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와 개발 NGO에 관란 연구 초록입니다.
초국가 시대의 시민사회와 INGO
이태주(한성대 교양학부)
1.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
인류학과 시민사회 인류학(civil anthropology)은 인류학과 발전의 관계와 같이 또 하나의 ‘사악한 쌍둥이’(evil twin) 관계에 있다. 인류학과 시민사회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동시에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서구 중심적이고 규범적인 슬로건으로서,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화, 민주화, 신사회 운동 등과 관련하여 실천적이고 이념적인 수준에서 사회 지향의 모델로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에, 인류학이란 학문은 보편주의적 시민사회 개념을 수용하고 적용하기보다는 이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시민사회 개념을 해체하고 경험적 수준에서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서구 모델에 도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Hearn(2001)의 주장에서와 같이 인류학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항상 시민사회를 전공하여 왔다. 시민사회는 인류학의 떠오르는 새로운 연구분야와 주제가 아니다. 전통적 인류학의 연구대상인 마을, 이웃관계, 빈민가와 농촌조직, 교회, 조합, 사회운동집단, 공장, 시장, 병원.... 등의 모든 공사 영역이 광의의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이야말로 사회조직, 관료제, 정책과정, 사회운동 등의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시민사회 개념을 찾아내고 그 속성을 심층 기술할 수 있다. 광의의 시민사회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인류학은 국가가 어떻게 ‘시민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를 밝힐 수 있으며, 이러한 시민화 프로젝트가 문명화, 식민주의, 근대화, 발전과 진화주의라는 거대한 지식체계와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해명할 수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전통적인 인류학적 연구 대상인 ‘경계지워진 공동체’나 ‘문화’들이 국가와 시장간의 권력 관계에서 어떻게 규정되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인류학의 분과이고 연구방법론이다. 즉, 시민사회 인류학이란 새로운 연구대상과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인류학적 연구대상, 특히 정치인류학적 연구 대상들이 국가-시장관계, 지방-세계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비판적 연구방법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적으로나 한국사회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NGO들은 전통적인 사회조직과 관계망, 가치체계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는 조직유형으로서 사회 변화의 추동력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유용한 연구 대상이 된다.
2. 초국가 시대의 INGO와 NGOgraphy
NGO 중에서도 국제 NGO, 개발 NGO 혹은 국제개발 NGO 라고 부르는 국제비정부기구와 단체(International NGO; INGO)1)들은 초국가 시대의 지식과 정보 네트웍을 형성하는 핵심 매개체이다. 세계와 지역(global/local)을 매개하는 통로이고, 초국가 시대의 집단적 행위자로서 INGO는 시민사회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류학적 연구 대상이며 새로운 필드(field)이다. 때문에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INGO들에 관한 NGO 문화지(NGOgraphy)들이 출간되고 있다(Fox 1998; Crewe and Harrison 1998; Hulme and Edwards eds). 일부 학자(Markowitz 2001)들은 이러한 연구방법을 상층연구나 하층연구와 대비하여 전반연구(studying up and over) 또는 관통연구(studying through)라고 부르며, 프로젝트를 추적하는(following project) 방식의 다지역 문화지(multi-sited ethnography) 방법론이 유용하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초국가 시대의 INGO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첫째, INGO는 세계적 담론 형성과 문화창조자로서 기능한다(김영수 2002). INGO는 특정한 제도의 강제적 확산이나, 모방, 규범적 압력을 통해 특정의 제도와 담론을 확산해가는 통로이자 매개자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GS) 논의와 개념들, 시민사회 뿐 아니라 정부와 시장 영역에서도 보편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책과 개념들(거버넌스, 투명성, 효율성, 신뢰, 사회자본, 파트너쉽, 오너쉽, 지속가능발전, 유연성...)은 국제정부간기구(IGO) 뿐 아니라 INGO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민들에게 확산되고 담론화된다. 그러므로 INGO는 세계화 정책의 담론확산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고 매개자이다. INGO는 세계화의 행위주체로서 정부, 기업 및 정부간 기구들과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특수한 지식과 권력관계를 재창조한다.
둘째, INGO는 지역 경험을 토대로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 이념과 대안 담론을 만드는 지역-세계의 매개 조직이다. INGO는 적어도 3개국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NGO들과 마찬가지로 INGO도 지역사회의 경험과 인적자원을 그 기반으로 한다. 이미 씨에틀에서의 WTO에 대한 저항운동과 코펜하겐에서의 사회개발정상회의, 요하네스버그의 지속가능세계정상회의(WSSD) 등에서 INGO들의 저항과 대안 담론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 바 있으며, 선진국 INGO와 개발도상국 INGO들은 지역사회 경험을 토대로 각각 상이한 발전 이념을 제안하고 있다. INGO들의 조직활동과 이념은 지역지식과 세계화 전략간의 상호 모순적이며 이질적인 담론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장을 제공한다.
