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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일 화요일

이용희 일반국제정치학 평가, 토론

[2010 EAI 사회과학대강좌] 강연 : 7회 동주 이용희 일반국제정치학
2010-03-24
[2010 EAI 사회과학대강좌] 강연 하이라이트 : 7회 동주 이용희 일반국제정치학
2010-03-24


[2010 EAI 사회과학대강좌] Q&A : 7회 동주 이용희 일반국제정치학
201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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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세계정치연구회 녹취록
2014 년 4 월 26 일

주제: 이용희 일반국제정치학
교재: 이용희. 2014. 일반국제정치학
사회: 김치욱 교수(울산대)

발제: 이헌미 박사(서울대), 송태은 박사과정생(서울대)
토론패널: 하영선, 김상배, 전재성, 손열, 신범식, 배영자, 김치욱, 이승주, 민병원,
이헌미, 조은정, 송태은, 최재인,

<토론>
김치욱: 이헌미 박사의 발제 재밌게 잘 들었고 송태은씨는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지적해
주었음.

전재성: 실증주의를 안 받아들인다고 해서 실증주의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님. 이 책도
실증적 방법을 쓰고 있음. 양적 데이터와 질적 방법론을 다 쓰고 있음. 문제는 실증주의
경험연구를 하냐 안 하냐 어떤 기법을 쓰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고 어떤 기법을 쓰느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닌 것 같음. 문제는 의미권에서의 정신적 변수를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과제로 남는 것이고 관찰 가능한 데이터를 양적으로 변환하여 풀어내는 것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음. 그것을 합칠 수 있는 방법론이나 인식론의 문제가 있고, 우리가
다루는 대상에 따라서 관념변수가 적어서 실증주의를 쓰는 것이 적절할 때가 있는 것임.
어디서는 어떤 방법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메타기준은 없지만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 하영선 교수님도 말씀하셨듯이 이 책은 굉장히 실증주의적인 부분이 있으므로 이
책을 굳이 실증주의를 비판하는 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음. 나도 2 세대는 아니어서
아주 객관적으로, 전혀 이 저자를 모른다는 상태에서 21 세기의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어젠더 설정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음.
외교학과 밖이나 다음세대와 작업할 때에 과연 한국인이 쓰는 국제정치학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 고민하고 있음. 이 책이 50 년대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는데 60 년대 이후
우리가 겪은 냉전이나 동아시아의 관계를 다루지는 않고 있음. 일제시대와 50 년대
초반까지의 국제정치 원형의 모습을 담고 있음. 그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음. 그러므로
20 세기 전반을 이론화 한 것과 21 세기 전반을 이론화하는 두 시점에서의 소통이 어떻게 될
것이냐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음. 재미있는 것은 냉전기의 국제정치는 동아시아적
국제정치 성격이 굉장히 적었던 시대였다고 봄. 워낙 전형화된 국제정치였음. 유교권이나
동아시아 얘기를 안 해도 서구이론 만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시대였음.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닥친 국제정치의 현실은 거시적인 이행기이므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동아시아로
보면 근대로 진입하여 제국주의가 끝나고 동아시아에서의 nation 중심의 국제정치를 만드는
시기의 얘기이므로 거시이행의 관점에서는 훨씬 더 와닿는 부분이 있었음. 20 세기에는
잊혀졌다가 그리고 변수가 아니었다가 21 세기에 다시 역사와 영토문제와 식민지 문제가
대두되었다는 것은 동아시아 근대정치의 성립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봐야함. 20 세기
근대국가 성립과정이 지금 와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는 것임. 최근 국제정치의 turn 중에
역사주의적 turn 은 많은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이 15 세기 16 세기로 다시 돌아간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 우리로서의 역사사회학적 측면에서 충분히 다시 읽을 부분이 있음. 그리고
인식론적 문제인데….굉장히 positivist 적인 것이 주는 좋은 부분도 있지만 문화라는 것은
동아시아 관점에서 이론화하려는 시도는 없었던 것 같음. 문화라는 것은 locality 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을 보편주의를 내세운 서구 이론으로 다시 우리의 locality 를 설명하는
것이 좀 어렵다. 그래서 내재주의적 접근법이 필요한 것임. 의미권과 권역의 개념이 다시
조망 받고 있음. 가장 가까운 것은 국제사회학파의 개념임. 그런데 국제사회학파에서
말하는 권역과 동주의 권역은 서로 근본적으로 다름. 국제사회학파는 서구의 권역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보편화 부분을 얘기하고 권역간의 충돌이나 교섭을 얘기하지 않음.
지금 굳이 이용희 선생의 전파이론이 아니더라도 3 세계에서도 전파이론과 맞먹는 의미권
논쟁을 하고 있고 여기에는 감정의 변수도 들어간다. 50 년대까지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의미권 개념을 지금 우리가 다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음. 전파적 관점은
의미권 논의 관련해서 여전히 중요함. 동아시아 국제정치학을 다시 이론화하는 것은
동아시아를 포함한 지구 전체의 국제정치학을 이론화하겠다는 얘기인 것임. 그러므로 더
일반국제정치학으로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듬. 이 경우도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이
책이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함. 유교와 이슬람권 모두를 다 얘기하고 있음. 우리의
관점에서도 이 책이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이론화하는 책이라고 볼 수는 없음. 21 세기
관점에서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떨지 고민해봐야 함. 이 책을 영어권 사람들이
읽었을 때에도 굉장히 일반적인 국제정치학 얘기를 하는거구나 하는 느낌이 있어야 함.
그러려면 굉장히 폭이 넓은 인식론적 관점이 필요함. 기존의 글로벌한 IR 학계의 항목을
가지고 각각 하나씩 지금의 IR 을 잘게 논의할 필요가 있음. 유교권에 대한 논의도 그냥
두면 중국 IR 이 유교권에 대한 담론을 모두 독점할 수가 있다. 그런면에서 유교권에 대한
논의도 그것만 따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권도 마찬가지이다.

