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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일 월요일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역사지정학

  • 제목 :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역사지정학-

    저자 : 공임순 ( Im Soon Kong )
    발행학회 : 시학과 언어학회
    발행정보 : 시학과 언어학 19권
    발행년도 : 2010

    저작시기 : 2010년
  • 본문내용
  • 시학과 언어학 제19호, 시학과언어학회, 2010.08.pp.7~40.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역사지정학-
    공 임 순
    차 례
    1.국가주권의 전시와 자유민주주의의 스펙터클
    2.국제연합과 태평양동맹의 불안정한 동거와 공간표상의 재편성
    3.여행서사의 자기 회귀적 구조와 국가화
    1.국가주권의 전시와 자유민주주의의 스펙터클
    1949년 6월 남한에서는 국민보도연맹의 결성식이 거행되었다.국민보도
    연맹이 실제 만들어진 것은 4월 21일이지만 6월 5일 명동의 구 국립극장
    에서 결성식을 개최함으로써 공식적인 출범을 본 셈이었다.1) 이것은 국
    1) 국민보도연맹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논의되고 있긴 하지만 국민보도연맹을 전체 연구
    대상으로 한 기존 논의들은 의외로 적은 편이다.그것도 국민보도연맹이 국가에 의한
    민간인의 대량학살이라는 관점에서 국가의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의 행사로 파악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이 연장선상에서 국가억압기구의 창설과 재편 및 실행의 과정
    에서 국가보안법과 국민보도연맹을 연관시켜 국가보안법 체제로 다루는 연구들이 비교
    적 최근의 연구 흐름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국가보안법의 제정과 시행이 국민보도
    연맹의 결성과 공식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동시적인 관계로 접근해야 함은 재론
    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이 글은 국가억압기구에 의한 강제와 지배의 감시체제라는
    8 연구논문
    가권력에 의한 이른바 6월 총공세의 시작을 알리며, 국가주권의 현존을
    가시화한 대표적인사건으로 특기할 만하다.곧이어 벌어진 6월 6일의 반
    민특위 습격 사건, 6월 21일과 25일 양일간에 펼쳐진 국회 프락치 사건
    및 국회 소장파들의 긴급 체포, 6월 26일 김구 암살 등은 국가폭력장치의
    무차별한 공격성을 예증하기에 충분했다.2) 하지만 이것을 국가 파시즘
    내지 전체주의 정권의 속성만으로 환원해버릴 수 없는 것은 이 일련의
    사태들이 정확히 국가주권의 극화와 전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주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공적이고 관념적 구축물이다.이 가공
    적 정치체를 인지하고 체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국가주권이 편재된 ‘현
    실’로써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48년 정부의 수
    립 후에도 여전히 한반도의 전체 주민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38선 이남의
    주민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탁치와 단정 수립의
    파동을 거치면서 38선 이남에는 광범위한 중도파의층이 산재되어 있었
    고, 이들은 대한민국을 통일자주독립국가의 기준에 미달하는 불완전한 지
    역 정체로 간주하고 있었다.3) 따라서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이
    란 임시적/유예적인 것이었고 이들의 공통 지향 역시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이 불완전한 국가주권성을 탈피하여 온전한 근대 국민국가성을 회
    복 구현하는 것이었다.비록 이들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측면보다 국가주권성이 편재된 ‘현실’로서 내재화되는 과정에서 이 권력 장치들이 편성
    배분 재조직되는 양상에 주목한다.이는 국가주권이 ‘국민’적 정체성을 국민의 권리와 의
    무로 정위하게 되는 국가주권의 제작구성의 형성원리를 글로컬(glocal)한 관점에서 재
    고찰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2) 서중석은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역사비평사, 1996에서 국가보안법의 제정에 이은 ‘6
    월 공세’가 국가보안법 체제를 강고히 하는 국가 파시즘 체제의 일부로 접근하여 서술
    한다.그는 1948년부터 이어지는 1949년의 이 ‘6월 공세’가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되면서,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극대화되는 출발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3) 탁치 파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후로 하여 중도파들은 대한민국을 온전한 근대 국
    민국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국회의 소장파들은 물론 국회 바깥의 김구 및 김규식 계
    열의 중도파들 역시 적어도 1949년 이 시점까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하지
    만 1949년 6월의 총공세는 이들의 입지를 거의 소멸시켜,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에 대
    한 절대적인 지지와 충성을 표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9
    서는 이견차를 보였다 하더라도, 이들의 공통된 바람과 열망은 1949년 이
    시점까지 분명 상존하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1949년 6월의 총공세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에 대한
    이의와 불신을 전적으로 차단하는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이었다.이제
    누구도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을 의심하거나 불신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와 명령이 뒤따랐다.국민의 일반의지를 유일하게 위임받은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성은 회의나 의심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절대 가치와 명제
    로써 신성화되었다.이것은 사회와 개인을 국가주권이 행사되고 관철되는
    국민적 정체성의 투명하고 균질적인 장으로 만들겠다는 권력의지의 표현
    이자 기획 및 실행이었다.
    물론 그 권력의지와 실현이라는 것이 일관된 방식으로 작동하거나 단
    일한 효력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하지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권력의지와 실현의 매개된 장치와 테크닉들이사회와 개인을 권력이 행
    사되고 실천되는 권력의 마디와 통과점으로 재구축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렇게 행사된 권력의 장치와 테크닉들이 국가주권을 사회와
    개인의 우위에 선 초월적 입법자(주재자)로서 제작구성하게 되고, 이 제
    작구성된 국가주권의 편재된 ‘현실’이 역으로 그 사회와 주민을 법적 정
    치적 ‘국민’으로 등록 정위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
    다.4) 국민으로 동질화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제작구성된 국가
    주권의 편재된 ‘현실’이사회와 개인을 교환 가능한 대상, 이를테면 비교
    우위가 가능한 ‘국민’이라는 대상으로 주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후적
    효과이자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가주권의 광범위한 편재성은 근
    4) 국가주권이 ‘국민’적 정체성을 생산 창출하게 되는 제작구성에 대한 이 글의 입론은 국
    가와 국민을 민족의 본래성을 토대로 자연화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원리를 비판적으
    로 탐구해온 현재의 해석학적 논의에 힘입은 바 크다.국가와 국민이 국경을 경계로 하
    여 공통적인 역사와 운명을 겪어왔다는 자기 서사는 실은 근대적 산물일 뿐이며, 이 근
    대적 산물이 과거를 재발견하게 되는 사후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
    다.이러한 이들의 논의를 참조삼아 국가주권의 편재화 된 현실이 대한민국에서 갖는
    의미를 추적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10 연구논문
    대 국민국가의 주권이 지닌 양의성과 모순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해
    도 과언이 아니다.왜냐하면 국민의 합의와 동의에 의해 양도되고 위임된
    국가주권이 역으로 ‘국민’적 정체성을 구획하고 한정짓는 공통성과 차이
    의 유일한 가치척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국민들 간의 평등과 불평등의
    양립(불)가능성은 이 차이와 위계화가 균등화된 국민들 간의 양화된 차이
    이자 위치라는 점을 뚜렷이 부각하며 국민의 ‘권리’는 국가주권을 편재된
    ‘현실’로써 수용하고 체화하는 한에서 부여된 한정된 특권이자 의무를 대
    가로 한 비대칭적인 교환 가치임을 분명히 한다.
    국민보도연맹이 1949년 6월의 신국면에서 갖는 의미는 이 지점을 선회
    하고 있다.1948년 12월 1일에 법률 10호로 공포 시행된 국가보안법이
    1949년 12월 19일의 1차 개정을 거치는 동안 국민보도연맹은 국가보안법
    이 규정한 반국가적 행위자들의 민간포섭단체로써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
    추어가게 된다.5) “민주주의민족전선, 남조선노동당중앙정치위원회, 조선
    인민공화국,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국농민연맹, 남조선민주여성동맹,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 조선협동조합중앙연맹, 반일운동자구원회, 조선민
    주학생연맹 등과 전기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에 가입하여 동 결사를
    지원 육성하는 전국적 산업별 각종 단일노동조합 위원장 등과 조선문화
    단체총연맹에 가입하여 동(同)결사를 지원 육성하는 각 문화부문별의 조
    선문학가동맹, 조선연극동맹, 조선미술동맹.보건연맹, 조선교육자협회
    등의 위원장 또는 그와 동격자 등”6)뿐만 아니라 이에 가입하거나 (물질
    5) 국민보도연맹이 전향자들의 자발적인 민간단체로 발족했다고는 하지만, 국민보도연맹의
    운영주체는 이태희 서울지검 검사장을 비롯한 오제도, 선우종원, 정희택 등 공안담당검
    사와 서울시경의 김태선 구장, 김준연 국회의원, 양우정 연합신문사 사장 등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이러한 조직체계가 전면에 드러난 것은 1949년 6월의 결성식을 통해서였
    으며, 이후 각 도 단위의 지방지부가 결성되면서 그 조직 역시 전국적인 망을 갖추어가
    게 된다.강성현, 전향에서 감시 동원, 그리고 학살로-국민보도연맹 조직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2004.
