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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0일 화요일

윌버포스: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가트 린

윌버포스: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가트 린 지음 | 송준인 옮김 | 두란노 | 2001년 04월 25일 출간

목차

1. 노예 무역의 중심지 영국 ...29
2. 헐 소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다 ...39
3. 윌버포스와 친구들 ...49
4. 요크셔에서의 승리 ...59
5. 회심 ...67
6. 하나님이 주신 두가지 소명 ...83
7. 노예 무역 폐지 운동 ...93
8. 마침내 얻은 승리 ...111
9. 영국 사회의 상황 ...125
10. 또하나의 소명, 관습개혁 ...139
11. 포화 속의 평온 ...153
12. 클래펌 공동체 ...165
13. 행동하는 공동체 ...183
14. 사람을 낚는 어부 ...193
15. 실제적 견해 ...213
16. 개혁자의 가정생활 ...223
17. 노예가 먼저냐, 동포가 먼저냐? ...243
18. 노예해방 ...263
19. 정치가를 잃었는가, 찾았는가? ...281

출판사 서평

50여 년 동안 영국의 "노예 무역 폐지"와 "관습 개혁"을 위해 헌신했던 위대한 신앙인 윌리엄 윌버포스의 일생을 다룬 책이다. 20대 초반에 의회로 진출한 윌버포스는 회심을 경험한 이후 아무리 바쁜 정치 일정 속에서도 매일 아침 하나님과 교제하는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개인적인 야망을 버리고 하나님께 받은 소명, 즉 "노예 무역 폐지"와 "관습 개혁"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또한 19세기 전후 부패한 영국 사회의 많은 제도를 개혁하고 제거하는 데 힘썼다. 암살 위협, 온갖 중상 모략과 비방을 받으면서도 외롭고 기나긴 의의 싸움 끝에 "영국의 양심"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윌버포스의 일대기는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 깊은 영성과 예리한 실력을 겸비한 평신도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1787년 10월 28일, 27세의 젊은 영국 국회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두 가지 큰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 사회를 개혁하려는 이러한 윌버포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하여 그를 "영국의 양심"이라 불렀다. 그의 영향으로 영국의 젊은 국회의원 3분의 1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되었다.-본문에서

윌리엄 윌버포스에 대한 간략한 소개
윌리엄 윌버포스(1759. 8. 24-1833. 7. 29)는 세계사에서 대영 제국이 막 태동할 때인 1759년 영국의 부유한 항구 도시 헐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막강한 상권을 쥐고 있었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유복하게 자랐고,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의회에 진출한 윌버포스는 다방면에서 재능이 뛰어났고 사교술도 풍부했으며 언변도 탁월해서 사교계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친구인 밀너를 통해 회심을 하게 되었다. 지금껏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들이 조롱했던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당시 상류 사회에서는 기독교를 품위 있게 향유해야 할 교양 이상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는 앞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그날 이후 자신의 개인적 야망을 모두 떨쳐 버렸다. 그러나 당대 사회에서는 정직하고 바르게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정계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의원직과 행정 관직의 매매와 부정 부패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윌버포스는, 그곳 의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기 위해 기도하던 중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관습 개혁"과 극악 무도한 "노예 무역 폐지"였다.

당시 영국은 노예 무역을 통해 국가 수입의 3분의 1을 얻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던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고 많은 이익을 남기고 무작위로 팔아 넘겼다. 뿐만 아니라 혹독한 처우로 인해서 노예 수송을 하던 중 10% 가량이 죽었고 수많은 노예들이 인간 이하의 참담한 대우를 받았다. 윌버포스는 이 노예 무역 폐지야말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라고 확신했고 폐지를 위해서 헌신을 다했다. 그러나 영국 사회는 이미 국익이라는 이름 하에 노예 무역 폐지를 '매국'으로 치부했다. 그는 암살 위협과 갖은 중상 모략과 비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매진했고, 결국 의회에서 싸워 온 지 56년 만에 노예 무역 폐지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시점에서 노예 무역이 폐지되지 않았다면, 아마 아프리카는 19세기 후반에 밀려든 서구 자본가에 의해 끔찍한 노예 농장의 각축장으로 변했을 것이다.

윌버포스는 또한 당시 여러 악습의 폐지를 위해서 일했다. 불경스러움과 부도덕한 악을 방지하도록 하였다. 이런 총체적 개혁을 위해 그는 조지 3세를 독려해서 "관습 개혁에 대한 포고문"을 발표하도록 했고 몸소 개혁을 위해 힘썼다. 또한 가난과 빈곤에 냉담한 영국인들을 일깨워 자선 활동을 하게 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자발적인 자선 활동이 영국 내에서 정착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저자 소개
가트 린(Garth Lean)은 영국의 저널리스트로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법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학 분야의 평생 연구원인 그는 현재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로는 개신교와 카톨릭을 통틀어 용기 있는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Brave Men Choose, 존 웨슬리에 관한 책 Strangely Warmed, 논쟁을 불러일으킨 크리스천 정치인 프랭크 부흐만에 관한 최초의 전기 On the Tail of a Comet : The Life of Frank Buchman 등이 있다.