민병원: 동주선생님의 핵심적인 주장인 군사국가, 경제국가, 식민지국가를 논한 이 책을
보면, 경제, 군사, 식민지라고 하는 굉장히 hard 한 측면만 강조가 되어서 (하)권에는 좀더
소프트한 측면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봄. 최근 다른 일로 푸코의 최근 번영된 책을
읽었는데 거의 동주선생과 같은 얘기, 즉 근대국가가 어떻게 등장을 했고, 거기서
국가이성이 어떻게 이해가 되었고 이것이 어떻게 governmentality 로 연결되는지 논의가
되었는데 동주 선생님과 토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음. 동주 선생님이 다루는 논의
대상과 굉장히 비슷했음. 푸코는 마키아벨리식이라기보다는 굉장히 소프트한 쪽으로 많이
가져가죠. 동주의 논의는 다시 읽어보니까 푸코 이전의 것인데 이제 굉장히 많이 알려지고
stereotype 화 되어서 이것을 영어로 번역해서 서구에 소개하는 것의 새로운 의미가 뭘까
생각해봄. 크게 보면 자유주의에 대한 얘기 그리고 statecraft 에 대한 얘기를 해봐야
하는데, 즉 경제국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시장메커니즘이 어떻게 나왔는지 즉
liberalism 의 연원을 밝히는 논의가 있음. 그리고 복수의 주권국가들이 만나면서 자기
제한을 하면서 정교한 statecraft 를 만들어가는 측면들이 동주 선생님이 하권을 쓰셨다면
그러한 얘기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음. 그렇게 일단 푸코와 동주를 대비해 봤고요.
그리고 아까 송태은씨가 방법론적 측면을 얘기했는데, 저도 공감을 하고요. 계량적인
방법론을 배우고 와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해서 좀 억울하다고 얘기했는데 사실 동주
선생님과 하영선 교수님을 비롯해서 외교학과 선생님께서 실증주의 접근의 한계를 이미
지적하셨기에 알고는 있지만, 동주의 논의를 보면 굉장히 idiosyncratic 한 얘기도 하고
있음. 즉 결국은 동아시아가 다르다는 것을 동주가 강조했음. 그런데 타이틀은 ‘일반’
임.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러한 특수성을 강조하면 서구의 학자들이 어떻게 이해할
지…설득 가능한 일반화에 대한 고민이 있음. 바로 그런 부분에서 송태은 씨가 질타를
했음....네트워크 국가론이나 복합국가론이냐 이게 답을 제대로 내고 있는가....과연
동주의 것을 받아서 선생님들이 과연 답을 제대로 내고 있느냐는 송태은 씨 질문하며 묻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답변은 하영선 교수님과 김상배 교수님께서 해주실 것이고요(좌중
웃음)… 같이 연구할 문제인데, 동주의 책을 현대식으로 풀어쓰고 영어로 풀어써서 서구로
가면 과연 서구 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번 상상을 해보면, 서구 학자들은
종속이론이나 colonial discourse 로 이해를 해 줄까 혹은 우리에게도 자생적인 IR 이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지금 내용만 가지고 간다면 “도대체 뭐가 다른
것이냐?”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음.

