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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0일 토요일

앤서니 기든스,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

"국가 간 협력 없으면 위험 사회는 계속된다"

[英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 발간]

"위험은 개별 국가 수준 넘어 한·중·일도 협력해야 생존
스코틀랜드 독립해도 EU 견고… 시장·정부 균형이 제3의 길"


기든스는 지난해 낸 신작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Turbulent and Mighty Continent)'에서 "유럽연합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륙을 단결시켰다. 개별 회원국이 발휘하는 정치력 이상의 것을 국제정치에서 발휘할 수 있게 됐다"면서 "나는 확고한 유럽연합 지지자다. 더 큰 주권이 주는 혜택의 증거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어판(책과함께)은 이달 중 출간된다.

―1990년대 말 당신이 주창한 '제3의 길'은 영국 블레어 정부, 미국 클린턴 정부 등에 영향을 줬다. 지금도 유효한가.

"내가 주장한 '제3의 길'은 세계의 정당들이 제도화한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정당과 미디어에서 사용한 제3의 길 개념은 부드러운 대처리즘의 한 형태였다. 반면 내가 주장한 제3의 길은 전후 세계 정치철학을 지배한 두 이념, 즉 자유시장 근본주의(대처리즘)와 국가지배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중도 좌파 정치철학이다. 그 핵심은 시장·정부·시민사회라는 세 사회제도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임무는 더 중요하다. 시장을 규제하지 않으면 부(富)와 소득의 정당한 분배를 이룰 수 없다. 불평등은 한 국가 수준에서 교정할 수 없다.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정치 혐오도 유발한다고 했는데.

"'제3의 길'을 썼을 때인 1998년에는 인터넷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십억 인구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이 이끄는 변화는 인류사에 전례가 없는 것으로 향후 어디로 갈지 알기 어렵다. 명확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수평적이고 지속적인 소통이 전통적 정치의 속성인 위계 구조, 몇 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단속성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전자 참여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확산은 다양한 형태의 적대감, 분열과 증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첨단 기술이 가장 퇴행적이고 폭력적인 정치철학과 결합하는 것이다. 중동의 IS(이슬람국가)가 극명한 사례다."


―한국·중국·일본은 역사 문제와 영토 분쟁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동아시아 통합이 가능할까.

"동아시아의 개별 국가들은 기회를 증진하고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협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EU를 그대로 복제하는 방식의 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개별 국가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거의 없다. 미국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국민국가는 큰 문제를 풀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했는데 정곡을 찌른 말이다."

2014년 9월 14일 일요일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

http://cafe.naver.com/ccejoda/3397

시민사회와 개발 NGO에 관란 연구 초록입니다.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한성대 교양학부)


  1.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civil anthropology)은 인류학과 발전의 관계와 같이 또 하나의 ‘사악한 쌍둥이’(evil twin) 관계에 있다. 인류학과 시민사회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동시에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서구 중심적이고 규범적인 슬로건으로서,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화, 민주화, 신사회 운동 등과 관련하여 실천적이고 이념적인 수준에서 사회 지향의 모델로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에, 인류학이란 학문은 보편주의적 시민사회 개념을 수용하고 적용하기보다는 이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시민사회 개념을 해체하고 경험적 수준에서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서구 모델에 도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Hearn(2001)의 주장에서와 같이 인류학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항상 시민사회를 전공하여 왔다. 시민사회는 인류학의 떠오르는 새로운 연구분야와 주제가 아니다. 전통적 인류학의 연구대상인 마을, 이웃관계, 빈민가와 농촌조직, 교회, 조합, 사회운동집단, 공장, 시장, 병원.... 등의 모든 공사 영역이 광의의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이야말로 사회조직, 관료제, 정책과정, 사회운동 등의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찾아내고 그 속성을 심층 기술할 수 있다. 광의의 시민사회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인류학은 국가가 어떻게 ‘시민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를 밝힐 수 있으며, 이러한 시민화 프로젝트가 문명화, 식민주의, 근대화, 발전과 진화주의라는 거대한 지식체계와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해명할 수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전통적인 인류학적 연구 대상인 ‘경계지워진 공동체’나 ‘문화’들이 국가와 시장간의 권력 관계에서 어떻게 규정되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인류학의 분과이고 연구방법론이다. 즉,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새로운 연구대상과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인류학적 연구대상, 특히 정치인류학적 연구 대상들이 국가-시장관계, 지방-세계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비판적 연구방법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적으로나 한국사회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NGO들은 전통적인 사회조직과 관계망, 가치체계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는 조직유형으로서 사회 변화의 추동력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유용한 연구 대상이 된다.

  2. 초국가 시대의 INGO와 NGOgraphy

  NGO 중에서도 국제 NGO, 개발 NGO 혹은 국제개발 NGO 라고 부르는 국제비정부기구와 단체(International NGO; INGO)1)들은 초국가 시대의 지식과 정보 네트웍을 형성하는 핵심 매개체이다. 세계와 지역(global/local)을 매개하는 통로이고, 초국가 시대의 집단적 행위자로서 INGO는 시민사회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류학적 연구 대상이며 새로운 필드(field)이다. 때문에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INGO들에 관한 NGO 문화지(NGOgraphy)들이 출간되고 있다(Fox 1998; Crewe and Harrison 1998; Hulme and Edwards eds). 일부 학자(Markowitz 2001)들은 이러한 연구방법을 상층연구나 하층연구와 대비하여 전반연구(studying up and over) 또는 관통연구(studying through)라고 부르며, 프로젝트를 추적하는(following project) 방식의 다지역 문화지(multi-sited ethnography) 방법론이 유용하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초국가 시대의 INGO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첫째, INGO는 세계적 담론 형성과 문화창조자로서 기능한다(김영수 2002). INGO는 특정한 제도의 강제적 확산이나, 모방, 규범적 압력을 통해 특정의 제도와 담론을 확산해가는 통로이자 매개자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GS) 논의와 개념들, 시민사회 뿐 아니라 정부와 시장 영역에서도 보편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책과 개념들(거버넌스, 투명성, 효율성, 신뢰, 사회자본, 파트너쉽, 오너쉽, 지속가능발전, 유연성...)은 국제정부간기구(IGO) 뿐 아니라 INGO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민들에게 확산되고 담론화된다. 그러므로 INGO는 세계화 정책의 담론확산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고 매개자이다. INGO는 세계화의 행위주체로서 정부, 기업 및 정부간 기구들과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특수한 지식과 권력관계를 재창조한다.
  둘째, INGO는 지역 경험을 토대로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 이념과 대안 담론을 만드는 지역-세계의 매개 조직이다. INGO는 적어도 3개국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NGO들과 마찬가지로 INGO도 지역사회의 경험과 인적자원을 그 기반으로 한다. 이미 씨에틀에서의 WTO에 대한 저항운동과 코펜하겐에서의 사회개발정상회의, 요하네스버그의 지속가능세계정상회의(WSSD) 등에서 INGO들의 저항과 대안 담론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 바 있으며, 선진국 INGO와 개발도상국 INGO들은 지역사회 경험을 토대로 각각 상이한 발전 이념을 제안하고 있다. INGO들의 조직활동과 이념은 지역지식과 세계화 전략간의 상호 모순적이며 이질적인 담론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장을 제공한다.
  또한, INGO는 대표적인 이념경관(ideoscapes)으로서 정보와 지식 및 가치관들이 교류되고 넘나드는 공간이다. INGO를 통해 인력, 기술, 물자, 재정, 미디어들이 교류될 뿐 아니라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이 INGO 활동을 통해 교환되고 재생산된다. 특히, INGO는 발전과 저발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남과 북, 국가사회와 시민사회라는 대립적이고 호환 불가능한 두 세계가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INGO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세계화와 국가전략 및 통치수단 연구,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과 대안 담론 및 지역과 세계간의 상이한 지식체계 연구,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의 교류와 재생산 과정을 연구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며, 초국가 시대의 새로운 인류학적 필드와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3. 시민사회인류학과 인류학적 시민사회론의 가능성