역자 송준인 서울 대학교 영어학과(B.A.)와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Th.M.)을 졸업하고 남아공화국 스텔렌보쉬 대학에서 신학 박사(Th.D. 기독교 윤리 전공) 학위를 받았다. 현재 총회 개혁 신학 연구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는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 「리처드 포스터가 묵상한 신앙 고전 52선」(이상 두란노), 「은사와 은혜」, 「성서대백과」(이상 기독지혜사), 「최후의 시간」(미래사)외 다수가 있다.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부르디외는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4
부르디외는 없다
[28호] 2011년 01월 07일 (금) 18:17:12피에르 랭베르  info@ilemonde.com
경제 시스템이 온갖 폐해의 주범으로 몰리며 갈수록 거센 비난을 받는 가운데, 이와 관련해 대중은 시위를 벌이고, 학자들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어떤 총체적 이론도 두 요소를 연계해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 프로젝트를 구축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여전히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구성하고 활용하는 기관들은 지금도 학술적 문화와 투쟁적 실천의 조화를 이뤄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거리는 인파로 가득하고 구호는 더할 나위 없이 공격적이다. 사람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노래를 부른다. 노조원들의 기세에 지도부마저 압도당한 듯하다. 2010년 가을 연금개혁 법안에 대한 사회적 투쟁에는 1995년 11∼12월보다 많은 시위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식인을 친(親)권력파와 친시위대파로 양분해 투쟁을 방해할 만한 논제가 전혀 없었다. 15년 전의 모습은 이와 달랐다. <<원문 보기>>
파리 리옹역 로비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곳곳에 현수막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어느 연사를 향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바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철도 노동자를 상대로 연설하는 중이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공공서비스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세력에 저항하며 3주 전부터 투쟁해온 모든 분들께 우리의 지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프랑스 지식인이 노동자 곁에 선 모습은 1970년대 이래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1995년 12월 12일 화요일, 알랭 쥐페 총리가 주도한 사회보장 및 연금에 관한 이른바 ‘개혁’ 법안에 반대하는 200만 명이 거리시위를 벌였다. 파업이 시작되자 낯선 모습과 낯익은 모습이 오버랩됐다. 한편에는 임금노동자들이 있었다. 1980년대 산업구조조정 당시 철학자·언론인·정치인은 자신들이 이들을 골방에 꽁꽁 가둬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판적 연구자들이 다시금 등장했다. 이들은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현장에 관해서도 사상적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상반되는 어조의 탄원서 두 건이 프랑스 지성계의 분열을 드러냈다. ‘사회보장의 근본적 개혁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첫 번째 탄원서는 쥐페 총리의 법안이 “사회정의와 맥을 같이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톨릭 좌파 평론지인 <에스프리>, 생시몽 재단, 프랑스민주노동동맹(CFDT)을 위시해 시장에 동조하는 좌파가 탄원서 서명의 주축이었다. 또 다른 탄원서의 제목은 ‘파업노동자를 지지하는 지식인의 호소’로, 이때까지 뿔뿔이 저항운동을 벌이던 대학교수, 노조 및 협회 운동가들이 뜻을 함께했다.
부르디외가 철도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한 지 15년이 지난 오늘날, 저항적 사상의 생산자들과 이들이 몸담은 기관, 그리고 사회운동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서점이나 각종 집회, 사회과학 세미나 등을 보면 모순된 두 가지 움직임이 공존하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비판 사상이 예리해지는 동시에 확산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전문성을 띠며 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규범을 따르는 추세다.
1995년 시위는 독립출판의 쇄신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레종다지르(1996), 아곤(1997), 라파브리크, 에그질(1998), 막스밀로(2000), 암스테르담(2003), 레프레리오르디네르(2005), 린니으(2007) 등 출판사 30여 곳(1)이 탄생해 비판적 저작물의 보급에 힘쓰고 있다. 이들의 간행물은 여러 가지 차이와 다양성을 뛰어넘는 공통적 특성이 있다. 바로 번역물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과거 산업적 출판업계에서 거들떠보지 않던 저작물들을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출판사들이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고집을 부린 덕분이다. 오늘날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나 노엄 촘스키의 저서들이 대표적 사례다. 뿐만 아니라 1960~70년대 영국 신좌파가 내놓은 문화·역사·사회 분석(스튜어트 홀·레이먼드 윌리엄스·페리 앤더슨), 경제학자 조반니 아리기,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신마르크스주의 저서, 남성·여성, 성(性), 피지배층 정체성에 관한 연구, 지금은 이름이 잘 알려진 주디스 버틀러, 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의 글들도 마찬가지다. 이와 동시에 대여섯 종의 평론지가 출판사의 지원으로 등장해(2) 이런 텍스트들을 소개하고 논하고 프랑스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텍스트의 저자 및 평론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거의 대부분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역사학자인 페리 앤더슨은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라틴계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략) 영국, 미국, 독일연방, 스칸디나비아 국가에는 전후 시기에 (라틴계 국가 같은) 기대와 희망을 불러일으킬 법한 대중적 공산당이 존재하지 않았다.”(3) 1970년대 중반 많은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포기했을 때, 영국과 미국 등지의 대학교수들은 <뉴 레프트 리뷰> 등 평론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의 초석을 깔았다. 하지만 여전히 학계의 성채 안에 갇혀 있던 터라 이들의 저작 번역물을 이해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왼쪽으로, 다만 상업적으로
1997년 갈리마르 출판사의 <역사의 서재> 총서 총괄 담당인 피에르 노라는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아직도 ‘혁명적 대의에 멀리서나마 애착’을 표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가 쓴 <극단의 세대>(4)의 출간을 거부했다. 노라는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안 먹힌다. 그게 현실이고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5) 하지만 자본주의가 격변을 겪고 대안세계화운동이 국제적으로 발전하면서 1980년대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이념의 추도 중심을 되찾았다.(6) 시대는 변했고, 투쟁은 결실을 거두었다. 그 결실을 장사꾼들이 거두기도 했지만 말이다. 독립출판사들의 주도로 발간된 비판적이면서 까다로운 내용의 서적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대형 출판사들은 다시금 저항을 유망 분야로 인식했고, 투쟁가들의 시선(과 지갑)을 유인하기 위해 공들여 준비한 각종 총서를 대거 선보였다. 레종다지르 출판사가 내놓은 투쟁 총서의 초기 작품들이 성공을 거두자 이를 무시하려 안간힘을 쓰던 <르몽드 데 리브르>(일간지 <르몽드>가 주 1회 발행하는 도서 섹션)도 2010년 11월 26일자에서 ‘저항적 글’을 비중 있게 다루며 저항적 문체를 높이 평가했다.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미디어, 고삐 풀린 금융, 서구 질서에 대한 비판이 이제는 상업적으로 각축을 벌이는 분야가 된 것이다.
1930년대 초, 폴 니장은 보수적인 대학에 ‘감시견들’이 우글대는 모습을 묘사했다.(7) 1960~70년대 급진적 격변기에는 인문과학, 사회비판, 혁명이 함께 발맞춰 나가는 듯했다. 두 시대를 나란히 놓고 보면 대학은 제도권에 주춧돌을 마련해주고 의지하는 동시에 맹렬한 혁명가들을 배출하는 역량을 갖춘, 한마디로 갈등이 도사리는 기관임을 알 수 있다. 비판적 출판 부문이 학계와 교수·연구자들에게 견지하는 매료와 거부의 이중적 관계도 바로 이런 모순에 힘입어 증폭된다. 인문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거나 이미 학위를 취득했지만 지적 작업과 저항 활동을 병행할 수 있게끔 고등교육이나 연구 분야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30~40대 남성이 전형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 ‘투쟁적’ 출판자다. 물론 실제로는 종사자들의 이력이 다양하지만, 아무튼 이는 ‘학자’와 ‘정치인’이라는 두 개의 의자에 걸쳐 앉은 이들의 세계에 퍼져 있는 본질적 갈등을 명확히 보여준다.
출판자는 과학적 방식의 견고함과 명성을 지닌 저자들을 대학에서 찾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연구대상 폭이 여전히 협소하고 난해함을 즐긴다는 점에는 불만을 토로한다. 쉼표 하나만 위치를 바꿔도 당장 소송이라도 걸 기세인 까다로운 학자들의 요구 앞에서는 머리를 쥐어뜯지 않을 수 없다. 출판자는 사회비판 총서의 책임자로 교수·연구자를 내세우거나 적어도 학문과 정치(즉, 사상의 생산과 소비)에 양다리를 걸친 후보자를 기용하는 편이 안전하고 이롭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 논리로, 사회비평지 대표는 독자위원회를 기왕이면 대학 강사, 박사과정생, 권위 있는 저자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정치단체·협회 등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과 유기적 관계를 맺은 지식인은 종종 배제되곤 한다.
단체 몸담은 지식인은 찬밥
‘참여’ 전문지들의 편집위원회가 대중에게 전달할 저항적 글을 고르는 과정에서 학술지의 자문위원 같은 ‘반열’의 이름들만 찾아내려고 한다면, 과연 모든 비판 사상들이 선별의 체를 통과할 수 있을까? 물론 박사 교육을 거친 학위 취득자들이 견고한 분석 방법, 폭넓은 지식, 그리고 비판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박사과정에서는 이와 동시에 포기하는 방법을 배우고, 품위와 우월성을 지향하는 교육을 받으며, 책임 전가의 성향도 얻게 된다. 또한 과도한 학문적 전문화의 영향으로 사물을 좀더 복잡하게 진단하려고 한다. 아울러 이 과정은 비판은 허용하되 정치는 거부하며 진지함과 허세의 경계를 자발적으로 모호하게 만든다. 기존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의 운명을 편집 과정에서 봉인해버리는 ‘호모 아카데미쿠스’라면 이미 중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다. 글을 읽으면서 빛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장과 연계된 편견을 동원하니 말이다.
저작자들에게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측된다. 1960년대 독일·미국·프랑스·이탈리아·영국에서 대학은 급진 청년들의 정치적 사회화를 위한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보수주의 물결이 다시금 거세지고 각종 집단이 해체되면서 많은 혁명투사가 당시 선발 인원이 대폭 늘어난 사회과학 고등교육 및 연구 쪽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의 활동이 막을 내릴 즈음, 이번에는 1995년 11∼12월 파업시위를 보며 급진화된 일련의 학생들이 학계에 발을 내디뎠다. 물론 대학 전체에서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라즈믹 쾌셰얀은 현대 비평이론들의 세계적 파노라마를 다룬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오늘날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비판 사상가들이 대학에 몸담고 있다. (중략) 대학에서 생산하는 이론들은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대학 시스템에 온전히 편입된 이들은 결코 반(反)지성 사회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는 20세기 초 독일 사회민주주의간부학교나 프랑스 공산당학교와 다른 점이다.”(8) 이들 학교는 정치 지도부, 사상 생산자, 사회참여 세력 사이를 상시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에는 노동회관(Bourse du Travail)에서 활동하는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자들이 이들 세 개의 톱니바퀴를 하나의 축으로 규합하려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공산당의 영향력은 고등교육의 움직임에 따라 굴절됐다. 대학에서 자리를 꿰찬 공산주의 철학자, 역사학자, 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와 개념, 용어를 도입했다. 이들은 당시 상당한 지적 구심력을 행사하던 공산당에 새로운 당원들을 끌어들였다. 좌파 조직들이 취약해지고 노조 내부 교육기관들이 쇠퇴하면서 노동운동과 유기적 관계를 맺던 지식인들의 마지막 피난처도 훼손됐다. 사회적 열기가 사그라든 시기에 이를 다시 이어나가기 위해 각종 재단과 상설 조율기구, 공개토론회, 구상위원회 등 여러 해결 방안이 마련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인력의 방향은 역전됐다. 독학으로 교양을 쌓은 이들(프랑스 정치사의 중심적 인물들)마저 학자의 권위에 매료된 나머지, 심지어 자유주의적 평론지조차 경찰 탄압에 관한 특집 기사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 대학 강사에게 해설을 의뢰할 정도였다. 이들의 지위가 논지에 정당성을 실어줬던 것이다.
비판은 허용하되 정치는 거부
1995년 11∼12월 파업시위를 계기로 결집한 지식인들은 엄격하면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분석도구를 갈구하던 이들에게 세계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제공해줬다. 이는 비판이론과 사회운동 간 직접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런 동력이 대안세계주의 운동의 성공과 결합하면서 2000년대 초에는 투쟁문화와 학술문화를 넘나드는 저작물이 쏟아져나왔다. ‘참여적’ 대학교수·연구원인 저자들은 새로운 저항의 흐름을 세밀히 파고들었다. 이들이 사회투쟁의 거창한 비전을 ‘따끈따끈한 상태로’ 제시하거나 이런 투쟁의 정당성을 언론인에게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언론인은 전문가의 견해에 기대어 투쟁을 해설하고 논의를 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학자의 작업은 머지않아 학술적 비평의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들의 맹점은 바로 전략적 문제였다. 가령 독일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어느 정치·경제학 전문지의 독자위원회에 자신의 글을 보여주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면, 그는 아마 독자층과 목표를 달리 설정해야 했을 것이다. 대중을 조직하고 기존 질서를 전복하며 ‘지금 여기서’ 권력을 잡는 등 20세기 혁명가들에게나 21세기 ‘볼리바르적’(베네수엘라의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1783~1830)의 사상을 추종) 사회주의자들에게 똑같이 제기되는 문제를 대학 연구의 틀에서 풀 수는 없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최신 지식으로 무장했을 뿐 아니라 학술적 인정 기준과 학문 간의 벽에서 자유로운 지식인이 필요하다.
지위가 곧 논지의 정당성
경제학, 역사학, 사회학, 철학, 인구학, 정치학 등 사회비판도 학술활동의 영역 구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배운 바를 이용해 테크노크라트들의 권위에 맞설 능력을 갖추고 저항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적잖다. 하지만 이런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논리 때문에 노엄 촘스키나 에드워드 W. 사이드(9)처럼 합리성·평등·해방 등 보편적 범주를 기반으로 정치적 활동을 펼치는 지식인은 점차 공적인 무대에서 배척됐다. 이들이 거의 사라짐과 동시에 프랑스 사상의 거장들(피에르 부르디외, 자크 데리다, 피에르 비달나케, 장피에르 베르낭)까지 세상을 떠나자, 결국 지성을 이용한 마케팅과 군주를 상대로 한 자문이라는 두 가지 활동에 보편성을 예속시키며 매스컴을 타는 에세이스트들이 활개를 치게 됐다.(10)
첫눈에 보기에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들이 비판 사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치화된 학생들의 갈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 듯하다. 학술활동과 사회참여를 지속적으로 조화시킨다는 것은 도박이라 할 만큼 쉽지 않다. 선택의 순간을 늦추기 위해 학생 겸 투사는 사회참여를 뒷전으로 미루기보다 별도의 대상으로 부각시킨다. 즉, 각종 참여활동과 시위를 분석하는 동시에 직접 시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논문을 쓰는 시점에는 연구대상이 돼버린 신념과 거리를 둬야 한다. ‘더 객관적으로’ 보이려면 덜 참여적으로 보여야 하며, 급진성은 단순성과 일맥상통한다는 시각이 있기에 ‘더 섬세하게’ 보이려면 더 온건해 보여야 한다. 눈에 띄지 않게 경계선을 넘어야 한다. 민중의 세계에서 학문의 세계로 자리를 옮긴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세계의 반쪽으로 슬그머니 넘어왔다. 여기서 나머지 반쪽 세계는 배경에 불과하다.”(11)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에르노 같은 경로를 거친 이도 여럿이다.
학우들에게 사회운동에 관한 사회학 서적을 홍보하면서 자신이 인간 해방에 기여한다고 믿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어느 ‘비판적’ 잡지 편집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기왕이면 나중에 자신의 논문 심사위원이 될지 모르는 인물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면 더 좋으리라. ‘글로벌 위기: 경제와 사회의 재조명’에 관한 고찰을 교수들이 다른 교수들 앞에서 발표하는 세미나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지인들에게 전체 전자우편으로 알리기도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에서 “각종 사회과학 학문의 식민통치 이후 (페미니즘적) 관점의 인식론적·방법론적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열리는 학술대회의 머리를 장식할 ‘식민 유산과 식민통치 이후 저항: 인문사회과학의 식민 해방’이란 주제의 발제자 모집에 응하기도 한다.(12) 이런 과정을 끝내고 투쟁가에서 투쟁 이론가로 변신한 이들은 거리로 나서기보다 원고지 채우기를 더 편하게 느낀다. 혹은 자신들의 연구법을 사물의 질서보다 말의 질서를 위협하는 정치적 명분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매진한다.
엘리트 교육기관인 소수의 그랑제콜들과 개혁으로 취약해진 다수의 교육기관들로 양분된 교육 시스템을 뒤흔드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과연 정치적 투쟁과 대학 연구활동이 결국은 하나라는 신념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다수 교육기관에서는 학생들의 현실이 불안정해짐과 더불어 교육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1960∼70년대에 인기 절정을 구가한 사회과학 학문들도 지금은 가치가 급격히 하락해,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박사들이 거머쥐는 것은 빛바랜 학위증에 불과하다. 학위 취득을 위해 이들은 많은 것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포기했다. 수당 수혜 자격이 없는 많은 이들이 실업 상태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교통비를 냈으며, 연구실이나 지도교수를 위해 무료 봉사도 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심사위원 교수들의 ‘기고문’, ‘원론서’, ‘기본서’ 등을 인용하며 부랴부랴 논문 초고에 깨알같이 각주를 삽입했을 것이다. 비록 그 교수들이 자신의 논문 주제와 상관없는 분야 출신일지라도 말이다.
촘스키와 사이드를 배척하다
장애물 경주에서 점점 힘이 달리더니 결국에는 낙오하고 만 유수 대학 출신자들을 결승 라인에서 기다리는 것은 물거품이 된 커리어와 명성뿐이다. ‘사회학·민족학 전공으로 박사 예비과정 학위를 취득하고 뛰어난 과학적 감수성을 보유’한 학생의 미래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는 2010년 9월에 그가 받은 다음과 같은 인턴십 공고 전자우편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세브그룹은 자회사 칼로르에서 근무할 인턴을 모집합니다. 임무: 머리카락의 민족학적 분석, 성별: 불문. (중략) 상세업무: 미용 본부에 배속돼 대상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머리카락, 체모, 피부의 주요 유형(지름·두께·형태 등의 특징), 근본적 차이, 관련 습관(제스처, 화장품 사용법), 기타 문제점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 스스로 에밀 뒤르켐의 후계자라고 생각한 이가 헤어드라이어 조사관 노릇이나 하게 된 것이다.
빛바랜 학위증, 포기냐 저항이냐?
대학 교육을 받으며 키워온 열망과 실제로 제공되는 직업의 기회가 불일치하면 결국 포기를 하거나, 아니면 저항을 하게 된다. 2006년 겨울, 학생들이 불안정성과 최초고용계약(CPE)법에 반발해 벌인 급진적이고 단호한 시위는 이미 노선의 변화를 예감케 했다. 대학 학부부터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고등교육의 혜택에 대한 믿음이 갑자기 요동친 것처럼 모든 상황이 전개됐다. 겨울 한철 동안 대학 캠퍼스들이 ‘정치적 사회화’라는 기능을 되찾은 듯했다. 일부 모임은 언론의 압력에도 끄떡없이 사회과학의 도구들을 이용해서 노조 운동가들과 연계해 사회 전반에 걸친 요구사항들을 마련했다. 부르디외가 그토록 추구하던 ‘집단적 지식인’의 예기치 않은 변종이 등장했다고 봐도 무방할까?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각주>
(1) Sophie Noël, ‘도서산업의 세계화에 맞선 소규모 독립출판: ‘비판적’ 에세이 출판사들의 사례’, in Gisèle Sapiro, <출판 세계화의 모순들>, Nouveau Monde, 파리, 2009 참조.
(2) <아곤>, <콩트르탕>, <린니으>, <무브망>, <뮐티튀드>, <서적·사상 국제리뷰>(2010년에 발행 중단), <바카름므> 등이 대표적이다.
(3) Perry Anderson, <역사적 유물론의 궤적>, Verso, 런던, pp.76~77, 1983.
(4) 결국 1999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콩플렉스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됐다.
(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7년 3월호의 세르주 알리미, ‘출판의 매카시즘’을 읽을 것.
(6) François Cusset, <10년: 1980년대의 엄청난 악몽>, La Découverte, 파리, 2006.
(7) Paul Nizan, <아덴, 아라비>, Maspero, 파리, 1960(1931) 및 <감시견>, Agone, 마르세유, 1998(1932).
(8) Razmig Keucheyan, <좌반구: 새로운 비판사상의 지도>, La Découverte, ‘Zones’ 총서, pp.28~29, 2010.
(9) Edward W. Said, <지식인과 권력>, Seuil, 파리, 1994를 읽을 것.
(10) Bernard-Henry Levy, Jacques Attali, Alain Minc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발표한 서적은 모두 합하면 63권에 달한다.
(11) Annie Ernaux, <La Place>, Gallimard, p.96, 1983.
(12) 2010년 가을 메일링 리스트 ‘historicalmaterialism @yahoogroups.com’을 통해 발송된 전자우편 중 수집된 사례.

