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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일 수요일

능력만 있으면 인정 받는 메리토크라시

능력만 있으면 인정 받는 메리토크라시
http://blog.daum.net/kiehl1851/792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그의 저서 'Rise of the Meritocracy(메리토크라시의 반란)'에서 능력 위주 사회(메리토크라시, meritocracy)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메리토크라시를 개개인의 IQ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라고 묘사했다. 이른바 지능이 뛰어난 엘리트(elite)들이 높은 지위에서 사회를 통치하게 되지만, 점차 권위적이고 오만한 그들은 대중의 반감을 사게 되어 혁명의 희생양이 된다고 이 책에서 적고 있다. 비록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이 책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능력 위주의 메리토크라시를 선호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이다.

프랑스에서 능력의 기준은 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일반대학 졸업, 특수대학인 그랑제콜 졸업이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몰리는 그랑제콜 출신들은 출세가 보장되는데, 프랑스의 유명 정치인, 정부 고위 관리, 주요 기업체 임원들은 대개가 그랑제콜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랑제콜은 부유층이나 지식층에서만 독식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기회를 준다. 교육 자체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모두 무료이며,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나올 수가 없는 환경인 셈이다.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 다음, 시험과 콩쿠르 등의 아주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쳐 선발된 엘리트만이 그랑제콜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학벌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프랑스 국민은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별, 인종, 나이, 지역을 떠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우대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이런 정서는 나폴레옹 시절부터 있어 왔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이전 관리들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 위해 정부 관리가 될 만한 인물들을 물색해야 했다. 나폴레옹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 지위나 출신 배경을 막론하지 않고, 능력만 되면 이들을 선발했다. 군대 장교, 시민 혁명을 주도한 시민 운동가, 귀족 등이 골고루 능력에 따라 나폴레옹 정부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에 능력 위주 사회가 처음 정착한 배경이 되었다.

[예문] The prime minister claims he wants to create a classless meritocracy in Britain.
         총리는 영국에서 계급 없는 실력 사회를 창출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ㆍ메리토크라시, 능력 위주 사회 - meritocracy
ㆍ사회적 지위 - social status
ㆍ부 - wealth
ㆍ경쟁 - compe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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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메리토크라시

[중앙일보] 입력 2005.07.08 20:36 / 수정 2006.01.27 16:59
프랑스를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 위주 사회)라고 규정하는 학자들이 있다. 능력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 체제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 능력의 잣대는 학력이다.

고졸이냐, 일반 대학 졸업자냐, 특수 대학인 그랑제콜 출신이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수재들이 몰리는 그랑제콜 출신에겐 출세가 보장된다. 유명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 주요 기업체 임원은 대개 그랑제콜에서 엘리트 과정을 밟았다.

프랑스식 메리토크라시는 무료.의무.종교 중립적 교육을 모든 이에게 똑같이 주는 기회의 평등에서 출발한다. 돈이 없어서 공부할 기회를 빼앗겼다는 말은 프랑스에선 통하지 않는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비가 거의 없다.

교육 기회는 공평하지만 대학의 인재는 엄정한 선발 절차를 거쳐 걸러낸다. 에그자맹(examen)과 콩쿠르(concours)가 그 방법이다.

에그자맹은 일정 점수 이상만 얻으면 되는 자격시험이다. 일반 대학에 입학자격을 주는 바칼로레아가 그 예다. 응시자 중 절반 이상이 바칼로레아를 통과해 일반 대학에 간다.

반면 콩쿠르는 경쟁을 벌여 소수 정원만을 선발하는 논술형 주관식 시험이다.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면 콩쿠르에 응시해야 한다. 그랑제콜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처럼 재수.삼수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학벌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프랑스 국민은 불평하지 않는다. 성별.인종.나이.지역을 떠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우대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기회가 열려있는데도 공부를 안한 건 자기 탓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본고사 부활 논란이 한창이다. 한 사회조직이 필요한 사람을 골라내는 제도가 시험이다. 시험에 공정한 경쟁과 평가 장치가 있다면 그 권위와 효용성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도 프랑스 못지않게 학력을 중시한다. 하지만 메리토크라시라고 말하기엔 이르다. 경쟁을 외면하는 무차별적 평등 지상주의에 자꾸 매몰된다. 변별력이 없는 시험으로 인재를 발굴할 수 없고, 경쟁이 없으면 상대의 우월성을 인정하는데도 인색해진다.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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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26 19:17
학력·학벌에 집약된 ‘실력주의’가
온 사회에 여과없이 받아들여지는
지독한 메리토크라시 사회, 한국
민주통합당은 전태일의 동생인 전순옥씨를 비롯한 5명 안팎의 노동계 인사를 비례대표 당선 가능권에 올렸다. 친노동 경제민주화의 의지를 담았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노동자의 커진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일까?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빈민운동가 출신을 비례대표 1번으로 올린 적이 있다. 그것이 새누리당의 빈민친화성을 보여준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을까?

민주당은 이번에 36명의 법조인을 공천했는데 공천자 215명의 17%에 달한다. 새누리당의 29명을 합하면 두 당이 공천한 법조인이 모두 당선될 경우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0.034%에 불과한 법조인이 국회의 5분의 1을 차지하여 무려 588배나 과잉대표된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자는 어떤가? 거대 여야의 비례대표나 지역구 후보로 공천된 노동운동 출신을 다 합해도 10명이 안 되고, 그들의 이력을 보면 실제로는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다수다. 노동자가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 정도 된다고 보면 이들은 양당에서 10분의 1 이하로 과소대표되는 셈이다. 18대 국회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결국 학벌이 없는 노동운동가 출신 의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야당으로서는 지역에 노동자를 공천하고 싶어도 적합한 인물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지역정치의 경륜과 사회운동의 이력을 가진 노동자 후보를 거의 찾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더욱이 현장 노동자들 자신이 동료 노동자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화 25년은 곧 민주노조운동 25년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10석이나 얻은 적이 있고, 통합진보당·진보신당이 지금 활동하고 있지만, 그 대표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 나온 엘리트들이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가 진보정당의 지도자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렇게 보면 한국 정치는 ‘노동자 대표’임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학벌 엘리트들의 합작에 의한 지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나 진보나 이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노동자들을 권력권에서 완전히 배제해 놓고, 그들이 스스로 힘을 기를 수 있는 조건도 만들지 않고 진보니 개혁이니 외치고 있는 꼴이다. 사실 노동자들 자신도 사법부의 극히 편향적인 판결이나 퇴직 후 한 해 동안 수십억원을 번 변호사들의 수입에 시비를 걸지 않은 채 자기 자식도 판검사·변호사 만들고 싶어 한다. 똑똑한 사람들이고 그 자리에 갈 능력이 있었으니, 그렇게 해도 좋고 그 정도의 대우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렇게 보면 한국은 정말 학력·학벌에 집약된 ‘실력주의’가 온 사회에 여과없이 받아들여지는 지독한 메리토크라시 사회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민주화 이후, 아니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 이후 하나도 안 변했다. 재벌의 지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메리토크라시다. 그 실력·학력·학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평생 쉼 없이 일해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사는가? 메리토크라시는 온 사회를 경쟁과 스트레스로 몰아넣는 우리 사회의 중병이다. 학벌 좋은 사람이 대표로 있는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사회가 아닌, 노동자들이 사교육에 목매달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우리 사회의 과잉교육열과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의 상당부분은 노동천시·실력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진보신당이 탈학벌을 선포하면서 공천 후보자들의 학력을 일체 올리지 않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정부와 기업이 고졸자를 더 많이 채용하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 그게 바로 이 시대 진보의 길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252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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