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메뉴

레이블이 방법론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방법론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부르디외는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4
부르디외는 없다
[28호] 2011년 01월 07일 (금) 18:17:12피에르 랭베르  info@ilemonde.com
경제 시스템이 온갖 폐해의 주범으로 몰리며 갈수록 거센 비난을 받는 가운데, 이와 관련해 대중은 시위를 벌이고, 학자들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어떤 총체적 이론도 두 요소를 연계해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 프로젝트를 구축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여전히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구성하고 활용하는 기관들은 지금도 학술적 문화와 투쟁적 실천의 조화를 이뤄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거리는 인파로 가득하고 구호는 더할 나위 없이 공격적이다. 사람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노래를 부른다. 노조원들의 기세에 지도부마저 압도당한 듯하다. 2010년 가을 연금개혁 법안에 대한 사회적 투쟁에는 1995년 11∼12월보다 많은 시위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식인을 친(親)권력파와 친시위대파로 양분해 투쟁을 방해할 만한 논제가 전혀 없었다. 15년 전의 모습은 이와 달랐다. <<원문 보기>>
파리 리옹역 로비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곳곳에 현수막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어느 연사를 향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바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철도 노동자를 상대로 연설하는 중이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공공서비스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세력에 저항하며 3주 전부터 투쟁해온 모든 분들께 우리의 지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프랑스 지식인이 노동자 곁에 선 모습은 1970년대 이래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1995년 12월 12일 화요일, 알랭 쥐페 총리가 주도한 사회보장 및 연금에 관한 이른바 ‘개혁’ 법안에 반대하는 200만 명이 거리시위를 벌였다. 파업이 시작되자 낯선 모습과 낯익은 모습이 오버랩됐다. 한편에는 임금노동자들이 있었다. 1980년대 산업구조조정 당시 철학자·언론인·정치인은 자신들이 이들을 골방에 꽁꽁 가둬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판적 연구자들이 다시금 등장했다. 이들은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현장에 관해서도 사상적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상반되는 어조의 탄원서 두 건이 프랑스 지성계의 분열을 드러냈다. ‘사회보장의 근본적 개혁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첫 번째 탄원서는 쥐페 총리의 법안이 “사회정의와 맥을 같이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톨릭 좌파 평론지인 <에스프리>, 생시몽 재단, 프랑스민주노동동맹(CFDT)을 위시해 시장에 동조하는 좌파가 탄원서 서명의 주축이었다. 또 다른 탄원서의 제목은 ‘파업노동자를 지지하는 지식인의 호소’로, 이때까지 뿔뿔이 저항운동을 벌이던 대학교수, 노조 및 협회 운동가들이 뜻을 함께했다.
부르디외가 철도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한 지 15년이 지난 오늘날, 저항적 사상의 생산자들과 이들이 몸담은 기관, 그리고 사회운동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서점이나 각종 집회, 사회과학 세미나 등을 보면 모순된 두 가지 움직임이 공존하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비판 사상이 예리해지는 동시에 확산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전문성을 띠며 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규범을 따르는 추세다.
1995년 시위는 독립출판의 쇄신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레종다지르(1996), 아곤(1997), 라파브리크, 에그질(1998), 막스밀로(2000), 암스테르담(2003), 레프레리오르디네르(2005), 린니으(2007) 등 출판사 30여 곳(1)이 탄생해 비판적 저작물의 보급에 힘쓰고 있다. 이들의 간행물은 여러 가지 차이와 다양성을 뛰어넘는 공통적 특성이 있다. 바로 번역물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과거 산업적 출판업계에서 거들떠보지 않던 저작물들을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출판사들이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고집을 부린 덕분이다. 오늘날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나 노엄 촘스키의 저서들이 대표적 사례다. 뿐만 아니라 1960~70년대 영국 신좌파가 내놓은 문화·역사·사회 분석(스튜어트 홀·레이먼드 윌리엄스·페리 앤더슨), 경제학자 조반니 아리기,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신마르크스주의 저서, 남성·여성, 성(性), 피지배층 정체성에 관한 연구, 지금은 이름이 잘 알려진 주디스 버틀러, 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의 글들도 마찬가지다. 이와 동시에 대여섯 종의 평론지가 출판사의 지원으로 등장해(2) 이런 텍스트들을 소개하고 논하고 프랑스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텍스트의 저자 및 평론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거의 대부분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역사학자인 페리 앤더슨은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라틴계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략) 영국, 미국, 독일연방, 스칸디나비아 국가에는 전후 시기에 (라틴계 국가 같은) 기대와 희망을 불러일으킬 법한 대중적 공산당이 존재하지 않았다.”(3) 1970년대 중반 많은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포기했을 때, 영국과 미국 등지의 대학교수들은 <뉴 레프트 리뷰> 등 평론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의 초석을 깔았다. 하지만 여전히 학계의 성채 안에 갇혀 있던 터라 이들의 저작 번역물을 이해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왼쪽으로, 다만 상업적으로
1997년 갈리마르 출판사의 <역사의 서재> 총서 총괄 담당인 피에르 노라는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아직도 ‘혁명적 대의에 멀리서나마 애착’을 표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가 쓴 <극단의 세대>(4)의 출간을 거부했다. 노라는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안 먹힌다. 그게 현실이고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5) 하지만 자본주의가 격변을 겪고 대안세계화운동이 국제적으로 발전하면서 1980년대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이념의 추도 중심을 되찾았다.(6) 시대는 변했고, 투쟁은 결실을 거두었다. 그 결실을 장사꾼들이 거두기도 했지만 말이다. 독립출판사들의 주도로 발간된 비판적이면서 까다로운 내용의 서적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대형 출판사들은 다시금 저항을 유망 분야로 인식했고, 투쟁가들의 시선(과 지갑)을 유인하기 위해 공들여 준비한 각종 총서를 대거 선보였다. 레종다지르 출판사가 내놓은 투쟁 총서의 초기 작품들이 성공을 거두자 이를 무시하려 안간힘을 쓰던 <르몽드 데 리브르>(일간지 <르몽드>가 주 1회 발행하는 도서 섹션)도 2010년 11월 26일자에서 ‘저항적 글’을 비중 있게 다루며 저항적 문체를 높이 평가했다.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미디어, 고삐 풀린 금융, 서구 질서에 대한 비판이 이제는 상업적으로 각축을 벌이는 분야가 된 것이다.