2014년 10월 5일 일요일

현대 사회이론의 흐름, 브라이언 터너

 

현대 사회이론의 흐름
브라이언 터너 지음 / 고형면, 고호상, 권오헌, 김민규, 박선권, 박형신,이택면, 정헌주, 최원기, 홍성태 옮김
한울아카데미 / 2010-02-27 발행 / 신국판 / 양장 / 912면 / 59,000원
ISBN 978-89-460-5236-9 93330
분야 : 사회학
 
 이 책은 고전시대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는 사회이론에 관한 글들을 모아 놓은 독보적인 모음집이다. 이 책은 사회, 정치, 문화, 젠더, 인종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쟁점들을 최근의 쟁점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루고 있다. 글쓴이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매우 신뢰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매우 가치 있는 참고문헌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 존 오닐, 요크대학교, 토론토

독자들의 편에 서서 개정된 이 안내서의 인상적인 모티브는 브라이언 터너가 ‘치장적 이론’―문화이론이 자체의 목적으로 삼아 온 것―이라고 부른 것을 추방하는 것이다. 그는 새롭게 추가된 장인 사회인류학과 몸에 관한 장에 반영되어 있는 비교·역사연구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 레이 팔, 켄트대학교

이 책은 블랙웰이 출판하고 있는 ‘길잡이’ 시리즈의 하나인 The Blackwell Companion to Social Theory(second edition)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현재 국내에 나와 있는 사회이론 책들은 교과서로 집필된 것으로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고급 수준의 이론을 한 권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은 사회이론의 발전을 학자별이 아닌 주제(관점)별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국내에 출판된 사회학이론 교과서와는 커다란 차별성을 지닌다. 그것도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학자들이 사회, 정치, 문화, 젠더, 인종 등 사회이론의 전 영역을 최근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집어가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글쓴이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방대한 참고문헌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사회학 전공자는 물론 사회과학 전반의 전문가와 학부 고학년, 대학원 학생들에게 아주 좋은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높은 평가를 받은 제1판의 성공을 바탕으로『현대 사회이론의 흐름(제2판)』에는 완전히 새로운 네 개 장, 즉 사회이론의 토대, 인류학, 현상학, 몸의 사회학에 관한 장을 추가했다. 제1판에서 나온 내용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정·확대·경신했으며, 페미니즘은 제2의 물결 페미니즘과 현대의 페미니즘이론,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 논의를 확충했다.
이 책은 사회현실에 관한 현대의 분석을 틀 짓는 다양한 접근방법과 분석틀을 통해 학생들과 학자들을 인도한다. 주요 초점은 포스트 고전적인 근대 사회이론에 맞추어지지만, 하버마스, 푸코, 데리다 같은 주요 포스트 고전사상가들도 검토된다. 이들은 파슨스, 고프먼, 엘리아스 같은 인물들이 발전시킨 고전적 전통의 맥락에서 등장한다.
세계의 선도적인 사회이론가들이 집필한 18개의 글을 이론가 중심이 아닌 주제별로 묶어낸 이 책은 현대 사회이론 내의 주요 논쟁과 발전은 물론, 고전사회사상의 전통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동시에 방대한 참고문헌들은 현재의 문헌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머리말
감사의 말
제1부 토대 Foundation
제2부 행위, 행위자, 체계 Actions, Actors, Systems
제3부 사회·문화분석의 관점들 Perspectives on Social and Cultural Analysis
제4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점들 Perspectives on Time and Space
제5부 사회이론의 현대적 발전 Contemporary Developments in Social Theory
제6부 지식인과 공론장 Intellectuals and the Public Sphere
책을 옮기도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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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논쟁-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이론, 스티븐 사이드먼

-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이론
스티븐 사이드먼 (지은이) | 박창호 (옮긴이) | 문예출판사 | 1999-08-30 | 원제 Contested Knowledge


20세기 사회이론을 총망라하여 21세기 사회이론의 방향을 제시한 책. 사이드먼의 <지식논쟁>은 고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이론을 빠짐없이 다루면서도 독창적이고 일관된 메시지를 담는다. 그것은 '사회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과, '사회학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라는 방향 제시.

현실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이 되레 현실을 보지 못하는 심각한 학문적 위기를 경험한 지금, 사이드먼은 도덕적 인간학, 공공성을 갖는 사회학을 통해 사회학의 현실성 회복을 시도한다. 이 책은 고전사회학자들(콩트,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등)에서부터 현대 사회이론가들(하버마스, 푸코, 기든스, 부르디외, 월러스틴, 홀 등), 그리고 그동안 사회학에서 소홀히 했던 사상들(페미니즘, 후기구조주의, 퀴어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검토한다.