배영자: 이렇게 책을 만들어 놓으니 오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굉장히 큽니다.
송태은 씨도 지적했지만 엄청난 독서량에 놀랬음. 지금 공부하는 분들은 실감을 못하겠지만
자료를 국내에서 찾는 것이 이전에는 정말 열악했음. 80 년대 후반만 해도 전자 도서관도
없었던 때이고. 60 년대에 글을 쓰신 동주 선생님의 엄청난 자료의 양과 독서방법이
궁금했음. 50 년대의 것이 모두 업데이트 되어 있음. 이헌미 박사가 언급했듯이 동주
선생님은 돈이 없으셔서 공부를 하셨다는…그런 삶의 태도가 방대한 독서량과 통합적
지식을 가능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함. 당시에 당시 논문이 업데이트 되있음. 이 원서들을
어떻게 접근했을까. 엄청난 follow-up. 방대한 독서량과 통합적 지식. 지금 봐도 자료가
통합되고 업데이트된 자료를 쓰고 있고 많은 자료를 사용함에도 일관된 논의를 펼쳐나가고
있음. 근대 국가가 중상주의나 자유방임주의에 근거해서 단일 경제를 수립하고 그러한 근대
경제국가의 모순이 초국적 자본이나 무력에 의해서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는지 아주
일관성있게 잘 설명되어 있음. 자세히 읽어보면 국제관계의 복합, 복잡성에 대한 언급,
거미줄 네트워크에 대한 개념도 나와 있음. 혜안이 있으심. 복합 1 세대로서 군사, 경제,
식민국가로의 모습, 그리고 국가연합으로 단위체가 변모되는 모습을 보고 계신데, 저희가
계승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민병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최근 국제정치의 변화를
얘기할 때 국민국가의 단위가 변화하는 내용 외에도 국가의 내용 자체가 변화하는 내용,
이제는 군사, 경제 외에도 소프트한 부분이 들어오고. 부국강병에 더해서 여러가지 다른
것들이 들어오는 부분에 대해 이 책에 명시적으로 들어와 있지 않으므로 우리가 계승을
해야...이 책에서 힘(3 장)에 대해 명시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부분이 있음. 힘에 대해
굉장히 짧게 논의가 됨. 부국강병의 차원임. 동주 선생님이 푸코에게 깨질 것 같지는 않음.
이 책에서 담론의 프로퍼갠더성, 언어의 권력성을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음. 그러므로
그러한 프로퍼갠더에 속아서는 안되고 우리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은 푸코의 문제의식
이상을 가는 것임. 하지만 힘의 기반이나 근대국가의 복합적인 자기모습을 명시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으심. 아마 그런 부분은 50 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 아닐지 생각함.
그 50 년대나 60 년대에 소프트 파워나 담론의 힘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함. 아마도 선생님께서 설명하시지 않은 그런 생각을 우리가 각주로라도 설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봤음. 우리가 이런 부분을 이어나가서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지.
2014 년 현재 동주 선생님이 계셔서 현대국가의 자기모순을 말씀하신다면 인터넷이나
사이버 공간에서 어떤 말씀을 하실까 궁금함. 동주 선생님의 문제의식과 동주선생님께서
담아내지 않은, 그리고 21 세기 복합적인 환경을 모두 담아내는 것이 우리의 어젠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함.

김상배: 왜‘힘’이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하고 괄호하고 ‘권력’이라 썼는지 궁금함.

하영선: 1914 년까지에 대한 내용이 적힌 책이 이 책이므로 이 책에서 당시 소프트파워
얘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함. 아마도 노재봉 선생님과 동주 선생님의 차이라고 한다면,
노재봉 선생님은 오늘날 시점에도 하드파워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안 하심.
네트워크나 소프트파워나 푸코 등의 얘기에 대해서 인정안하심. 동주 선생님은 그것보다는
더 넓게 생각하심. 시대시대에 따라서 힘의 내용이 다르니까 그렇게 적은 것이라고 생각함.

이승주: 4-5 장 중에서 현재 관점에서 우리 연구 어젠더 될만한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봤음.
저는 굉장히 새로운 경험인데, 사실 우리 한국학자 저작 중에 50 년 60 년 된 책을 토론해
본 적 없음. 그런 의미에서 의미 있음. 그래서 우리 현재의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일까
얘기하기에 앞서서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도 살펴봐야....서평이 하나
나오는데 굉장히 중요한 도전을 했다는 것을 서평이 강조함: 장소의 개념을 가져오고
전파이론을 얘기했다고 강조. 장소의 국제정치학, 전파이론, 근대국가.....도전을 했다는
것 자체가 공언...두번째는 피동적 입장을 고려하면서 쓴 것이라는 점. 그리고 군사, 경제,
식민국가에 대해서 얘기한 것. 그리고 동서고금의 저서를 섭렵했다는 것. 한국 전쟁횟수
관련해서 데이터들을 만들어냈다는 것 등등 이러한 점들이 공헌으로 평가 받았음. 현재에서
생각해볼 만한 연구 어젠더가 있다면, 구체적으로는 무역, 투자, 이민의 관계에 대해서
동주 선생님이 많이 언급했는데, 동주는 이것이 서로 맞물려있다고 생각하심. 20 세기
후반의 세계화론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엮여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것이 sequential 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함. 무역=> 투자=> 이민, 노동의 이동 이러한
순서로 이해함. 21 세기 후반도 이런 관계의 모습이 있는데, 사실 이 무역, 투자, 이민간의
다이내믹스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할 필요 있음. 또 하나는, 20 세기 전반까지의
세계화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투자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역확대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있으시고....예를 들어 유럽 즉 영국의 경우 농업지역에 대한 장기개발을 위한 자금투입을
얘기하는데, 즉 선진국에서 자본이 축적되면서 과잉투자가 되면서 이것이 어딘가로 가야
함. 즉 농업개발을 통한 장기투자를 말함. 그곳이 주로 개도국이 되는 것임. 농산물의
생산증대, 그것이 다시 영국으로 재수입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얘기임. 지금의 무역, 투자,
이민의 관계와는 조금 다름. 동주도 global inbalance 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지금도
global inbalance 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한쪽에서는 기본적으로 미국 등등의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금융 자본의 세계화를 얘기함. 상품무역의 global inbalance 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과 자본의 세계화를 논하는 것임. 마지막으로 추가하면 이 책이 20 세기
전반까지의 얘기이므로 아무래도 유럽과 미국중심임. 미국의 얘기로 넘어오면, 제국의
성격이 달라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음. 미국의 경우 농업개발 통한 수출이
필요하지 않은 농업국가로서 제국의 성격이 다름. 역수입이 필요하지 않은 국가임. 그러나
그러한 인식을 이론화하지는 않고 있음.