1930년대 초, 폴 니장은 보수적인 대학에 ‘감시견들’이 우글대는 모습을 묘사했다.(7) 1960~70년대 급진적 격변기에는 인문과학, 사회비판, 혁명이 함께 발맞춰 나가는 듯했다. 두 시대를 나란히 놓고 보면 대학은 제도권에 주춧돌을 마련해주고 의지하는 동시에 맹렬한 혁명가들을 배출하는 역량을 갖춘, 한마디로 갈등이 도사리는 기관임을 알 수 있다. 비판적 출판 부문이 학계와 교수·연구자들에게 견지하는 매료와 거부의 이중적 관계도 바로 이런 모순에 힘입어 증폭된다. 인문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거나 이미 학위를 취득했지만 지적 작업과 저항 활동을 병행할 수 있게끔 고등교육이나 연구 분야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30~40대 남성이 전형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 ‘투쟁적’ 출판자다. 물론 실제로는 종사자들의 이력이 다양하지만, 아무튼 이는 ‘학자’와 ‘정치인’이라는 두 개의 의자에 걸쳐 앉은 이들의 세계에 퍼져 있는 본질적 갈등을 명확히 보여준다.
출판자는 과학적 방식의 견고함과 명성을 지닌 저자들을 대학에서 찾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연구대상 폭이 여전히 협소하고 난해함을 즐긴다는 점에는 불만을 토로한다. 쉼표 하나만 위치를 바꿔도 당장 소송이라도 걸 기세인 까다로운 학자들의 요구 앞에서는 머리를 쥐어뜯지 않을 수 없다. 출판자는 사회비판 총서의 책임자로 교수·연구자를 내세우거나 적어도 학문과 정치(즉, 사상의 생산과 소비)에 양다리를 걸친 후보자를 기용하는 편이 안전하고 이롭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 논리로, 사회비평지 대표는 독자위원회를 기왕이면 대학 강사, 박사과정생, 권위 있는 저자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정치단체·협회 등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과 유기적 관계를 맺은 지식인은 종종 배제되곤 한다.
단체 몸담은 지식인은 찬밥
‘참여’ 전문지들의 편집위원회가 대중에게 전달할 저항적 글을 고르는 과정에서 학술지의 자문위원 같은 ‘반열’의 이름들만 찾아내려고 한다면, 과연 모든 비판 사상들이 선별의 체를 통과할 수 있을까? 물론 박사 교육을 거친 학위 취득자들이 견고한 분석 방법, 폭넓은 지식, 그리고 비판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박사과정에서는 이와 동시에 포기하는 방법을 배우고, 품위와 우월성을 지향하는 교육을 받으며, 책임 전가의 성향도 얻게 된다. 또한 과도한 학문적 전문화의 영향으로 사물을 좀더 복잡하게 진단하려고 한다. 아울러 이 과정은 비판은 허용하되 정치는 거부하며 진지함과 허세의 경계를 자발적으로 모호하게 만든다. 기존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의 운명을 편집 과정에서 봉인해버리는 ‘호모 아카데미쿠스’라면 이미 중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다. 글을 읽으면서 빛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장과 연계된 편견을 동원하니 말이다.
저작자들에게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측된다. 1960년대 독일·미국·프랑스·이탈리아·영국에서 대학은 급진 청년들의 정치적 사회화를 위한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보수주의 물결이 다시금 거세지고 각종 집단이 해체되면서 많은 혁명투사가 당시 선발 인원이 대폭 늘어난 사회과학 고등교육 및 연구 쪽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의 활동이 막을 내릴 즈음, 이번에는 1995년 11∼12월 파업시위를 보며 급진화된 일련의 학생들이 학계에 발을 내디뎠다. 물론 대학 전체에서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라즈믹 쾌셰얀은 현대 비평이론들의 세계적 파노라마를 다룬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오늘날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비판 사상가들이 대학에 몸담고 있다. (중략) 대학에서 생산하는 이론들은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대학 시스템에 온전히 편입된 이들은 결코 반(反)지성 사회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는 20세기 초 독일 사회민주주의간부학교나 프랑스 공산당학교와 다른 점이다.”(8) 이들 학교는 정치 지도부, 사상 생산자, 사회참여 세력 사이를 상시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에는 노동회관(Bourse du Travail)에서 활동하는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주의자들이 이들 세 개의 톱니바퀴를 하나의 축으로 규합하려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공산당의 영향력은 고등교육의 움직임에 따라 굴절됐다. 대학에서 자리를 꿰찬 공산주의 철학자, 역사학자, 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와 개념, 용어를 도입했다. 이들은 당시 상당한 지적 구심력을 행사하던 공산당에 새로운 당원들을 끌어들였다. 좌파 조직들이 취약해지고 노조 내부 교육기관들이 쇠퇴하면서 노동운동과 유기적 관계를 맺던 지식인들의 마지막 피난처도 훼손됐다. 사회적 열기가 사그라든 시기에 이를 다시 이어나가기 위해 각종 재단과 상설 조율기구, 공개토론회, 구상위원회 등 여러 해결 방안이 마련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인력의 방향은 역전됐다. 독학으로 교양을 쌓은 이들(프랑스 정치사의 중심적 인물들)마저 학자의 권위에 매료된 나머지, 심지어 자유주의적 평론지조차 경찰 탄압에 관한 특집 기사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 대학 강사에게 해설을 의뢰할 정도였다. 이들의 지위가 논지에 정당성을 실어줬던 것이다.
비판은 허용하되 정치는 거부
1995년 11∼12월 파업시위를 계기로 결집한 지식인들은 엄격하면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분석도구를 갈구하던 이들에게 세계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제공해줬다. 이는 비판이론과 사회운동 간 직접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런 동력이 대안세계주의 운동의 성공과 결합하면서 2000년대 초에는 투쟁문화와 학술문화를 넘나드는 저작물이 쏟아져나왔다. ‘참여적’ 대학교수·연구원인 저자들은 새로운 저항의 흐름을 세밀히 파고들었다. 이들이 사회투쟁의 거창한 비전을 ‘따끈따끈한 상태로’ 제시하거나 이런 투쟁의 정당성을 언론인에게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언론인은 전문가의 견해에 기대어 투쟁을 해설하고 논의를 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학자의 작업은 머지않아 학술적 비평의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들의 맹점은 바로 전략적 문제였다. 가령 독일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어느 정치·경제학 전문지의 독자위원회에 자신의 글을 보여주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면, 그는 아마 독자층과 목표를 달리 설정해야 했을 것이다. 대중을 조직하고 기존 질서를 전복하며 ‘지금 여기서’ 권력을 잡는 등 20세기 혁명가들에게나 21세기 ‘볼리바르적’(베네수엘라의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1783~1830)의 사상을 추종) 사회주의자들에게 똑같이 제기되는 문제를 대학 연구의 틀에서 풀 수는 없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최신 지식으로 무장했을 뿐 아니라 학술적 인정 기준과 학문 간의 벽에서 자유로운 지식인이 필요하다.
지위가 곧 논지의 정당성
