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북논란' 신은미씨의 토론회 취소를 보며..>
그나마 다행이다. 토론회가 취소되어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북한같은 전체주의 체제와 구분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핵심적인 변별점이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입각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체제 그 자체'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내포한다. 그리고 (비록 다수 구성원이 동의하지 않아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할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상상력의 자유'를 합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학문적으로 옹호하는 것>과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정치가-국회의원>의 역할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학생운동' 출신 정치가들은 줄곧 바로 이 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주의는 이를테면 '절대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다수의 인식-편견-압제-무력으로부터 개인과 소수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원리가 다르다. 민주주의는 '쪽수론'을 특징으로 한다. 공리주의를 철학적 근간으로 한다. (*옳든 그르든 이게 게임의 법칙이다.)
민주주의는 부자도 서민도, 똑똑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조중동에 세뇌되었건 한겨레-경향에 중독되었건, 여당을 지지하든 야당을 지지하든, 박정희를 좋아하든 김대중-노무현을 좋아하든, 깨어있는 시민이든 잠들어있는 시민이든 누구나 <'평등한' 주권자>라고 가정하는 정치체제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가정하는 정치체제이다. 동시에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주인으로 존중하는 정치체제이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유권자 다수의 '주관'과 소통하는> 정치체제이다. 그래서 민주주의하에서 '학문적 진리'를 추구하려고 해선 안된다. 어떤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국민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 '가르치려고' 해서도 안된다. 국민들이 조중동과 종편에 세뇌되었다고 함부로 재단해서도 안된다.
민주주의의 적은 '보수'가 아니라 오히려 '엘리트주의'이다. 나만 옳다는 엘리트주의야말로 민주주의와 상극관계이다.
나'만' 진리를 알고, 나'만'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엘리트주의, 나'만' 민중-민족-서민을 대표한다는 선민의식이야말로 민주주의적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러한 엘리트주의는 필연적으로 오만-독단-싸가지없는 자세와 태도로 귀결되고, 그것은 동시에 필연적으로 '대중으로부터의 정치적 고립'을 야기하게 만들고, 자신의 실력양성을 통해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잘못을 헐뜯고 폭로하는 방법으로 이길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현재 새정치연합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화를 이끌었던 주역인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출신, '학생운동' 세력의 낡은 유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2004년 국가보안법 논란이 우리에게 주는 철학적 교훈이었고, '폐지'만이 옳다고 강변하며 '개정'조차도 거부했던 열린우리당 탈레반들로 인해서 지금은 '개정'조차도 어려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민주주의 정치 체제하에서 정치지도자가 반드시 대중이 옳다고 하는 것만을 '추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대중들은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따르지 않는다. 대중의 마음은 변덕많은 사랑처럼 언제나 변화한다.
그러나, 그 변덕에도 어떤 규칙성이 있다. 변덕스러움안에 내포하는 어떤 규칙성과 방향성, 우리는 그것을 '역사' 혹은 '시대정신'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철학의 영역이고, 사회과학의 영역이고, 그리고 역사학의 문제이며, 경제학의 문제이며, 어느 정도는 심리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정치가는 <이상을 간직한, 현실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 '이상이 없는 현실주의'는 현 체제에 대한 굴종이며, '현실주의가 없는 이상'은 공허한 낭만주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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