  한국에서의 시민사회 연구에는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는 시민사회에 대한 이념 논쟁과 현실분석의 괴리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사회주의적 시민사회론의 비판과 반비판과정을 통해 시민사회를 하나의 운동 지향적 이념으로 형성해나가고 있으나 정작 시민사회운동의 현실태에 관한 분석은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둘째는 시민사회 개념이 지니는 서구의 발전론적이고 진화론적인 함축이 거의 여과되지 않고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마치 문명전환적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것과 같이 신비화되어 있다. 반면에 실재로 시민사회가 어떠한 양태로 존재하고 조직원리와 특성, 가치관과 신념체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파편적인 수준이다(연고주의,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 셋째는 지나치게 규범적인 논의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사회자본, 신뢰, 거버넌스, 파트너쉽, 성찰적 근대성과 성찰적 자본, 세계시민 등에 관한 논의들은 얼마나 시민사회 논쟁이 규범적이고 개념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그러한 지적 구성물들이 한국사회의 조직원리나 문화적 정체성과 특수성을 얼마나 올바로 해석해내고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주는지에 대하여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은 문제중심의 인류학, 이슈중심의 인류학,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인류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민사회인류학은 한국사회의 문제와 이슈중심의 실천적 인류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학은 개발, 환경, 인권, 분쟁, 편견, 허위의식과 지배, 신화와 상징, 인종과 성, 세대와 지역차별, 문화자본, 공동체와 규범, 관용과 신뢰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경험적으로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라는 이상과 반국가, 반시장, 반서구 중심의 사상을 암묵적으로 실천하여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인류학은 본질적으로 문화비평적인 학문이다. ‘문화비평으로서의 인류학의 귀환’이라고 적시하지 않더라도 인류학은 시민사회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와 이슈, 비젼과 규범, 슬로건과 현실사이에서 다른 학문분과에서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비교문화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처음부터 내세워 문화적 환원주의나 무모한 총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현실적 주체들과 요소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현실 분석을 통해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시민사회 인류학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 분리되어 연구되어 왔던 가족, 종족, 생계와 기술, 신념체계와 도덕, 지역정치가 ‘시민사회’를 통해 비로소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통합적으로 위치 지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적 연구란 부분들에 대한 의미 짓기 작업이며, 인류학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을 통해 ‘복합총체’를 보여주고 전체에서 의미 지워진 부분들의 실천이 가능하도록 기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실천적이고 정책 함의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발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학은 학적, 현실 정치적 담론 경쟁을 통한 권위의 확보뿐 아니라 대중적 지지기반의 확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시민사회인류학은 그 동안 국내에서 연구되어 왔던 사회운동관점의 시민사회론, 규범적인 시민사회론, NGO 조직관리론 등이 한국정치의 ‘전통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왔던 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를 시장과 법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보편주의 이상과 한국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상대주의의 양극단에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현실적이고 다원적인 모델을 구축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김영수, 2002. 「세계 사회의 거버넌스 형성과 국제 NGO의 역할: 세계담론의 형성 주체와          문화창조자로서의 INGO」, 2002년도 한국NGO 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자료『NGO          의 활동현황과 발전과제』
Crewe, Emma and Elizabeth Harrison, 1998. Whose Development? : An Ethnography of          Aid, London: Zed Books.
Fox, Diana Joyce 1998. An Ethnography of Four Non-Governmental Development               Organizations, The Edwin Mellen Press.
Hann, Chris and Elizabeth Dunn eds. 1996. Civil Society : Challenging Western                 Models, London: Routledge.
Hearn, Jonathan 2001. "Taking Liberties : Contesting Visions of the Civil Society                Project",Critique of Anthropology 21(4): 339-60
Hulme, David and Michael Edwards eds. 1997. NGOs, States and Donors: Too Close for          Comfort?, New York: St. Martin's Press.
Markowitz, Lisa  2001. "Finding the Field: Notes on the Etnography of NGOs",                  Human Organization 60(1):40-6

시민사회인류학의 가능성 / 시민사회와 문화


시민사회인류학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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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학과 시민사회 - 연구성과와 동향


    광의의 시민사회란 국가나 시장을 제외한 사회조직과 자발적 결사체, 혹은 개인과 국가를 매개하는 모든 사회를 지칭한다. 시민사회는 최근에 NGO나 시민사회운동 단체들과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협의의 개념이다. 그러면 광의의  개념으로 볼 때, 시민사회란 인류학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가? 전통적인 인류학의 연구 대상은 시민사회와 다른 어떤 것인가? 아니면 시민사회가 바로 전통적 인류학의 연구 대상과 동일한 것인가? 자본주의가 발아되지 않았거나 세계자본주의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했던 과거의 전통사회 혹은 비서구사회에는 시민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Ernst Gellner가 주장하듯이 아랍사회는 시민사회가 부재한 사회인가? 아프리카는 시민사회를 결핍한 사회인가? 남태평양의 쿨라제도나 화물숭배 의례집단은 시민사회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의 동학이나 향약, 계나 두레와 같은 전통적 조직들은 시민사회가 아닌가? 동남아시아의 승가 sangha 조직과 같은 것은 시민사회와 다른 것인가? 또한 과거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시민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북한에는 시민사회가 없는가? 등의 계속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Hann(1996)은 시민사회 개념이 극히 자민족중심주의적이고 모순적이기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이 개념을 무시하여 왔다고 말한다. 그는 시민사회가 서구의 역사적 조건에서 하나의 이념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오늘날 다른 사회에 복사할 수 없는 비현실적 개념이라고 본다. Seligman(1992)에 의하면 시민사회 개념은 세 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첫때는 슬로건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으로서 이는 국가에 대항하는 '마술'(Steven Sampson)과 같은 것이고, '빛나는 상징'(Ernst Gellner)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사회과학적으로 분석적이고 실증적인 용법으로서 경험적 연구에 의해 시민사회 개념이 밝혀질 수 있다는 입장인데, 이에 반해 Kumar와 같은 학자는 시민사회가 매력적인 용어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외양만 그럴 듯한 무모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용법은 바람직한 사회질서를 표현하는 규범적 개념으로서 '근대성의 자기 이미지'(Keith Tester)라고 시민사회의 규범성을 강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Hann은 지금까지의 시민사회 논쟁이 지나치게 협의의 개념인 서구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모델에 한정되어 왔다고 비판하고, 시민사회 연구는 다른 학문분과에서 간과해 온 광범한 비공식적인 대인관계와 관행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사회 논쟁은 근대성, 개인주의, 다원주의, 공사 영역의 경계등의 논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가지 인류학적인 경험적 사례연구들을 통해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사이에서 시민사회가 어떠한 의미로 나타나고 있는가에 대한 정치인류학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인류학자들은 권력의 도덕적 측면과 현대사회의 결속과 사회질서를 연구하는데 기여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사례연구로 편집한 논문들은 유타주 몰몬교에서의 돈과 도덕성, 시민사회 모델에 관한 사례, 전후 일본애서의 시민 만들기, 중국 농촌의 공동체적 가치와 국가, 시민사회의 관계, 요르단과 시리아 등 아랍사회의 시민사회, 폴란드에서의 시민사회의 의미 변화 등이다.

    지난 5-6년 동안에 인류학자들이 편집한 시민사회에 관한 책은 세 가지로 대표된다. Hann and Dunn(1996)은 시민사회 개념이 극히 자민족중심적이고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그람시를 비판하는 여러 논문들을 통해, 특히 구 동구권 사회에서 자아와 사회를 매개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제도들을 연구하고 있다. Comaroff(1999)의 책은 '시카고 바로크'로 불릴 만큼 화려하고 강렬한 문체인데, 이들은 시민사회 개념에 일관성과 특이성이 없다는 것은 시민사회 개념의 난잡성, 다의성과 변화무쌍한 상충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Clayton(1996)은 시민사회가 민주사회를 위한 토대로서 정치학 이론사로부터 재발견된 개념임을 언급하고 있다.