경제학, 역사학, 사회학, 철학, 인구학, 정치학 등 사회비판도 학술활동의 영역 구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배운 바를 이용해 테크노크라트들의 권위에 맞설 능력을 갖추고 저항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적잖다. 하지만 이런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논리 때문에 노엄 촘스키나 에드워드 W. 사이드(9)처럼 합리성·평등·해방 등 보편적 범주를 기반으로 정치적 활동을 펼치는 지식인은 점차 공적인 무대에서 배척됐다. 이들이 거의 사라짐과 동시에 프랑스 사상의 거장들(피에르 부르디외, 자크 데리다, 피에르 비달나케, 장피에르 베르낭)까지 세상을 떠나자, 결국 지성을 이용한 마케팅과 군주를 상대로 한 자문이라는 두 가지 활동에 보편성을 예속시키며 매스컴을 타는 에세이스트들이 활개를 치게 됐다.(10)
첫눈에 보기에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들이 비판 사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치화된 학생들의 갈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 듯하다. 학술활동과 사회참여를 지속적으로 조화시킨다는 것은 도박이라 할 만큼 쉽지 않다. 선택의 순간을 늦추기 위해 학생 겸 투사는 사회참여를 뒷전으로 미루기보다 별도의 대상으로 부각시킨다. 즉, 각종 참여활동과 시위를 분석하는 동시에 직접 시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논문을 쓰는 시점에는 연구대상이 돼버린 신념과 거리를 둬야 한다. ‘더 객관적으로’ 보이려면 덜 참여적으로 보여야 하며, 급진성은 단순성과 일맥상통한다는 시각이 있기에 ‘더 섬세하게’ 보이려면 더 온건해 보여야 한다. 눈에 띄지 않게 경계선을 넘어야 한다. 민중의 세계에서 학문의 세계로 자리를 옮긴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세계의 반쪽으로 슬그머니 넘어왔다. 여기서 나머지 반쪽 세계는 배경에 불과하다.”(11)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에르노 같은 경로를 거친 이도 여럿이다.
학우들에게 사회운동에 관한 사회학 서적을 홍보하면서 자신이 인간 해방에 기여한다고 믿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어느 ‘비판적’ 잡지 편집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기왕이면 나중에 자신의 논문 심사위원이 될지 모르는 인물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면 더 좋으리라. ‘글로벌 위기: 경제와 사회의 재조명’에 관한 고찰을 교수들이 다른 교수들 앞에서 발표하는 세미나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지인들에게 전체 전자우편으로 알리기도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에서 “각종 사회과학 학문의 식민통치 이후 (페미니즘적) 관점의 인식론적·방법론적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열리는 학술대회의 머리를 장식할 ‘식민 유산과 식민통치 이후 저항: 인문사회과학의 식민 해방’이란 주제의 발제자 모집에 응하기도 한다.(12) 이런 과정을 끝내고 투쟁가에서 투쟁 이론가로 변신한 이들은 거리로 나서기보다 원고지 채우기를 더 편하게 느낀다. 혹은 자신들의 연구법을 사물의 질서보다 말의 질서를 위협하는 정치적 명분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매진한다.
엘리트 교육기관인 소수의 그랑제콜들과 개혁으로 취약해진 다수의 교육기관들로 양분된 교육 시스템을 뒤흔드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과연 정치적 투쟁과 대학 연구활동이 결국은 하나라는 신념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다수 교육기관에서는 학생들의 현실이 불안정해짐과 더불어 교육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1960∼70년대에 인기 절정을 구가한 사회과학 학문들도 지금은 가치가 급격히 하락해,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박사들이 거머쥐는 것은 빛바랜 학위증에 불과하다. 학위 취득을 위해 이들은 많은 것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포기했다. 수당 수혜 자격이 없는 많은 이들이 실업 상태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교통비를 냈으며, 연구실이나 지도교수를 위해 무료 봉사도 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심사위원 교수들의 ‘기고문’, ‘원론서’, ‘기본서’ 등을 인용하며 부랴부랴 논문 초고에 깨알같이 각주를 삽입했을 것이다. 비록 그 교수들이 자신의 논문 주제와 상관없는 분야 출신일지라도 말이다.
촘스키와 사이드를 배척하다
장애물 경주에서 점점 힘이 달리더니 결국에는 낙오하고 만 유수 대학 출신자들을 결승 라인에서 기다리는 것은 물거품이 된 커리어와 명성뿐이다. ‘사회학·민족학 전공으로 박사 예비과정 학위를 취득하고 뛰어난 과학적 감수성을 보유’한 학생의 미래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는 2010년 9월에 그가 받은 다음과 같은 인턴십 공고 전자우편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세브그룹은 자회사 칼로르에서 근무할 인턴을 모집합니다. 임무: 머리카락의 민족학적 분석, 성별: 불문. (중략) 상세업무: 미용 본부에 배속돼 대상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머리카락, 체모, 피부의 주요 유형(지름·두께·형태 등의 특징), 근본적 차이, 관련 습관(제스처, 화장품 사용법), 기타 문제점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 스스로 에밀 뒤르켐의 후계자라고 생각한 이가 헤어드라이어 조사관 노릇이나 하게 된 것이다.
빛바랜 학위증, 포기냐 저항이냐?
대학 교육을 받으며 키워온 열망과 실제로 제공되는 직업의 기회가 불일치하면 결국 포기를 하거나, 아니면 저항을 하게 된다. 2006년 겨울, 학생들이 불안정성과 최초고용계약(CPE)법에 반발해 벌인 급진적이고 단호한 시위는 이미 노선의 변화를 예감케 했다. 대학 학부부터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고등교육의 혜택에 대한 믿음이 갑자기 요동친 것처럼 모든 상황이 전개됐다. 겨울 한철 동안 대학 캠퍼스들이 ‘정치적 사회화’라는 기능을 되찾은 듯했다. 일부 모임은 언론의 압력에도 끄떡없이 사회과학의 도구들을 이용해서 노조 운동가들과 연계해 사회 전반에 걸친 요구사항들을 마련했다. 부르디외가 그토록 추구하던 ‘집단적 지식인’의 예기치 않은 변종이 등장했다고 봐도 무방할까?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각주>
(1) Sophie Noël, ‘도서산업의 세계화에 맞선 소규모 독립출판: ‘비판적’ 에세이 출판사들의 사례’, in Gisèle Sapiro, <출판 세계화의 모순들>, Nouveau Monde, 파리, 2009 참조.
(2) <아곤>, <콩트르탕>, <린니으>, <무브망>, <뮐티튀드>, <서적·사상 국제리뷰>(2010년에 발행 중단), <바카름므> 등이 대표적이다.
(3) Perry Anderson, <역사적 유물론의 궤적>, Verso, 런던, pp.76~77, 1983.
(4) 결국 1999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콩플렉스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됐다.
(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7년 3월호의 세르주 알리미, ‘출판의 매카시즘’을 읽을 것.
(6) François Cusset, <10년: 1980년대의 엄청난 악몽>, La Découverte, 파리, 2006.
(7) Paul Nizan, <아덴, 아라비>, Maspero, 파리, 1960(1931) 및 <감시견>, Agone, 마르세유, 1998(1932).
(8) Razmig Keucheyan, <좌반구: 새로운 비판사상의 지도>, La Découverte, ‘Zones’ 총서, pp.28~29, 2010.
(9) Edward W. Said, <지식인과 권력>, Seuil, 파리, 1994를 읽을 것.
(10) Bernard-Henry Levy, Jacques Attali, Alain Minc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발표한 서적은 모두 합하면 63권에 달한다.
(11) Annie Ernaux, <La Place>, Gallimard, p.96, 1983.
(12) 2010년 가을 메일링 리스트 ‘historicalmaterialism @yahoogroups.com’을 통해 발송된 전자우편 중 수집된 사례.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온라인 저널리즘 - 공론장 분석모델