    6) 오제도, 국가보안법실무제요 증보판, 남광문화사관, 1951, xxx-xxx쪽.오제도는 이들 단체
    들과 범죄주체를 세밀하게 선별 분류하여 이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의 시스템을 확립하
    고자 했다.경찰행정기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러한 권력 테크닉들은 경찰력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1
    적 심정적으로) 동조 공명한 모든 사람들이 잠정적인 국가보안법의 대상
    이 되는 상황에서, 자수와 투항 및 신고를 통해 이들을 대한민국의 완전
    한 ‘국민’으로 개변시키겠다는 국민보도연맹의 결성 이념과 목적은 국가
    보안법의 법적인 처벌을 사회와 개인의 신체와 내면에 각인하고 부식하
    는 항상적인 전향의 집합표상에 다름없었다.7)
    이처럼 5 10 총선거로 대변되는 남한 전 주민의 전국적인 투표행위가
    ‘국민’과 그 국가적 정당성의 기초가 되는 것만큼이나 이 합법적인 국가
    의 ‘국민’임을 증명하는 전향의 일상화와 내재화가 또한 ‘국민’을 재구성
    하게 되는 이러한 특정한 시기의 공세적 국면은 가정된 국가주권이 국민
    을 생산하고 관리하며 창출하는 파놉티콘으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8) 파놉티콘이 시공간의 규율화를 통해 피감시자를 일상적으로 통제
    의 행정기술화가 국가행정 전반으로 파급되는 경찰행정국가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7) 국민보도연맹의 전향자에 대한 감시는 사회와 개인을 국가의 법정 앞에 세우는 것과 같
    은 효력을 발휘한다.국민보도연맹은 이처럼 한 사회와 개인의 집합표상을 전향으로 만
    듦으로써 개인과 사회를 국가로 향하게 하는 시선의 수렴과 독점을 낳는다.따라서 국
    가가 설령 보이지 않는다 해도 국가는 이들 간의 관계에 내재하여 사람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한정짓는 가정된 ‘중심’이 된다.이러한 전향에 대한 문화정치사적인 연구는
    별반 없는데, 이에 대해 논의한 논문이 이봉범, 단정수립 후 전향의 문화사적 연구,
    대동문화연구, 2008이다.
    8) 5 10 총선거가 국가적 정당성의 기초가 되는 것은 un 감시하의 전국적인(물론 이 un
    의 감시를 거부한 38선 이북의 북한을 제외한) 총선거(이른바 유사 보통선거)가 실시되
    었다는 참정권의 보장과 대표/재현의 ‘국민적’ 동의와 표명에 있었다.un의 감시라는
    보편자의 인정에 의한 대한민국의 지역적 정치체는 “역사적 남조선 총선거가 실시되었
    고 5월 30일에는 이 나라에 국회가 생겼으며 헌법이 제정되고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박
    사가 선거되었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중외에 선포”했다는 동일한 레토릭
    을 동반하며, 대한민국/남한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된 줄거리였다.이러한 국가적 합리
    성과정당화의 기획은 벤덤이 고안한 파놉티콘(panopticon)의 계몽적 기획과 상응하는
    측면이 있다.파놉티콘은 빛이성으로 모든 어두운 곳을 남김없이 밝히겠다는 계몽주의
    적 이상주의의 기획을 반영하고 있다고 푸코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계급 지위 연령
    지역 등을 초월해 대중의 일반의지만이 개인과 사회를 구속할 수 있다는 이러한 계몽주
    의의 이상은 지배의 합리성이 삶/신체의 전반을 통제 감독하게 되는 근대적 이성의 간
    지를 드러내는데, 누구도 이러한 권력 지배의 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이러
    한 근대적 이성의 역설적 도달점이 된다.그런 점에서 국가주권은 이러한 파놉티콘을
    가장 모범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지는데, 이 글은 이 점에 착목해 국가주권의
    파놉티콘화라는 용어를 사용해보았다.
    12 연구논문
    관리하는 권력 장치와 테크닉의 일부로써 디자인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국가주권의 파놉티콘화가 국가국민영토(38선으로 분열되었지만 법적으
    로는 통일되었다고 가정된)의 삼위일체화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외부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국가의지의 강력한 표명으로 읽힐 수 있다.하지만 국
    가의지의 표명이라는 것도 국가주권이사회와 개인에게 내속하여 발현될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환기한다면, 국가주권의 편재된 현실은 향후 국민
    보도연맹 가맹자들에 대한 국가의 대량학살마저 국가의 안위와 보호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는 국가의 초월적 모태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
    다.9)
    그렇다면 여기서 역류하는 질문은 모든 ‘국민’의 상위에서 ‘국민’적 정
    체성의 산실(조국이 어머니의 품으로 의인화되는 과정도 국가주권의 관
    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이 되는 국가주권이 자유민주주의의 기
    치 아래 합법화 정당화될 수 있는 경로와 절차이다.자유민주주의는 개인
    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최소한의 권리주장을 담지
    한다.이러한 자유민주주의가 국가의 초월적 외재성 아래 전시 효과로만
    존재할 수 있는 데는 국가주권의 가정된 편재성이 일지역적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실로써 보편성을 띠고 나타날 수 있는 한에서이다.마치 화폐
    가 하나의 상품형태로써 전 지구적인 권위를 띠고 상품들의 교환과 유통
    을 가능하게 하는 표상으로 그 지배의 총체성을 획득하듯이, 국가주권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지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표상과 보편화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이런 보편성을 경유하여 특수한 국가주권의
    편재된 ‘현실’이 보장되고, 일정한 영토의 ‘국민’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
    로 억압하고 종속하여 생사여탈권을 쥔 유일한 권력으로 표현하는 수렴
    과 확산의 공간화가 이루어진다.국가보안법의 실무관료였던 오제도가 국
    가보안법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아래와 같이 주장할 수 있었던 데는
    9) 한국전쟁기 국민보도연맹의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김동춘, 전쟁과 사회, 돌베개, 2 과
    김선호, 국민보도연맹사건의 과정과 성격, 경희대 석사논문, 2002를 참조할 수 있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3
    이러한 국가주권의 전 세계적인 인정과 수용의 보편 구조가 전제되어 있
    었다.
    우리 국가는 국내적으로 국민총의로 결집된 역사적 국회를 통과한 국헌에
    의거하여 수립 이후 절대 대다수인 48개국의 승인을 받아 한반도 급 기(期)
    부속도서 전역에 긍(亘)해 통치권을 행사하는 당당한 성스러운 독립국가로써
    세계열강에 일원이 되어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삼천만 배달민족은 아 대한
    민국을 반세 위에 세세(世世)토록 확고부동한 체제를 갖추어 금후 다시 여하
    한 외국에 대하여서도 그 침범을 허용하지 못하게 수호 발전시킬 중차대하
    고 성스러운 영광의 의무를 다 같이 자부하며 총진군하여야 될 것임에도 불
    구하고 (중략) 여직것 대한민국을 단정운운의 불온위험사상을 일소하지 못하
    고 이북 괴뢰 집단과 동등시하여 그 위에 미소양군정시 사용하던 초연한
    남북통일이라는 미명하에 국헌을 부정하고 이런 반국가주의운동을 전개함
    을 애국지사라고는 도저히 긍정할 수 없고 당연히 본법의 단속대상으로 하
    며 민족정의를 살려 엄중처단하여야 됨을 재언 불요일 것이다.10)
    그는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이 “국민총의로 결집된 역사적 국회를 통과
    한 국헌”에 의해 그리고 “절대 대다수인 48개국의 승인”을 받아 당당한
    “성스러운 독립국가”로 “세계열강에 일원”이 되었음을 자부한다.전후 세
    계질서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삼권분립과 개인의 자유
    로운 의사표현이 “국민총의로 결집된 역사적 국회”라는 말로 개인(시민)
    에 의한 법의 헌정/구성의 보편적인 기본권을 인정하는 듯하면서, 이는
    곧 “우리 배달민족의 독립국가”이며 “기미 삼일독립정신을 계승한 신생
    대한민국의 국가관념”을 방어하고 “절대 대다수인 48개국의 승인”을 받
    은 국가주권의 신성성을 관철하기 위해 언제든 본법(국가보안법)에 의해
    철회되고 “단속”되며 “엄중 처단”될 수 있는 법적 예외의 대상에 지나지
    않음을 그는 일관되게 주창한다.“국가보안법은 우리 대한민국을 보안하
    기 위해 제정된 특별형법”임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에서, 법이 기술화/또
    는 사실상 정지되고 국가주권을 매개하는 권력이 헌정/구성의 국민적 기
    본권을 초과하여 국가주권이 ‘국민’을 선별하고 구획하는 절대 명제가 되
    10) 오제도, 앞의 책, xxx-xxx쪽.