또한, INGO는 대표적인 이념경관(ideoscapes)으로서 정보와 지식 및 가치관들이 교류되고 넘나드는 공간이다. INGO를 통해 인력, 기술, 물자, 재정, 미디어들이 교류될 뿐 아니라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이 INGO 활동을 통해 교환되고 재생산된다. 특히, INGO는 발전과 저발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남과 북, 국가사회와 시민사회라는 대립적이고 호환 불가능한 두 세계가 재생산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INGO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세계화와 국가전략 및 통치수단 연구, 세계화와 발전에 대한 저항과 대안 담론 및 지역과 세계간의 상이한 지식체계 연구, 초국가적 이념과 이미지들의 교류와 재생산 과정을 연구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며, 초국가 시대의 새로운 인류학적 필드와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3. 시민사회인류학과 인류학적 시민사회론의 가능성
한국에서의 시민사회 연구에는 몇 가지 특성이 발견된다. 첫째는 시민사회에 대한 이념 논쟁과 현실분석의 괴리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사회주의적 시민사회론의 비판과 반비판과정을 통해 시민사회를 하나의 운동 지향적 이념으로 형성해나가고 있으나 정작 시민사회운동의 현실태에 관한 분석은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둘째는 시민사회 개념이 지니는 서구의 발전론적이고 진화론적인 함축이 거의 여과되지 않고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마치 문명전환적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것과 같이 신비화되어 있다. 반면에 실재로 시민사회가 어떠한 양태로 존재하고 조직원리와 특성, 가치관과 신념체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파편적인 수준이다(연고주의, 지역주의, 파벌주의 등). 셋째는 지나치게 규범적인 논의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사회자본, 신뢰, 거버넌스, 파트너쉽, 성찰적 근대성과 성찰적 자본, 세계시민 등에 관한 논의들은 얼마나 시민사회 논쟁이 규범적이고 개념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그러한 지적 구성물들이 한국사회의 조직원리나 문화적 정체성과 특수성을 얼마나 올바로 해석해내고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주는지에 대하여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인류학은 문제중심의 인류학, 이슈중심의 인류학,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인류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민사회인류학은 한국사회의 문제와 이슈중심의 실천적 인류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학은 개발, 환경, 인권, 분쟁, 편견, 허위의식과 지배, 신화와 상징, 인종과 성, 세대와 지역차별, 문화자본, 공동체와 규범, 관용과 신뢰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경험적으로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라는 이상과 반국가, 반시장, 반서구 중심의 사상을 암묵적으로 실천하여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인류학은 본질적으로 문화비평적인 학문이다. ‘문화비평으로서의 인류학의 귀환’이라고 적시하지 않더라도 인류학은 시민사회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와 이슈, 비젼과 규범, 슬로건과 현실사이에서 다른 학문분과에서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비교문화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처음부터 내세워 문화적 환원주의나 무모한 총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현실적 주체들과 요소들이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현실 분석을 통해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시민사회 인류학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해석과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에 분리되어 연구되어 왔던 가족, 종족, 생계와 기술, 신념체계와 도덕, 지역정치가 ‘시민사회’를 통해 비로소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통합적으로 위치 지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적 연구란 부분들에 대한 의미 짓기 작업이며, 인류학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을 통해 ‘복합총체’를 보여주고 전체에서 의미 지워진 부분들의 실천이 가능하도록 기여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류학은 한국사회의 실천적이고 정책 함의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발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학은 학적, 현실 정치적 담론 경쟁을 통한 권위의 확보뿐 아니라 대중적 지지기반의 확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시민사회인류학은 그 동안 국내에서 연구되어 왔던 사회운동관점의 시민사회론, 규범적인 시민사회론, NGO 조직관리론 등이 한국정치의 ‘전통적’이고 비공식적인 부문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왔던 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시민사회를 시장과 법치,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보편주의 이상과 한국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상대주의의 양극단에서 인식하는 오류를 극복하고 현실적이고 다원적인 모델을 구축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김영수, 2002. 「세계 사회의 거버넌스 형성과 국제 NGO의 역할: 세계담론의 형성 주체와 문화창조자로서의 INGO」, 2002년도 한국NGO 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자료『NGO 의 활동현황과 발전과제』
Crewe, Emma and Elizabeth Harrison, 1998. Whose Development? : An Ethnography of Aid, London: Zed Books.
Fox, Diana Joyce 1998. An Ethnography of Four Non-Governmental Development Organizations, The Edwin Mellen Press.
Hann, Chris and Elizabeth Dunn eds. 1996. Civil Society : Challenging Western Models, London: Routledge.
Hearn, Jonathan 2001. "Taking Liberties : Contesting Visions of the Civil Society Project",Critique of Anthropology 21(4): 339-60
Hulme, David and Michael Edwards eds. 1997. NGOs, States and Donors: Too Close for Comfort?, New York: St. Martin's Press.
Markowitz, Lisa 2001. "Finding the Field: Notes on the Etnography of NGOs", Human Organization 6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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