온라인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 2: 공론장 분석모델

1. 이번 글의 목적은, 공론장 분석을 위한 비교모델(benchmarking) 소개에 있다. 이 비교모델은 인터넷이 주요 전달/소통 매체로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의 공론장을 그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다. 1980년대 서유럽 국가들의 의사소통 및 의사형성 구조의 특징들은 무엇이었을까? 블로그와 블로그계의 등장 및 성장, 그리고 온라인 뉴스 소비의 확대는 이러한 80년대 공론장과 다른 구조적 특징을 가능케 할까?
2. 굳이 공론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할까?라는 Joll의 지적에 대해 제한적으로 동감한다. 2.1 하버마스의 규범적 공론장은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엇이기에 그렇다. 2.2. 그러나 2009년 한국사회 ‘소통의 지배적 구조와 동학/과정’과 주요 행위주체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들이 어떻게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 또는 새로운 행위주체는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소통 구조와 동학/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다보면, ‘공론장’이라는 개념을 꼭 버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소통 구조와 동학/과정’의 결과물 중 하나인 ‘여론/공론(public opinion)’, ‘서로 구별되는’ 세부 소통 구조들간의 연관관계 분석, 소통 공간 안과 바깥의 행위자-개인, 정당, 정부기관, 경제계, 지역사회 등- 분석 등에서 여러 개념들을 묶어줄 상위개념으로서 공론장이라는 개념은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3.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공론장 모델’은 독일 베를린 사회과학 학술원의 두 학자(Gerhards와 Neidhardt)에 의해 1980년대 연구되었던 이론에 기초한다. 글 출처는 이 글 하단에 적어 놓았다.
4. 이 두 학자의 공론장 모델-이하 ‘베를린 공론장 모델’로 이름지음-은 본인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하버마스 공론장 개념보다는 루만의 시스템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5. 그림을 보면서 시작해 보자. 아래 그림은 베를린 공론장 모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집적 만들어 보았다(글자들이 너무 작아 알아보기 힘들다면 아래 그림을 클릭!).
베를린 공론장 모델
베를린 공론장 모델
5.1 서로 구별되면서 연관된 공론장들 (위의 그림에서 (1), (2) 그리고 (3)의 타원들)
공론장은 3개 층위(layer)로 구성되어 있다. (1) 사적 (우연한) 만남(encounters): 술집, 직장, 버스 정류장, 커피집 등에서 이뤄지는 대화들이 이 작은 공론장의 다양한 형태들이다. (2) 행사 공론장 (public meetings) 또는 주제별 공론장: 각종 회의, 행사 그리고 집회 등이 여기에 속한다. (3) 대중매체 공론장 (the mass media): 말그대로 신문, 잡지, 방송 등 전통적인 전달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공론장을 말한다.
이들 공론장 층위들은 서로 배타적 관계가 아니다. 대학 학생회실/동아리방 등 (물리적)공간에서 하나의 신문/방송 기사를 화두 삼아 사적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각 층위들은 (A), (B), (C) 그리고 (D)의 관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 – 참고: 두 저자의 원글에서는 층위를 구별하는 그 밖의 다른 특징들이 열거되어 있다.
5.2 공론장의 기능 및 의사소통/의사형성 과정
각 공론장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및 의사형성 과정은, 5.2.1 정보수집 (Info-collection), 5.2.2 정보처리(info-processing), 5.2.3 정보적용(info-application)으로 구별할 수 있다. 여기서 ‘정보’라함은 광의 개념으로 대화 소재, 주장, 학술적 지식, 행사 내용, 기사 거리, 결의문 등 전달 및 가공되는 내용 그 모두를 지칭한다.
5.2.1 정보수집(Input)은 ‘관찰’ 및 ‘조사’ 과정 뿐 아니라 언제나 ‘선택(selecting)’ 과정을 동반한다. 그리고 ‘선택’은 사실 ‘배제’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선택 및 배제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루어 진다. 하나는 대화/소통의 대상이 되는 ‘정보’의 선택 및 배제이며, 다른 하나는 ‘공론장 참여자’의 선택과 배제다. 전자를 (3) 대중매체 공론장에서는 아젠다 셋팅(Agenda Setting)이라 부른다. (2) 행사 공론장에서 주제 선택과 참여자-특히 사회자, 발표자- 선택은 (2)번 공론장의 구조적 특징을 규정한다. 토론을 통해 청중(audience)이 직접 의사표시를 할 수 있지만, 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5.2.2 정보처리(Throughput)는 정보/의견이 종합화-해석, 평가, 통합 및 재배치-되는 과정을 말한다. 사적 대화는 ‘기록’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 대화는 그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당한다. 그리하여 (1) 사적 만남에서는 정보처리 과정이 지속성을 가지지 못하고, 의견이 종합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 및 의사소통도 예를들어 게시판 글 또는 댓글로 기록되고 연결된다면 (1) 사적 만남 공론장에서 ‘정보처리’ 과정은 새로운 성격을 가지게 된다. (2) 행사 공론장 또는 주제별 공론장에는 의제설정 및 발언자(speaker)를 결정하는 행위주체가 존재하며, 이들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정보처리’ 과정은 결정된다. (3) 대중매체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처리 과정은 푸코의 비판적 담화론, ‘프레이밍(framing)’ 등 여러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다. 정보/의견이 해석 및 평가되는 과정에서 전달자(speaker)의 주관적 해석틀(frame)이 작용되면서, 정보/의견이 왜곡된다 또는 될 수 있다. 이러한 왜곡 가능성은, ‘정보수집’에서 대중매체가 가지고 있는 선택 및 배제의 힘 – 이른바 대중 매체의 ‘문지킴이(Gatekeeper)‘ 독점력-과 상응한다. 그렇다면 전통적 대중 매체-신문 및 방송-의 이러한 독점력이 약화된다면, (3) 대중매체 공론장은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까? 다른 형태의 독점력을 가진 새로운 행위주체가 탄생할까? 또 한가지. 이러한 정보수집 및 정보처리의 독점력은 그 결과물의 ‘희소성(scarcity)’을 가능케하며 이는 나아가서 대중매체 상품의 높은 가격-신문 등 개별 상품의 가격이 아니라 대중매체 전체 서비스 가격 -으로 이어진다(참조: Picard 2009).
5.2.3 정보적용(Output)은 ‘정보’가 ‘행위’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화자(speaker)와 수용자(audience) 사이에서 결정된 행위는 ‘공감’, ‘약속’, ‘교감/합의(consensus)’, ‘여론/공론(public opinion)’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행위결정의 선택폭은 각 공론장들의 소통구조의 특징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상호작용(B)이 매우 약하고, 이른바 직업적 전문가(D)에 의해 정보수집과 정보처리가 이루어지는 (3) 대중매체 공론장에서 독자/시청자(audience)가 선택할 수 있는 행위는 두 가지다. 계속 그 공론장에 머물거나 공론장 밖으로 나가거나. 이를 exit option이라 칭한다. 대중매체 공론장에서 수용자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voice option-는 매우 제한적이다.
5.3 각 공론장 층위를 구별하는 특징들
(A) 공적 관계 (the public): (1) 사적 공론장에서 이루어 지는 대화/의견교환은 직접적이다. 또한 기록되어 전달될 수 없기에 일회성을 가진다. 이에 반해 (3) 대중매체 공론장에서 의사소통은 전달 매체에 기초하여(medial) 이루어지며, 그 소통 내용은 기록된다(manifest).
(B) 상호작용 (interactivity): 상호작용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소는 수용자(audience)가 선택할 수 있는 행위의 종류와 영향력이다. (3) 대중매체 공론장에서는 ‘공론장에서 빠져나가기 (Exit)-채널 돌리기, 신문 구매하지 않기 등-’가 수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양식이다. 이 행동양식은 시청률, 구독률 등으로 표현된다. 독자편지, 시청자 항의전화-Voice-는 전통 대중매체 공론장에서 수용자들의 주요 행위라 보기 힘들다. 댓글 남기기, 퍼가기, 링크 추천하기, 링크로 연결하기, 재해석하기 등의 수용자 행위는 불가능하다. 
(C) 접근성 및 경계 (access): 하버마스(1962/1991: 52 f.)에 따르면 공론장은 ‘경계(boundary)’를 가지고 있고, 이 경계는 원칙적으로(!) 닫혀있지 않아야 (non-closed) 한다. 묘한 표현이다. 닫혀있지 않아야 하지만, 경계선은 있다! 베를린 공론장 모델은 각 공론장 층위에 존재하는 경계선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3) 대중매체 공론장에서 ‘정보수집’과 ‘정보처리’ 영역으로 통하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철문의 열쇠는 전달자(communicator)와 중개자(mediator)만이 가지고 있다. 수용자(audience)는 수동적으로 소비만 하며, 때문에 개별적인 진입비용-개별 상품구매가격- 또는 기회비용이 매우 낮은 편이다. 즉 대중매체 공론장에서 ‘정보적용’이 이루어지는 영역의 철문은 상대적으로 활짝 열려있다.
(D) 역할구분/전문성(differentiation of roles/professionalism): 공론장에 참여하는 행위주체의 역할은 크게 화자(speaker)와 수용자(audience)로 구별된다. 이 화자는 서로 다른 공론장에서 전달자, 중개자, 발표자, 사회자 등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수용자는 행사/집회 참가자, 소비자, 시청자, 독자 등의 이름을 가진다. (1) 사적 공론장에서는 화자와 수용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공론장 참여자들의 역할이 서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2)와 (3)에서는 점점 더 이 두 가지 역할이 고정된다. 그리고 고정화는 ‘전문화’의 경향과 함께 한다. 전문 직업(기자, 편집인)을 가진 전달자, 중개자만이 화자로 등장하는 것이 대중매체 공론장의 특징이다.
6. 다소 복잡한 글이 되었다. 베를린 공론장 모델이 현재의 한국사회 공론장을 분석하는데 효과적인 ‘비교모델’이다라고 주장하기에는 내 개인의 확신과 연구가 부족하다. 그러나 다양하고 서로 겹처있는 공론장들의 특성을 보다 세분하여 살펴봄으로서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그리고 위협받고 있는-실명제, 검열 등- 인터넷 또는 온라인 공론장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이다.
참조 글 1: Gerhards, J. / Neidhardt, F. (1991): Strukturen und Funktionen moderner
Öffentlichkeit. Fragestellungen und Ansätze, In: Müller-Dohm, S. /
Neumann-Braun, K. (eds): Öffentlichkeit, Kultur, Massenkommunikation,
Oldenburg, pp. 31-89. 독일어 원문(1990년 판)은 여기를 클릭하면
내려받기 가능하다. 이 두 학자의 이론을 영어로 간략하게 소개한 글은 다음과 같다: Wessler, H. / Schultz,
T. (2007): Can the Mass Media Deliberate?: Insights from Print Media
and Political Talk Shows, In: Butsch, R. (eds): Media and Public
spheres, pp. 15-27.
참조 글 3: Habermas, J. (1962/1991):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2. ed., Frankfurt a. M.