    Hearn(2001)에 의하면 인류학자들은 시민사회 개념을 어떤 사회조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기보다는 이 개념의 상징적이고 담론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시민사회는 개인과 집단들이 국가 통제의 외부에서 사적이고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족과 시장, 주체와 규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구분 등에 있어서 개념적 혼란이 있다. Hegel은 가족과 가구와 같은 가사부문은 시민사회에서 배제하였고, Gellner는 '왕과 사촌'의 전제정치에 저항하는 방식으로서 시민사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국가 뿐 아니라 친족의 지배를 막는데도 시민사회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한편, 헤겔과 맑스에게 시장은 시민사회에 가장 중요한(시민사회를 규정하는) 것인데 반해 Cohen과 Arato등은 국가-시장-시민사회의 삼분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시민사회는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분화된 비계급적, 자발적 집단행동의 형태를 의미한다. 한편 주체의 문제에 있어서도 시민사회는 사적인 선과 공공선의 종합, 개인과 사회가 절실히 요구하는 것의 종합이라고 정의되고 사회질서의 이상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과 친족이 사적인 영역인가의 문제가 있으며, Seligman과 같이 사적인 개인들이 공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시민사회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민사회 논쟁에서 인류학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Hearn의 주장과 같이 "어떤 의미에서 인류학자들은 항상 '시민사회'를 전공하여 왔다". 전통적인 인류학의 현장연구 대상인 마을, 이웃, 빈민가, 농가들 뿐 아니라 인류학자들이 자주 연구하고 있는 교회, 가구, 조합, NGO, 선거운동집단, 병원, 공장, 가내공업, 시장 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사회와 불가분 연관되어 있으며, 인류학자들은 사회조직, 관료제, 정책과정, 사회운동 등의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산지대 씨족집단과 같이 전시 형태의 사회조직도 국가밖에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인류학자에게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분법보다는 Schneider와 같이 국가-시민사회(법치영역)-무법사회로 구분하는 것도 타당하다. 
    그는 시민사회에서는 계급적 위계에서 중간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간계급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인종, 종족, 종교, 성에 의해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집단들이 법을 통해 국가로부터 시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점차 이들 집단의 사회적 동원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시민사회 사례는 시민사회가 국가에 대한 제도적 통로 역할을 통해 사회민주주의적인 케인즈적 공감대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시민사회는 아래로부터의 합법적 권력의 진정한 중심을 의미하기도 하며, 막강한 세계적 이해집단에 의해 주도된 이념적 의제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권력을 위와 아래의 양극단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위계적으로 계층화된 복잡한 권력체계에서 중간계급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라틴 아메리카와 같은 권위주의적 국가체계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와 중간계급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대중적 동원을 위해 활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시민사회 논의에서는 1960년대 이후 1989년에 이르기까지의 특정 세대집단과 신계급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문가, 테크노크라트, 경영자들로 구성된 신계급과 베트남 전쟁 이후 신세대의 부상은 시민사회에서의 지적자본과 문화자본의 중요성을 확산시켰으며, 신사회운동과 정체성의 정치가 대두되었다. 한편, 역사적으로 시민사회는 개혁과 시민성, 구원, 문명화과정 등과 같은 도덕적 비젼을 함축하며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나 '민족을 깨우는' 의미를 지닌다. 마치 시민사회라는 종교와도 같으며 성스러움을 지니기도 한다. 시민성은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구원의 메시지를 지니고 시민사회는 구원자이다. 시민사회의 '시민화' 작업은 인류학에서의 오래된 고민인 문명과, 발전, 진보의 개념에 대한 논의를 다시 제기한다. 시민사회와 문명의 문제는 19세기의 억측적인 진화론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민사회 개념에는 사적 소유권과 국가, 문명의 발전과정에 대한 영미의 진화론적 함의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Doane(2001)의 사례연구는 멕시코 옥사카주, 치말라파스에서의 생태보전 시민사회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국가, 국제원조기관, 지방 NGO 및 다양한 행위주체들간의 협력과 견제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하여 Doane은 담론적 수준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에 대항하는 민주화와 사유화의 이념을 나타내지만, 현실적 분석 수준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경쟁적으로 NGO 레토릭을 사용함으로써 국가-시민사회의 경계가 중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담론으로서 시민사회는 그 자체로서 지방을 옹호하는 낭만적인 프로젝트인 반면에 근대적 시민권의 개념이 파생되는 보편주의와 계몽적 비젼을 나타내기도 하는 역설을 함축한다. 흔히 시민사회는 특정 지방의 '민초'나 'NGO섹타'와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지방에서의 프로젝트는 외부의 재원과 전문가들에 의해 규정되고 수호된다. 담론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에는 보편적 권리와 지방의 토착적 정체성과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시민권간의 대립이 내재해 있다. '오랜 전통'이라고 생각되는 지방의 정체성은 각 지방 수준에서 매우 경쟁적이며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구성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1990년대에 멕시코는 구조조정에 반대하여 좌파 운동가들은 시민사회를 국가에 대항하는 주민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시민사회는 권력을 드러내는 국가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민중' 이라는 말과 같이). 멕시코에서의 시민사회는 1968년 집권당 PRI의 통제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조직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로 집권당의 조직으로 통합되었던 학생, 노동자 조직은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조직으로 분화되었으며, 1970년대의 오일파동과 1982년 외환위기 및 IMF 구조조정 이후 멕시코는 더 이상 사회적 프로그램을 지닌 법인국가 corporate state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신사회운동과 NGO 섹타들이  확산되었으며 국가의 공백을 채웠다. 멕시코의 고객주의 clientalism와 파벌 흡수정치 cooptation는 국가와 정당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으며, 사회운동이 기존의 정당정치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민주적 변혁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멕시코는 1992년 헌법 개정으로 농업개혁을 마무리하고 1994년부터 NAFTA 체계와 자유시장 정책이 수행되었다. 이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탈냉전 이후 최초의 혁명적 얼굴을 한 자파티스타 무장 게릴라 운동이 발발하였다. 자파티스타와 치말라파스는 공히 토지, 자율, 인권과 같은 이슈를 들고 나왔으며, 정글에서의 회의와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 시민사회 담론을 매개로 하고 있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치말라파스는 무장하지 않았고 NGO에 의해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자파티스타 운동과는 상이하다.
    이 논문에서는 1996년 10월에 열린 '치마팔라스 산림에 대한 지역공동체와 시민사회 포럼'(Foro) 행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담론들을 분석함으로써, NGO 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다른 행위주체들이 시민사회를 경쟁적으로 전유함으로써 합법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치말라파스 산림과 관련된 주요 주체들은 정부, 시민사회, 지역공동체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정부이고 시민사회이고 공동체인가? 그리고 무엇이 '심각한 생태적, 사회적 문제'인가에 대한 담론은 매우 중첩되어 나타나며 각 주체들은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
    치말라파스 산림 지역은 매우 낙후되어 빈곤하고 도로가 없고 식수나 전기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도 공급되고 있지 않은 지역이며 인근 지역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이주하여 온 외부인들은 벌채, 마리화나 재배, 목축 등을 일삼고 있어 산림파괴가 심각한 지역이다. 치말라파스의 가장 유력한 환경 NGO인 MPS는 캄페시노 생태보호지구 사업을 계획하고 WWF와 USAID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사업을 수행하고자 하며, 이들의 계획은 국립공원계획이나 생물환경보존지구 계획과는 상이하여, 치말라파스 산림을 주민들이 통제하고 관리하여 40여개의 마을이 하나의 공동 자산을 이루어 토지경계 분쟁과 토지이용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반면에 지방정부는 여러 기관을 통해 이 지역을 플랜테이션 영농과 임업을 통해 개발하고자 하였다. 가난한 지역 주민들은 NGO와 연합하였으나 지방정부는 MPS의 생태보호 계획을 거부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자 하였다. 주민들은 벌채권을 가질 수 없었고 일상적인 생계농업도 지속할 수 없게 되어 시민사회가 제시하는 대안과 자율, 생태의 비젼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 연방정부의 환경관련 정부기관과 대학의 연구소 및 NGO들간에는 인적유대와 정보 교류 및 협력이 지속되었으며, 정부기관의 전문가들은 이전에 환경운동 연합의 회원으로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캄페시노 MPS 구성원들 조차도 이전에 정부 집권당이 지원하는 조직에 몸담았었다. MPS에 동정적이었던 치말라파스 지방정부는 1995년에 MPS 사업에 완전히 적대적인 간부들로 교체되었으며(지방 선거에서 집권당은 주민들에게 200페소씩 주고 표를 매수하였음), 결국 MPS는 치말라파스에서 축출되었고, 다시 돌아오면 교수형에 처한다고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1996년부터 97년의 현장연구 동안에 MPS와 지방정부, 정부기관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어 서로 섞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일체 협상도 없었고 정부 관료들은 MPS를 '성인'인체 하는 사람들로 비아냥거렸으며 겉은 녹색인데 속은 빨갱이인 '수박'들이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그들은 치말라파스 문제를 팔아 국제원조자금을 타먹는 사람들이라고 했으며, 게릴라들과 연계한 극단적 편향주의자들이라고 했다.
    문제는 정부나 NGO 모두 지역 주민들로부터 합법성을 부여받아야 했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를 상상하고 창조하고 재현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포럼 행사의 초청장에 나타난 문구들은 15개의 상이한 종족집단들의 이질적 정체성 보다는 공동의 지역정체성과 소속감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역주민의 자율과 토지환경의 공동 소유권이 강조한다. NGO들은 '정치는 더럽고 공동체는 깨끗하다'고 말하며 지역사회 공동의 도덕적 공동체가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지방정부 관료들이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믿을 수 없으며 문명화되지 않은 무례한 성차별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였다. 정당은 모두 부패한 파벌주의자들이라고 했다. 반면에 지역의 주민들은 국가와 정부, 정당의 권력과 달리 여성, 어린이, 노인, 동물들의 이미지로 표현되며 천진난만한 사람들과 취약하고 낙후한 장소들의 연합으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양극단에서 시민사회는 양자를 중개하는 브로커 역할을 한다. 탈정치의 자기의식을 지닌 NGO의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지방의 정치적 주체들도 시민사회에 스스로를 결부시키고, 어떤 '전통적인' 공동체 조직 양식에 근거한 미래의 자율적 이상을 시민사회를 통해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 논문에서는 포럼 행사의 초청장 문구와 한 일간지에 게재된 포럼에 대한 비난의 글을 병치시키고 있다. 행사 이틀전에 발표된 이 신문 기고문에서는 '사이비 생태주의자 pseudo ecologists', 분파주의자, 탐욕스러운 외부인들의 개입, 치마 Chima 사람들을 팔아먹는 자들과 같은 표현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방정부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이들 가짜 생태주의자들을 축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포럼 행사도 사악한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포럼 행사에서 시민사회와 공동체의 담론은 더욱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포럼은 자파티스타의 이미지와 같이 산골 오지에서 임시 가옥를 짓고 개최되었다. 행사에서 MPS는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캄페시노 주민들만이 회원 모자를 쓰고 발언하였다. 프로그램에서 발표자들은 지역 주민들의 과거와 현재의 투쟁,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토지에 대한 권리, '치마스'라는 지역 정체성으로 표현된 사람들에 관해 강조하였고 불법적인 외지인들의 개발행태와 살인 사건 등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화된 치말라파스와 남성 권력인 국가를 대비하였다. 그리고 NGOㅇ[ 대한 지역 주민의 환대를 거듭 강조함으로써 NGO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기도 하였다. 또한 슬라이드 쇼를 통해 녹색, 황색, 붉은 색으로 확연히 구분된 이 지역의 생태환경을 보여주었고, 한 마리의 재규어가 암놈의 짝을 찾지 못해 멸종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생태학적, 생물학적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 강력한 메타포를 구사하였다. 이들은 산림 파괴의 원인이 결국 불법 개발업자와 외부인들의 벌채,  목축 때문이라고 규정하였고, 화전농법과 같은 전통적인 생계경제활동은 산림파괴와 무관하며 지역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자율통치권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였다. 분과회의는 농업문제, 생태보전 문제, 자치, 자원의 소유와 관리, 인프라와 사회문제 등의 주제로 진행되었고이 지역의 빈곤과 정치적 무력감은 제국주의적인 정부와 외부의 개입 때문이라고 하였다. 글로발 문제를 지역정치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행사가 끝나고 '노인과 어린이들의 행진'을 통해 캄페시노 생테계획의 시행을 주장하였고 록 컨서트를 열어 치말라파스 문제를 알리기도 하였다.
    이 행사는 군인들의 정찰활동과 정부의 언론을 통한 비난 등으로 기대한 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며 WWF는 결국 MPS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였다. 중단이유는 정부와의 협상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MPS는 NAFTA와 대지주, 목축업자,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며, 오히려 지방정부는 시민사회의 전유를 통해 지역정치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중재사무소를 설치하여 다양한 주체들간의 협상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주민들은 MPS에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정부 관료들은 주장하며, 다양한 주체들간의 협력과 조정을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합법적인 중립적 조직은 바로 지방정부라고 말한다. 1997년 말에 현장을 떠날 때는 치말라파스에는 생태지구도 없고, 더 이상 협상도 없었다. 