손열: 이렇게 훌륭한 책이 왜 여태까지 안 읽혔는지 제 또래의 학자들 연구실에 이 책
꽂혀있는 것 본 적 없음. 학계에서 동주 이용희 얘기를 해도 특정대학의 특정학과의 교수
특정분들이 읽는…어떻게 보면 소비의 폭이 좁혀지는 현상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했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 학계 분위기가 미국 국제정치학의 얘기를
인용하는 분위기. 국제정치학 이론이나 개론을 얘기하면서 이 책을 굳이 얘기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도 있음. 두번째는 동주선생의 책임 있음. 그나마 한국민족주의와 미래의
세계정치는 많이 읽힌 것 같은데…유신 때 학문적 생명이 끝난 학자의 연구를 계속 볼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있음. 아쉬운 것은 한일관계에서 정신사적 문제 같은 글은 계속
읽혀야 하는 부분임. 이 책에서 굉장히 original 한 부분은 장소의 개념과 전파이론이고
그것을 받아서 실제 문제에 대해서는 그 시각으로 분석하는 부분이 뛰어난 부분임…그렇게
독창적인 부분을 받아서 계속 연구가 계승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음. 세번째는, 이게
많이 읽히려면 그냥 이용희라고 불러야 이 책이 객관적으로 읽힐 것이라고 생각함. 그런데
동주선생, 이용희 선생이라고 자꾸 부르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의 어떤 제약이 있음.
이용희의 국제정치학, 이용희의 민족주의론을 어떤 식으로 객관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하는
논의가 진행되어야 함. <역사속의 젊은 그들>에서와 같은 젊은 그들이 아니라 학문적인
측면에서 이 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함. 제국주의
국제정치학에서 비통한 시절을 생생하게 사신 경험을 더 살려졌으면 하는 아쉬움 있음.

김상배: 더 어떤 글을 쓰셨거나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었는지? 5 장 같은 경우 어떤 얘기가
나오다가 만 느낌이 있음.

하영선: 유고로 나온 상태여서 없다. 초고 형태도 없다. 머리속에서는 장과 절이
구체적으로 있었을 것이다. 미래의 세계정치를 낼 때 일반국제정치학 (하)로 나오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것은 맞지 않다고 반응함. 장소얘기가 등장하는데 topos 의 경우
철학적 기저에 대한 말년의 리딩이 있었음.

김상배: 인류사상 제일 많이 읽는 것이 성경. 텍스트 자체도 좋지만 그 자체가 함축적인
부분이 아주 많아서 자꾸 읽히는 부분이 있다. 동주 선생님의 책은 굉장히 많이 잊혀진
책이었음. 그래서 책임감 같은 것을 느껴야 하지 않나. 정세연도 지난 2 년간 난독을 하지
않았나. 인식론, 방법론, 미학 등등…난독의 시대를 지난 것으로 이 책을 다시 읽었는데.
이 책에서 강조한 실천론적 관심에 대한 문제제기가 처음에 아주 강하게 나왔음. 이 책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 연구와 연결되지 않으면 관련이 없어짐. 그러므로 자기와 연결시키는
작업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함...즉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의 문제임....그래서 나의
실천적 관심은 무엇이냐는 생각을 해봄. 우리의 문제의식은 동주의 문제의식(우리는 왜
이렇게 못 사냐)과는 다름. 우리가 못살고 배고프던 시절에서 벗어나서 이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좀 살려야 하지 않느냐는 고민이 우리 정세연의 고민이었기도
했음. 삼성의 반도체나 지금의 인터넷 등등 우리가 잘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기회가 우리에게 오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인터넷 공간이나 소프트파워, 한류도
복합이나 네트워크와 관련이 되는 것이고. 최근 한국이 중견국으로서 어떤 기회의 창,
단순히 중간 사이즈의 국가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글로벌한 21 세기에 어떤 기회의 창이
열려서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인지의 문제의식 같은…저희 시대의 과제가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여태까지와는 다른 패턴으로 무엇인가를 해 볼 수 있지 않는냐는
문제의식이었음. 우리가 2012 년에 소위 20-50 클럽에 들어갔는데, 국민소득 2 만불에
인구가 5 천만 시대. 그러니까 인구증가 추세를 볼 때 앞으로 정점을 칠 수 있는
시기가 30 년 정도까지가 우리에게 열린 기회의 시간임. 즉 이 시기 혹은 이 시기를 넘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 우리의 실천론적인 고민이 아닐까 생각함.
동주의 문제의식과는 좀 다른 맥락의 문제의식임. 그런 측면에서 정세연에서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 할 지 생각해 봐야. 세계정치 이중구조가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되고
있음. 옛날 사진과 새 사진이 같이 겹쳐 있다는 얘기. 새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미래의
세계정치>에서 보여준 것이나 이 책에서 제시하는 새 사진에 나는 동의하기는 힘들었음. 그
때에는 새 사진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음. 재미있게 봤던 표현은 메타 네이션 스테이트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동주 선생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프랑스 학자가 썼다는 얘기가
나옴. 그것이 포스트 네이션 스테이트인건지 아니면 뭔지 다양한 개념이 경쟁하고 있는 것
같음. 그 개념이 지칭하는 현실은 오늘날의 유럽인데. 여기서 동의가 안되는 것이 뭐냐면
현재 국제정치에서 꿩잡는게 유럽은 아님. 지금의 꿩은 미국이나 중국인데,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의 고민을 생각해 볼 때 유럽의 얘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고민하게 됨.