    14 연구논문
    고 있음을 간취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이러한 국가주권의 신성화와 절
    대화가 이처럼 국제연합의 보편적 장소를 토대로 확립되고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연합이 보편적 장소를 차지하는 데는 적지 않은 균열과 비
    약이 뒤따라야 했다.이를 2장에서는 국제연합과 태평양동맹의 불안정한
    동거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할 예정이다.다음 3장에서는 여행기(기
    행문)의 특정 서사양식이 단지 문학상의 하위 장르가 아니라 공간표상의
    권력적 생성과 매개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 양상을 조병옥의 특사유엔기
    행을 대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인데, 국가행정의 전문기술관료로서 조병
    옥이 유엔특사라는 그의 대표/재현성의 위치에서 공간표상의 냉전적 네
    트워크를 그려가게 되는 과정이 규명된다.11) 마지막 4장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지구-지역-국가의 중첩된 공간표상의 조형술이 국가
    주권의 자기 회귀적 순환과 참조의 거울상이 되었던 특정 시대의 사회정
    치적 맥락과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이 일련의 전개는 1장에서 제시한 국
    가주권의 문제설정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2.국제연합과 태평양동맹의 불안정한 동거와 공간표상의 재편성
    오제도가 국가보안법과 국민보도연맹의 당위성을 시간적으로는 삼일운
    동의 정신에서, 공간적으로는 48개국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합법국가에서
    찾았음은 1장에서 이미 설명한 바다.시공간의 역사적 통시성과 동시대적
    인 공간성은 국가변증법의 두 축을 이루는 것으로, 무엇보다 일지역의
    11) 이 글에서 공간표상은 공간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공간을 재현하고 표상하는 지
    이미지의 생산 및 유통과 재조정의 효과이자 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며, 이런
    점에서 여기서 사용하는 공간표상은 인간의 실천과 행위가 교직되는 지식과 관념의 복
    합체임을 밝혀둔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5
    특수한 국가주권이 동시대적인 전체성과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
    를 보증하고 확정할 상위의 주권 모델이 필요하다.상위의 보편적 중심은
    특수한 일지역의 국가주권을 작동시키는 대문자의 장소가 되고, 이 보편
    의 장소를 경유하여 일지역의 특수한 국가주권은 그 정당성과 합법성을
    획득할 수 있다.이런 점에서 보편의 장소는 특수한 이해관계들의 상위에
    서 특수한 이해관계들을 매개 지양하는 보편적 이해관계의 주재자/입법자
    로서 특권적 권위와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이 보편적 이념과 원리의 구
    현체로서 전후에 등장한 것이 국제연합이다.국제연합은 전후 세계 질서
    의 재편과 구축을 주도하고 입안하는 초국적 중심으로써 지역적이고 개
    별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세계평화와 인류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을
    실현하고 추구하는 역할로써 기대되고 이월/위임되었다.하지만 현실은
    국제연합이 국가 간의 상호 협의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그마저도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충돌하면서 합의
    와 공조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국제연합의 보편적 권위
    는 훼손과 오명을 피할 수 없었다.12)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많은 구식민
    지 지역들의 탈식민화에 대한 욕망은 이러한 국제연합의 보편성을 시험
    대에 올리게 했다.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와 희랍 및 발칸의 제
    지역들에서 벌어진 탈식민화 저항과 해방 운동은 국제연합이 제국주의의
    특수하고 분파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13) 특히
    12) 보편이란 특수들이 그려내는 특정한 배치와 관계의 산물이다.다시 말해 보편은 불변
    의 위치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들의 우연한 사건과 실행들이 배열되는 가운데,
    특수들과 관계맺는 가변적인 위치성인 것이다.하지만 이 특수한 자리배치가 보편의 장
    소로 상정되고 상상될 수 있는 데는 특수를 위임/이월하는 대표/재현의 권능 때문이다.
    이 대표/재현의 권능을 전후의 국제연합이 맡았다는 사실은 국제연합이 특수한 이해관
    계들의 장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연합의 대표성과 재현을 부정 무시할 수 없게 하는 힘으
    로 작용했다.미소의 각축에도 불구하고 미소 모두 국제연합을 탈퇴하지 않음으로써 전
    후에 팽배했던 미소 한 진영의 탈퇴와 국제연합의 지속적인 해체설은 사라졌지만, 이러
    한 국제연합에 대한 대표성과 재현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에 있다.
    13) 구식민지 지역들의 탈식민화 해방 투쟁과 저항 및 약소민족의 유대를 통한 인민주권의
    16 연구논문
    유럽 부흥을 위한 미국의 노력은 유럽 국가들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식민
    지적 지배와 침략을 저지하기는커녕 묵인하거나 심지어 동조한다는 불만
    과 의심을 낳았다.여기에 덧붙여진 미소간의 냉전은 국제연합이 단지 개
    별적이고 진영적인 지역체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그 지역체의 연장으로
    기능한다는 인식을 갖게 했던 것이다.14) 이러한 국제연합의 위상 저하는
    공평한 중재자로서, 특수한 이해관계를 이월/위임받은 초국적 보편자로서
    지역 간 현안을 해결할 국제연합의 능력마저 의심케 하는 일이었다.이는
    한반도와 같이 분단과정쟁의 이해당사자가 직접 맞서는 지역에서는 더
    욱 문제시될 수밖에 없었다.1947년 9월 한반도의 문제가 국제연합에 이
    관된 후 미국의 주도로 1948년 1월 8일에 입경한 국제연합조선위원단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러한 의구심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오기영은 “un총회가 비록 46대 0으로 조선문제를 가결하였고 그 결의
    대로 추진하려 하나 막상 조선에 벌어진 냉엄한 현실은 1대 1이라는 그
    것임을 간과”할 수 없으며 “위원단이 북조선 혁명에 대한 허다한 절찬과
    남조선 비민주 상태에 대한 신랄한 비난을 소련 대표에 의하여” 듣고 왔
    원리에 대한 구식민지 지역민들의 요구와 실제 현실과의 괴리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인
    빨치산과 월남인, 이승만의 재현/대표성의 두 기표, 스캔들과 반공국가주의, 앨피,
    2010에서 다룬 바 있다.이 글에서는 해방기의 시기별 분절 국면에서 한반도의 주민들
    이 초창기에 보여주었던 식민지 내지 구식민지 지역 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전후의 미소
    에 의한 포스트 제국 체제와 관련하여 변화되는 양상에 착목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했
    다.
    14) 1945년에 이미 연합국의 동맹관계는 부분적인 와해가 일어났으며, 이러한 동맹이 와해
    와 대립으로 바뀌어 냉전으로 돌아서게 되는 시점은 약간의 편차가 존재하지만, 1947년
    월터 리프만이 ‘냉전’을 제목으로 한 글을 처음 발표하면서 1947년 가을부터 사람들은
    급속하게 이 냉전 체제를 인식하고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이 월터 리프만의 책은 곧
    박기준에 의해 남한에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그만큼 월터 리프만의 책이 갖는 당대
    의 파급력과 남한 지식인들의 세계 정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말해주는 증거이다.다시
    말해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이를 해석하고 판단할 인식틀이 필요했다는 방증이며,
    이것이 월터 리프만의 책에 대한 남한 내 수요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박기준이 번
    역한 월터 맆맨, 냉정전쟁, 고려문화사, 1948에서 그는 1948년 한반도의 첨예한 사안이
    었던 미소 양군 철퇴와 관련된 월터 리프만의 입장을 전하면서, 이를 한반도의 현실을
    암시하는 준거로 삼고자 했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7
    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남조선에 와서 그 비민주상태는 볼 수 있을 것
    이나 아마 북조선에 가서 그 역사적 민주혁명을 보고 이것을 세계에 보
    증하는 기회는 없을 것을 짐작할 때 이러한 추리의 산물은 결국에 있어
    서 장차 미국이 남조선에서 행할 대조선 정책이 un총회 내의 미국 지지
    국가군의 지지에 의하는 형식 하에 시행되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기대”
    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를 강하게 표명하였다.나아가 그는 결국 이것이
    “하나의 통일정부가 아니라 두 개의 분열정부”를 의미하며 “서로 자기가
    지지하는 정부의 육성과 그 기반의 강화를 위하여 38장벽은 철폐가 아니
    라 더욱 철벽화”되고 말 것임을 역설하였다.15) 오기영의 말처럼 국제연
    합조선위원단은 남한만의 총선거를 권고 지원하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1948년 2월 26일 국제연합 임시총회에서는 이 소총회의 보고서가 통과됨
    으로써 단정 수립은 현실화되었다.오기영만이 아니라 남한만의 총선거와
    단정 수립에 반대하던 사람들에게 국제연합은 당파적이고 국지적인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지역체의 연장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16)
    국제연합이 지역적이고 분파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보편적 윤리와 이
    념의 대행자/구현자로 자리 잡지 못하는 이러한 현실은 국제연합을 통한
    해결책보다는 민족의 자주적 역량에 의한 문제 해결과 대책을 끊임없이
    요청하게 만든 원인이었다.박기준은 “본시 u n이 발족할 때의 정신과
    골자는 세계평화의 추진에 관하여 국제사회의 거지구적인 조직방법을 강
    15) 오기영, un과 조선독립-내조위원단에게 주노라, 신천지, 1948년 2월, 30쪽.
    16) 해방기 국제연합과 국내의 세력 진영 간에 국제연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다룬
    기존연구는 필자의 견문이 짧은 탓인지 찾지 못했다.위의 본문에서도 밝혔듯이, 한반도
    의 문제가 국제연합으로 이관되고 나서, 국제연합의 결정 사항들은 미소정책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정세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중도파를 비롯
    해 좌우 양 진영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제 3차 파리총회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
    부로 대한민국을 승인하는 인정투쟁과 관련해서,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이 글
    은 중도잡지로 알려진 신천지를 중심으로 다른 잡지 및 신문들을 참조하면서 이와 관
    련한 변동의 지점들을 읽어내고자 했다.