    Fisher(1996)는 NGO운동을 신사회운동(NSM)과 세계화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실제로 NGO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밝혀줄 뿐 아니라 공동체의 개념, 지방과 초국적인 네트웤, 통제 기술, 지식인들의 정치적 역할 등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NGO를 하나의 유동적 조직으로 파악하면서 지방과 지역, 국가, 세계를 연계하는 지식과 정보들의 흐름이 NGO의 미시 정치와 현실을 규정한다고 설명한다. '특혜받은 어린이'로서의 NGO 이미지를 극복하고 국가 관료제와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운동으로서 NGO 연구를 위해 다지역 문화지와 같은 인류학적 연구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Markowitz(2001)는 세계화로 인한 초국적 과정은 인류학이 이러한 변화를 주민들이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규명하고 상호연관된 체계를 분석할 수 있는 보다 혁신적이고 다지역적인 연구 전략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게 NGO는 세계와 지방의 중개자이다. 그녀는 페루 NGO에서의 필드 경험을 토대로 현장연구 방법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세계와 지방을 매개시키는 고리로서의 NGO에 관한 문화지 작성은 상층연구와 마찬가지로 전반적 문제의식(studying up and over)을 필요로 하며 프로젝트를 추적(following project)하는 방법론이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Junghans(2001)는 헝가리에서의 시민사회 만들기 사례연구를 통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이후 시민사회 슬로간은 주민들이 스스로를 기업가 혹은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행위주체로서의 자아를 강요하게 하였다고 분석한다.

    Orvis(2001)는 아프리카에서 지난 10여 년간 가장 특징적이었던 시민사회 논쟁을 다루면서, 아프리카의 시민사회는 보다 광의로 이해되어야 하고 현실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민주적이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집단적 행동과 규범들을 다루어야 하며 고객관계(patron-client) 네트웍, 종족조직, 전통적 권위체계 등이 포괄적으로 아프리카의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시민사회를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자율적인 공식적, 비공식적인 집단 행동으로 이루어진 공적 영역'으로 규정할 때, 아프리카의 '전통적' 영역은 시민사회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논쟁의 핵심이다. 여기서 Orvis는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규범과는 다른 '도덕적 종족성'에 기초한 아프리카의 전통적 조직과 집단 행동들은 시민사회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시민사회는 일방적으로 민주화를 창출하는, 또는 내적으로 민주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국가의 권한을 잠재적으로 제한하는 자율적인 집단적 정치 활동을 통해 정치적 책임 요소와 정치참여 수단을 창출하는 것이다.
    Schneider(2001)은 이탈리아 시실리에서의 반마피아 운동에서 나타나는 '시민사회'의 의미와 담론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시민사회 담론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냉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사회운동에서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와 투명성, 인권을 요구하는 우산 역할을 하는 레토릭임을 설명한다. 또한 그는 시민사회가 공립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헤게모니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Medeiros(2001)는 볼리비아에서의 시민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대중참여법'을 다루면서, 이 법이 안데스 농민과 인디언들을 민족국가에 통합시키는 헤게모니 과정으로서 이들 농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대중참여법에 의한 '농촌시민사회' 구축은 지방 권력과 종족관계를 재정립하게 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Mindry(2001)은 남아공에서의 여성운동 NGO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해 초국적 NGO에 대한 제도적 문화지를 주창하고 있다. 남아공에서의 여성 NGO 연구는 역사적 격변기에 여성의 초국적 네트웍이 어떻게 조직화되는지를 보여주며, 민주국가가 새로운 성과 인종정치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Ong(1999)은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문명의 충돌과 같은 담론분석을 통해 인류학이 21세기에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적 차이의 해명, 지정학적 충돌과 글로발 문화현상에 대한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민권과 국가의 개인과 사회의 재생산문제를 인류학이 회피한다면 정치, 사회, 문화간의 내적 연관성을 결국 탐구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인류학자들은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넘어서 상이한 형태의 자유주의와 지구상에 존재한은 '대안적 근대성'을 찾는데 기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Fox(1998)는 Oxfam, Grassroots International, ACCION International, Cultural Survival 등 4개의 국제개발민간기구(INGO)에 관한 현장연구 문화지를 출판하였다. 그녀는 행동주의 인류학(anthropology of activism)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문화지는 인류학자 자신의 정치적 실천이면서 문화비평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조직에 대한 문화지를 통해 '정보제공자'가 아닌 '협력자'로서의 현장과 원주민의 개념, 서구에 대한 인류학(anthropoloze the West)(Rabinow), 발전의 문화적 연구와 발전 전문가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 조직 이데올로기, 대안적 발전과 담론으로서의 발전분석을 인류학자들이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 국내에서의 시민사회 연구

    한국에서의 시민사회 연구에는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는 시민사회에 대한 이념 논쟁과 현실분석의 괴리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사회주의적 시민사회론의 비판과 반비판과정을 통해 시민사회를 하나의 운동 지향적 이념으로 형성해나가고 있으나 정작 시민사회운동의 현실태에 관한 분석은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둘째는 시민사회 개념이 지니는 서구의 발전론적이고 진화론적인 함축이 거의 여과되지 않고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마치 문명전환적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것과 같이 신비화되어 있다. 반면에 실재로 시민사회가 어떠한 양태로 존재하고 조직원리와 특성, 가치관과 신념체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파편적인 수준이다(연고주의,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 셋째는 지나치게 규범적인 논의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사회자본, 신뢰, 거버넌스, 파트너쉽, 성찰적 근대성과 성찰적 자본, 세계시민 등에 관한 논의들은 얼마나 시민사회 논쟁이 규범적이고 개념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그러한 지적 구성물들이 한국사회의 조직원리나 문화적 정체성과 특수성을 얼마나 올바로 해석해내고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주는지에 대하여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3. '시민사회 인류학'의 가능성과 실천
  