하영선: 이것이 여전히 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현재의 한글로 새로 바꾸는 것에 대해
오히려 내가 반대함. 서양 클래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약간 전문적으로 보는 경우
현대어법으로 바꾸면 전문적인 논문으로 인정을 안 해준다. 조사 부사 모두 어색한데도
그냥 둔 것은 클래식 자체가 가지는 성격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대는 순간에 짝퉁이 될 수
있어서 고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함. 텍스트 의식이 우리가 없어서 그런데
동양고전이나 서양고전도 그냥 두는 것이 원칙임. 좀 불편하지만. 오탈자가 많다고 하는데
이걸 학생들이 찍자고 해서 개인적으로 미안해함. 한자를 한글로 다 바꾸는 작업이어서
학생들에게 고된 작업이었음. 학생들이 십시일반 해서 일인 출판사가 낸 책이다.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일을 학생들이 고되지만 모두 했다. 그래서 내가 서문을 쓰고 학교가서
소개도 했음. 선배나 선생이 못한 것을 학생들이 한 것이 의미있다. 고전 텍스트를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형식에 관한 얘기… 동양고전이나 서양고전에 손을 대자고 하는 것은 사실
아마츄어적 생각임. 텍스트를 읽는 방법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것도 문제임. 텍스트를 읽는
것에 대한 주류는 현재주의의 위험을 강조함. 텍스트는 일단은 텍스트가 쓰여진 모습을
봐야 하고 그것을 읽는 자와의 interaction 이 중요함. 일단은 내재적인 비판이 중요함.
들어가서 그 안에서 치고 나와야 함.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1950-60 년대에 쓰여진 것인데
쓴 내용은 1 차 세계대전 전까지임. 나는 이용희를 추호도 옹호하거나 외재적 비판을 하고
싶지 않음.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면, 김교수가 말한 것과 같이 teleology 측면에서 중요함.
이용희 선생은 자신을 학자로 생각하지 않음. 책이 많지 않은 것은, 자신을 생각하는 자,
글쓰는 자가 아니라 man of action 으로 여김. 따라서 이 책의 이름이 일반국제정치학
이라는 것은 사실 사기임. 이 책은 굉장히 실천공간에서 쓰여진 글. 자기 나름은 절규하며
고함치는 것. Teleology 의 측면에서 봤을 때 영미권이 아닌 나머지 지역 사람들이
공감하는 teleology 를 갖지 않나 생각함. Teleology 가 학문이냐 라고 한다면
자연과학에서는 빼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학문의 주요 요소로 보았음. 가장 중요한
것은 good question 임. Teleology 가 없이는 좋은 질문을 할 수 없음. 정치학보와
국제정치학보를 다 보는데 그 중 좋은 질문을 던지는 teleology 를 보아서 충격을 받는
경우는 정말 드문 일임. 물론 나도 그런 글을 쓰지 못했지만. 방법론이나 인식론의 훈련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teleology 또한 훈련이 오래 걸림. 해당 시기의 해당 공간의 푸코
나름의 질문이 있었고…teleology 는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질문이 그 시대
속에서 좋은 질문이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우리의 현 시대에서도 좋은 질문인가 하는
반문을 해 봐야 함. 대국이 있는 한 좋은 질문에 대한 요구는 계속 될 것임. 미국의
junior 교수들은 상당히 힘들 것임. 이전 국제정치 시각으로 보면 즉 원로들이 보면 중국이
망해야 하는데 안 망하고 있지 않나. 구성주의 웬트는 양손잡이가 아니며 스스로 방법론에
대한 해답이 없으니 실증주의적으로 하면 안되나 하는 얘기를 하고 있음. 만약
의미권으로서의 국제정치와 비교정치나 역사사회학으로서의 국제정치학 두 개가 서로
접합될 수 있는 국제정치는 없나. 내가 뵈에는 없는 것 같음. 거기서 얘기하는
의미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의 보편성을 띠는 과정을 권역으로 설정하고 이것을 서양이
먹어 들어갔는데…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의미의 보편성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해서 치열한
싸움이 있다. 그러한 운동이 있음. 기본 teleology 는 더 나아가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님. 구성주의도 가다가 멈췄음. Buzan 은 동아시아의 상황, 아시아 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international society 시각으로 동아시아를 보거나 complex 로 보거나 했음.
유럽사회학자들이 유럽에 대해서 의미권 연구를 진행하고 있음. 권역과 society 는 서로
teleology 가 다름. 그러면 우리가 어디에 줄을 설 거냐. Mann 에 설 거냐 Wallerstein 에
설거냐…동주한테 줄 서라고 하면 대개는 안 서겠지. 우리가 놓여있는, 즉 행위자가
포함되어 있는 역사사회학을 생각한다면 작아도 명품이 될 것임. 대국 속에 있는 한 쉽게
죽지 않을 것임. 우리가 아는 사람이 행위자 뒤에 서야 우리를 살찌우는 게 아닌지.
19 세기의 동아시아는 소프트 파워였음. 그렇기 때문에 동주의 책에서 더 포괄적인 얘기가
나오지 않았던 것임. 그때는 서구가 아주 하드파워였던 것으로 얘기해줘야 했던 것임.
서구의 하드파워가 와서 우리를 먹은 것임. 우리가 졌던 것은 서양을 끊임없이 소프트
파워의 시각으로 해석하다가 우리가 졌던 것임. 서양이 자기분열을 하면서 드디어 뒤늦게
소프트파워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런데 사실 서양이 소프트파워는 약했기 때문에 이제
스마트파워 정도를 추구한 것. 언젠가는 우리가 서구를 이제 먹겠다는 복수를 하겠다면,
이것은 1930 년대 일본의 발상이었음. 그게 아니라 그런 복수가 아니라 양쪽이 다 같이 잘
살고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답임. 진짜 일반국제정치를 보여줘? 하는
건방짐이 있어야 함. 그런 스케일이 있어야. 중국의 부상에 따라서 agent 와 structure 를
접목하는 정치를 하지 않으면 이제는 낙오할 것임. 30 년 후에는. 동주는 지적 욕심이
많아서 서양 실증주의를 나름 공부하려고 애를 썼는데, 동시에 서양 실증주의의
자기한계성을 봐야 하는 것임. 정신과학을 하는 쪽도 유신론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다면….Positivism 과 interpretivism 이 어느 순간에는 악수하는 공간이 드러나야
함. 그것을 해줄 수 있는 데가 있냐. 카첸슈타인이 절충주의를 얘기는 하고 있으나 본인은
정작 할 자신이 없음. 왜냐면 interpretivism 을 할 수 있는 방법론이 없으므로. 그것은
오히려 아시아 학자들이 해줘야 함. 우리도 중국의 부상을 통해서 어부지리를 얻을 기회가
생길 수 있음.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니라 실천론적인 것에 대한 해답을 하려는 글이었음.
당시 우리의 실패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임. 단지 동주가 책의 형태로 던진 것임. 아마도
동주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가 서양의 제국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국제정치학에 놀아나지
말고 제대로 된 국제정치학을 보여줄 테니 잘 봐 하는 생각으로 적은 글일 것임. 한국의
역사사회학이 새롭게 나오려면 우리는 오히려 동주한테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책은
그래서 책이 아님. 당시 이래서 우리가 망했으니까 이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의 해결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임.