    18 연구논문
    구하자는 데 있었다는 것이 동 헌장을 일독하는 사람들의 인상”이었지만,
    그러나 “u n의 사업은 제 2차 세계전쟁에 대한 포괄적 평화체제도 서기
    전에 가장 서실적(緖實的)으로 이 문제 저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미소는 자가선전을 위한 절호의 무대로, 특히 가맹국의 다수를 믿고 있
    는 미국은 u n을 소련 고립화의 무자비한 수단 도구로서 생각”하여 “평
    화도래와 함께 국제사회의 진정한 평화사업의 추진기관이 될 u n을 위
    하여 통분”해마지 않는 중소 가맹국들의 입장을 당면한 조선의 현실과
    결부시켜 전하고 있다.국제연합에 대한 박기준의 이러한 비판적 시선은
    1948년 12월에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이 논의될 제 3차 파리총회로까지
    이어져, 박기준은 만약 대한민국이 국제연합의 가맹국이 될 수 있다면 그
    것은 미국 지도하의 un에서 “소련이 이탈해 슬레브 연맹”을 만드는
    것과 동궤의 과정일 것이며, 이렇게 되면 “u n은 벌서 본래의 거지구적
    성격을 상실”하여 “un을 무대로 통일 조선을 기도한다는 것은 이북 정
    부가 소련의 불록 안에 편입될 것을 생각”할 때 국제연합의 쇠퇴와 와
    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제연합 참가가 한반도의 주민이 희구하는 ‘통일과
    업’과 ‘통일조선’을 불가능하게 함은 물론 “처음에는 미소의 외세에 의해
    다음에는 이 외세에 의존하여 아부하는 남북의 두 정부에 의하여 분할
    되고 파괴되어가는 하나의 조국이 걸어가는 고난의 자취를 혈루를 머
    금고 응시”해야 하는 막다른 지경에 서게 될 것임을 적시하고자 했다.대
    한민국 정부의 승인이 논의되던 파리의 제 3차 국제연합 총회는 그래서
    “남북 양 정권이 각기의 대표를 파견”하여 “조선인이 참석할 수 있는 귀
    중한 국제무대에서 남북과 좌우로 대립된 한줄기 백의의 혈족이 수륙만
    리의 이경에서 골육상쟁”하는 대립과 분열의 현장으로 각인되고 만다.대
    한민국 정부 승인이 초래할 국제연합의 이러한 권위 손상과 대표성의 상
    실은 국제연합의 이상적 기획인 세계평화와 초국적(지구적) 질서의 수립
    이 좌절되는 지역적 패권주의화의 길로 치닫게 되는 제 일보였다.박기준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19
    은 이 때문에 국제연합에서 대한민국 정부 승인이 갖는 국제정세의 판도
    변화를 국제연합의 위상 하락과 결부시켜 논의하고자 했고, 국제연합에서
    대한민국 정부 승인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미칠 파국적인 결과를
    염려했다.17)
    국제연합에 대한 한반도 주변부 지식인들의 기대와 좌절은 국제연합의
    위상 추락과 급격한 지역 재편의 움직임 속에서 국제연합과 지역동맹의
    불안정한 동거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세계에 대한 해석은 곧 자기구성의
    일환이며, 이러한 자기구성의 서사는 세계에 대한 특정한 공간표상의 재
    편성과 해석을 촉진시키게 된다.그런데 이러한 특정한 공간표상의 재조
    정과 구축이 1948년 12월 12일 제 3차 파리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공
    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이 지역 재편의 공간표상에 대한 헤게모니를 대한
    민국 정부 수립과 승인의 주창자들이 거머쥐게 되었다는 사실은 지금까
    지의 세계 해석과는 다른 질적인 전환을 예비하는 움직임이었다.
    국제연합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은 이승만이 천명한 대로 “un총회에서
    법적 승인을 얻음으로써 완전히 산 사람이 된 것”이며, “법적 승인을 얻
    지 못하면 법률상 보호를 받을 수 없고 타인을 고소할 수도 없는” 죽음
    과 삶의 갈림길이었다.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먹고사는 것만으로써
    완전한 산 사람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이 합쳐진 완전한 사람”을 탄생
    시키는 법적 권한과 권리의 부여이자 합법과 비(불)법의 척도였던 것이
    다.18) 국제연합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을 이렇게 법적 형상으로 개념화하
    고 조직화하는 것은 구성된 외부로서 필연적으로 무법 내지 불법의 주체
    와 영토를 지역적으로 투사하게 된다.국제연합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이
    이루어지자, 곧이어 “소련군이 철퇴하는 순간부터 38도 경계선 이북에 하
    등 정부도 인정하지 않는다.우리는 그 상실된 지역에 우리의 권한을 확
    대할 의도이다.그리고 우리는 이를 평화적으로 수행할 것을 원한다.우
    17) 박기준, 남한 신국가와 세계-대한민국과 un, 신천지, 1948년 8월, 16쪽.
    18) 대한민국 유엔승인 경축대회, 전국에서 개최, 서울신문, 1948년 12월 26일자.
    20 연구논문
    리는 북한인민과 투쟁할 것을 원하지 않는다.그러나 북한의 인민들이 합
    법적 정부의 권한에 저항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된
    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한민국 외무당국자의 성명서는 이를 고스란
    히 반향하고 있다.19)
    합법과 비(불)법의 경계가 법적 권한과 권리 밖의 존재에 대해 갖는 정
    복과 침략 나아가 절멸의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은 국제연합의 지역적이고
    분파적인 이해관계를 비판하며 국제연합의 보편적 권위에 문제를 제기했
    던 앞선 주장과는 일견 대치되는 국제연합의 완전한 추인과 긍정의 퍼포
    먼스였다.이를 퍼포먼스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제연합의 대
    한민국 정부 승인 이후 한반도의 통일과 미소 양 점령군 철수를 감시하
    고 확증하기 위해 국제연합 총회의 결의에 따라 한국에 내한한 유엔(신)
    한국위원단에 대해 보인 정부당국자들의 부정적인 태도와 인식 때문이다.
    정부당국자와 유엔(신)한국위원단의 불협화음과 마찰은 유엔(신)한국위원
    단의 일원이었던 시리아 대표의 사퇴와 귀국으로 표면화되었는데, 그는
    자신들의 임무가 “화평통일”에 있으며 “무력행사는 위험하고 또 불가하
    다.거듭 내 개인의 의견이지만 전 세계를 통해서 무력행사란 그 목적 자
    체를 잊어버리게 해 왔다.따라서 반드시 화평의 길”이라야 한다는 의견
    을 피력하고,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그 실현방도를 찾지 못하면 존
    재할 의의가 없다.”는 말로 정부당국자와의 사이에 문제가 없다는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견차를 시사하며 귀국길에 올랐다.20) 이는 “사실적
    법리적”으로 유일한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만이 통일의 단독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법적 개념화의 일원화와 전체화가 빚어낸 파열음이었다는 점
    에서, 국제연합의 보편적 권위가 필요에 따른 선택과 취합의 방식으로 대
    19) 張澤相 외무부장관, 소련군 철퇴순간부터는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언명, 평
    화신문, 1948년 12월 22일자.
    20) 무길 유엔한국위원단 시리아 대표, 출국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와 위원단간의 의견
    차이를 부인, 자유신문, 1949년 3월 26일자.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1
    한민국 정부당국자에게 수용되고 절취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21)
    하지만 “유엔한위가 추진시키려는 남북통일의 구체적 방법에는 1.이북
    정권과의 교섭 추진의 길 2.유엔을 통하여 모스크바와 직접 절충하는 길
    등이 있으나 두 가지가 다 불가능한 방안”이며 “후자는 목하 추진시키고
    있으나 모스크바로부터의 향응(響應)이 전연 없고 전자의 길은 유엔 승인
    하의 대한민국이 현존하고 있는 이상 공식적으로 이북 정권과의 사업 협
    의는 모순당착”이라는 이승만의 발언은 국제연합의 지역적이고 분파적인
    이해관계에 대한 부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법적 정의의 형
    상화와 개념화로 재전위되고 재편성된 위치변환의 결과였다.22) 다시 말
    해 국제연합의 지역적이고 분파적인 이해관계는 오기영과 박기준에게는
    국제연합의 손상된 보편성에 대한 증좌였던 반면, 대한민국 정부당국자와
    주창자에게는 국제연합의 보편성이 실현되고 관철되는 세계사의 일부로
    서 이해되고 재해석되었던 것이다.