오늘날 사회이론이 어떤 맥락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식논쟁>은 사회학이 직면한 이론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의 확장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사회학이론 영역 외에도 지식사회하, 사회학사, 사회과학방법론을 위해 의미있는 책이 될 법하다.

옮긴이 서문: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사회학을 위하여
머리말
감사의 말

서문

잃어버린 약속: 위기에 빠진 사회학이론
사회이론에서의 끊이지 않는 긴장
이 책의 개관


제1부 계몽주의와 고전의 전통: 이성의 꿈

1. 거시적 통찰력: 오귀스트 콩트와 카를 마르크스
2. 사회학의 약속: 에밀 뒤르켐과 막스 베버


제2부 이론의 설정: 사회학 이론의 형성

3. 유럽 사회이론에서 미국 사회학이론으로: 탈콧 파슨스와 이론의 자율성
4. 과학적 이론의 승리: 전후 미국사회학 이론과 공공 계몽주의의 포기


제3부 규준으로부터의 이탈: 인간학의 도덕적 시각에 대한 재평가

5. 과학과 정치학 사이: C. 라이트 밀스, 위르겐 하버마스, 스튜어트 홀의 비판이론
6. 지식과 권력: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자들
7. 새로운 사회운동과 새로운 지식의 형성
8. 21세기를 위한 사회학의 탈바꿈

 최근작 :<지식논쟁> … 총 30종 (모두보기)
 소개 :미국의 사회학자. 뉴욕의 신사회연구소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뉴욕 주립대학(알바니)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유럽사회이론의 기원>이 있으며, 최근에는 <포스트모던으로의 전환: 사회이론의 새로운 관점>을 편집하였다. 제프리 알렉산더와 함께 편집한 <문화와 사회>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사이드먼은 유럽의 학문적 전통과 깊이에 관심을 갖고,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미국의 사회학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사회이론가이다.
 최근작 :<사이버공간의 사회학> … 총 3종 (모두보기)
 소개 :경북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영국정부의 쉐브닝 스칼라쉽으로 헐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영남대, 대구효성가톨릭대에서 정치사회학, 사회학이론, 문화사회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탈근대세계의 사회학>(공저), <사이버공간의 사회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 <지식논쟁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이론> 등이 있다.

스티븐 사이드먼의 한 마디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는 의지에 고무되어 사회분석이 가치있게 되는 고향을 발견하기 위해 내가 처음에 학문을 시작한 사회학으로 되돌아왔다. 이것은 경험적 분석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분석적 관점을 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회학의 목적이 지식을 축적하고, 사회의 과학성을 발전시키고, 혹은 사회학 체계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세계의 현재와 미래 모습에 대한 계속적인 대화와 갈등의 일부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근 2백년 동안 사회학과 근대사회이론을 이끌어왔던 희망은 지식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즉 그 중요한 가치가 지식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거기에 도움을 주는 그러한 종류의 삶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이 이 책을 위한 영감을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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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논쟁(Contested Knowledge)
스티븐 사이드먼(박창호 역), 문예출판사


1. 포스트모던 문화의 중심은 사회적 존재, 정체성, 그리고 진리와 도덕적 정의와 미의 기준에 대한 환원할 수 없는 다원적 성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며 동일한 자아 대신에, 포스트모던 문화는 계급,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민족, 국가, 육체적 심리적 능력 등등에 의해 분화되고 개별화되는 자아를 주장한다.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이성의 보편적 단일한 개념과 일정한 문화적 기준 대신에, 우리는 다양한 전통과 공동체를 나타내는 이성의 전통들과 문화적 기준의 다양성을 말한다. 근대성이 만약 일련의 순수한 분업(예: 가족/경제, 과학/이데올로기, 정치/도덕)과 위계(예: 남/여, 고급/대중문화, 이성/욕망), 그리고 기본적인 전제들(예: 이성, 과학, 개인주의, 주체, 진보, 서구, 인류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조직된다면, 탈근대성은 분화의 과정이나 경계의 와해, 위계의 파괴, 모든 모던의 근본과 궁극적인 가치와 신념들에 대한 의문을 강조하고 있다. 탈근대성은 절대적 자유를 따라 하나의 길로 행진하는 하나의 이성, 하나의 인류라는 꿈을 비난한다. 그러나 인간의 차별성을 감내하고, 애매성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선택, 다양성, 민주화에 가치를 두는 사회에 대한 탈근대성의 자체의 이상을 제공한다. (506, 507면)


2.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식은 영원히 논쟁적일 것이다. 그것은 진리가 유일하게 그리고 거의 싸움의 심장부서 나타나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은 권력과 분리될 수 없게 되었고, 더 이상 유익한 것으로 가정되지 않는다. 지식이 희망만을 약속했던 시대, 순수성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510면)


3. 수세기 전에, 과학과 서구이성은 그 경쟁자들 - 종교, 신화, 화술, 도덕철학, 민속지식 - 에 대한 무모한 공격을 통해 크게 승리하였다. 마치 과학과 이성이 경쟁자들을 억압한 것처럼 지식은 복수를 해서 되돌려주는 것이다. 과학적 이성의 높은 위상은 무엇보다도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즉 유색인, 비서구인들, 여성, 레즈비언과 게이남성, 장애자 그리고 가난한 자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들로부터 연속적인 공격 하에 무너졌다. 자유에 대한 약속이 어두운 면을 가지게 된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질서를 규정하려는 무모한 바람과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과 일탈자에 대한 관대함이 그것이다. (510면)


4. 프랑스 구조주의는 인문철학, 특히 실존주의 전통에 대한 반발이었다. 인문철학의 핵심에는 자기방향적 창조적 힘으로서 개인을 보는 것이다. ... 구조주의자들은 우발적이고 유동적인 개인중심 세계의 이면에는 정신, 지식 그리고 인간행동의 조직에 나타난 보편적 구조가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조주의는 인간세계에 일관성과 질서를 부여하는 깊은 구조를 밝히는 것이 목표인 인간학의 과학적 시각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321면)


5. 비록 우리가 마르크시즘, 프로이드 사상, 콩트와 뒤르켐의 사회학적 접근에 구조주의의 지적 뿌리를 추적할 수 있지만, 구조주의의 가장 심오한 근원은 언어학의 발달에 있었다. ... 소쉬르는 그 의미가 차이의 관계성에 놓여 있는 기호의 체계로서 언어를 개념화함으로써 이러한 견해에 도전했다. ... 소쉬르는 기호의 의미는 기호가 가지는 차이의 관계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 레비 스트로스는 특수한 사회적 제도들(예: 결혼, 친족 혹은 종교)의 모델 뿐만 아니라 사회를 전체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으로서 언어를 이용하였다. (322, 323면)


6.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 반인본주의와 공감하고 있다. ... 언어는 의미가 생산되는 곳이다. ... 구조주의가 언어적, 사회적 질서를 밝히는 “구성적” 계획을 의도하고 있는 반면, 후기 구조주의자들은 “해체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 데리다는 기호의 의미가 차이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데 동의하였다.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은 반대의 관계가 설정될 때 의미들이 고정된다고 잘못 가정한다. 데리다는 기호의 의미는 불완전하고, 다의적이고, 변화한다고 제안한다.  

2014년 10월 1일 수요일

미국, 세대 간 계층이동율의 심각한 하락

바로 얼마 전에 출간 된 책의 일부.

숫자는 아버지 직업의 좋은 정도(여러가지 지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Duncan SEI 지수라는게 있다)와 자식 직업의 좋은 정도의 상관관계다. 숫자가 높을수록 아버지 직업이 아들 직업을 결정한다는 것.

미국에서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그와 더불어 세대간 계층이동은 심각하게 줄어들었다.

미국의 불평등 증가를 능력에 따른 소득의 증가, 메리토크라시의 결과로 보는 분들이 있는데, 무엇이되었든, 그 결과는 보다싶이 다음 세대의 기회평등의 박탈이다.



지나친 불평등은 능력있는 다음 세대가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막음으로써 실질적인 신분제 사회로 퇴화하는 효과가 있고, 이는 사회 전반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그 사회의 장기적 발전에 방해가 된다. 현시점의 지나친 불평등은, 설사 그것이 능력에 따른 성과 격차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흥청망청 과소비를 하고 저축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브라질 어젠다 - 브라질인의 눈으로 본 현대 브라질의 48가지 모습, 릴리아 모리츠 쉬바르츠

브라질 어젠다 브라질인의 눈으로 본 현대 브라질의 48가지 모습 

중남미 총서 2

릴리아 모리츠 쉬바르츠 지음 | 박원복 옮김 | 세창미디어 | 2014년 05월 20일 출간

책소개



    『브라질 어젠다』는 브라질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경제적ㆍ정치적ㆍ문화적ㆍ지적ㆍ심미적 등 다양한 양상과 현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브라질 사회의 변화를 관찰하고 주요 의제를 분석한 책이다. 노년, 젠더, 인디오, 환경 등 브라질 사회의 의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릴리아 모리츠 쉬바르츠

    저자 릴리아 모리츠 쉬바르츠(Lilia Moritz Schwarcz)는 상파울루대학교(USP)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는 『흑백 초상화』(Retrato em branco e negro. Companhia das Letras, 1987), 『왕실도서관 책 중의 책』(O livro dos livros da Real Biblioteca. Biblioteca Nacional/Odebrecht, 2003) 등이 있다.

    역자 : 박원복

    역자 박원복은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브라질 상파울루 가톨릭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과 기호학 석사를 마쳤으며 최종적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 뒤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브라질연구센터장직과 주한브라질문화원 부원장직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단국대학교 외국어대학 포르투갈(브라질)어과에서 교수로 학과장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브라질 문학사』(공저), 『파울루 코엘류와 칼릴 지브란의 신비주의』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룰라, 신자유주의시대 부의 재분배정치」 등 20편이 있고 번역으로는 『대통령의 길 룰라』 등 8권이 있다.