김상배: 지금 우리가 던지는 teleology 에 대한 얘기를 한다면 대국에 대항하는 소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요즘 던지는 질문은 중간지대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냐에
대한 질문임. 대국이나 주변부가 아니라 중간지대에 대한 마인드가 있었는지 궁금함.

하영선: 월러스타인이 반주변부를 처음부터 넣었던 것이 아님. 대국의 국제정치학이냐
비대국의 국제정치학이냐 하는 질문은 여전히 의미가 있음. Middle 과 small 의 편차는
있는데 만약 라카토스 식으로 말하자면 core 가 아니라 belt 에 해당되는 argument 임. 큰
그림으로 얘기하면 Nation-state 를 넘어서 Kantian 의 세계로 갈 거냐, 루소의 세계를
바라다 볼거냐, 아니면 마키아벨리나 홉스의 세계를 바라다 볼 거냐 하는 질문을 해보면
동주는 철학적인, 사상사적인 대답을 하고 싶었던 것임. 그것이 <미래의 세계정치>가
논의하려는 것이었음. 그런데 유럽이 세계질서를 지금 주도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른 얘기임. 그것은 typology 에 대한 얘기임. 아시아는 지금 뜨는데
nationalism 의 치열성을 보여주고 있음. 유럽은 post-nationalism, 미국은 아예 supranationalism,
연방까지 얘기하고 있는데 아시아는 제일 뒤쳐졌는데 역동성은 가장 강함.
그러면 아시아가 이긴거냐…긴 얘기가 필요함. 아시아가 미래에 어떤 절묘한 mixing 을
만들어낸다고 하면 즉 베버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typology 가 다가올 것이냐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폭발력있는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임.