    지난 한세기 동안 한국사회의 변화는 지구상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격한 것이었다. 한말 왕조의 붕괴와 혼란, 서세동점의 시기에 서양과 서학을 통한 문화충격과 식민지, 독립, 전쟁, 냉전과 좌우 대립, 빈곤과 개발독재, 학생운동과 민중민주화운동, IMF와 구조조정, 세계화, 시민운동...등 역사적 격변은 혼란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변동과정을 한국의 인류학은 아직 이슈화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격동과 주요한 사회문화적 이슈를 지나치거나 연구대상이 아니라고 외면하기까지 한다. 소위 제1세계 인류학의 수입과 번역 작업에도 아직 큰 성과를 보이지 못했지만, 제3세계의 문화론은 차치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도 인류학적인 담론으로 만들어 가고 있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점에서 '시민사회 인류학'은 문제중심의 인류학, 이슈중심의 인류학,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인류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민사회인류학은 한국사회의 문제와 이슈중심의 실천적 인류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학은 개발, 환경, 인권, 분쟁, 편견, 허위의식과 지배, 신화와 상징, 인종과 성, 세대와 지역차별, 문화자본, 공동체와 규범, 관용과 신뢰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경험적으로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라는 이상과 반국가, 반시장, 반서구 중심의 사상을 암묵적으로 실천하여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인류학은 본질적으로 문화비평적인 학문이다. '문화비평으로서의 인류학의 귀환'(Marcus)이라고 적시하지 않더라도 인류학은 시민사회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와 이슈, 비젼과 규범, 슬로건과 현실사이에서 다른 학문분과에서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비교문화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처음부터 내세워 문화적 환원주의나 무모한 총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현실적 주체들과 요소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현실 분석을 통해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시민사회 인류학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 분리되어 연구되어 왔던 가족, 종족, 생계와 기술, 신념체계와 도덕, 지역정치가 '시민사회'를 통해 비로서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통합적으로 위치지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적 연구란 부분들에 대한 의미짓기 작업이며, 인류학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을 통해 '복합총체'를 보여주고 전체에서 의미지워진 부분들의 실천이 가능하도록 기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실천적이고 정책 함의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발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학은 학적, 현실정치적 담론 경쟁을 통한 권위의 확보뿐 아니라 대중적 지지기반의 확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시민사회인류학은 그 동안 국내에서 연구되어 왔던 사회운동관점의 시민사회론, 규범적인 시민사회론, NGO 관리와 조직론 등이 한국정치의 '전통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왔던 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를 시장과 법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보편주의 이상과 한국과 아시아 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상대주의의 양극단에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현실적이고 다원적인 모델을 구축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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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와 문화

1. 시민사회란
  -어떤 것이 시민사회인가
   (노조/농협/빈민단체/교회/사찰/언론사/방송/의사회/변화사회/학교/조기축구회/동성애자회/부인회/상조회/계/..)
  -2분법론 :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립
  -3분법론 : 국가-시장(경제토대)-시민사회 /정치사회-경제사회-문화사회
    
2. 시민사회의 구분
 -협의/광의
 -시민운동적 / 사회서비스적 시민사회
 -즉자적/대자적 시민사회
 -귀속적/ 성찰적 시민사회
 -선진국/동유럽/신흥공업국/제3세계

3. 시민사회의 특성과 문화
 -자유로운 개인
 -결사의 자유와 참여(자원적 결사체)
 -다양성과 관용
 -경쟁
 -의사소통과 수평적 관계
 -공공선/공공영역(public sphere)/공공재
 -행위자 중심이론(의미, 가치, 담론, 자율성 중시)
 -비영리성
 -감시와 견제기능 
 -지적, 도덕적, 문화적 헤게모니가 중요(동의의 정치)
3. 시민주체 형성과 시민문화(civic culture)
 -유교적 가부장제는 자발적 사회성을 결여하는가?
 -사회자본(social capital)과 상징자본/ 문화자본
 -사생활과 국가의 개입(침뱉기, 경범죄, 종교자유-파룬공, 군대거부..) : 싱카폴 사례
 -좋은 정치와 지배구조(good governance)
 -권력과 돈의 지배에서 탈피할 수 있는가?
 -도덕적 사회와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 문화주체와 문화적 시민권
 -공공선과 참여민주주의
 -한국인의 일상문화(연고주의, 연줄, 준법정신, 질서의식, 토론문화..)
 -대안문화운동/비젼운동/이슈운동

4. 신세대 문화특성과 시민사회
 -탈가족화 현상
 -탈지역화/ 탈정치화/ 탈이념화 현상
 -문화산업 소비층
 -이동성과 동시성
 -세계시민교육과 다문화교육
 -다중정체성

5. 비교문화적 논쟁들
 -아프리카에는 시민사회가 없는가?
 -중국의 사대부적 공공영역(하버마스)과 시민사회
 -후쿠야마의 신뢰(trust)-수평적/수직적 신뢰 , 폐쇄적/개방적 신뢰
 -강한 국가, 약한 사회 - 약한 국가, 강한사회 - 강한국가, 강한사회
 -시민사회, 생활세계와 문화(영역인가 행위자인가)

유럽좌파는 왜 기회를 놓쳤나, 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 도널드 서순

등록 : 2014.08.24 20:16수정 : 2014.08.25 14:26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52543.html?recopic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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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

한 주를 여는 생각

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
도널드 서순 지음, 강주헌 등 옮김
황소걸음·전 2권 9만2000원
오늘날 좌파 정당의 무기력함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미를 제외하면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좌파 정당이 늘 무기력했던 건 아니다. 특히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집권 경험이 풍부하다. 오스트리아 좌파 정당은 1970년부터 89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정권을 잡았다. 독일과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같은 기간 동안 거의 절반가량을 집권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패망 뒤인 1990년대 후반에도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들은 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더구나 신자유주의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사망선고를 받은 지금 말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역사가 도널드 서순은 <사회주의 100년>에서 좌파 정당이 과거에 안주할 뿐 미래를 향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좌파의 부진이 (…) 더욱 의외인 이유는,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유럽인 절대다수(70% 이상)가 빈부 격차가 늘었고, 현재의 경제 제도가 부자에게 유리하며,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이용할 능력이 없는지, 의지가 없는지 모르겠으나 좌파의 전망은 암울하다.”
그리고 상상을 보탠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유례없는 호기를 활용해 유럽 대륙 차원에서 공동 정책을 개발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예컨대 그들이 공동으로 유럽연합(EU)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거나 재분배를 위한 재정 정책을 개발했다면, (…) 사회민주주의가 살아남아 번성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 그러나,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우리의 현실이라니.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자본주의가 강해진 건 사민주의 덕분이었다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국민국가’와 ‘복지국가’의 딜레마에 빠졌다. ‘자본주의 폐지’라는 목표는 버린 지 오래다. 이들은 완전히 실패한 것일까. 지은이는 하버마스의 말을 빌려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인간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1904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한 국제 사회주의자들. 앞줄 가운데가 러시아 대표 게오르기 플레하노프(13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세기 이후 카를 마르크스만큼 세계사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은 인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결과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명제 자체에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탁월한 자본주의 분석가인 것은 맞지만, 공산주의 이론가나 혁명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은 그가 주장한 대로 ‘과학’이었지만, 공산주의 사회의 필연적 도래를 예견한 대목에서는 ‘종교’에 가까웠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라는 비전을 던져놓았을 뿐 ‘어떻게’는 설명하지 않았다. 마르크스가 설명하지 않은 ‘어떻게’의 두가지 길 중 하나가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이며, 다른 하나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폭력혁명 대신 ‘자본주의 고도화’를 택했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시작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에 좀더 충실한 선택이었다. 레닌의 실험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증명됐다. 그렇다면 서유럽의 길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 같은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개혁이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 폐지를 위해 싸웠지만
강한 자본주의를 만들고 만 아이러니
자본주의의 승리는 사실상
자본주의에 대한 규제의 승리였다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규제를 철폐한
후과는 2008년 금융위기로 나타났다
<유럽 문화사>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집트 출신의 역사가 도널드 서순은 1996년작 <사회주의 100년-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흥망성쇠>(황소걸음 펴냄, 원제: One Hundred Years of Socialism)에서 서유럽의 실험에 대한 평가를 시도한다. 무려 1778쪽, 2권의 방대한 부피로 국내에 첫 출간 된 이 책에서 지은이는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딜레마를 집중 분석한다. 결론은 이들이 ‘국민국가’와 ‘복지국가’의 틀에 갇혀 기껏해야 ‘일국적 자본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적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딜레마는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 같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개혁이 사회의 평화와 소비재 시장을 확대해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 이들은 자신들의 개혁이 성공할수록 자본주의의 번영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자본주의의 뒤를 따라다니며, (드물지 않게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압제와 불의도 포함해서) 압제와 불의, 착취와 차별에 대항하는 수많은 투쟁에 불을 지피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덕분에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지만, 스스로 결점을 치유하고 되살아나는 ‘터미네이터’가 됐다.
자본주의 폐지를 위해 싸웠지만(적어도 1989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스톡홀름 선언문’ 이전까지는 그랬다) 더욱 강력한 자본주의를 만들고 만 아이러니! 그러나 인권을 개선하고 민주주의를 확대한 그들의 기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복지 제도 확립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을 뿐 아니라, 사형제도 폐지와 동성애 합법화, 낙태의 비범죄화를 위해 싸웠으며, 다른 어떤 정당보다 일관되게 투표권 확대와 여성의 권리 확장을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섰다.
지은이는 엄밀하게 말해서 더 강해진 자본주의는 ‘규제에 의해 더 강해진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그 규제가 주로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해 도입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19세기 사상가들은 크게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에 대해 기술했다. 완전한 실패작인 이런 자본주의는 국제적 전쟁, 권위주의 체제, 대량 실업 등 끔찍한 정치적 영향과 더불어 끊임없는 경제적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 자본주의의 승리는 사실상 자본주의에 대한 규제의 승리였다.”
최근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나타났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전세계는 “규제를 철폐하고,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고, 국유재산을 민영화하고, 보조금을 없”앴다. 그 결과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였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한 것은 우파 신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잠시 고개를 숙였을 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사회주의 100년>의 지은이 도널드 서순 <한겨레> 자료사진
이에 대해 지은이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과거에 머물러 새로운 시도를 게을리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유럽 전역에 효력을 미치는 ‘사회안전망’ 구축 같은 노력을 했다면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늘 해오던 방식으로 그 일을 했다. 일상의 정치에서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들과 선거를 고려해야 한다는 압력에 쫓겨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확실한 패배를 약속한다.”
도널드 서순의 잠언 같은 말은 마치 우리나라 야당들한테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들은) 무능하고 조직력 없는 과두제 지도부에 의해 운영되는 것으로 보였고, 그 지도부는 자신들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보통 사람들’의 대표와 거리가 멀었으며, 생경하고 낯선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 (…) 사회집단은 정권을 잡기 전에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 실제로 국가권력을 잡는 ‘순간’은 혁명 과정의 한순간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말해 잘못된 순간에 권력을 잡으면 장기적인 패배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 한국동남아연구소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총서 5

