가지 요구는 자유롭고 다문화적 보스니아를 위해 데이튼 협정이 상정했던 요구들과 동일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 만일 알바니아계 코소보인의 세르비아 내 자치 요구가 충족된다면 이들은 전혀 분리 독립에 대한 권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대알바니아 민족주의는 나토 군사개입이 억누르고자 하는 대세르비아 민족주의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다. 이제 하루 하루 인종 청소의 상처가 깊어질수록 여러 민족의 동등한 공존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재고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코소보를 분단하는 것은 아무도 원할 수 없는 분리일 뿐이다. 게다가 보호위원회 설치는 전략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즉 지상전과 수십년에 걸친 평화유지군 주둔을 의미한다. 만일 이러한 예견치 않았던 결과가 나타난다면, 이번 작전의 정당화 문제는 사후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물어져야 할 것이다.

독일 정부의 발언에는 어떤 날카로운 음향이 섞여있다. 이는 논란이 되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례에 대해 지나친 염려를 하는 것이며, 마치 피셔와 샤르핑의 강력한 수사와 함께 어떤 다른 목소리가 내부에서 들려오는 것과 같다. 이것은 군사 개입이 정치적으로 실패할 경우 이 개입을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몰아가게 되고 국가 간의 관계를 법제화하려는 노력을 수십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인가? 그렇다면 나토가 국제사회를 위해 짊어진 이러한 '경찰 역할'은 기껏 하나의 '전쟁', 그것도 발칸을 더 심각한 참극으로 몰아넣는 더러운 전쟁이 될 뿐인가? 그리고 이는 이에 대해서 언제나 잘 알고 있던 Carl Schmitt의 말처럼 될 것인가? 그는 "인간성을 말하는 사람은 속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반휴머니즘을 유명한 말로 표현한 바 있다."인간성은 야수성"이라고. 법률 평화주의는 결국 잘못된 기획이 아닌가라는 회의가 이러한 불안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다.




현실정치의 모순

코소보의 전쟁은 정치학과 철학에서도 논쟁이 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민주주의적 법치국가는 정치권력을 법적으로 길들인다는 위대한 문명의 성취를 국제법상 인정된 주체들의 주권이라는 근거 위에서 이룩했다. 한편 '세계시민적' 상태가 이러한 민족국가의 독립성을 의문시하고 있다. 계몽주의의 보편성이 여기서 특정 공동체의 집단적 자기 주장을 가능케하는 정치권력의 고집에 부딪히게 되는가? 이는 인권 정책의 살에 박힌 현실적 가시이다.

현실주의 학파들도 물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과 함께 등장한 독립 국가들 체제가 구조적으로 변동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1) 점점 복잡해지는 세계 사회의 상호의존성 2) 국가들이 서로 협력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의 등장 3) 초국가적 기관과 절차의 숫자와 그것이 가지는 권위의 증가(이는 집단안보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4) 외교의 경제화와 내정/외교의 고전적 구별의 혼돈 등등이다. 그러나 비관주의적 인간 이념과 본래부터 불투명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 등이 상호 불개입의 국제법적 원칙을 고수하는 독트린의 배경을 이룬다. 국제적인 사냥터에서는 독립적 민족국가들이 가능한 한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이해 관계라는 잣대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다. 왜냐하면 이는 한 집단의 안보와 생존은 그 집단 구성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 어떤 것과도 교환할 수 없는 가치이며, 합리적인 자기 주장의 당위성은 집단적 주체들의 관계를 가장 잘 제어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입적인 인권정책은 범주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권정책은 자기 주장이라는 어느 정도 '자연적' 경향을 과소평가하고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규범이라는 기준을 규범화에서 벗어나는 권력 위에 배치하려고 한다. Carl Schmitt는 이런 논변을 자신의 정치적인 것의 '본질 규정'을 통해 끝까지 밀고 갔다. 원래부터 가치중립적인 국가 이념을 '도덕화'하려는 시도를 통해 인권 정책은 국가 간의 자연적 투쟁을 '악에 대항한 투쟁'으로 타락시킨다고 슈미트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반론들이 있다. 즉 (인권 정책은) 이제 국가 시대가 끝났으며 국제사회의 규칙이 힘을 겨루는 민족국가들을 조종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입을 부르는 것은 오히려 국가 권위의 침식이며 무너졌거나 권위주의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한 국가 내의 내전과 종족 분쟁이라는 것이다. 이는 소말리아와 루완다 뿐 아니라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그러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의심도 별 근거가 없다. 현재의 사례는 보편주의적 정당화가 언제나 이해관계들의 특수성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공격에 있어 이러한 의심들이 지적하는 것은 매우 빈약하다. 경제의 세계화 때문에 국내정치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정치인들에게 외교적인 힘의 과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공격에 있어 미국의 동기는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고, 나토의 동기는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며, 소위 '유럽 요새'의 동기는 새로운 이민의 물결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개입에의 결정을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에 대한 반론은 무엇보다 국제법의 주체들이 20세기 참극의 역사에 있어 남겨온 피의 흔적은 고전적 국제법의 무죄 주장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창설과 유엔 인권선언, 그리고 침략과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처벌 위협, 또한 이의 결과로 일정 정도 불개입 원칙을 제한하는 것 등은 금세기의 중요한 윤리적 경험, 즉 전체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경험에 대한 필연적이고 적절한 응답인 것이다.