김상배: 그런데 동주가 얘기하는 근대국가론에서 유럽에 대한 얘기는 모델에 대한 얘기 즉
표준에 대한 이야기…구체적인 셋팅에서 그것이 힘이 있었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영선: 모델론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음. Nation-state 론, 국가연합론, 연방론은 동주의
분류방법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나 사상사적으로 그러한 국가연합론, 연방론, 세계국가론
으로 분류함. 유럽도 좀 잘 될 때는 국가연합이 미래냐 연방론이 미래냐 라는 논쟁이
있었음. 지금은 잘 안되니까 논의 안 하지만. mixing 되는 것은 사상이나 철학, 신학의
뉘앙스까지도 포함함. 전체와 객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얘기까지 나아감. 어떤
것이 미래의 모델이냐는 것은 역사적으로 사상사적으로 얘기할 만한 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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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세계정치연구회 녹취록
주제: 이용희 저서 토론 교재: 이용희 [미래의 세계정치]와 이용희, 노재봉 [한국민족주의]
사회: 김치욱 교수(울산대)
발제자: 이헌미 박사(서울대), 권미주 박사과정생(서울대)
일시: 2014 년 5 월 24 일
장소: 삼성경제연구원 51 호
토론패널: 하영선, 김상배, 전재성, 배영자, 김치욱, 민병원, 이승주, 이신화, 손열, 이왕휘, 도종윤, 조은정
< 토론 >
김치욱: 민족주의 개념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논의해보시죠. 국가적
화두인 통일의 마스터플랜, 그러한 그림이 우리가 삼아야 할 출발점이 아닌지. 경제만능주의가 아닌 문화적 측면도 고려해야. 민족주의 말씀을 하셨지만 긴 흐름에서는
민족을 극복하고 국가연합과 같은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이 의미 있게 다가왔음.

손열: 노재봉 선생은 <미래의 세계정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하영선: 아마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듯. 동주의 사회진화론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 고전적
현실주의자이므로. 동주는 낭만주의자인데 역사적 측면에서는 좀 순진한 부분 있음. 어찌됐든 한국에서의 지성사적 흐름이 너무 없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듬.

이왕휘: 예전엔 경제국가 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 굉장히 새로운 것임. 그때는 IPE 개념이
들어오지 않았음. 그러나 경제국가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뤄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음. 그 이유가 동주의 관심부족인지 아니면 냉전상황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음.

권민주: 분석은 부족했으나 경제가 핵심이라는 인식은 있다.

이왕휘: 경제공동체, 지역통합에 관해서 FTA 나 custom union 등에 대한 논의는 이미
독일에서 있었음. 그런 저작들이 있음. 그런데 그런 것이 중요하지만 저자의 초점은 다른데
있다는 측면에서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아서 내가 봤을 때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놓쳤음. 연합이나 연방에 대한 논의에서는 반드시 다뤄져야 하는 부분인데 <미래의
세계정치>에서는 빠져있음. 민병원: 후퇴라는 표현은 좀 안 맞는다. 경제에 초점을 안 둔 것은 일부러 그런 것 같음. 80 년대부터 외교학과 수업에서 정치경제 강좌가 생겼는데 이걸 학문으로 보지 않아서 좀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음. 새로 왔으므로 족보 없는 학문이라는 느낌 있었음. 당시 분위기가
그랬음.

손열: 어쨌든 왜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하영선: 유럽유형에서 군사적 요소는 없어지고 메인은 경제라고 대답했음. problematique 가
뭔지에 대한 논의가 걸린 것. 유럽연합이 재밌어서 끌고 온 것이 아님. 어떤 형태의
정치결사체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임. 세계사적 맥락에서의 변환 관점에서 모델의
추적이 아니었는지. 왜 경제 쪽 얘기를 안 했는가 하면. 설득의 방식에서 역사와
사상측면에서 얘기한 것임. 이 책 나오던 때는 미어샤이머의 EU 가 망할 거라는 Back to the future 논의가 나왔던 때임. 한 논의가 그 시대에서 얘기해지는 형태, 그러한 맥락을
고려해야 함. 지금 나의 context 로 그때의 context 를 이해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음. 내
것으로 만들려면 즉 3 단계적 리딩과 발제법이 필요함. 내가 한번 동주의 맥락으로
들어가봐야. 동주가 자기 context 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함.