ONE THOUGHT ON “온라인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 2: 공론장 분석모델”

비대면 의사소통의 역설

주요 의사소통 방식이 대면 의사소통에서 비대면 의사소통으로 달라지면서 
사회의 지역성과 위계성이 현저히 약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지역사회, 대면 의사소통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비대면, 지역성의 비중이 줄어들었으나, 
역설적으로 위계는 높아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

다음은 시간 흐름에 따른 의사소통 방식의 등장과 위계성을
도표로 표현한 것입니다. 




최초의 의사소통은 행위로 이루어졌습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해당하는 얼굴표정, 행동 등을 가리킵니다. 

이후 언어가 등장하면서, 문자가 등장하면서 
나중에 나온 의사소통 방식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현재는 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의사소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반면 대면 의사소통은 이전에 비하여 비중이 현저히 줄어든 상황입니다. 

이것이 피상적으로 본 파악입니다. 
이런 피상적 파악에 따라 앞으로 대면 관계는 없어질 것이고,
모두 인터넷 등을 통한 영상 통화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어떠할까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만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여 여기저기에서 모임이 많아지고
대면 관계에 더 열광하는 듯 보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

인터넷, 음성 및 영상, 문자 등을 통한 비대면 의사소통은
확산성에서는 매우 훌륭한 매체입니다. 
하지만 진실성을 확인하기 어렵고,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기에 부족합니다. 

이와 같이 의사소통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사람들은 그 부족함을 이전 의사소통 방식으로 보완하고 확인, 확정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비대면 의사소통이 아무리 활발해져도 
역설적으로 오해는 더 일상화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보면 오해는 오히려 더 일상이 되었습니다.

오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의사소통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와 진실성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결국 비대면 의사소통의 경우 
기본적으로 진실성과 의도를 어느 정도 제한하여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진실성과 의도를 명백히 확인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할까요?
대다수의 경우에는 비대면 의사소통 이전에 사용하던 의사소통으로 
진실성과 의도를 명백히 확인하고 확정하려 합니다. 

즉 직접 만나서 
대면 의사소통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확정하려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보다는 음성 및 영상을 통해, 
음성 및 영상보다는 문자(문서)를 통해,
문자(문서)보다는 대화를 통해,
대화보다는 그 사람의 비언어적 대화를 통해
확인하고 확정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과거에 사용하던 의사소통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계가 높아지는 셈입니다. 
비대면 의사소통을 확인하고 확정하는 상위의 위계를 가지는 셈입니다. 
다만 그 비중이 줄어들어 영향력이 적어 보일 뿐입니다. 

#

행위 및 언어를 통한 대면 의사소통의 위계가 높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지역이 다시 중요해집니다. 

직접 대면하려면 물리적 거리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직접 대면하려 해도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면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난다 해도 거리가 너무 멀면
그 빈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관심사에 따라 모임이 만들어지되, 
오프라인 모임은 주로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대면 의사소통은 물리적 거리의 제한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깊은 의사소통이 필요한 경우에는 
오히려 온갖 클러스터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 지역으로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아래 그림은 실리콘밸리의 입주기업 지도입니다. 
벤처기업하면 비대면 의사소통을 선호할 것 같지만, 
기업 발전과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대면 의사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한 지역에 모이는 역설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1

# 

물론 지역성이 다시 중요해졌다 해서 
과거의 사회에서처럼 
같은 지역이라 하여 무조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관심사에 따라 비대면 의사소통을 이루되, 
깊은 관계는 지역이라는 '장소'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아질 것입니다. 
때로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 장소를 스스로 구성하여 모이는 경우도 많아질 것입니다. 


정리하면 
대면 의사소통은 그 비중이 줄어들지언정 중요성은 결코 약화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높은 위계로 올라가 필수적이 됩니다. 

지역성 또한 그 비중이 줄어들지언정 중요성은 결코 약화되지 않습니다. 
대면 의사소통이 필수적인만큼, 지역성 또한 그 중요성은 계속 유지됩니다.

따라서 대면 의사소통과 비대면 의사소통의 관계성과 중요성,
이에 따른 지역과 가상공간의 관계성과 중요성 등을
현실성 있게 통합하여 고려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2, 3

  1. 이미지 출처) http://industryland.or.kr/web/bc/foreignDev/foreignDevDetail.jsp?p_id=27 [본문으로]
  2. 참조) 쉽게 읽는 루만, 마르고트 베르크하우스, 한울 [본문으로]
  3. 참조)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 홍성욱, 들녘 [본문으로]

베버 방법론의 문제점 - 사회적 행위론의 한계

연결점으로서 커뮤니케이션/행위

막스 베버의 사회적 행위 개념의 공헌을 부인할 사회학도는 아무도 없을 것이
다. 사회학은 지금까지 이 개념에 힘입어 수많은 업적을 쌓아올렸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일말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개념은 사회 이론
적 관점에서는 중요한 약점을 지니고 있어서, 본 논문의 구조/행위 대립 극복의
관점에서는 전향적 극복의 대상이다.

베버(Weber, 1972: 6)는 주체를 사고의 중심에 두는 학문적 전통에서, 사회적
행위를 행위자가 의미를 품고 지향하는 행위로 정의하였다. 베버는 의미를 주체의
지향의 결과로 이해하며, 사회적 행위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 사고의
이면에는 “주체-의미-사회적 행위”를 시간적으로 위계화하는 도식적 기준이 있다.
이러한 관점은 또한 사회 현상의 분석을 개인주의적 환원(Weber, 1972: 9)에 의존
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루만이 보기에, 베버의 사회적 행
위는 사회적 지시 관계를 결여하고 있다. 사회성의 근거는 개인의 의도된 의미에
있을 뿐이다. 이러한 주관적인 행위 개념은 주체만이 그가 행위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주체에게 물어볼 도리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체는
이때 - 물질적이든, 선험적이든, 어쨌든 사회 질서 이전에 존재하는 것으로 - 전
(前)사회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1985: 8)
그밖에도 사회학적 행위 이론은 사회적 행위를 사회적 관계에서 격리하여 다룸
으로써, 이해 사회학의 목표로 내걸었던 사회적 행위의 진행과 효과의 원인을 설
명하기 위해 그것이 현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떤 진행과 과정을 겪는지를 추
적하지 않는다. 베버는 그 대신 행위자의 의미 분석에 몰두한다. 그러나 행위자의
의도는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특별한 경우에만 확인될 뿐이며, 보통은 커뮤니케이
션 흐름이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한 개별 심리 체계들의 개별적인) 의식의 흐름과
함께 진행된다. 사회적 행위는 분리된 사건으로서 그 자체가 사회를 구축하지 않
는다.