    목차

    _옮긴이의 말 ㆍ 5

    서문-다면성의 나라 _안드레 보텔류 / 릴리아 모리츠 쉬바르츠 ㆍ 17
    브라질의 아프리카 이미지 _바우데미르 장파로니 ㆍ 29
    아마존: 전통 부족들과 그들의 권리투쟁 _네이지 이스테르시 ㆍ 45
    브라질의 예술과 고전주의 _루시아누 미글리아시우 ㆍ 61
    브라질 현대 예술: 시적 다양성과 국제예술계로의 진입 _루이스 카밀루 오조리우 ㆍ 79
    농촌과 도시: 근대 브라질의 오솔길들 _니지아 트린다지 리마 ㆍ 95
    카니발이다! _마리아 라우라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카바우칸치 ㆍ 109
    중심과 주변부 _베르나르두 히쿠페루 ㆍ 123
    시민의 권리와 여타 권리들 _마리아 알리시 헤젠지 지 카르발류 ㆍ 135
    브라질의 과학과 기술 _시우비아 피게이로아 ㆍ 145
    현대 브라질 영화 _이즈마이우 샤비에르 ㆍ 159
    대중문화: 그 자산과 진위 _주제 헤지나우두 산투스 공사우비스 ㆍ 175
    민주주의: 브라질 사상사에서의 그 기원과 현존 _볼리바르 라모니에르 ㆍ 185
    브라질에서의 발전과 저발전 _루이스 카를루스 브레세르-페레이라 ㆍ 201
    불평등과 다양성: 행동의 정반대 의미들 _안토니우 세르지우 아우프레두 기마랑이스 ㆍ 215
    브라질에서의 교육 _달릴라 안드라지 올리베이라 ㆍ 225
    국가와 사회: 문제적 관계 _브라질리우 살룽 ㆍ 237
    브라질 소설 2.0 _반데르 멜루 미란다 ㆍ 255
    축구, 삶의 메타포 _에두아르두 공사우비스 안드라지, 토스터웅 ㆍ 271
    젠더, 혹은 조아킹 나부쿠의 팔찌 _마리자 코헤아 ㆍ 285
    동성애와 LGBT운동 _줄리우 아시스 시몽이스 ㆍ 297
    이베리아이즘과 아메리카주의 _루이스 베르네키 비아나 / 페르난두 페를라투 ㆍ 311
    국가의 정체성: ‘브라질성’의 구축 _후벵 제오르지 올리벵 ㆍ 325
    브라질의 언론 _에우제니우 부시 ㆍ 337
    브라질의 인디오 _마누엘라 카르네이루 다 쿵냐 ㆍ 353
    문화산업: 라디오의 시대부터 정보산업의 시대까지 _마르셀루 히덴치 ㆍ 369
    지식인들: 그 그룹의 프로필과 대략적인 정의 _페르난두 안토니우 핑녜이루 필류 ㆍ 381
    인터넷과 사회적 포용: 기술의 전유와 해석 _에르마누 비아나 ㆍ 397
    정의와 권리: 평등의 구축 _마리아 테레자 아이나 사데크 ㆍ 411
    정치체제: 만도니즈무, 코로넬리즈무, 클리엔텔리즈무, 공화정 _주제 무릴루 지 카르발류 ㆍ 423
    브라질에서의 환경문제 _파비우 페우지망 ㆍ 435
    군국주의, 공화국 그리고 국가 _세우수 카스트루 ㆍ 447
    브라질 대중음악: 브라질 방식에 대한 다른 대화들 _엘로이자 마리아 무르제우 스타를링기 ㆍ 459
    브라질의 정당 _자이루 니콜라우 ㆍ 475
    문화유산: 권리요구와 재원으로서의 역사와 기억 _시우바나 후비누 ㆍ 489
    외곽지대: 빈민촌(favela), 막다른 길(beco), 골목길(viela) _세우수 아타이지 ㆍ 503
    브라질에서의 시: 제 역할을 하다 _이우카낭 페하스 ㆍ 513
    브라질 사상사에서의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_안드레 보텔류 ㆍ 525
    브라질에서의 인종주의: 사회적 포용이 사회적 배척과 어우러질 때 _릴리아 모리츠 쉬바르츠 ㆍ 539
    지방과 국가: 낡고도 새로운 딜레마 _엘리지 후가이 바스투스 ㆍ 557
    브라질의 세계 진입 _후벵스 히쿠페루 ㆍ 573
    브라질에서의 종교 _안토니우 플라비우 피에루시 ㆍ 587
    공중보건 _지우베르투 오쉬망 ㆍ 599
    치안: 민주법치국가의 기본 _루이스 에두아르두 소아리스 ㆍ 613
    브라질의 연극 _J. 깅스부르기 / 호장젤라 파트리오타 ㆍ 627
    TV연속극 _이스테르 앙부르게르 ㆍ 645
    노동과 노동자: 그 조직과 사회적 투쟁 _주제 히카르두 하말류 ㆍ 659
    나이 듦의 변화 _기타 그링 데베르트 ㆍ 671
    폭력과 범죄: 두려움이 지배하는 브라질 사회 _세르지우 아도르누 ㆍ 685

    출판사 서평

    브라질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21세기 브라질에 관한 방대한 보고(寶庫)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브라질은 자기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브라질 어젠다』는 브라질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자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으로부터 주요 의제를 분석한다. 즉, 경제적ㆍ정치적ㆍ문화적ㆍ지적ㆍ심미적 등 다양한 양상과 현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브라질 사회의 변화를 관찰하며 의문을 품는 것이다. 나아가 현실을 반영하는 일련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주목하면서, 자기 성찰과 비판으로 새로운 브라질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독자들은 이제까지 우리에게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노년, 젠더, 인디오, 환경 등이 포함된 21세기 브라질 사회의 주요 의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 매튜 이펙트

    지그문트 바우만 
    저서명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출판사동녘 
    연도(ISBN)2013(978897297695)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지그문트 바우만 저, 안규남 역, 동녘, 2013): 소수의 부가 모두에게 혜택을 미치는가?
     
    1.
    알랭 투렌(Alain Touraine)과 함께 후기 산업사회의 가장 진지한 비판자로 손꼽히는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새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그런데 제목이 다르다. 원제는 "Does the Richeness of the Few Benefit Us All?"인데, 한국어 제목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원제는 '다수'와 '소수'의 문제, 즉 '트리클 다운'(trickle down)과 같이 대기업이 성장하면 중소기업과 일반 소비자의 삶도 나아지는지, 아니면 '매튜 이펙트'(Matthew Effect)와 같이 가진 사람은 더 가지게 되고 갖지 못한 사람은 더 빈곤하게 되는 사회적 부조리를 전달한다. 반면 한국어 제목은 '불평등'이라는 모호하고 논쟁적인 주제 속에 양극화와 빈곤의 대물림에 불쾌한 우리의 심성을 자극한다. 원래 저자가 전달하려던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설득적인 제목을 버리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이미 반감이 굳어지거나 특정한 방향으로의 해결책을 이미 다짐한 사람들에게 책을 사보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출판사가 책 제목을 바꾸는 것이 좋은 일일까? 밋밋한 제목으로 독자를 끌 수 있는 시장은 아니라는 점은 백번 인정한다. 그러나 저자의 의견이 고스란히 전달되면서도 독자를 끌 수 있는 주제를 더 고민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출판사에서 목차 옆에 기록해 놓은 '저작권' 관련 기록도 석연치 않다. "Does the Richness of The Benefit Us All? By Zygmunt Bauman"이다. 즉 원제를 잘못 기입한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야할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부주의는 어쩌면 지금의 제목이 갖는 미세한 차이가 가져올 부분에 대한 무관심으로 확대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바우만은 서문에서부터 "경제성장 근본주의"(economic grwoth fundamentalism)가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10쪽, 원문 2쪽). 그리고 그는 "가난하고 미래가 없는 사람들"과 "부유하고, 낙관적이며, 자신감에 차고, 활기찬"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심해지고 있다고 한탄한다(원문 2쪽). 즉 '소수'와 '다수'의 문제,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대를 이어가며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를 꼬집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the prime victim of deepening inequality will be democracy"(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주된 피해자는 민주주의, 원문 2-3쪽)라고 말이다. 즉 지금의 불평등은 소수와 다수의 갈등을 이제는 민주적 절차로 풀어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우만의 지적은 그의 책이 단순히 '불평등'을 '평등'으로 전환시켜야할 의무를 가르치거나 지금의 부조리를 참지 말라는 선동이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일차적으로 그의 지적은 '민주적 절차'를 통한 '민주적 심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당신들의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불평등'의 문제를 고민해야한다는 경고다. 플루토크라시(부가 지위를 결정하는 정치)가 메리토크라시(능력이나 실적으로 지위가 결정되는 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 기반을 잠식했고, "개인적 이익 추구가 공공선의 추구를 위한 최선의 메커니즘도 제공한다"(the pursuit of individual profit also provides the best mechanism for the pursuit of the common good)는 소위 '자유시장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정당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원문 3쪽). 다시 말하자면, 바우만의 지적은 인류의 삶과 함께 시작한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감정적 접근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매우 진지하고, 지금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이면에 존재하는 뿌리깊은 편견과 잘못된 원칙들을 다시 살펴보자고 권하고 있다(원문 5쪽).
     
    2.
    '매튜 이펙트'에 대한 좋은 책이 하나 있다. 산 안토니오에 있는 세인트 매리(St. Mary) 대학의 다니엘 릭니(Daniel Rigney) 교수가 쓴 책이다. 제목이 "The Matthew Effect: How Advantage Begests Further Advantage"(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인데, 성경의 마태복음 13장 12절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에 기초한 '매튜 이펙트'라는 논쟁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실제로 '매튜 이펙트'는 콜롬비아 대학의 사회학과를 이끌었던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 1910-2003)이 자신의 '의도하지 않은 불평등'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명칭이다. 그런데 릭니교수는 머튼의 뒤를 이어 계속된 학계의 논쟁이 '왜 이러한 불평등이 지속될까에만 관심이 있었고, 이러한 불평등의 원인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했"는지에 대한 반성에서, 이른바 수정주의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Rigney, 2-3). 
     
    릭니의 수정주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지적들을 분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첫째, '가능성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은 다르다는 점이다(Rigney 7). 특히 미국사회에 만연된 이른바 '성공할 기회(an opportunity to suceed)'는 '성공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an equal opportunity to suceed)라는 말과는 엄연하게 다른 말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우리도 요즘 '개천에서 용나던 시대는 끝났다'고 개탄하고, '반전이 불가능한 사회'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이렇듯 미국도 이제는 '기회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듣고, 이런 말 속에 담긴 가장 미세한 차이를 '균등한 기회' 즉 '성공할 가능성'(capability)에서 찾는 것이다.
     