이신화: 민족주의가 영어로는 nationalism 인데 ethnic group 도 민족으로 번역됨. 한국은
부락공동체였는데 민족주의가 우리에게 불타올랐던 때는 외세의 침입이 있었을 때임. 공동의 적이 있을 때 민족주의가 구체화됨. 이용희 선생의 선 국가 선 ethnic 의 개념은
동의하지 않음. 남아시아 민족주의는 굉장히 명료함. 그러면 중국은 nation 인가. 중국은
중화라는 이념으로 뭉쳐진 것임. 유럽연합이 모델이 되었으나 그 연합은 백인과 사상으로
이뤄짐. 이슬람이나 비백인을 넣으려고 했더니 문제가 생겼고 그 와중에 금융위기 왔었음. 아무리 유럽연합이 민족주의 극복하려고 해도 결국은 인종, ethnic group 을 극복하기 힘듦. 우리같이 정보화 혜택을 받은 세대는 좀 다른 접근법으로 민족주의를 정의해야 하지
않을지.

도종윤: 해석학적으로 접근하자면 마스트리티 조약이 만들어지던 시점이었는데.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외교의 면이 제도화되어 들어오던 때. 경제공동체가 정치공동체가 되려던
때임.이것을 민족주의 개념과 연관을 지어서 보자면, 유럽연합은 민족주의로는 설명이 안되는데.요즘은 nation 이나 ethnic 등의 표현은 유럽에서는 암묵적으로 금기되던 용어임. country 와 같은 용어를 썼음. 유럽연합에 대한 조약이 처음 만들어졌던 때인데 그
preamble 을 읽으셨었을는지 궁금함.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어떤 entiy 인지 알고 이 책을
쓰셨던 것인지도 궁금함. 발칸도 유럽으로 볼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임. 이 실체가 뭐가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음. 실제로 200 년대부터 유럽은 정체성 차원에서의
governance 논의가 있었음. multi-level governance 에 대한 관심이 유럽에서 있었는데 이것이
idea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추상적으로 갔음. 여기에 대한 언급이 동주 글에서 나오고는
있음. 우리는 민족이라는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데 유럽의 것으로 우리를 조망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것임.

김상배: 우리의 실천적인 고민과 연결되는 것이 민족주의 저서들에서 발견되고 있음. 그런데 모델 케이스로서의 유럽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파되었는가를 질문하고 있는데 모델
케이스의 자기변화를 보고 50 년 뒤 이것이 우리에게도 모델 케이스가 되려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 같음. nation 이 안과 밖으로 어떤 변환을 겪는지에 대한 논의는 이어갈
부분이 있음. 민족주의의 transformation 얘기도 있음. 그런데 현 시점에 대한 적용은 역시
어려움 부분 있음. 실천적 함의는 있으나. 현재의 사이버 민족주의나 탈근대 민족주의 등의
논의도 필요함.

배영자: 상당히 당시 하기 힘든 얘기를 하셨었음. 70 년 중후반에는 생각이 많이 바뀌신
부분도 있음. 민족주의에 대한 부분은 당시 말하기 힘든 부분이었을텐데 어떻게 입장이
바뀌셨는지 궁금함.

이승주: 지금 동아시아는 아직 주권이나 민족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 동주의
원래의 사고체계에서 이것이 어떻게 설명이 되었을는지 궁금함.

이왕휘: 이미 어느 정도 답을 가지셨는데 동아시아에 대한 적용까지는 저서로서 힘드셨을
것임. 지금 생각해보면 유럽은 우리의 모델 케이스가 되기는 힘들다. 동아시아는 다름. 그러므로 유럽의 모델 케이스가 우리에게 적용되어 그대로 전파되기는 무리임. 물론
경제적인 측면은 전파가 가능할 수는 있어도.

이헌미: 어떤 종류의 지역주의의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동아시아의 상황을 볼 때 동주
선생의 저서는 충격적임. 김상배: 전통과 근대의 복합얘기가 나옴.

이헌미: 그래도 확실히 근대주의자라는 생각이 듬. 전형적인 re-invention 하겠다는 생각이있어서 문화, 권역의 논의로 돌아갔다고 생각함. 문화를 통해서 민족의 소프트파워를 키워
나가자는 의식이 있었다고 봄.

하영선: 노재봉을 근대주의자로 보는 것은 맞는데 동주를 그렇게 보기는 힘듦. 김상배: 민족주의라는 식으로만 너와 나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 말고도 사대주의와 같은
방식도 있었음. 권역은 전혀 와닿지 않음.

조은정: 이헌미 박사가 생활감각으로 동아시아과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 아마도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한중일 사람들에 대한 느낌인 것 같은데 국가별로 느끼는 간극이 서로
다른 것 같음. 이왕휘: 동아시아 국가간의 경제적인 의존도는 높을 수 있겠음.

하영선: 연방제, 연합론은 모두 이제는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논리임. 190 년대 후반에도
내 시각에서는 구닥다리였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논의가 복합 네트워크 정도임. 동주의 민족주의 개념에서 주목할 것은 저항 민족주의를 넘어 전진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임. 당연히 당시의 동주 선생의 글을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 그 당시의 시각으로 비판해야 함. 1 차원적인 발제를 넘어서 한 단계 넘어선
발제가 필요함. 다시 말해, 이 책들에 대해서 어찌보면 선문답을 해야 할 수도 있음.


http://networkpolitics.ne.kr/userData/board/14011971168287220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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