“[...] 개별 상황에서 [사회적 행위로서] 하나의 개별 행위는 그것이 어떤 사회
적 기술(記述)을 [실제] 야기할 때에만 행동흐름에서 부각된다. (...) 행위가
그것의 시작과 종결로 표현되는 단위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러한 [사회
적 기술을 통한] 방식밖에 없다.”(1984: 228)

이러한 사회적 행위 개념의 결점을 루만은 “커뮤니케이션/행위” 개념을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떤 차이가 있는
가?
전자는 후자와 달리 인과적 의미 분석의 장점을 지닌다. 반면 후자는 행위의 귀
인을 경험적 사건으로 내장하고 있으며4),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야기한다. 커뮤니
케이션에서는 타자의 행동의 진의를 추정하는 자아의 이해가 이루어짐으로써 행위
귀인이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함께 구성해나가는 사회생활에서 행위는 당사자의
의도의 결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의 의도라고 추정
한 내용으로 인정받는다. 그렇지 않다면, 형사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모든 피
고는 무죄 판결을 받을 것이며, 학위 논문을 제출한 모든 학위 수료자가 학위를
수여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와 통보의 차이를 처리한 결과, “제거할 수 없는 보편
적인 의심을 풀어놓으며”(1984: 207), 이것은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내는 자
극제 역할을 한다. 후속 커뮤니케이션은 이 지점에서 이전 커뮤니케이션 송신자가
통지한 정보를 수신자가 이해한 (정보) 내용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예를 들
어, 판사는 피고의 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유죄 선고를 내릴 수 있으며, 논문 지
도교수는 제출된 원고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 장치는 커뮤
니케이션 타자의 입장에서 의미를 지향하는 사회적 행위(통보 행위)를 내포하고 있
을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자아에 선행하며 자아에 의해 구성되는 의미도 이
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행위는 귀인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맥락에서든
어떤 의미론(‘의도’, ‘동기’, ‘이해 관심’)의 도움을 받아서든 간에, [커뮤니케이
션] 체계 귀인을 통해 발생한다. 이 행위 개념은 심리적인 것을 배제하기 때문
에, 행위의 충분한 인과 설명을 도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선택된 개념 이해에서는 선택이 [...] [커뮤니케이션] 체계 자체에 관련
되고, 이 토대에서 후속 커뮤니케이션의 수신인, 즉 후속 행위를 위한 연결점
이 확정된다는 점이 [...] 중요하다.”(1984: 228-229)


구조/행위 대립 극복으로서 루만의 커뮤니케이션 체계*
이 철

2014년 10월 5일 일요일

비교역사사회학, 찰스 틸리

비교역사사회학(사회과학신서 37)


찰스 틸리 지음 | 안치민 외 옮김 | 일신사 | 1999년 02월 25일 출간

목차

001. 지적 준비
002. 해로운 네 가지 가정
003. 더 해로운 네 가지 가정
004. 비교방법
005. 개별화비교
006. 보편화비교
007. 변이발견비교
008. 포골화비교
009. 결론 

출판사 서평

이 책은 그 제목만으로 짐작하기에는 비교역사사회학을 공부하는 사회학도들의 '교과서'로나 쓰일 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20세기의 사회과학 담론에 대한 성찰적 비판이며 새로운 대안 모색이다.

틸리는 이 책에서 20세기의 사회과학 담론의 대부분이 사실은 19세기의 가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8가지로 범주화하여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세계화의 대두와 함께 20세기 담론의 개념적 분석 단위였던 '국가'의 역할과 위상이 무엇인가라는 점은 가장 큰 논쟁지점이며, 이미 세계체제론 등의 거시적 관점에 의해 비판되고 해체되고 있다. 이런 사회과학의 시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분석 방법과 단위로서 거대 구조와 폭넓은 과정에 대한 대규모 비교라는 틸리의 제안은 분명 들어볼 만한 방법론적 제안일 것이다
  •   최근 사회과학이 미시적 흐름에 주목하면서 거시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주류의 거시사는 세계화, 민주주의, 소통과 교통의 혁신이라는 세계사적,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서 점점 연구 영역에서 밀려나고 아래로부터의 개인, 일상생활 등에 초점을 맞춘 미시사가 사회과학의 중요한 주제로 등장했다.
      그렇지만, 과거 사회과학의 논지는 주로 위에서 아래로, 국가와 역사 중심의 거시적 흐름이 주류였다.  연구 주제도 초기의 사회과학자들인 맑스, 베버, 뒤르켐 등의 연구에서 보듯이, 주로 자본주의, 계급갈등, 도시화와 빈곤, 산업 노동자등 19세기 서구 사회의 진보와 진화론의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거대한 사회적, 역사적 변화 속에서 “진보” 특히, 서구유럽의 산업발전이 중요했다.
      ‘왜 서구유럽은 자본주의와 산업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는가?’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이미 학문 연구에 기본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당시의 제국주의적 분위기, 진화론, 국민국가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과학 학문분과의 출현과 발전을 추동했다.  이 분석들은 부르주아적 시각이 깊이 침투해있고 결론은 대부분 서구유럽 사회가 진보된 사회이며 이성적이고 우월한 사회라는 것이었다(맑스는 부르주아적 시각을 비판했으나 그도 진보론적 사고틀에서 연구주제를 분석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산업 사회는 인간의 진보와 진화의 승리라는 암시 속에서 이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노동자들, 가난한 자들)이나 국가들(서구유럽이나 미국, 일부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지역)을 열등하고 퇴보와 미개 등으로 치부했다.  제국주의와 우생학이 횡행하던 19세기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여전히 우리 사회와 인식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과학의 태동이 19세기에 이뤄진 까닭에 19세기 산업사회의 사고틀이 첨단정보화 사회인 현재도 적용되는 것이다.
      비교사 방법은 상당히 어렵고 까다로운 연구다. 연구 주제는 상당한 역사 기간 동안 이뤄진 변화를 다루기 때문에 보통 수십 년이나 수백 년 단위의 변화를 연구해야한다. 비교 대상들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변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 변수가 어떤 이유로 비교 대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추적하는 과정은 거대한 주제만큼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한다.
      이 책의 주요 논지는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경직된 사고틀은 여전히 사회과학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해로운 가정의 틀에서 벗어나 비교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틀 및 연구 방법의 쇄신을 주장한다. 이 책은 1980년대 쓰였으나, 저자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거대 질문(big question)을 제기한다: 우리는 19세기의 세계를 변형시켜 왔고 또 오늘날 우리 세계를 변형시키고 있는 대규모의 구조와 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을까?(p.20-21)”

     
       “내가 의도하는 것은 세계의 특정 시기와 범위 내에서 원인을 구체화하고, 그 시간-장소의 한계 내에서 각 예들간의 변이를 밝히고, 제시된 시간과 장소로부터 나온 유용한 증거들과 일치하는 진술들이다.  거대 구조, 폭넓은 과정 그리고 대규모 비교에 관한 분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불확실한 진술들을 엮는 기둥을 제공한다(p108).” 