김예겸 , 박번순, 박승우, 윤진표, 이동윤 지음 | 명인문화사 | 2010년 07월 15일 출간

목차

서문

제1장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 현황 및 평가
1. 서론
2.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의 연구 의미
3.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의 현황
4. 동남아 지역 거버넌스의 축으로서의 아세안
5.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의 지역 거버넌스 평가
6. 동남아 지역 거버넌스의 향후 과제

제2장 동남아 빈곤해소를 위한 지역 거버넌스
1. 서론
2. 동남아에서의 빈곤의 실태
3. 빈곤에 대한 동남아의 지역적 거버넌스
4. 결론

제3장 동남아 테러방지 협력의 지역 거버넌스: 국제적 압력과 내부적 인식 사이에서
1. 서론
2. 이론적 논의: 테러방지의 지역 거버넌스
3. 동나아의 테러리즘 현황과 테러방지정책
4. 테러방지를 위한 동남아의 지역협력과 거버넌스
5. 결론

제4장 동남아 환경문제와 지역 거버넌스:
인도네시아 밀림화재와 연무(Smoke Haze) 문제를 중심으로 국제적 압력과 내부적 인식 사이에서
1. 서론
2. 선행 연구
3. 인도네시아 밀림/임야 화재 및 연무 현황
4. 연무문제의 인과적 요인
5. 연무 문제의 맥락적(Contextual) 상황
6. 연무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중재적 시도
7. 다양한 인식들의 갈등 상황
8. 결론

제5장 동남아 전염병과 지역 거버넌스: 조류인플루엔자를 중심으로
1. 서론
2. 조류인플루엔자의 동향: 세계 및 지역 현황
3. 동남아 지역 국가들의 대응전략과 한계점
4. 지역 거버넌스 차원의 대응전략과 방안
5. 결론

제6장 메콩강 수자원 개발에 관한 지역 거버넌스: 초국가적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1. 서론
2. 초국가적 수자원과 지역 거버넌스에 대한 기본논의
3. 메콩강의 초국가적 환경문제의 실태: 수력발전을 중심으로
4. 메콩강의 지역 거버넌스: '물의 정치'
5. 결론: 바람직한 지역 거버넌스를 위한 과제

제7장 동남아의 초국가적 노동이주와 지역 거버넌스: 현황과 모색
1. 글로벌리제이션, 동남아의 노동이주, 지역 거버넌스
2. 동남아 이주노동의 역사적 전개와 현황
3. 동남아시아 초국가적 노동이주의 주요 이슈
4. 동남아 노동이주에 관한 거버넌스의 현황
5. 동남아 노동이주에 관한 모범적 지역 거버넌스의 모색

제8장 반인신매매 정책담론과 로컬 사회: 인도네시아 사례를 중심으로
1. 서론
2. 인신매매에 관한 선언적 정의와 사태의 복잡성
3. 인신매매 정책 담론: 문제 접근 시각을 중심으로
4. 글로벌의 문제정의와 로컬 현장: 인도네시아 사례를 중심으로
5. 결론

찾아보기
저자약력

출판사 서평


이 책은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동남아 차원의 지역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역내에서 부각된 7개의 초국가적 이슈인 테러리즘, 빈곤, 연무, 인신매매, 전염병, 수자원개발, 이주노동 문제에 대한 현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초국가적 이슈에 대하여 해당 동남아 전문가들이 과거와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과 각 이슈의 해결을 위한 동남아 지역차원의 협상 및 협력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초국가적 이슈의 해결 방안에 대하여 거버넌스라는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문제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연구되었던 글로벌 거버넌스나 국가 거버넌스 중심의 연구가 아닌 국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협력하는 지역 거버넌스로 분석하며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사회를 위한, 환경을 위한 동남아의 새로운 지역 거버넌스를 찾아나가는 노력과 방향을 같이하고 있다.
그동안 획기적으로 발전한 한국과 동남아의 관계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더욱 긴밀한 지역협력을 필요로 한다. 동남아 지역의 초국가적 이슈는 한국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할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과제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성에 바탕을 두고 실증적인 분석과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동남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동남아 지역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에 대한 현장감 있는 분석과 함께 우리의 정책방안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민주당 계파 분류

계보소속 의원
친노원로문희상 원혜영 유인태 이해찬 한명숙
문재인계김경협 김광진 김기식 김기준 김용익 김윤덕 김태년 김현 남인순 노영민 도종환 민홍철 박남춘 박범계 박수현 박영선 배재정 백군기 부좌현 서영교 신경민 신기남 우윤근 유기홍 윤호중 윤후덕 은수미 이목희 이용섭 이학영 임수경 장병완 전순옥 전해철 정청래 진선미 최동익 최민희 한정애 홍영표
정세균계강기정 김상희 김성주 김여주 김진표 김춘진 박민수 박병석 백재현 신장용 안규백 오영식 유대운 이미경 이상직 이원욱 전병헌 정호준 최재성
김한길계김관영 노웅래 민병두 문병호 변재일 안민석 이상민 이종걸 정성호 주승용 최재천
손학규계김동철 김우남 신학용 양승조 오제세 이낙연 이언주 이찬열 이춘석 임내현 전정희 조정식 최원식
박지원계김영록 박기춘 박혜자 배기운 이윤석
고 김근태계김민기 김승남 박완주 설훈 신계륜 우원식 유승희 유은혜 윤관석 이목희 이인영 인재근 진성준 최규성 홍익표 홍의학 홍종학
기타강창일 김성곤 김영환 김재윤 김현미 박홍근 백군기 신경민 신기남 심재권 우상호 유성엽 이석현 이용섭 장하나 조경태 추미애 황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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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와 국가의식 - 근대 광동문화 관의 형성,청메이바오

지역문화와 국가의식 근대 광동문화 관의 형성


청메이바오 지음 | 정진선, 최형섭 옮김 | 심산출판사 | 2014년 08월 25일 출간

목차

《추천의 글》
《목차》

해설: 근대 중국의 지식과 제도의 변화 / 7

제1장 프롤로그: 문화를 전시하다 / 39
문화의 전시 / 45
문화와 문인 / 55
‘천하’에서 ‘국가’로 / 64
‘국가’에서 ‘지방’으로 / 69
지방과 중앙 / 75
본서의 주제와 구성 / 86