    둘째, 파이가 커질수록 나누어 먹을 것이 커진다는 이야기의 허상을 지적한다. 소위 상대적인 매튜 이펙트, 큰 몫은 부자가 먹고 작은 여분을 가난한 사람이 먹더라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더 잘살게 될 수 있다는 신화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바로 바우만이 지적하는 '트릭클 다운'의 실패, 그리고 크리스티아 프리랜드(Christia Freeland)의 "Plutocrats: The Rise of the New Global Super-Rich and the Fall of Everyone Else"(Penguin Books, 2013; 한국어 번역, 플로토크라트, 열린 책들, 2013)가 지적하듯 빈부의 격차외에도 새롭게 등장하는 초국가적 거부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는 주장인 것이다. 단순히 양극화의 심화로 감정을 부추기보다, 부를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질시와 분노를 유발하기보다, 진지하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원칙부터 하나씩 짚어보는 것이다.
     
    셋째, '매튜 이펙트'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기제를 묻고 있다. 콜롬비아 대학의 머튼이 왜 특정 과학자에게 연구비가 몰리냐는 질문에서 시작된 문제를 이제 정치사회적 것으로 확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운동에 선재하는 관찰자적 성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부유한 엘리트들은 점점 부유해진다는 분노의 응어리, 앞으로 남은 것은 절망 뿐이라는 개탄의 목소리, 이것들을 새로운 제도 또는 새로운 형태의 도덕적 원칙을 찾는 시민들의 활력으로 승화시키려는 몸짓인 것이다. 아테네의 민주정이 '가능성'의 평등에 대한 논의로부터 구체화되고, '탁월성'에 대한 염원이 로마의 공화정의 '원로원'을 낳았듯이, 우리도 매튜 이펙트를 막을 방도를 논의하자는 제안이다.  
     
    3.
    바우만의 논의도 릭니의 것과 상당히 닮아있다. 비록 '좌파'라는 꼬리표가 붙는 단어나 학자들의 인용문이 뒤를 잇지만,  '좌파'라는 꼬리표 속에 담긴 무지막지하고 대책없는 비판꾼이라는 비난과 그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가 바라보는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태도는 이미 이러한 문제를 시장 또는 자유주의 입장에서 지적해온 학자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조셒 스티클리츠(Joseph Stiglitz)를 '좌파'라고 한다면, 아마도 바우만의 비판도 좌파일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 중, 지금의 불평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아마티아 센(Amartya Sen)도 마사 너스바움(Martha Nussbaum)도 모두 '불평등'이 가져올 폐해가 자유주의의 원칙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큰 위협이라고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기회'의 평등을 '가능성'(capability)의 평등으로 대체해야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바우만이 제시하는 이미 공인된 자료의 수치들은 우리의 보다 신중한 관심을 요구한다. 특히 2007년 금융위기 이후에 "재앙의 채찍"이 선택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아픔을 주었고(번역 18쪽), 글로벌한 자본은 이제 개발도상국의 노동으로 몰려감으로써 "선진 경제들에서는 일자리들이 가속적을 사라지면서" 소위 중산층의 '프리카리아트(pricariat,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로의 전락을 가져오고 있으며(번역 20-21쪽), 이제 세계는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 W.W. Norton & Company, 2013; 이순희 역, 열린 책들, 2013)가 말하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한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한다(번역 25쪽).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바우만의 관찰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몇 가지 진지한 토론을 벌여야할 주제들이 노정되어 있다. 첫째는 메리토크라시가 가져온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이 주제는 오랫동안 정치사회적 구조에 대한 진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았다. 다만 대처 수상과 같이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던 사람들에게서, 소위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filling prophecy)을 통해 불공정한 사회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그와 이전의 접근이 조금 다른 이유다(번역 36-37쪽). 그런데 바우만의 접근은 수사학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에 기여한다는 신념은 대처나 '신자유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페리클레스의 유명한 '장례식 연설'에서 보듯, 아테네인들도 '개인의 자율성'과 '공공선의 실현'을 하나의 같은 축에 놓고 이해하고 믿었다. 즉 자유주의의 극소수가 만든 신화를 시장에 대한 일반적 이해로 치환한 것이 문제이고,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라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숙제를 대안처럼 언급한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의 자율성'과 '공공선'의 조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치사회적 구조, 즉 바우만이 말하느 "현실적인 선택지들이 선택될 확률들의 분포 또한 운명"이 되어버린 구조(번역 40쪽), 그리고 자유주의자들도 개탄하는 동일 선상에서 출발하지 않는 달음박질 또는 무한 경쟁에 대해 이야기의 초점을 모았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든다.
     
    둘째, '경제성장'의 구호아래 은폐된 양극화의 심화, 그리고 이 경제성장의 구호아래에서 사회적 규제의 고삐에서 해방된 은행과 자본에 대한 이야기다. '경제성장의 신화'에 가려진 슬픈 역사를 우리만큼 뼈져리게 경험하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따라서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에서 만들어졌다는 '경제성장'의 신화 이전에, 우리는 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그 부작용을 충분히 경험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이 가져오는 문제점에 대해서, 특히 1997년 IMF를 경험한 우리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다만 '아이'도 '어른'이 되고자하는 욕심에서 '성장'에 대한 야릇한 나르찌시즘을 갖고 있다는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된 철학적 성찰을 다시한번 고민해 보아야한다. 아울러 구약성서에 나오듯 '번성하라'(parah rabah)는 말처럼, 성장은 신화로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 인간의 욕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한번 검토해보아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고민과 성찰이 없다면, 바우만의 지적은 곧 '대안없는 비판' 또는 '이상주의'로 비난받기 쉽상이다. 아니라면 'One-upmanship'(남들보다 한발 앞서기, 번역 79쪽)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밖에 안된다는 지적에 무력하다.  
     
    5.
    짧은 책은 그것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다. 한 마디로 바우만의 이번 책은 지금까지 자기가 말해왔던 바를 간결하게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에, 이것만으로 그의 학문적 여정이 보여주는 첨예하고 처절한 연구자의 업적을 깎아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들은 지금에 있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문제들을 새로운 이념적 지평을 통해 해결하려는 저자의 숨결이 담겨있다. '신뢰,' '연대,' 그리고 '상호협력'에 대한 믿음을 다시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번역 87-106쪽). 그러기에 '불평등의 자연스러움'을 지킬 노력만큼이나 '불평등의 부자연스러움'을 막을 정치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느낀 사람들은 바우만의 다른 저서들도 읽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그 어떤 번역자도 오역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번역은 저술만큼이나 힘든 작업임을 안다. 그래서 이런 때마다 비판을 자제하거나 지나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마디 해야겠다. 전체적으로 괜찮은 번역이지만, 이렇게 작은 책에 그렇게 많은 자극이 필요할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 제목이 번역과 관련된 문제는 번역서의 제목의 주제가 되는 부분에 이르면 더욱 심해진다. 세 번째 파트인 '성장'이 대세가 된 "몇몇 큰 거짓말"(some big lies)에 대한 논의가 "새빨간 거짓말, 그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로 번역된 것에서부터 이런 과장이 시작된다(27-89; 번역, 45-106쪽). 섹션의 제목이 매우 선정적으로 선택되었지만, 바우만의 진정한 초점은 '경제성장'이라는 신화를 통해 정치사회적 규제로부터 해방된 시장과 자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즉 번역본의 조금 과장된 태도가 전체적인 내용을 가린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자극이 없었다면, 은행과 자본의 탈규제가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부는 한없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경고가 무시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어떤 정치사회적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의미있는 지적들이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양극화

    [매경포럼] 메리토크라시 그리고 양극화
    기사입력 2006.09.28 17:18:02                                                                                                http://news.mk.co.kr/newsRead.php?no=421693&year=2006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1958년 출간된 그의 미래소설 '메리토크라시의 반란(Rise of Meritocracy)'에서 실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가리켜 '메리토크라시(실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실력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실력은 '능력+노력'에 따라 결정되며 실력있는 자들은 사회적으로 더 잘 되고 경제적으로 보다 윤택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메리토크라시는 경쟁원리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부유층이나 지식층 자녀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아 사회 요직에 진출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은 출세의 길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저소득층이나 교육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녀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데다 자극을 받을 기회도 적어 하루하루를 체념하면서 사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빈곤의 대물림 현상도 고착되고 있다.
    '개천에 용나기'식 출세는 옛말이 돼 가고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확대되고 있는 소득격차도 메리토크라시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우리나라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계층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비율)은 1996년 4.28배에서 2003년에는 6.49배로 늘었다.
    미국은 납세자 중 소득금액 상위 1%가 벌어들인 소득비중이 2003년 16.8%에서 2004년 19%로 높아졌다.
    일본은 소득분배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1979년 0.271에서 2004년 0.308로 상승했다.
    모든 국가에서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 얇아지는 반면 빈곤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소득이 전국 가구 소득 중간값의 50% 미만인 가구 비율을 나타내는 '빈곤율'이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 16.9%에서 지난해에는 18%로 높아졌다.
    미국 아일랜드에 이어 빈곤율이 선진국 3위라는 일본 15.3%보다 높다.
    빈곤층이 빠르게 증가하는 데는 실력주의 이외 요인들도 물론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바버라 엘렌라이크는 '니켈과 다임(Nickel and Dime)'이라는 최근 저서에서 5센트, 10센트 주화로 하루 하루를 사는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이 빈곤에서 탈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은 일자리나 임금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교통수단 제약으로 지리적 이동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시정하기가 쉽지 않다.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빈곤층에 대해 나눠주기식 분배정책을 취한다면 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 될 뿐이다.
    참여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리기 위해 4년 연속 적자재정을 편성한 것은 그 효과 면에서나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볼 때 적절치 않다.
    정부는 빈곤층에 물고기를 직접 나눠주기보다는 교육ㆍ훈련 등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소득의 다과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회의 균등은 보장해줘야 한다.
    정부는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빈곤층을 양산하는 정책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부자들에게 유리한 교육ㆍ입시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가장 시급하다.
    공교육을 내실화해 사교육비를 줄여야 하며 수능, 내신, 논술 등 복잡하게 돼 있는 대입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입시제도가 복잡하고 다단계일수록 경제적 여유가 없어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는 저소득층 자녀는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입시 성적이 부모 학력과 소득에 비례한다는 최근 한 연구결과는 입시제도 개선 필요성을 말해 준다.
    정부가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요란하게 시작했다가 용두사미 식이 되고 있는 EBS 수능방송이나 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방과후 학교 제도를 재점검하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고소득층 소비가 저소득층 소득증가로 이어지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반(反)부자 정서를 없애 부자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돈을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것이 한 방편일 것이다.
    부자를 미워하고 억누른다고 빈곤층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세계적, 시대적 조류에 맞서 평등주의를 고집하고 복지 일변도의 정책을 밀고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중요한 것은 약자와 빈곤층이 재활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그들에게 소득을 높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의해 가능하다.
    [온기운 논설위원]
     

    메리토크라시 트렌드, 김농주

    메리토크라시 트렌드


    김농주 지음 | 새로운사람들 | 2005년 04월 30일 출간

    목차

    제1부 능력주의 시대가 달려온다
    제1장 참요
    제2장 합리적 개인화
    제3장 수리 지배 사회
    제4장 본능 극대화
    제5장 메리토크라시는 차이를 먹고 자란다?