현대 사회이론의 흐름, 브라이언 터너

 

현대 사회이론의 흐름
브라이언 터너 지음 / 고형면, 고호상, 권오헌, 김민규, 박선권, 박형신,이택면, 정헌주, 최원기, 홍성태 옮김
한울아카데미 / 2010-02-27 발행 / 신국판 / 양장 / 912면 / 59,000원
ISBN 978-89-460-5236-9 93330
분야 : 사회학
 
 이 책은 고전시대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는 사회이론에 관한 글들을 모아 놓은 독보적인 모음집이다. 이 책은 사회, 정치, 문화, 젠더, 인종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쟁점들을 최근의 쟁점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루고 있다. 글쓴이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매우 신뢰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매우 가치 있는 참고문헌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 존 오닐, 요크대학교, 토론토

독자들의 편에 서서 개정된 이 안내서의 인상적인 모티브는 브라이언 터너가 ‘치장적 이론’―문화이론이 자체의 목적으로 삼아 온 것―이라고 부른 것을 추방하는 것이다. 그는 새롭게 추가된 장인 사회인류학과 몸에 관한 장에 반영되어 있는 비교·역사연구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 레이 팔, 켄트대학교

이 책은 블랙웰이 출판하고 있는 ‘길잡이’ 시리즈의 하나인 The Blackwell Companion to Social Theory(second edition)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현재 국내에 나와 있는 사회이론 책들은 교과서로 집필된 것으로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고급 수준의 이론을 한 권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은 사회이론의 발전을 학자별이 아닌 주제(관점)별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국내에 출판된 사회학이론 교과서와는 커다란 차별성을 지닌다. 그것도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학자들이 사회, 정치, 문화, 젠더, 인종 등 사회이론의 전 영역을 최근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집어가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글쓴이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방대한 참고문헌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사회학 전공자는 물론 사회과학 전반의 전문가와 학부 고학년, 대학원 학생들에게 아주 좋은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높은 평가를 받은 제1판의 성공을 바탕으로『현대 사회이론의 흐름(제2판)』에는 완전히 새로운 네 개 장, 즉 사회이론의 토대, 인류학, 현상학, 몸의 사회학에 관한 장을 추가했다. 제1판에서 나온 내용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정·확대·경신했으며, 페미니즘은 제2의 물결 페미니즘과 현대의 페미니즘이론,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 논의를 확충했다.
이 책은 사회현실에 관한 현대의 분석을 틀 짓는 다양한 접근방법과 분석틀을 통해 학생들과 학자들을 인도한다. 주요 초점은 포스트 고전적인 근대 사회이론에 맞추어지지만, 하버마스, 푸코, 데리다 같은 주요 포스트 고전사상가들도 검토된다. 이들은 파슨스, 고프먼, 엘리아스 같은 인물들이 발전시킨 고전적 전통의 맥락에서 등장한다.
세계의 선도적인 사회이론가들이 집필한 18개의 글을 이론가 중심이 아닌 주제별로 묶어낸 이 책은 현대 사회이론 내의 주요 논쟁과 발전은 물론, 고전사회사상의 전통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동시에 방대한 참고문헌들은 현재의 문헌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머리말
감사의 말
제1부 토대 Foundation
제2부 행위, 행위자, 체계 Actions, Actors, Systems
제3부 사회·문화분석의 관점들 Perspectives on Social and Cultural Analysis
제4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점들 Perspectives on Time and Space
제5부 사회이론의 현대적 발전 Contemporary Developments in Social Theory
제6부 지식인과 공론장 Intellectuals and the Public Sphere
책을 옮기도 나서
찾아보기

사회이론과 사회정책, 모리스 멀러드 외

사회이론과 사회정책 (사회과학신서 65)


모리스 멀러드 외 지음 | 박형신 외 옮김 | 일신사 | 2004년 09월 03일 출간

책소개

각종 사회정책을 뒷받침하거나 반대하는 이론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 기존의 정책이론들과 새롭게 등장하는 이론들을 정책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들 이론이 갖는 의미를 평가하였다. 사회정책 담론들의 주요 패러다임과 이슈들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사회, 정치, 경제의 변동에 대한 해석의 범위를 검토한다.

목차

1. 서론: 사회에 대한 이해
제1부 종래의 패러다임들: 우리는 사회이론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2. 케인스 경제학
3. 맑스주의
4.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5. 보수주의와 신우파
6.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제2부 새로운 패러다임들: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해석
7. 공동체와 사회
8.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들
9. 지구경제
10. 새로운 종류의 사회
11. 사회적 분할에 대한 설명들
제3부 사회정책에 대한 새로운 도전들
12. 사회
13. 경제
14. 정치체제
15. 사회복지와 사회정의

사회이론과 사회정책, 로버트 핑커

사회이론과 사회정책


로버트 핑커 지음 | 김형식 외 옮김 | 인간과복지 | 2000년 03월 15일 출간

책소개

뒤르껭, 스펜서, 베버, 맑스 등의 사회학자 논의를 중심으로 당시 중요 사회학자들의 견해를 언급한 사회정책 역사서. 현대학문으로서 사회정책의 뿌리를 짚어줌은 물론 현 시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사회정책의 근저에 철학과 사상이 뒷받침했음을 밝혔다.

목차

001. [사회이론과 사회정책의 발달]
002. 사회정책 이론의 근원을 찾아서
003. 사회학과 사회복지의 제 문제....(39)
004. 뒤르껭과 도덕적 복지....(52)
005. 스펜서와 사회복지....(64)
006. 맑스와 사회개혁....(72)
007. 베버와 국가복지....(82)
008. 요약....(87)
009. 사회정책의 기원
010. 빈곤 문제 - 초기의 이론적 관점....(91)
011. 실용사회학과 이론에 대한 실증적 반응....(105)
012. 억압과 치료 - 행정적 타협....(117)
013. 사회정책과 경제시장....(128)
014. 요약....(142)
015. [사회이론의 활용]
016. 이데올로기. 수사학 그리고 증거
017. 사회복지의 규범적 모델....(149)
018. 사회적 욕구의 상대적 개념....(158)
019. 사회비판론과 증거의 활용....(171)
020. 민주주의와 사회정의....(183)
021. 요약....(193)
022. [교환과 낙인]
023. 교환체계로서의 사회서비스....(195)
024. 교환체계로서의 공공서비스....(206)
025. 의존. 동정 그리고 낙인....(217)
026. 사회복지 모델....(232)
027. 현대 사회정책의 문제
028. 정책결정과 조사의 새로운 우선 순위....(245)
029. 긍정적 차별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과학자의 공헌....(251)
030. 시민적 권리와 의존....(271)
031. 결론....(283)
032. 참고문헌....(286)
033. 색인....(294)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21세기총서 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은이) | 최종철 (옮긴이) | 새물결 | 2005-12-05 | 원제 La Distinction (1979년)

서구의 포스트모던 이론에서 보이는 과도한 담론 중심주의나 구조주의의 한계를 멀찍이 벗어나, 부르디외는 이론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권력이나 사회계 층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는지를 이론내재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분석해낸다. 이 책 전체를 통해 항상 정치는 문화이며 문화는 정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우 방대한 자료 분석을 동원해가며 입증해 보인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화만큼 계급에 따라 철저하게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없다. 역설적으로 문화만큼 만인이 향수할 수 있고 만인에게 평등하게 분배된다는 소위 "문화적 공산주의"의 환상이 끈질기게 남아 있는 부분도 없다. 매우 난해한 고전음악이나 소위 '뽕짝'을 틀어놓고 몇 사람의 반응을 살펴보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출신 계급과 사회적 궤적 전체를 추적할 수 있다.

원래 한 권으로 된 두꺼운 책이지만 편의상 1, 2부가 상권, 3, 4부가 하권으로 분리되어 출간되었다. 1부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2부 '실천의 경제'에서는 방법론적 비판과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모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3부 '계급과 분류'에서는 실제 적용을 다루고 있다.

구별짓기 -상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문

제1부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
제1장 문화귀족의 칭호와 혈통

제2부 실천의 경제
제2장 사회공간과 그 변형
제3장 아비투스와 생활양식 공간
제4장 장(場)의 역학(力學)

구별짓기 -하

제3부 계급의 취향과 생활양식
제5장 차별화의 감각 - 지배계급
제6장 문화적 선의(善意) - 중간계급
제7장 필요한 것의 선택 - 민중계급
제8장 문화와 정치

결론: 계급과 분류

후기: '순수'비평에 대한 '통속적'비판을 위하여

부록

옮긴이 후기
사진출전
찾아보기

지식논쟁-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이론, 스티븐 사이드먼

-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이론
스티븐 사이드먼 (지은이) | 박창호 (옮긴이) | 문예출판사 | 1999-08-30 | 원제 Contested Knowledge


20세기 사회이론을 총망라하여 21세기 사회이론의 방향을 제시한 책. 사이드먼의 <지식논쟁>은 고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이론을 빠짐없이 다루면서도 독창적이고 일관된 메시지를 담는다. 그것은 '사회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과, '사회학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라는 방향 제시.