제2장 영남지역의 중국화 과정 / 93
광동인의 범위 / 94
가르쳐 교화시키다 / 106
방언에서 종족으로 / 123
향토에서 국가로 / 161
소결: 문화―종족―국가 / 175

제3장 광동어로 창작하기 / 179
남쪽 오랑캐의 말에서 중원의 고음으로 / 180
구술에서 쓰기로 / 189
문인의 광동어 노래 부르기 / 200
월극의 특징 / 209
속어로 선교 활동을 하다 / 216
점차 규범이 되다 / 224
내 손은 내 입이 말하는 대로 쓴다 / 238
소결: 방언과 국어 / 246

제4장 영남 학술의 원류를 찾아서 / 249
영남 학술의 원류 / 250
학해당 내부 / 256
학해당 외부 / 269
학해당 이후 / 282
소결: 구문화에서 신문화로 / 311

제5장 민속에서 민족으로 / 315
중국에서의 민속학 / 317
광동에서의 민속학 / 321
학술과 정치 / 332
학자와 정계 인물 / 348
소결: 민족주의와 지방문화 / 368

제6장 구시대 사람이 편찬한 신시대의 지방지 / 371
『고요현지』의 편찬 / 374
용어와 내용 / 381
신구 교체기의 지방 지식인 / 390
지방지 속의 국가문화 / 394
지방의 이익과 민족의 의미 / 408
소결: 국민과 향인 / 417

제7장 에필로그: 문화 전시의 배후 / 419
문인의 위치 / 420
‘문화’란 무엇인가? / 428
‘광동문화’는 어디에 있을까? / 433
지역문화 연구에 대한 재검토 / 438

저자 후기 / 442
옮긴이의 말 / 447
참고 문헌 / 455
찾아보기 / 476

책 속으로

지식과 제도 체계의 전면적인 변화는 중국인의 사유와 행동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중국인이 과거를 대할 때에도 부지불식간에 현재의 사유 행동 방식으로 고찰하고 판단하게 한다. 만약 충분한 자각이 없다면 후대의 외재적인 척도를 가지고 과거를 평가하여, 전대 사람들의 사유와 행동의 본의와 진상을 살피거나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외래의 지식과 제도 체계가 유입되기 전에 중국인에게는 이미 고유의 사유와 행동 방식이 있었다. 그런데 변화가 일어난 후에 본래의 모습을 알려고 하면 오히려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된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무에서 유로 처음 생겨나서 발전·변화된 과정을 탐구하려면 먼저 본래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19쪽)

지식과 제도 변화의 커다란 배경은 동서 문명의 만남과 교류이다. 따라서 중국 고유의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서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하며, 일반적인 이해와 함께 그 당시로 되돌아가 각종 지식과 제도가 변화·발전한 연원과 맥락도 추적해야 한다. 그래야지 후대의 완정하게 체계화된 개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에 철학이 존재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근대 학자들이 벌였던 토론은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20쪽)

“현대의 의식적 체계를 가지고 고대의 단편적인 사상을 꿰맞추려고 하는 것이 현재 중국 사상사를 연구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폐단이다. 이런 견강부회는 사실 전혀 증명할 수 없는 대전제를 상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옛날 사람들의 사상이 모두 의식적이고 통일된 체계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상 발전의 과정을 통해 볼 때 그렇게 된 것은 실제로 매우 최근의 일이다. 원래의 단편적인 사상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사실 여러 가지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체계화라는 방법으로 고대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하면 할수록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다.”(張蔭麟의 인용, 20쪽)

일반적으로 개념은 대개 나중에 출현한다. 연구를 진행할 때 나중에 출현한 외래 개념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기는 어렵다. 근대를 거치면서 지식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이런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말을 이어 나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부득이한 상황에서 나중에 출현한 외래 개념을 사용하는 것과 모든 용어를 전부 받아들이거나, 혹은 용어가 규정하는 의미에 근거하여 온전히 사물을 파악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이들 개념이 본래의 의미와 모습을 제한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 법치 사회의 관점으로 청대의 법률과 그 실천을 고찰하여 사법과 행정을 분리한다면 이미 주제에서 멀리 벗어나게 되며, 억지로 형법과 민법을 구분한다면 더더욱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지게 된다. 사법적인 측면에서 고대 중국 사회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것은 실제와는 적잖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윤리 사회적인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 그것을 모두 법률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30쪽)