    유엔(신)한국위원단을 맞이하는 환영사에서 이승만이 국제연합의 대한
    민국 정부 승인을 축하하면서, “이 성공은 정의와 민주주의의 성공”이며,
    “불행히 지금 온 세계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두 사상이 충돌되는 냉정
    전쟁에 휩쓸리고 있으니 이 큰 투쟁에는 나라마다 개인마다 두 가지 중
    에 한 가지만을 택하여야 할 것이요, 중간 길은 없어야 될 것”이라고 주
    장했다.이것이 유엔(신)한국위원단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승만의 언
    급은 유엔(신)한국위원단이 이러한 원칙 하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자 “공산주의를 접수하는 것은 노예의 속박을 밟는 것이니 나라나
    개인이 다 그 자유와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자유와
    독립을 대표한 민주주의를 붙잡고 기왕부터 투쟁”하여 나온 자유민주주
    21) 尹致暎, 유엔한국위원단과의 협의에서 북한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 서울신문
    , 1949년 3월 10일자.
    22) 이승만 대통령 임병직 외무부장관, 유엔한국위원단 활동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
    , 경향신문, 1949년 4월 18일자.
    22 연구논문
    의의 수호자로서 대한민국을 분절 표상하는 것이었다.이런 측면에서 유
    엔(신)한국위원단의 북한 정권(단체)과 모스크바를 통한 접촉 시도는 국
    제연합의 분절된 선을 월경하는 비(불)법한 일이었고, 이러한 비(불)법을
    용인할 수 없다는 이승만 나름의 표현이었다.23)
    이 점은 국제연합 한국위원단 보고서 xxx-xxx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에 입경한 유엔(신)한국위원단이 임무를 마친 직후인 1949년 7월 29
    일에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국제연합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파리총회에서 내세운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한국) 정부
    는 북한정권이 un총회에 의하여 불법화되었으므로 위원단이나 (한국)
    정부는 북한과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완고하게 주장하였다.또한
    (한국) 정부는 소련정부가 북한정권을 해체하고 위원단 감시 하에 한국정
    부가 북한에서 선거를 실시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설복하기 위하여 위원
    단은 오직 소련정부만을 상대로 교섭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위
    원단의 중재 역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시각이 위원단의 인식과 일치하지
    않았음을 서술하고 있다.24) 이러한 갈등과 마찰의 대립상은 이 시기 남
    한 언론들의 심심찮은 기사거리이기도 했지만, 이 간극의 기저에 흐르는
    보다 더 큰 관점의 차이는 이승만과 대한민국의 주창자들이 국제연합의
    보편성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지역 간 동맹을 통한 진영 간의 싸
    움이 불가피하며, 이 최전선에 국제연합이 수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대한민국이 38선을 경계로 공산진영의 위성국인 북한과 맞서고 있다는
    위기감과 자부심의 교묘한 착종이 빚어낸 자연스런 결과였다는 점에 그
    원인의 일단을 돌릴 수 있다.25)
    23) 李承晩 대통령, 유엔한국위원단 환영국민대회 석상에서 공산당과 타협하지 않고 통일
    을 이룰 것이라는 내용으로 환영사, 연합신문, 1949년 2월 15일자.
    24) 국제연합한국위원단, 국제연합한국위원단보고서 1949 1950, 대한민국국회도서관,
    1965, 92쪽.
    25) 대한민국이 어떤 의미에서 국제연합(un)이 세운 국가라는 관념은 언제나 긍정적인 함
    의와 내포를 수반하지 않는다.이 시기에 광범위하게 주장된 국가주권의 자율성에 대한
    시각과 상치되는 측면이 존재했기 때문이다.위의 본문에서 밝혔듯이 국제연합을 바라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3
    태평양동맹의 구상 배경은 이러한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태평양동맹
    은 1949년 3월 18일 미국을 비롯한 조약체결 12개국의 수도에서 일제히
    발표된 대서양조약기구(당시에는 대서양동맹으로 더 자주 회자되었다.)와
    그 지역화를 본뜬 분절적 공간 구획의 일환이었다.26) 미국과 유럽의 안
    보동맹이 대서양조약기구로 명문화되었듯이, 태평양 지역도 대서양과 같
    은 안보동맹의 네트워크가 형성 편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리핀의 키
    리노와 대한민국의 이승만 그리고 중국 국민당 영수인 장개석의 일치된
    공감과 원조 아래 1949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제창되기 시작했다.이 포
    문을 연 것은 필리핀의 키리노이지만, 이에 대한 적극성의 면에서 이승만
    은 이들을 초과하는 열의를 선보인다.이승만의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는
    3월 20일 키리노의 태평양동맹 결성에 대한 입장이 표명되자마자 3월 23
    일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담화로도 재확인된다.이 담화에서 그는
    “태평양동맹이 가맹국의 활약여하에 따라서는 유럽 국가의 안전보장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며 “일개(一個)를 위한 전부(全
    部)요, 전부(全部)를 위한 일개(一個)”가 되는 “이기적 동기를 초월한 평
    화달성”의 전 단계로써 그 의미를 지닌다고 천명하였다.27)
    태평양동맹에 대한 이승만의 고무된 기대는 미국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일단 제지되었고, 결국 1950년 5월 26일 대한민국과 중국 국민당을 제외
    한 동남아시아회의로 낙착되고 말았지만, 이 과정에서 태평양동맹 결성의
    보는 서로 다른 시선은 국제연합의 승인에 의한 대한민국의 국가주권화가 가져올 위험
    성을 시사한다.하지만 역으로 국제연합과의 강력한 의존성이 국제연합에 대한 대한민
    국의 집단적 자위권(안보권)을 주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의 정부당국자들과 주창자들의 역전된 보상감이 자리한다.이 부분은 향후 이승만의 재
    현/대표성과 국가주권의 인격적 신성화, 세속적 초월화와 관련하여 다시 재고해볼 부분
    으로, 이 논문에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다.
    26) 노기영, 이승만정권의 태평양동맹 추진과 지역안보구상, 지역과 역사, 2005는 이승
    만의 태평양동맹 구상의 배경을 외교사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하지만 이 글은 태
    평양동맹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외교사나 정치사의 측면보다 이것이 국제연합과 동거
    할 수 있었던 공간표상의 재편성과 구축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27) 이승만, 태평양동맹에 기대함, 1949년 3월 23일자, 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 공보처,
    1953.
    24 연구논문
    의의와 향후 일정 및 그 경과에 대한 보고와 소개는 매체의 여하를 가리
    지 않고 반복적으로 활자화되고 언표화되었다.이러한 태평양동맹에 대한
    지의 생산과 유통은 공간에 대한 상상력과 지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
    하고 순환시키는 공간표상의 재편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공간표상
    의 조형술이야말로 사회정치적 변화 국면의 지표이자 전거로서 다루어져
    야 할 것이다.더구나 매체간의 참조와 변용 및 이종교배를 통한 권력적
    생성과 매개 장치로써 이러한 공간표상의 재편성은 공간이 인간의 신체
    감각을 주조하고 조형하는 중심기축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
    은 더욱 배가된다고 할 수 있다.소설과 서사는 현실의 단순한 반영은 아
    니지만 세계에 대한 윤곽과 형상을 보존하며, 지배를 규범화하고 정교화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빌린다면, 다양한 방식
    으로 이루어지는 서사의 양식들은 이러한 공간표상의 재편성과 상상력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28) 3장은 이러한 공간표상의 재편성과 조형술
    이라는 측면에서 여행기의 서사가 갖는 특정한 공간적 네트워크를 행정
    적 관료기술의 일부로서 검토하게 될 것인데, 이 중심에 조병옥의 여행기
    가 자리하고 있다.
    3.여행서사의 자기 회귀적 구조와 국가화
    국제연합이 대한민국의 합법성과정통성의 근거가 되고 있음은 앞에서
    28) 에드워드 사이드, 박홍규 역,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1999는 소설과 서사의 이러한
    기능을 권력의 편성 형태와 동시적으로 다룰 것을 주문한다.소설과 다양한 민족지, 식
    민지 이론, 역사서술 및 대중 취향 등은 서로를 모방하고 지시하며 틀짓는 인용과 반복
    의 서술 형태를 통해 제국의 사명과 비전을 확장하고 유지하며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소설과 서사의 정치성에 대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통찰은 공간의 분업과 재구조
    화 및 권력 유지와 강화에 소설과 서사가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다는 점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5
    전술했다.이러한 국제연합의 보편적 권위를 태평양동맹의 지역적 분절화
    와 양립시키려는 공간지리의 재편성과 조형술은 태평양동맹의 조속한 결
    성을 위해 장개석이 이승만의 초청을 받아 1949년 8월 6일 한국을 방문
    하고 다음날 7일 진해에서 회담하던 때 절정에 도달한다.태평양동맹의
    결성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며 이 태평양동맹이 갖는 아시아 및 세계사
    적 의미가 강조 부각되었다.“아세아의 평화보장을 기본조건으로 하는 방
    공체제로서 한 비 중 삼개국의 주도하에 태평양동맹이 점차 구상화하는
    것은 북대서양동맹과 아울러 세기적 성사”가 아닐 수 없다는 정일형의
    주장은 태평양동맹을 대서양동맹과 동급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었다.그
    는 또한 대서양동맹이 국제연합의 헌장에 부합하듯이 태평양동맹 역시
    국제연합의 헌장에 아무런 어긋남도 없다는 점을 부연한다.“북대서양조
    약 제 1조에 명시되어 있는 한편 퀴리노 대통령의 로무로 특사에게
    보내 지시문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태평양동맹조약도 유엔 헌장의 기본
    정신과 목적에 배치되지 않는 국제평화와 안정과정의에 입각”하리라는
    그의 언명은 대서양동맹의 모델화를 통한 태평양동맹의 긍정이며, 대서양
    동맹의 형성원리에 기댄 동일시의 시선이었다.29) 이런 식으로 국제연합-
    대서양동맹-태평양동맹의 위계적 선분이 그려지며, 세계의 지역적 분할선
    이 국제연합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논리의 순환성이 만들어진다.