나아가 정치의 도덕화라는 비난은 개념적 불명확성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시민적 상태를 안정시키려는 노력은 인권 침해 범죄에 대해 도덕적 관점에서 맞서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국가의 법 체계에서 범죄행위를 처벌하듯이 처벌하려는 것이다. 국제 관계의 완전한 법제화(eine durchgreifende Verrechtlichung internationaler Beziehung)은 분쟁 해결을 위해 제도화된 절차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은 오히려 인권 문제를 법적으로 다루는 것이지 권리를 도덕적 차원에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는 소위 '적'을 도덕적 측면에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지탄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또한 하나의 세계국가에 있어 폭력의 독점(Gewaltmonopol)과 세계정부(Weltregierung)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제대로 기능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하며, 국제 형사재판소 판결의 기속력이 필요하며, 각 정부 대표자들의 회담을 '두번째 단계'의 세계시민의 대의 기구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엔을 이렇게 개혁하는 것은 아직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법제화와 도덕화 간의 구분을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기는 하지만 두 날을 가진 칼과 같다. 왜냐하면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의 제도화가 덜 이루어져 있는 한, 법과 도덕의 경계는 현재의 경우처럼 모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리가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나토는 국제법의 도덕적 정당성에 호소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정당성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승인된, 효율적인 법 적용 및 집행 기관이 결여되어 있다.

세계시민 사회의 미비한 제도화는 예를 들어 평화 유지 및 정착을 위한 개입에 있어 정당성과 효율성 간의 간격에서 잘 나타난다. 유엔은 Srebrenica를 보호 항구로 선언했다. 그러나 그곳에 정당하게 주둔한 군대는 세르비아인의 진주 이후 잔인한 학살을 막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나토는 이러한 유엔 안보리의 위임이라는 정당성 없이 실질적인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정부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인권정책의 딜레마