현실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이 되레 현실을 보지 못하는 심각한 학문적 위기를 경험한 지금, 사이드먼은 도덕적 인간학, 공공성을 갖는 사회학을 통해 사회학의 현실성 회복을 시도한다. 이 책은 고전사회학자들(콩트,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등)에서부터 현대 사회이론가들(하버마스, 푸코, 기든스, 부르디외, 월러스틴, 홀 등), 그리고 그동안 사회학에서 소홀히 했던 사상들(페미니즘, 후기구조주의, 퀴어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검토한다.

오늘날 사회이론이 어떤 맥락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식논쟁>은 사회학이 직면한 이론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의 확장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사회학이론 영역 외에도 지식사회하, 사회학사, 사회과학방법론을 위해 의미있는 책이 될 법하다.

옮긴이 서문: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사회학을 위하여
머리말
감사의 말

서문

잃어버린 약속: 위기에 빠진 사회학이론
사회이론에서의 끊이지 않는 긴장
이 책의 개관


제1부 계몽주의와 고전의 전통: 이성의 꿈

1. 거시적 통찰력: 오귀스트 콩트와 카를 마르크스
2. 사회학의 약속: 에밀 뒤르켐과 막스 베버


제2부 이론의 설정: 사회학 이론의 형성

3. 유럽 사회이론에서 미국 사회학이론으로: 탈콧 파슨스와 이론의 자율성
4. 과학적 이론의 승리: 전후 미국사회학 이론과 공공 계몽주의의 포기


제3부 규준으로부터의 이탈: 인간학의 도덕적 시각에 대한 재평가

5. 과학과 정치학 사이: C. 라이트 밀스, 위르겐 하버마스, 스튜어트 홀의 비판이론
6. 지식과 권력: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자들
7. 새로운 사회운동과 새로운 지식의 형성
8. 21세기를 위한 사회학의 탈바꿈

 최근작 :<지식논쟁> … 총 30종 (모두보기)
 소개 :미국의 사회학자. 뉴욕의 신사회연구소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뉴욕 주립대학(알바니)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유럽사회이론의 기원>이 있으며, 최근에는 <포스트모던으로의 전환: 사회이론의 새로운 관점>을 편집하였다. 제프리 알렉산더와 함께 편집한 <문화와 사회>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사이드먼은 유럽의 학문적 전통과 깊이에 관심을 갖고,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미국의 사회학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사회이론가이다.
 최근작 :<사이버공간의 사회학> … 총 3종 (모두보기)
 소개 :경북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영국정부의 쉐브닝 스칼라쉽으로 헐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영남대, 대구효성가톨릭대에서 정치사회학, 사회학이론, 문화사회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탈근대세계의 사회학>(공저), <사이버공간의 사회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 <지식논쟁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이론> 등이 있다.

스티븐 사이드먼의 한 마디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는 의지에 고무되어 사회분석이 가치있게 되는 고향을 발견하기 위해 내가 처음에 학문을 시작한 사회학으로 되돌아왔다. 이것은 경험적 분석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분석적 관점을 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회학의 목적이 지식을 축적하고, 사회의 과학성을 발전시키고, 혹은 사회학 체계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세계의 현재와 미래 모습에 대한 계속적인 대화와 갈등의 일부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근 2백년 동안 사회학과 근대사회이론을 이끌어왔던 희망은 지식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즉 그 중요한 가치가 지식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거기에 도움을 주는 그러한 종류의 삶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이 이 책을 위한 영감을 주었던 것이다.
----------------------------------------------------------------------------------------
지식논쟁(Contested Knowledge)
스티븐 사이드먼(박창호 역), 문예출판사


1. 포스트모던 문화의 중심은 사회적 존재, 정체성, 그리고 진리와 도덕적 정의와 미의 기준에 대한 환원할 수 없는 다원적 성격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며 동일한 자아 대신에, 포스트모던 문화는 계급,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민족, 국가, 육체적 심리적 능력 등등에 의해 분화되고 개별화되는 자아를 주장한다.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이성의 보편적 단일한 개념과 일정한 문화적 기준 대신에, 우리는 다양한 전통과 공동체를 나타내는 이성의 전통들과 문화적 기준의 다양성을 말한다. 근대성이 만약 일련의 순수한 분업(예: 가족/경제, 과학/이데올로기, 정치/도덕)과 위계(예: 남/여, 고급/대중문화, 이성/욕망), 그리고 기본적인 전제들(예: 이성, 과학, 개인주의, 주체, 진보, 서구, 인류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조직된다면, 탈근대성은 분화의 과정이나 경계의 와해, 위계의 파괴, 모든 모던의 근본과 궁극적인 가치와 신념들에 대한 의문을 강조하고 있다. 탈근대성은 절대적 자유를 따라 하나의 길로 행진하는 하나의 이성, 하나의 인류라는 꿈을 비난한다. 그러나 인간의 차별성을 감내하고, 애매성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선택, 다양성, 민주화에 가치를 두는 사회에 대한 탈근대성의 자체의 이상을 제공한다. (506, 507면)


2.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식은 영원히 논쟁적일 것이다. 그것은 진리가 유일하게 그리고 거의 싸움의 심장부서 나타나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은 권력과 분리될 수 없게 되었고, 더 이상 유익한 것으로 가정되지 않는다. 지식이 희망만을 약속했던 시대, 순수성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510면)


3. 수세기 전에, 과학과 서구이성은 그 경쟁자들 - 종교, 신화, 화술, 도덕철학, 민속지식 - 에 대한 무모한 공격을 통해 크게 승리하였다. 마치 과학과 이성이 경쟁자들을 억압한 것처럼 지식은 복수를 해서 되돌려주는 것이다. 과학적 이성의 높은 위상은 무엇보다도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즉 유색인, 비서구인들, 여성, 레즈비언과 게이남성, 장애자 그리고 가난한 자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들로부터 연속적인 공격 하에 무너졌다. 자유에 대한 약속이 어두운 면을 가지게 된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질서를 규정하려는 무모한 바람과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과 일탈자에 대한 관대함이 그것이다. (510면)


4. 프랑스 구조주의는 인문철학, 특히 실존주의 전통에 대한 반발이었다. 인문철학의 핵심에는 자기방향적 창조적 힘으로서 개인을 보는 것이다. ... 구조주의자들은 우발적이고 유동적인 개인중심 세계의 이면에는 정신, 지식 그리고 인간행동의 조직에 나타난 보편적 구조가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조주의는 인간세계에 일관성과 질서를 부여하는 깊은 구조를 밝히는 것이 목표인 인간학의 과학적 시각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321면)


5. 비록 우리가 마르크시즘, 프로이드 사상, 콩트와 뒤르켐의 사회학적 접근에 구조주의의 지적 뿌리를 추적할 수 있지만, 구조주의의 가장 심오한 근원은 언어학의 발달에 있었다. ... 소쉬르는 그 의미가 차이의 관계성에 놓여 있는 기호의 체계로서 언어를 개념화함으로써 이러한 견해에 도전했다. ... 소쉬르는 기호의 의미는 기호가 가지는 차이의 관계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 레비 스트로스는 특수한 사회적 제도들(예: 결혼, 친족 혹은 종교)의 모델 뿐만 아니라 사회를 전체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으로서 언어를 이용하였다. (322, 323면)


6.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 반인본주의와 공감하고 있다. ... 언어는 의미가 생산되는 곳이다. ... 구조주의가 언어적, 사회적 질서를 밝히는 “구성적” 계획을 의도하고 있는 반면, 후기 구조주의자들은 “해체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 데리다는 기호의 의미가 차이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데 동의하였다.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은 반대의 관계가 설정될 때 의미들이 고정된다고 잘못 가정한다. 데리다는 기호의 의미는 불완전하고, 다의적이고, 변화한다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