    이는 대서양동맹(대서양조약기구)은 단순한 경제 문화 사회적 교류와
    협조를 넘어선 군사동맹이며, 따라서 국제연합의 기능부전과 지역적 패권
    화를 우려한 시각과는 상반되는 서술이다.“북대서양동맹결성이 던지는
    큰 영향중의 하나는 이 동맹을 계기로 하여 국제정치는 지역적 집단체가
    기본이 되고 오대강국 완전합일의 원칙하에 국련을 통하여 세계평화를
    29) 정일형, 태평양 동맹의 정치적 구상-북대서양조약의 분석 검토에서의 고찰-, 신천지
    , 1949년 9월, xxx-xxx쪽.정일형은 실제로 1969년 국제연합총회 한국대표로 활약했고,
    un과 한국, 국제연합독본, un의 설립과 업적 등 국제연합과 관련된 저서를 다수
    출판하기도 했다.
    26 연구논문
    수립한다는 전후 국제정치의 기본방침은 여지없이 무너질 위험성”30)에
    빠지게 되리라는 최우근의 설명과는 배치되는 공간표상의 조형술이기도
    했다.국제연합과 지역적 동맹체간의 이와 같은 부조화와 간극은 때로
    “un은 사실상 양진영으로 분열”되었고 이제 “un은 점차로 한 개의 외
    교전의 선전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인식하에 “un자체의 세계안전보장의
    기능이 거의 상실”된 지금 “서구민주진영국가들은 국제연맹의 전철을 밟
    고 있는 un만 믿고 안연(晏然)히 있을 수 없어서 이 북대서양조약”을 체
    결하게 되었다는 자위권의 정당한 발로로써 재전유되었다.자위권과 보호
    권의 발동은 방어권과 공격권의 구분을 무화시키며 아시아지역과 지역민
    에 대한 새로운 심성구조를 창출하게 되는데, “식민지의 강제와 탄압 밑
    에서 백성들은 강압하면 굴종하고 자유를 주면 전에 압제당한 분(分)까지
    기운을 펼라고 들어서 복종을 하지 않는 것이 통상인데 민주주의는 개인
    의 자유를 허하고 공산주의는 살인방화 등 공혁(恐)수단을 쓰게 되니
    자연 공산주의에 딸케 된다.그리고 식민지 백성으로 정치적 활동이 금지
    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은 정치적 비판력 판단력이 부족해서 공산운동자의
    선전모략을 믿기 쉬워서 또한 그에게 가담하는 자가 많게 된다.”는 아시
    아지역과 지역민들에 대한 부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인식으로 이어졌
    다.31)
    (구)식민지 아시아가 “북한은 별문제로 하고 남한에서 안남에서 면전
    (面甸)에서 섬라(暹羅)에서 인도에서 심지어 비율빈”까지 공산주의자가
    활동하는 무대로 표상되는 이러한 현실감각은 태평양동맹이 아시아를 대
    상으로 한 것임에도 아시아를 배제하고 소외하는 이율배반을 낳는다.32)
    태평양동맹의 주체는 아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며, 미국의 참여가 관건인
    미국 중심의 공간적 도상학이 되고 있는 것이다.마루카와 데쓰시는 전후
    30) 최우근, 전쟁이냐 평화냐(미국진영동향), 신천지, 1949년 6월, 37쪽.
    31) 조헌영, 북대서양동맹과 태평양동맹, 신천지, 1949년 9월, xxx-xxx쪽.
    32) 조헌영, 앞의 글, 140쪽.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7
    의 아시아상을 국제연합의 승인 하에 근대 국민국가로 탈바꿈한 일본과
    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지 못한 파르티잔(빨치산)의 중국이 분기되는 형태
    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는데,33) 태평양동맹의 부상을 기점으로 한 대한민
    국의 아시아상은 동맹과 비동맹, 자유민주진영과 공산진영, 국제연합 승
    인국과 그렇지 않은 국가들의 중첩된 공간표상이 횡단하는 ‘문제적 공간’
    으로 아시아를 분절 개념화했다.이렇게 달라지는 아시아상의 변주는 아
    시아가 약소민족의 유대와 공감의 장으로 여겨지던 공간표상의 탈각이자
    치환이며, 식민지 아시아의 고통이 후진적 아시아의 표상으로 역전되는
    탈식민화의 소진과 해체였다.탈식민화의 역동이사라진 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은 냉전적 네트워크의 결절점으로서의 아시아, 반공의 최전선으로
    서의 아시아로, 이 특정한 분절선을 따라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여
    행서사가 구축된다.34)
    조병옥이 특사의 임무를 부여받아 여행길에 오른 것은 1948년 9월이지
    만 이 여행기가 특사유엔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은 태평양동맹
    에 대한 선전이 절정에 달했던 1949년 8월이었다.이 시차를 무효화하는
    데는 여행기라는 특정한 서사양식이 갖는 보고와 전달의 투명한 리얼리
    티가 게재되어 있다.체험에 바탕에 둔 여행기의 장르적 속성이 보고 들
    은 것에 대한 발화 주체의 진실성을 담보하면서, 이 이야기의 진실성의
    효과를 여론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이니셔티브의 강력한 매개로 전환시키
    33) 마루카와 데쓰시, 백지운 윤여일 역, 리저널리즘, 그린비, 2008을 참조했다.마루카와
    데쓰시가 이를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1949년과 1953년에 걸쳐 획득
    한 일본의 전후가 중국과 북한을 냉전구조 안의 적으로 현전시키고, 서쪽 진영의 중화
    민국(대만)과 한국을 같은 진영으로 분할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그의 지적은 국제연합의
    승인이라는 측면에서 지역적 공간표상을 재접근하고자 하는 이 글의 목적에 따라 강조
    점을 바꾸어 서술한 것이다.
    34) 식민화와 탈식민화, 냉전과 포스트 냉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전후 아시아상과 관련
    해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다.하지만 전후의 아시아상에 대한 기존연구들은 이
    점에 대한 인식을 많은 부분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다.특히 한반도의 사회역사적 국면
    들마다 이러한 탈식민화의 역동과 냉전적 네트워크가 경합 갈등 교착되다가 결국 냉전
    적 네트워크로 일원화되는 양상을 밝히는 연구가 앞으로 필요하리라고 본다.이 글은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출하는 것으로 이후를 기약한다.