인권정책은 이러한 상황의 간격을 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인권정책은 세계시민법의 제도화 미비로 인해 단지 미래의 세계시민적 상황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역설적 조건 하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군사적 수단을 써서라도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정책을 어떻게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이 세계 전역 모든 곳에 쿠르드 민족이나 체첸이나 티벳을 위해서 개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바로 우리의 문 앞인 발칸에서는 이러한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인권정책을 이해하는데 있어 재미있는 차이가 미국과 유럽 간에 존재한다. 미국은 인권의 전세계적 관철을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사명으로 생각하면서 이러한 목표를 힘의 정치라는 전제 하에서 추구한다. EU의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인권 정책를 오히려 국제관계의 전면적인 법제화 프로젝트로 이해하는데 이러한 프로젝트는 힘의 정치라는 변수도 변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유엔이 허약하게 규제하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잡는 역할을 넘겨 받았다. 여기서 정치적 목표를 평가하는데 있어 인권이 윤리적 가치 지향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언제나 이와 반대되는 고립주의적 경향도 있으며 다른 국가들처럼 미국도 우선적으로 자국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데, 이는 언제나 앞서 선언한 규범적 목표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서 잘 보여졌으며 이는 계속 미국의 '뒷 마당'의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울리히 벡이 "인도주의적 이타성과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의 새로운 혼합 형태"라고 명명한 이런 형태는 미국의 전통이 되어 있다. 1차대전 당시 윌슨 대통령과 2차대전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동기들에는 실용주의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이상의 추구도 존재한다. 독일이 1945년 패전과 동시에 해방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러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러한 매우 미국적인, 즉 규범적 지향성을 가진 힘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와의 전쟁을,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비타협적으로 밀고 나가고 필요한 경우 지상군도 투입하는 것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이는 최소한 일관성이라는 장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아시아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 군사동맹체가, 국제법이나 유엔 헌장에 대한 완전히 다른 그들의 해석에 근거해서, 군사적 수단으로 인권 정책을 진행시켜 나간다면 그때 우리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권이 자신의 정치 행위를 윤리적으로 지향시키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의미에서 하나의 권리로 나타난다면, 상황은 달리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인권은, 그 윤리적 내용과는 무관하게, 기속력 있는 법률 체계 속에서 효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개인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권이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민주주의 법치 체제 안에서 마치 한 국가의 헌법에서처럼 위치지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권리의 수취인이 곧 이의 발신인으로 이해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의 기구들은 기속력 있는 법 적용과 민주적 입법을 완성시키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규범은 그것이 아무리 내용적으로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폭력적으로 강제되는 제한에 불과할 것이다. 코소보에 개입한 국가들은 물론 유고 정부가 인권을 짓밟은 사람들의 권리를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베오그라드 거리에서 춤추는 세르비아인들은 Slvoj Zizek이 말했듯이 "민족주의의 저주에서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변장한 미국인들이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 질서가 군사력으로 강요되고 있다. 유엔이 회원국인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결정하지 않는 이상 이는 규범적 관점에서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19개의 의심할 바 없이 민주주의적 국가들 역시 그들이 스스로 개입을 결정한다면 한 정파에 머물게 된다. 그들은 오직 독립적 기관에만 주어지는 개입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한 이상 그들은 가부장적(paternalistisch)으로 행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적절한 도덕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적 가부장주의가 불가피하다는 의식 속에서 행위한다면 그가 행하는 폭력이 아직 민주적 세계시민사회의 틀에서 정당화된 법률 행위의 성격을 얻고 있지 못함도 알고 있어야 한다. 도덕적 규범들은 우리들의 보다 나은 통찰에 호소하지만, 제도화된 법률적 규범인 것처럼 강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힘의 정치에서 세계시민 사회로

제도화된 세계시민 상태는 앞으로 추구되어야 하는데 마치 그것이 이미 현존하는 것처럼 행위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희생자들을 외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국가 권력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테러가 될 때 고전적 의미의 내전은 인민에 대한 범죄가 된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민주주의적 이웃국가들은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되는 긴급구조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세계시민 상태의 미완성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이미 존재하는 제도와 절차는 전체를 위해 행동하는 한 특정 정파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오해들의 한 원천은 예를 들어 정치적 정서들이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에 있는 것처럼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나토의 공중전과 세르비아의 지상전에 엔첸스베르크가 말하는 것처럼 4백년의 시간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있어서 내게는 그림멜하우젠보다는 에른스트-모리츠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새로운 의미에서 '제1' 세계와 '제2' 세계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오직 평화적이고 부유한 OECD 국가들만이 자신의 국가적 이해관계를 유엔의 거의 세계시민적인 요구 수준과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새로운 의미에서의) '제2 세계'는 유럽 민족주의의 힘의 정치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리비아, 이라크, 세르비아와 같은 국가들은 국내의 불안정한 상황을 권위주의 통치와 자기정체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통해 보완하는데, 이들은 외부적으로 팽창주의를 펴고 있으며 국경 문제에 예민하고 주권 문제에 있어 신경과민을 보이고 있다. 이런 종류의 관찰은 서로 간의 교류에 있어 문턱을 더욱 높이게 된다. 현재 이러한 문턱이 외교적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주목할만한 정치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헤게모니를 움켜쥔 질서의 수호자로서 인권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다른 한편 우리(유럽인)들은 전통적 힘의 정치로부터 현재의 무력 분쟁을 넘어 세계시민적 상태로 가는 과도기를 함께 풀어나가야 할 배움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장기적 전망을 볼 때 우리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나토가 자기 자신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