    제2부 메리토크라시의 전개
    제6장 낯설음에 대한 도전
    제7장 온실에서 벌판으로
    제8장 세월 속의 씨앗
    제9장 우연한 찬스
    제10장 과분한 어부지리

    제3부 메리토크라시의 힘, 그 적응을 위하여
    제11장 아이러니 게임도 즐겨라
    제12장 사이버 권력 쟁투에 승자가 되라
    제13장 젊은 상상을하라
    제14장 스토리 나무를 만들라
    제15장 격차의 거리를 극대화하라

    출판사 서평

    메리토크라시, 능력중심주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연세대학교에서 취업담당관으로 일하며 시대의 조류를 놓치지 않고 관찰해온 지은이가 요즈음 화두로 떠오르는 청년 실업 문제를 절감하며 취업 트렌드를 분석해놓은 책이다. 메리토크라시라는 조금 낯선 단어의 뜻은 능력중심주의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능력중심주의의 파도가 지구촌 가득히 퍼져 있고 시대적의 큰 흐름이며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메리토크라시 트렌드를 읽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나가는 사람만이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지은이 김농주는 직업평론가로 오랫동안 일해 온 취업분야 전문가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치를 이 책에서 집대성하려는 듯, 동서양고금을 넘나들며 메리토크라시의 물결이 우리 생활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무게 있게 기술해 나간다. 그의 묵직한 이야기들은 직업 시장에서는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 트렌드이며, 메리토크라시의 흐름을 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취업의 성패뿐만이 아니라, 직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절대적인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야 취업이 보인다
    지은이는 메리토크라시의 물결이 학벌 연고주의를 제압할 것이며, 그 자리를 대신해서 능력중심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런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라고 말한다. 시대의 조류는 합리적인 개인화의 시대라고 내다보는 지은이는, 자신의 본능을 극대화하여 항상 준비하는 자세로 직업 세계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온실에 갇혀 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고, 과감하게 자신의 자리를 떨치고 벌판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메리토크라시는 차이를 먹고 자란다고 하며 남과 다른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을 개발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직업 시장에서 우연한 찬스나, 어부지리는 없으며 스스로가 젊은 상상력을 가지고 인생의 스토리를 짤 때만이 취업과 성공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2014년 9월 27일 토요일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외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외 지음 |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5년 01월 10일 출간

    책소개

    이 책은 거장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와 그의 제자 존 스콧슨이 런던 근교의 윈스턴 파르바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권력관계,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관계를 파헤친 사회학 분야 연구의 문제작이다. 독일계 유태인으로서, 영국에서 망명자로 생애의 대부분을 말 그대로 기존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웃사이더로 보냈던 저자 엘리아스는 철저한 사회과학자였다. '연구 대상으로부터 거리두기'는 그가 추구하는 최고의 학문적 원칙이며, 이 책에서도 변함없이 '가치중립'의 정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전투적 구호, 도전적 논쟁을 통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어떤 기제를 통해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가 생겨나고 고착되는지 차분하고 꼼꼼하게 추적하는 엘리아스의 서술방식에서 사회학자로서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연구는 계급이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 또 인종적 측면에서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조그만 지역 공동체 '소우주'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 안에서 발생한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의 관계를 미시 사회학적으로 고찰한다. 하지만 이 책이 1960년대 영국의 노동자 마을의 특수한 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엘리아스는 윈스턴 파르바를 통해 축약된 형태의 보편적인 인간 주제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목차

    권력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l 옮긴이의 말
     
    Ⅰ. 기득권자 - 아웃사이더 - 관계의 이론
    집단카리스마를 가진 인간들
    권력차이의 근원
    집단 사이의 낙인찍기와 편견
    집단 카리스마와 집단 치욕
    불결한 아웃사이더
    인종편견에 숨은 사회적 역학
    비경제적 차원에서 본 집단달등
    집단환상의 면죄부
    '오래 된 집안'의 특별한 친밀감
    집단의 의견이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 - 이상은 집단적 질병의 징후
    기득권 집단의 낙인찍기
    카스트 질서의 근본구조
    아웃사이더의 반격
     
    Ⅱ. 윈스턴 파르바 마을의 권력관계
     
    서론
     
    1. 연구방식에 관한 고찰
    불평등한 서열
    가설적 모델의 결합태와 집단 이미지
    결합태 연구의 발전성
     
    2. 이웃관계의 형성과정
    윈스턴 파르바 마을의 생성과 변화
    이방인과 토박이의 마찰
    공동체의 구조를 밝히는 이론적 모델
     
    3. 1구역과 2구역의 전체 인상
    마을의 명망가 구의원 드류 씨
    1구역과 2구역 사람들의 생활방식
    '마을'의 서열 매김
     
    4. 2구역의 모친 중심적 가정
    이웃간의 유대와 강한 가족적 결속
    여성들의 가족 내 역할
    마을의 높은 협동심은 전통
     
    5. 지역단체들과 '오래 된 집안'의 네트워크
    여가활동의 참여기회
    에버그린 노인 클럽
    '마을'의 자랑스러운 전통 클럽
    지역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다
    '마을'의 권력 엘리트
     
    6. 3구역의 전체 인상
    의지할 곳 없는 '집단거주지' 사람들
    '이글'에서의 냉대
    자기 구역의 부정
    전체를 왜곡하는 소수의 문제가정
    조용한 삶을 택한 3구역 주민들
     
    7. 수다에 관해
    소문의 오락성
    소문과 집단의 의사소통
    수다의 통합기능과 배척기능
    집단 카리스마와 개인의 정체성
     
    8. 윈스턴 파르바의 청소년
    지역사회의 사회적 통제
    공허한 여가 시간의 고통
    정체성 형성의 상이한 조건
    사회학적 유전과 분열의 재상산
    최고 악역을 담당한 '보이즈'
    '문제가정'의 이주와 범죄율의 하락
    사회적 서열의 재생산 메커니즘
     
    9. 결론: 개인은 항상 결합태 속에 있다
    지역공동체 연구
    '오래된'집단의 특징과 의미
    근본적인 유형의 결합태
    아노미 개념과 문제
    개인과 사회의 관계
     
    부록1 동일시의 사회학적 측면
    부록2 사회구조와 아노미 개념에 관한 메모
    부록3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관계
     
    Ⅲ. 메이컴 모델: '앵무새 죽이기'에 담긴 흑백갈등
    마르트스의 권력차이
    '앵무새 죽이기'에 담긴 흑백갈등
    메이컴의 백인 사회
    자기 집단의 가치를 높이려는 욕망
     
    참고문헌
    찾아보기

    2014년 9월 21일 일요일

    무엇이 언론을 편향되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언론을 편향되게 만들었는가
    2014년 5월 12일  |  By:   |  IT, 경영, 경제  |  댓글이 없습니다
    시카고 대학의 매튜 갠츠코우(Mathew Gentzkow) 교수와 제시 샤피로(Jesse Shapiro)가 미국 400개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객관적으로 각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을 측정하기 위해 먼저 민주당과 공화당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조사했습니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은 ‘최저임금’ ‘정유회사’ ‘야생동물 보호’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데 비해 보수적인 공화당은 ‘감세’ ‘사유 재산권’ ‘경제 발전’ 같은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민주당은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인 로사 파크스를 즐겨 인용하는 반면 공화당은 컨츄리 뮤직을 들려주는 가장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민주당/공화당에 부합하는 단어를 선정한 후 2005년부터 발행된 모든 신문에서(사설 제외) 각 단어가 언급된 횟수를 산정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진보, 워싱턴타임즈와 오클라호마일보는 보수, 뉴욕타임즈는 중도 진보,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도 보수 등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문사의 ‘성향’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조사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정은 신문사 소유주의 입김입니다. 특정 사주가 언론을 장악하면 다양한 견해를 보장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신문사 인수 합병에 규제를 두는 정책도 많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갠츠교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특정 사주가 보유한 여러 개의 신문이 같은 정치적 견해를 펼칠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소유주의 정치 기부금으로 가늠한 소유주의 정치적 성향과 보유 신문사의 성향이 같을 가능성도 낮았죠.
    그렇다면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 신문을 받아보는 독자들의 구성이었습니다. 민주당을 찍는 유권자들이 많은 소위 블루 스테이트의 지역지는 진보 성향을 띄었으며, 반대로 공화당이 우세한 지역의 언론은 보수 성향을 띄었습니다. 그런 언론 때문에 지역 정치색이 결정된건 아니냐고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처럼 보이는 이 문제는 사실 언론이 종교까지 바꾸어놓지는 않을 거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색채가 강한 지역일수록 보수적인 주민이 많고 신문사도 보수적이었습니다. 신문사가 지역 주민의 종교까지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신문사가 독자에 영향을 끼쳤다기보다 독자가 신문사의 논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결국 신문 사업도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따라 소비자가 원하는 걸 제공하고 있다는 거죠.
    이 현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시민들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줄어들고, 내 의견을 강화시키는 글에만 노출된다면 견해를 바꿀 일이 생기기나 할까요? (NYT)

    http://newspeppermint.com/2014/05/11/media-slant/?utm_source=related_news&utm_medium=inner&utm_campaign=yarpp

    2014년 9월 20일 토요일

    앤서니 기든스,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

    "국가 간 협력 없으면 위험 사회는 계속된다"

    [英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 발간]

    "위험은 개별 국가 수준 넘어 한·중·일도 협력해야 생존
    스코틀랜드 독립해도 EU 견고… 시장·정부 균형이 제3의 길"


    기든스는 지난해 낸 신작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Turbulent and Mighty Continent)'에서 "유럽연합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륙을 단결시켰다. 개별 회원국이 발휘하는 정치력 이상의 것을 국제정치에서 발휘할 수 있게 됐다"면서 "나는 확고한 유럽연합 지지자다. 더 큰 주권이 주는 혜택의 증거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어판(책과함께)은 이달 중 출간된다.