    28 연구논문
    게 된다.대중 출판물로서 여행기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지식과정보를
    제공하는 대중적 앎의 생산과 유통 및 확산에 기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체험의 ‘현존’이 발화 주체에게 해석상의 특권을 부여한다.조병옥의 특
    사유엔기행은 이러한 여행기로서의 성격에 un특사라는 지위가 가미되
    어 이 여행기의 공적인 성격은 한층 두드러진다.35)
    책의 머리말에서 밝힌 그의 두 가지 임무는 “기일(其一)은 미국 중국
    비율빈 등의 우방을 례방(禮訪)하여 국교를 도모할 것과 기이(其二)는
    u n한국대표단을 협찬”하는 것이었다.36) “이리하여 (그를 비롯한) 우리
    는 작년 9월초 중앙청 광장에서 정부요인 및 다수동포들의 열렬한 환송
    을 받고 9월 9일 또 다시 많은 동포들의 격려축복리에 김포비행장”을 떠
    나 “숙적의 지(地) 동경”(1)으로 향하게 된다.출발 전의 환송식과 “우리
    민족은 5 10총선거를 통하여 방공진영에 가담하여 민족적 운명을 개척하
    겠다는 배수진을 첫으매 이 민족적 투쟁의 승부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
    리고 “일국의 국제사절이 됨은 과연 통쾌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다만은
    우리 어깨에 놓은 이 중차대한 책임을 국민의 기대에 배치됨이 없도록
    완수케 될 것인가 등등”(2)의 상념은 그의 막중한 사명감을 환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이는 그가 대통령의 지시를 위임받아 “독립문명국가”의
    대표로서 “국민의 기대”를 대리하여 이 여행길에 올랐다는 그의 재현/대
    표성의 위치 때문이며, 이 위임된 대표성의 위치가 그의 사명감의 원천이
    35) 여행기 특유의 공간적 현존성과 직접성이 모든 발화주체들에게 자동적으로 서술의 진
    실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이러한 점에서 조병옥의 un특사라는 위치는 재차 강조되어
    야 할 것인데, 이는 그의 이러한 매개적 권력적 발화위치가 그를 대한민국의 ‘국민’과
    ‘주권’을 대리/대표하는 이 담론적 발화의 바깥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그는 이 담론 바깥의 순수하고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과 ‘주권’을 대신해 발화한다는
    자기 연출과 전시로, 세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정하는 한편 대한민국에 대
    해서는 세계의 냉전적 공간표상을 구축하는 이중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1948년 대한
    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쏟아져 나온 많은 여행기가 일차적으로 이러한 남성 파워엘리트
    들에 의한 담론적 기술이었음은 이러한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36) 조병옥, 특사유엔기행, 덕흥서림, 1949.이후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본문에 면수를
    밝히는 것으로 인용을 대신한다.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29
    되고, 그 최종적 귀일점에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가 자리하게 되는
    이유이다.따라서 이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제시된 특사로서의 그의 발화
    위치는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를 사후적으로 재구성하게 되는 동력
    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남한의 공산당은 북한의 매국도배와 통모하여 남한의 지역에 폭동을
    전개하고 정부의 위신을 타락케 할 것이요 그리고 북한의 괴뢰정부는 피
    등의 대표들을 파리에 발양케 하여 민족적 추태를 연출함으로서 민족적
    독립을 방해”(2)하는 민족적 타자가 되는 이유도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
    의사를 대리한다는 그의 전제된 재현/대표성의 발화 위치 때문이다.그는
    이 발화 위치에 힘입어 그의 발화를 국가의 공식적인 의사와 등치하는
    재현의 권위를 확보한다.이 때문에 그가 수행하는 일련의 일정과 행사들
    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공적 의례의 일부가 되고, 그
    는 이 재현의 권위를 그가 방문하는 국가와 지역의 대표성과 절합하는
    공간표상의 조형술과 네트워크를 짜나가게 된다.조병옥이 서울을 떠나
    첫 번째로 방문한 국가는 일본으로, 일본에서 그는 맥아더의 방문과 재일
    동포와의 만남, 그리고 동경 시내를 관광하는 일정을 소화한다.여기서
    그가 받은 인상이 보고와 논평의 서술형태가 압축된 방식으로 제시되는
    데, 그는 일본을 “숙적의 지(地)”로 명명하는 한편 이 “우리의 숙적인 군
    국주의 일본을 정복하여 우리민족을 해방시킨 해방의 직접은인일 뿐더러
    맥아더 양대에 걸쳐서 우리민족을 알고 동정”(4)해준 맥아더 장군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방공군의 총본부가 일본에 있으므로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에 대한 한국의 방위를 위하여는 우리 정부가 맥아
    더 사령부와 긴밀한 연락”을 하여야 할 필요성이 이러한 그의 감사의 마
    음과 결부되어 일본과 미국을 분절하고 재접합하는 특정한 공간표상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패전 일본은 부흥의 방향으로 장족진보하는 중”(8)에 있고 “국력의 점
    에 있어 패전일본일망정 한국보다 강대하는 것”(9)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30 연구논문
    그의 발언은 “북으로 검은곰(熊)의 위협과 동으로는 바다뱀(海蛇)의 침략
    을 받을 숙명적 운명”(9)에 있는 대한민국의 긴급한 현실에 대한 경고이
    다.북쪽과 동쪽이라는 단순한 지리적 방위는 북쪽의 검은곰(소련)과 동
    의 바다뱀(일본)으로 의인화되어 표상됨으로써 적을 지정하고 호명하는
    적대성을 공간에 새겨 넣는다.이러한 적의 생산과 권력 경제는 일본을
    거쳐 중국공산당의 본토 점령 이전의 중국 국민당과 이어지는 공간표상
    의 분절화와 조형술로 나타나고, “우방의 원수 혹은 정부요인들”과 “파리
    u n총회의 각국대표들”(10)에게 “살아있는 자유를 가진 남한의 이천만이
    라도 정치적으로 단결하여 주권을 회복하고 그 주권의 발동에 의하여 당
    분간 상실된 북한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대한민국 정부의 본질”(10)과
    “대한민국이란 신생국가의 안전을 위하여는 한국이 자위상 충분한 군사
    력을 확보할 때까지 우방과 u n의 군사상 안전보장의 대책을 강구”해야
    될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원조”(11-12)를 전달하고 요청할 메시지의 선
    별적 유통과 교환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재구축되고 있다.이른바 커뮤
    니케이션 네트워크라고 명명될 만한 이러한 공간표상의 조형술은 이 여
    행기가 허용과 금지, 침묵과 발화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점으로, 국가주권
    의 ‘현시’를 위한 국가 간 횡단의 네트워크이자 이의 마침표를 국제연합
    이 찍게 되는 귀환서사의 일 형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릇 여행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 분리와 통합의 수평적 공간 운동이다.
    이러한 여행의 양식화된 서사양태와 예정된 결론이 여행기의 주 플롯선
    을 이룬다고 하면, 여행기는 귀속의 지점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지배적 규
    범과 권력의 생산에 일조한다고 할 수 있다.‘귀환’ 내지 ‘회귀’라는 말이
    잘 표현하듯이, 여행기는 그 출발점을 기원점으로 하는 귀속과 통합의 서
    사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여행기가 제국의 팽창과 확장의 시기에 제국의
    권력과 권위를 표현하고 상징하는 대표적인 서사장르였듯이, 여행기는
    기원을 설정하고 확립하는 국가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여
    행기의 이러한 사회정치적 맥락이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국가주권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1
    의 명시와 공명하며, 국가주권의 기원점을 획정하고 구획하는 권력적 생
    성과 매개의 장치가 되고 있다.대한민국-미국 점령하의 일본-중국 국민
    당의 중국-비율빈(필리핀)의 태평양/아시아와 미국-가나타(캐나다)-영국
    의 대서양/서구를 횡단하여 마침내 국제연합 제 3차 총회가 개최될 파리
    를 반환점으로 하여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게 될 이러한 공간의 확장과 수
    렴의 운동은 국가주권의 기원이 위치해 있는 지점을 재확증하며, 국가사
    와 여행서사의 융합으로 나타나게 된다.더 정확히 말하면, 여행서사의
    국가화는 국가주권의 절대적 가치화와 맞물려 국가사의 일부로 재편성되
    고, 이러한 여행서사의 국가화가 국가주권의 자기 정당화를 강화시키는
    격이다.
    따라서 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이 공간의 확장과 수렴을 통한 자기
    회귀적 구조로 기원의 진실성과정통성을 확립하는 국가사가 된다는 점
    은 여행서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이 말은 곧 여행
    서사가 국가행정적 장치로, 언제든 회수되고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이런 점에서 조병옥이 경무국장을 역임하며 경찰행정의 틀을 닦고
    대한민국을 경찰행정국가로 변모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이
    여행기와 그의 경력이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그는 자신
    이 경무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처음 착수한 사업이 한국 군사력의 결여
    내지 빈약함을 타파할 국립경찰의 창설과 확충이었으며, 이를 위해 국립
    경찰의 병력을 2만 5천명으로 책정하고 계통적인 경찰망을 조직 형성했
    다고 밝혔다.또한 러치가 군정장관으로 취임하고 나서 서북청년단의 해
    체를 명했지만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북한 공산치하에서 가혹한 비민주
    적 독재 정치에 시달려 갖은 고역을 다 맛본 점은 청년들이 고향과 부모
    형제들과 생이별을 하고 월남한 그들에게 다소 불법성이 있었다고 해서
    서북청년단과 같은 열렬한 우익단체를 해체”할 수는 없다는 근거로 서북
    청년단을 온존시켰다고 그는 자부했다.다른 단체와 기관들에 대해서는
    법의 엄정성을 강조하던 그가 이러한 서북청년단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32 연구논문
    “한민족의 자유독립”이라는 명목으로 눈감은 것은 월남한 대규모의 청년
    층을 (준)사설 청년단체와 경찰조직에 가담시켜 이들을 다른 계급을 감시
    하고 통제하는데 이용하려는 경찰행정의 필요성 때문이었다.37) 이러한
    경찰행정의 조직자와 책임자인 그가 1948년 9월에는 유엔특사로 1949년
    8월에는 이 여행기의 저자라는 특권화된 지위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을
    매개하고 중재하는 위임된 재현/대표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사유엔기행은 국제연합의 개최지 파리에서의 고투와 승전보를 전
    하는 것으로 서사를 마무리한다.그가 책의 서두에서부터 밝힌 대한민국
    정부 승인은 국제연합 총회에서의 48 대 6의 숫자로 모든 것을 정리하는
    완벽한 승리로 기록되고 있다.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가 확증되고
    보증되는 자리도 바로 이곳이다.그는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를 위
    임받아 파리에 왔고, 파리에서 이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대한민국과 국민
    의 일반의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여기서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사
    이의 차이와 간극은 없다.아니 그의 재현/대표성의 발화 위치는 출발 전
    과 하등의 변화가 없이 그를 여전히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를 대변
    하고 구현하게 한다.이 모든 것의 바탕에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반의사가
    자리하고, 국제연합 총회의 승인으로 이 토대가 더욱 견고해지는 자기 회
    귀적 순환과 참조의 틀이 만들어진다.요컨대 여행기와 국가적 사명이 결
    부되어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반석 위에 올려놓
    게 되는 서사의 국가화, 국민적 일체감의 국가사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세계여론의 압도적 여론”(87)을 보여주는 국제연합에서의 48 대 6의
    우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조병옥에게 해석되고 있다.“소련의
    부정의가 한국의 정의앞에 굴복한 첫 계단의 승리”이며 “미국을 위시한
    민주주의진영에 속한 국가군이 소련 및 소련뿔럭에 대한 유화정책을 포
    37) 조병옥, 나의 회고록, 해동, 1986, 149쪽.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3
    기”(88)한 것이며, “한국이 그 정부의 수립으로써 최대최고의 목표인 남
    북통일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민주주의진영전체가 인정하는
    동시에 그 진영은 한국이 방공진영의 중요한 일익으로서 그 국력을 방공
    투쟁에 충실히 가담할 것을 믿고 기대하게”(93)되는 것이 그것이다.이것
    은 그의 여행기가 그려간 공간표상의 분절화 와 조형술이 정확하게 일
    치되는 의미생성의 연쇄를 이룬다.다시 말해 대한민국-태평양/대서양 동
    맹의 제 국가군-국제연합-대한민국의 여행 일정은 대한민국의 도덕적 승
    리-민주주의 진영과의 동맹-세계적 방공투쟁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교직
    하며 냉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 냉전적 네트워크의 분절선을 따라
    메시지와 사람과 부와 군사력이 이동하는 물적 제도적 담론적 통로가 재
    형성된다.이러한 역사지정학적 배치는 국제연합의 보편성과 국제연합의
    지역적 진영적(분파적) 이해관계가 모순 없이 일치한다는, 혹은 모순이
    있다 하더라도 이 모순을 없애기 위한 전 단계라는 대한민국 주창자들의
    입장을 반향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표상의 조형술이 최종적으로 귀일하게 되는 토대로
    서의 대한민국의 국가주권은 “평화적 통일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국권의
    발동으로써 통일을 꾀하는 최후수단까지 없어야 한다는 전제는 당당한
    주권정부가 수립된 금일에 이르러서는 용인치 못할 일”(95)이 되며, “남
    북통일의 유일한 방법은 국력을 배경으로 한 주권의 발동이란 것이 법리
    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규정되어야 하는”(96) 국가주권에 대한 전일적 긍정
    과 함께 국가주권에 대한 이견과 불만을 봉쇄하고 차단하는 방파제로 기
    능한다.조병옥의 특사유엔기행의 여행서사가 1949년의 신국면에서 갖
    는 의미라면, 곧 이러한 국가주권에 대한 현시와 국제연합과 지역적 동맹
    체간의, 국가와 국민간의 불일치와 간극을 이야기했던 다른 목소리와 서
    사들을 잠재우는 국가행정적 기술 장치로써 국가 통치술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점일 터이다.