근대 중국의 지식과 제도 체계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은 더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청 시기, 특히 5·4 이후로는, 서구의 체계로 중국의 자료를 체계화하는 것이 주도적인 흐름이었다. 지금 사람들의 모든 지식은 대부분 이때 체계화된 것이다. 근대 학자들도 서학을 끌어다 억지로 꿰맞추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학자들은 더욱 외국을 모방하기를 좋아한다. 이는 학풍이 왕성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식의 구조가 서구화되었다는 것이 더 심층적인 원인이다. 외국의 학문이 현대 학술의 전반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중국의 학문도 장점은 드러내고 단점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주로 중국 내의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직접 연구 조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은 버려두고 남의 의견만을 따른다면, 장점을 발휘할 수도 없고 방법과 문제의식이 잘못되기 쉽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중국인들은 맹목적으로 구미의 뒤꽁무니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들의 학문을 더 잘 모방하면 할수록 중국의 역사 문화에서는 더 멀어지게 된다. 근본에서부터 철저히 개혁하여 중국 고유의 사유 행위를 파악할 방법을 하루빨리 찾지 못한다면,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어도 중국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외국에 의존하게 되어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당혹스런 상황이 출현할 수도 있다.(34쪽) 닫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2006년 싼롄서점(三聯書店)에서 출간된 『지역문화와 국가의식: 만청 이래 ‘광동문화’관의 형성(地域文化與國家認同: 晩淸以來‘廣東文化’觀的形成』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인 청메이바오(程美寶, 1968~)는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 중원대학(中文大學)을 졸업한 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중국 근대사가 전공으로 1997년부터 광주(廣州) 중산대학(中山大學)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은 ‘근대 중국의 지식 및 제도 변화 총서(近代中國的知識與制度轉型叢書)’ 중 첫 번째로 출간된 것이다. 총서 시리즈의 전체적인 구상과 기획 의도는 쌍빙(桑兵)의 ‘해설’에 비교적 상세히 밝혀져 있다. 총서에서 다루고자 하는 시기는 동서 문명의 충돌과 융합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근대’의 중국이다. 서구의 지식과 제도 체계가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중국 고유의 지식과 제도 체계는 어떠한 제약과 영향을 미쳤는가? 서구와는 다른 어떤 독특한 중국적 변형을 낳았고, 그것은 중국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처럼 서구 지식과 제도의 원래 모습을 이해하고,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과 중국 고유의 전통으로 인해 야기된 변화, 변화가 만들어 낸 발전 양상 등을 전반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전체적인 기획 의도이다. 그리고 이 야심 찬 거대한 프로젝트 이면에는 서구 중심의 학문 연구 방법과 시각에서 벗어나, 중국 학계 나름의 관점과 방법론을 찾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숨겨져 있다. 
이 책은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전반기 1백여 년 동안, 광동 문인들이 지방에 대한 관심과 국가의식의 이중주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히 논조를 조절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덧붙이고, 자신들이 동일시했던 지역문화를 정의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여기에서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누구에 의해 광동문화가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가에 대한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광동문화란 무엇인가?’에 답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지역문화가 연구가 아니다. 둘째, 이 책은 문헌 자료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관련 인물의 구체적인 활동에 입각하여 그들이 ‘광동문화’라고 하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순수한 ‘관념사’ 연구가 아니다. 셋째,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광동’은 개별적인 사례로, 만청 이래 중국의 지방 문화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분석틀을 제시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광동문화를 예로 들어 청 말 이래 중국의 지방문화가 어떤 권력들의 상호작용 하에 어떤 내용이 취사선택되어 지방문화를 정의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순수한 지방사 연구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지역문화 연구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론 및 분석틀과 함께 경계해야 할 점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거시적인 문제의식을 가지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에 따라 거시적인 관점을 연구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수준이 높은 독자들은 구체적인 서술 너머에 있는 각 사람의 ‘거시적인 틀’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총서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들의 이러한 대의에 대한 깨달음에는 차이가 있으며, 어쩌면 서로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연구 성과는 독립적인 것이다. 독자가 그 가운데서 깨닫는 것도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니, 어떤 사람에게 고개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봉우리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처음 시작은 뒷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는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총서의 출판은 표본을 제공하기보다 길을 탐색하여 방향의 윤곽을 제시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 동료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커다란 잠재적인 의미를 지닌 이 연구에 동참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연구 방향에 따라 각자 지혜와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구체적인 연구 성과도 낼 수 있고 연구 방법도 점차 완정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본 연구 계획이 완료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관련 연구가 끝났음을 뜻하지 않으며, 오히려 학자들에게 광활한 연구 영역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 즉, 이 총서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동료 학자들이 힘써 추구하는 또 다른 목표는 사유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사유 능력을 제고시키는 데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는 대략 1820년대부터 1940년대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광동문화’에 대한 서술 방식이나 틀이 1930, 40년대 전후에 확립되었다면, 그 형성 과정은 대략 1820, 3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제1장 ‘프롤로그: 문화를 전시하다’에서는 1940년 2월에 홍콩대학 펑핑산(馮平山) 도서관에서 열린 ‘광동문물전시회’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광동문화’의 기본적인 내용은 대략 20세기 전반기에 형성되었는데, 이 전시회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전시회에서 표현하고 있는 사실과 관념을 언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광동문화 관념이 구체적인 역사 과정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근대 광동문화 관념의 형성 과정을 서술하면서 문헌 기록에 나타난 서술 내용과 함께 관련된 역사 인물 간의 사승(師承)?지연(地緣) 등의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아울러 지역문화와 역사를 기술하고 정의하는 지식인의 지역적 정체성과 국가문화, 국가인식 간의 긴장과 변증법적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제2~4장에서는 주로 청대 도광(道光, 1821~1850) 연간에서부터 청 말 민국 초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2장 ‘영남지역의 중국화 과정’에서는 먼저 고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광동인’의 범위와 광동문화 서술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문화진화론과 문화전파론은 역대 지방역사 서술에서 중요한 해석 논리였다. 중원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영향으로 광동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점진적으로 문명화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이전 광동문화와 역사서술의 주도권은 광부인(廣府人)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객가인(客家人)의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서, 그들은 중원기원설(中原起源說)을 바탕으로 정통 한족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고, 광동인과 광동문화에 대한 정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청 말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학당(學堂)이 설치되었으며, 헌정(憲政)이 실시되고 의회 제도가 수립되었다.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지 대신에 향토지와 향토교과서의 편찬을 장려하였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지방 저작들을 통해서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관과 향토를 연결시키고자 시도하였다. 그들은 또한 자신이 동일시하는 지역문화와 족군(族群), 국가의식 간의 관계를 연계시키고자 하였고, 광동인과 광동문화, 나아가 국가관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제3장 ‘광동어로 창작하기’에서는 국가 관념이 방언의 발전과 지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하고 있다. 전통 시기 중국 정부는 방대한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지식인들의 국가에 대한 동질감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문언과 ‘관화(官話)’는 그런 역할을 하였다. 민국 시기에 이르러 그것은 백화와 국어로 대체되었다. 17~19세기 유럽에서는 민족국가의 출현과 함께 국어의 보급이 본격화되었고, 중국은 1920년대에 적극적으로 국어 보급운동을 추진하였다. 한편 방언의 상황을 살펴보면 광동의 지식인들은 광동어가 중원의 고음(古音)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문화 및 국가전통과의 연관성을 강조하였다. 청 말부터 민국 시기까지 광동어를 포함한 방언은 유신혁명의 상징으로 혁명가들도 방언을 빌어 국가 관념을 표현하였다. 또한 19세기 중엽 이후 광동인들이 상해, 홍콩, 동남아, 북미로 이주하여 광동어 문학 시장이 확대되면서 많은 광동어 문학 작품이 출현하였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오락, 선교, 부녀자와 아동 교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방언의 전복성은 새로운 국가 관념을 확립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지만, 결국 국가 관념은 방언의 발전을 억압하여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도록 하였다. 
제4장 ‘영남 학술의 원류를 찾아서’에서는 학해당(學海堂)을 중심으로 사회정치적 상황과 국가 관념의 변화가 광동의 학술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루고 있다. 1820년 양광총독(兩廣總督) 완원(阮元, 1764~1849)이 광주(廣州)에 학해당을 설치한 것은 광동의 학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도광(1821~1850) 이후 학해당은 광동의 학술 문화계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계(政界)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청 말 경학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과거제도와 관료 체계가 와해되고, 민족주의가 보급되어 반만(反滿) 정서가 확산되면서, 확고하던 학해당의 위치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청 정부의 실각과 함께 관방적 색채를 띠고 있던 학해당은 보수의 상징이 되었다. 동치(同治, 1856~1874) 연간 진례(陳澧, 1810~1882)와 명성을 나란히 하던 주차기(朱次琦, 1807~1881)는 학해당 학장에 취임하지 않으려 했다는 과거의 행적 덕분에 반만 인사들에게 광동 학술계의 고결한 선비로 인식되었다. 신해혁명 후 학해당의 불씨는 식민지 홍콩에서 다시 타오르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만청 유로(遺老)’들이 있었다. 정치 무대에서 밀려난 만청 유로들은 전통 문화를 복원하는 것으로 구시대의 유물을 부활시키고자 하였다. 1903년 학해당은 폐쇄되었지만, 학해당 학장에 의해서 편찬된 광동 학술사와 제자?후손들이 편찬한 문집 총서와 열전(列傳) 등으로 인해 학해당의 영향력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제5장과 제6장에서는 주로 1920~1940년대를 다루고 있다. 제5장 ‘민속에서 민족으로’에서는 민속학 운동에 내재되어 있는 지역?민중에 대한 관심과 국가의식 간의 관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5·4’ 운동의 세례를 받은 새로운 시대의 지식인들은 중국에 대한 개혁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였고, 유가 예교와 봉건 미신을 중국의 진보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간주하였다. 문언은 백화로 대체되었고, 서구의 민주주의와 과학은 이 시기 지식인들의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되었다. 이들은 ‘민중’이란 개념을 만들어 내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 향촌 생활을 통해 영감을 얻고 백화문 창작을 풍부히 하고자 하였다. 1920년대 그런 관심이 대학 연구의 범주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그 일부가 ‘민속학’으로 발전하였다. 북경에서 시작된 민속 연구는 민간문학을 수집하는 것에서 점차 민속 조사로 확대되었다. 광동에서의 민속학 연구는 1927~1933년 구제강(顧?剛, 1893~1980), 룽자오쭈(容肇祖, 1897~1994), 중징원(鍾敬文, 1903~2002) 등에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 시기 민속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지식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농촌의 민중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식의 수립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과학’과 ‘진보’의 이미지를 자처하며, 민간 풍속과 문학의 ‘봉건 미신’적인 요소에 대해 오히려 혐오감을 드러냈다. 여기에서 저자는 특히 객가학(客家學)을 창시한 뤄상린(羅香林, 1906~1978)이 새로운 정치적 세력의 비호 속에서 객가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강화시켜 나가고 있는지를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제6장 ‘구시대 사람이 편찬한 새 시대의 지방지’에서는 민국 시기에 편찬된 『고요현지(高要縣志)』를 대상으로 새롭게 형성된 국가의식과 지방문화 관념이 지방지 편찬과 내용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중국은 역대로 지방지를 편찬하는 전통이 있었고, 청대부터는 지방관의 주도 하에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문인들을 모아 집단적으로 기술하였다. 지방지는 지방문화 관념과 국가의식이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사회·정치 세력 간의 경쟁과 대화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국 이후에도 국민당 정부는 지방지편찬관이나 문헌위원회를 두어 지방지 편찬을 적극 장려하였다. 민국 시기에 반포된 지방지 편찬조례는 새로운 국가 체제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지방지 체계와 내용에 어떻게 반영해야 되는지 규정하고 있다. 1948년에 편찬된 『고요현지』는 내용이 상세하고 체제가 완정한 민국 시기 전형적인 지방지이다. 이 지방지 편찬자들은 모두 청조 때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면서, 민국 시기에 새롭게 관료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지방지에 ‘현대’, ‘민족’, ‘국민’ 의식을 부여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의 풍속과 습관이 미신적이고 낙후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미신적이고 낙후된’ 풍속이 바로 국민의 약점이자, 국가의 진보를 가로막는 원인이라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모어(母語)와 일상어가 모두 광동어임에도 월곡(?曲)과 월극(?劇)을 폄하하고 ‘국악(國樂)’을 제창하였다. 지방의 지식인들은 지방의 풍속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새로운 중국문화를 건설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제7장 ‘에필로그: 문화 전시의 배후’는 결론 부분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중국의 근대 지방 문화관의 형성과 관련된 지방?국가?문인?문화 등 몇 가지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또한 이후 중국의 지역문화 연구를 진행할 때 주의해야 될 점들을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