    ―1990년대 말 당신이 주창한 '제3의 길'은 영국 블레어 정부, 미국 클린턴 정부 등에 영향을 줬다. 지금도 유효한가.

    "내가 주장한 '제3의 길'은 세계의 정당들이 제도화한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정당과 미디어에서 사용한 제3의 길 개념은 부드러운 대처리즘의 한 형태였다. 반면 내가 주장한 제3의 길은 전후 세계 정치철학을 지배한 두 이념, 즉 자유시장 근본주의(대처리즘)와 국가지배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중도 좌파 정치철학이다. 그 핵심은 시장·정부·시민사회라는 세 사회제도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임무는 더 중요하다. 시장을 규제하지 않으면 부(富)와 소득의 정당한 분배를 이룰 수 없다. 불평등은 한 국가 수준에서 교정할 수 없다.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정치 혐오도 유발한다고 했는데.

    "'제3의 길'을 썼을 때인 1998년에는 인터넷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십억 인구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이 이끄는 변화는 인류사에 전례가 없는 것으로 향후 어디로 갈지 알기 어렵다. 명확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수평적이고 지속적인 소통이 전통적 정치의 속성인 위계 구조, 몇 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단속성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전자 참여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확산은 다양한 형태의 적대감, 분열과 증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첨단 기술이 가장 퇴행적이고 폭력적인 정치철학과 결합하는 것이다. 중동의 IS(이슬람국가)가 극명한 사례다."


    ―한국·중국·일본은 역사 문제와 영토 분쟁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동아시아 통합이 가능할까.

    "동아시아의 개별 국가들은 기회를 증진하고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협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EU를 그대로 복제하는 방식의 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개별 국가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거의 없다. 미국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국민국가는 큰 문제를 풀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했는데 정곡을 찌른 말이다."

    2014년 9월 14일 일요일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

    http://cafe.naver.com/ccejoda/3397

    시민사회와 개발 NGO에 관란 연구 초록입니다.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한성대 교양학부)


      1.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civil anthropology)은 인류학과 발전의 관계와 같이 또 하나의 ‘사악한 쌍둥이’(evil twin) 관계에 있다. 인류학과 시민사회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동시에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서구 중심적이고 규범적인 슬로건으로서,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화, 민주화, 신사회 운동 등과 관련하여 실천적이고 이념적인 수준에서 사회 지향의 모델로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에, 인류학이란 학문은 보편주의적 시민사회 개념을 수용하고 적용하기보다는 이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시민사회 개념을 해체하고 경험적 수준에서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서구 모델에 도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Hearn(2001)의 주장에서와 같이 인류학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항상 시민사회를 전공하여 왔다. 시민사회는 인류학의 떠오르는 새로운 연구분야와 주제가 아니다. 전통적 인류학의 연구대상인 마을, 이웃관계, 빈민가와 농촌조직, 교회, 조합, 사회운동집단, 공장, 시장, 병원.... 등의 모든 공사 영역이 광의의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이야말로 사회조직, 관료제, 정책과정, 사회운동 등의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찾아내고 그 속성을 심층 기술할 수 있다. 광의의 시민사회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인류학은 국가가 어떻게 ‘시민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를 밝힐 수 있으며, 이러한 시민화 프로젝트가 문명화, 식민주의, 근대화, 발전과 진화주의라는 거대한 지식체계와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해명할 수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전통적인 인류학적 연구 대상인 ‘경계지워진 공동체’나 ‘문화’들이 국가와 시장간의 권력 관계에서 어떻게 규정되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인류학의 분과이고 연구방법론이다. 즉,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새로운 연구대상과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인류학적 연구대상, 특히 정치인류학적 연구 대상들이 국가-시장관계, 지방-세계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비판적 연구방법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적으로나 한국사회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NGO들은 전통적인 사회조직과 관계망, 가치체계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는 조직유형으로서 사회 변화의 추동력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유용한 연구 대상이 된다.

      2. 초국가 시대의 INGO와 NGOgraphy

      NGO 중에서도 국제 NGO, 개발 NGO 혹은 국제개발 NGO 라고 부르는 국제비정부기구와 단체(International NGO; INGO)1)들은 초국가 시대의 지식과 정보 네트웍을 형성하는 핵심 매개체이다. 세계와 지역(global/local)을 매개하는 통로이고, 초국가 시대의 집단적 행위자로서 INGO는 시민사회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류학적 연구 대상이며 새로운 필드(field)이다. 때문에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INGO들에 관한 NGO 문화지(NGOgraphy)들이 출간되고 있다(Fox 1998; Crewe and Harrison 1998; Hulme and Edwards eds). 일부 학자(Markowitz 2001)들은 이러한 연구방법을 상층연구나 하층연구와 대비하여 전반연구(studying up and over) 또는 관통연구(studying through)라고 부르며, 프로젝트를 추적하는(following project) 방식의 다지역 문화지(multi-sited ethnography) 방법론이 유용하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초국가 시대의 INGO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첫째, INGO는 세계적 담론 형성과 문화창조자로서 기능한다(김영수 2002). INGO는 특정한 제도의 강제적 확산이나, 모방, 규범적 압력을 통해 특정의 제도와 담론을 확산해가는 통로이자 매개자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GS) 논의와 개념들, 시민사회 뿐 아니라 정부와 시장 영역에서도 보편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책과 개념들(거버넌스, 투명성, 효율성, 신뢰, 사회자본, 파트너쉽, 오너쉽, 지속가능발전, 유연성...)은 국제정부간기구(IGO) 뿐 아니라 INGO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민들에게 확산되고 담론화된다. 그러므로 INGO는 세계화 정책의 담론확산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고 매개자이다. INGO는 세계화의 행위주체로서 정부, 기업 및 정부간 기구들과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특수한 지식과 권력관계를 재창조한다.
      둘째, INGO는 지역 경험을 토대로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 이념과 대안 담론을 만드는 지역-세계의 매개 조직이다. INGO는 적어도 3개국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NGO들과 마찬가지로 INGO도 지역사회의 경험과 인적자원을 그 기반으로 한다. 이미 씨에틀에서의 WTO에 대한 저항운동과 코펜하겐에서의 사회개발정상회의, 요하네스버그의 지속가능세계정상회의(WSSD) 등에서 INGO들의 저항과 대안 담론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 바 있으며, 선진국 INGO와 개발도상국 INGO들은 지역사회 경험을 토대로 각각 상이한 발전 이념을 제안하고 있다. INGO들의 조직활동과 이념은 지역지식과 세계화 전략간의 상호 모순적이며 이질적인 담론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장을 제공한다.
      또한, INGO는 대표적인 이념경관(ideoscapes)으로서 정보와 지식 및 가치관들이 교류되고 넘나드는 공간이다. INGO를 통해 인력, 기술, 물자, 재정, 미디어들이 교류될 뿐 아니라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이 INGO 활동을 통해 교환되고 재생산된다. 특히, INGO는 발전과 저발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남과 북, 국가사회와 시민사회라는 대립적이고 호환 불가능한 두 세계가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INGO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세계화와 국가전략 및 통치수단 연구,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과 대안 담론 및 지역과 세계간의 상이한 지식체계 연구,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의 교류와 재생산 과정을 연구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며, 초국가 시대의 새로운 인류학적 필드와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3. 시민사회인류학과 인류학적 시민사회론의 가능성

      한국에서의 시민사회 연구에는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는 시민사회에 대한 이념 논쟁과 현실분석의 괴리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사회주의적 시민사회론의 비판과 반비판과정을 통해 시민사회를 하나의 운동 지향적 이념으로 형성해나가고 있으나 정작 시민사회운동의 현실태에 관한 분석은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둘째는 시민사회 개념이 지니는 서구의 발전론적이고 진화론적인 함축이 거의 여과되지 않고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마치 문명전환적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것과 같이 신비화되어 있다. 반면에 실재로 시민사회가 어떠한 양태로 존재하고 조직원리와 특성, 가치관과 신념체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파편적인 수준이다(연고주의,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 셋째는 지나치게 규범적인 논의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사회자본, 신뢰, 거버넌스, 파트너쉽, 성찰적 근대성과 성찰적 자본, 세계시민 등에 관한 논의들은 얼마나 시민사회 논쟁이 규범적이고 개념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그러한 지적 구성물들이 한국사회의 조직원리나 문화적 정체성과 특수성을 얼마나 올바로 해석해내고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주는지에 대하여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은 문제중심의 인류학, 이슈중심의 인류학,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인류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민사회인류학은 한국사회의 문제와 이슈중심의 실천적 인류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학은 개발, 환경, 인권, 분쟁, 편견, 허위의식과 지배, 신화와 상징, 인종과 성, 세대와 지역차별, 문화자본, 공동체와 규범, 관용과 신뢰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경험적으로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라는 이상과 반국가, 반시장, 반서구 중심의 사상을 암묵적으로 실천하여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인류학은 본질적으로 문화비평적인 학문이다. ‘문화비평으로서의 인류학의 귀환’이라고 적시하지 않더라도 인류학은 시민사회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와 이슈, 비젼과 규범, 슬로건과 현실사이에서 다른 학문분과에서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비교문화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처음부터 내세워 문화적 환원주의나 무모한 총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현실적 주체들과 요소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현실 분석을 통해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시민사회 인류학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 분리되어 연구되어 왔던 가족, 종족, 생계와 기술, 신념체계와 도덕, 지역정치가 ‘시민사회’를 통해 비로소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통합적으로 위치 지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적 연구란 부분들에 대한 의미 짓기 작업이며, 인류학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을 통해 ‘복합총체’를 보여주고 전체에서 의미 지워진 부분들의 실천이 가능하도록 기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실천적이고 정책 함의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발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학은 학적, 현실 정치적 담론 경쟁을 통한 권위의 확보뿐 아니라 대중적 지지기반의 확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시민사회인류학은 그 동안 국내에서 연구되어 왔던 사회운동관점의 시민사회론, 규범적인 시민사회론, NGO 조직관리론 등이 한국정치의 ‘전통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왔던 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를 시장과 법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보편주의 이상과 한국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상대주의의 양극단에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현실적이고 다원적인 모델을 구축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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