    34 연구논문
    4.결론을 대신하며-여행기의 역사지정학과 전후의 ‘국민’국가
    이 글은 지금까지 국가주권과 국가-지역-지구를 횡단하는 공간표상의
    조형술로서 여행기가 갖는 의미를 추적해보았다.해방기 여행기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더구나 여행기의 문학적 특성이나 장르적 의미가
    아니라 여행기를 국가-지역-지구의 세 공간층위가 교차하는 공간표상의
    조형술과 연관시켜 이를 국가주권의 편재된 ‘현실’과 결부시키려는 연구
    는 처음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런 만큼 많은 무리와 한계를 내장하
    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가령 여행기는 국가사의 일부로만 작용하지 않는
    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될 수 있다.이 부분은 부인할 수 없는 측
    면으로, 여행서사는 타문화와 접촉하고 변용하는 수많은 변경과 경계지점
    들을 낳으면서, 국경의 제한된 폐쇄성을 민주화하는 역능과 잠재성의 유
    효한 장치로써 기능할 여지도 다분하다.더구나 젠더와 지역 및 지위 계
    층에 따른 차이와 분리는 이러한 주류 남성 국가행정 엘리트의 세계 인
    식과 국가 이해와는 분명하게 다른층위에서 여행서사의 또 다른 서사
    양태들을 창출한다.
    하지만 이 글은 이 부분까지 깊숙이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았다.그것은
    이 글이 여행서사를 제국의 서사 못지않게 국가사의 일부로 읽어내고자
    했던 목적과 필요성에서 기인한다.국가 재건 혹은 창설의 시기에 세계와
    자(自)국가를 비교하고 세계 속에서 자국가의 위치를 가늠하며 세계의 일
    부로 자국가를 위치 짓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중심적인
    열망과 욕구가 된다.이러한 욕망의 일단이 여러 갈래의 여행서사들을 생
    산하고, 이 여행서사의 출판과 담론화에 힘입어 사람들은 세계와 자국가
    를 조망하고 이해하는 시각을 획득하게 된다.따라서 여행서사가 대한민
    국 정부 수립 이후에 급증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충분히 해석 가능하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5
    며, 세계와 자국가와의 비교를 통한 인식의 확장이 국민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구축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글은 이러한 국가수립의 당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도, 다른 한편
    으로 특정 시기의 국면에서 여행기가 직간접적으로 국가행정의 한 장치
    로서, 권력의지의 실현과 통치술의 매개 수단이 되었던 사회역사적 맥락
    에 대해서 주목해보았다.여행기는 공간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주조하고
    신체와 삶의 형태들을 구성하는 공간의 개념적 틀로 작용하기 때문에, 시
    간과 더불어 공간표상을 구축하는 인간과 세계 이해의 수단이자 도구이
    다.여행서사를 단순한 이민족이나 타문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이국취미로
    돌려버리는 일은 식민주의의 시기 동안 제국의 권력과 재현의 권위를 탈
    색하고 중화하여 이를 객관적 미학적 학문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온 지난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러한 반성적 관점
    에서 국가주권의 폭력적 행사와 전시가 극대화된 1949년의 시점에 조병
    옥의 특사유엔기행이 자리한다는 점은 재차 강조해도 좋다.비단 조병
    옥의 여행기만이 아니라 이 시기를 전후한 수많은 여행기들은 이 특정한
    국가폭력과 ‘국민’적 정체성의 강박적 정화와 맞물려 때로 생존서사와 때
    로 수난의 문학 및 발견과 탐험의 서사와 결합되어 국가사의 일부로써
    자리매김해 왔다.여행기를 특정한 사회역사적 맥락과 배경에서 탐구해야
    할 필요는 여기에 있으며, 이 특정한 사회정치사가 여행서사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행기는 인간 이해의 사회정치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국민국가 시스템 및 탈식민화와 포스트 제
    국 체제가 뒤얽히는 속에서 한반도는 몇 번의 굴절과 변동을 겪어왔다.
    이 변화의 지점에서 포착되는 삶의 결들은 이 전체적인 시대사와 조응하
    며 ‘국민’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해왔다.‘국민’이 상상되는 것이라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 개념의 배치와 변환이 국가주권의 현시와 맺는
    상호 관련성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한 편이다.이를 동시대적인 맥
    36 연구논문
    락에서 파악하고 해석하는 일은 전후를 사고하는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이 글은 이러한 국가주권과 국민적 아이덴티티의 형성을 염두에 두면서
    국가주권이 갖는 양의성에 대해서도 문제 삼고자 했다.국가주권은 국민
    을 정위하고 보호하는 힘이지만 동시에 국민을 절단하고 구속하는 권력
    장치의 구성물이며, 이 권력 장치의 일부로 여행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관
    여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 핵심어 : 국가주권, 국제연합, 태평양동맹, 국민, 자유민주주의,
    여행서사, 조병옥, 특사유엔기행, 국가사, 공간표상,
    냉전적 네트워크, 역사지정학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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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 경향신문, 서울신문, 평화신문, 자유신문, 연합신문 등을 참조.
    38 연구논문
    접 수 일 : 2010.06.25.
    심사완료일 : 2010.07.16.
    게재확정일 : 2010.08.09.
    국제연합에 의한 국가주권의 물신화와 여행서사의 국가화 39

    fetishism of national sovereignty by the un and nationalizing
    of travel narative
    -historical geopolitics of cho byong ok’ travelogue of the un
    special envoy-
    kong imson
    this essay focused that national sovereignty has been making/compositing
    nation in june 1949 or so and this sanctification of national sovereignty has
    been made on universal sovereignty model of the united nations(the un) so
    called the approval of 48 countries in the un.this universal placeness of the
    un has become socio-historical backdrop forming a certain way of spatial
    representation of cold war, be serving as foundation on eradication/removal of
    another forces doubting and criticizing about the perfect modern
    nation-statenes of rok(대한민국) and the universal position of the un.cho
    byong ok’ travelogue of the un special envoy(특사유엔기행) exemplified
    that the repatriate narratives of travelogue could be square with national
    history in a certain socio-historical phase, and travelogue could be nationalized
    or travel narative could worked as parts of art of governor in those context.
    raising a question asymmetric and complicated complicity and coexistence
    between travel narative and national history, this essay tried to introduce a
    new awarenes about travel narrative and national sovereignty.
    ■ key words : national sovereignty, the united nations(the un), pacific pact
    policy, nation, liberal democracy, travel narative, cho byong ok,
    travelogue of the un special envoy(특사유엔기행), national
    history, spatial representation, cold war network, historical
    geopolitics
    40 연구논문
    ■ 필 자 :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전자우편 :
    ■ 주소 : 서울 동작구 상도 5동
    ■ 전화번호 : 02) 705-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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