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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3일 토요일

메리토크라시와 군중 노선이 중국이 찾은 자유민주체제 대안

“메리토크라시와 군중 노선이 중국이 찾은 자유민주체제 대안”

“메리토크라시와 군중 노선이 중국이 찾은 자유민주체제 대안”
신경진 중앙일보 기자 xiaokang@joongang.co.kr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賢能主義·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주도하는 정치)가 중국 특색의 민주다. 인재풀과 경제력에 기반한 중국의 국가 자율성은 세계적 수준이다. 이익집단과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롭다. 정당성 문제는 선거 대신 군중 노선과 군중평의로 해결할 수 있다.”
중국 사회과학계의 떠오르는 스타 장융러(章永樂·35) 베이징대 법학원 부교수가 간추린 최근 중국 정치가 가는 길이다. 장 교수는 지난 5월 30일 성균중국연구소(소장 이희옥)가 ‘현대 중국의 민주주의와 능력주의’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중국 특색의 민주정치’를 설명했다. 장 교수의 발표와 토론 내용을 문답식으로 재구성했다.
 
-중국식 민주란 어떤 정치인가.
“경쟁 선거에 기반한 서구식 민치(民治·by the people)보다 실질적 국민 혜택에 주목한 중국식 민향(民享·for the people) 정치다. 메리토크라시는 방법론이다. 국가 능력 방면에서 중국은 경쟁력을 갖췄다. 일당 정치라 해서 미래가 없는 ‘권위주의’ 체제라고 치부할 수 없다.”
-중국의 국가 자율성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서구 민주주의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복잡한 사회의 이익 관계를 전체적으로 통합하기 쉽지 않다. 국가 자율성(state autonomy)이 약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 측면에서 국가 자율성을 키웠다. 첫째, 강력한 조직력이다. 8500만 중국 공산당원은 국내 엘리트를 총망라한다. 이들이 민주집중제라는 이름으로 단일대오를 이뤄 나라를 이끈다. 둘째, 막대한 국유경제다.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의 경영 수익을 취한다. 이 규모가 상당하다. 이는 납세자와 국채 구매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서구 선진국이나 제3세계 민주국가와 다르다. 셋째, 당정 불가분 원칙이다. 당이 모든 관료를 관리하는 당관간부(黨管干部) 원칙은 인재 선발과 양성, 경쟁을 일원화시켜 현능주의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중국 정치체제의 경쟁력은.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간부 양성과 선발 제도다. 이는 자본의 ‘포획’과 가족에 기초한 연대로부터 정치를 구했다. 경쟁적인 선거 제도 아래에서는 사적인 자본 집단이 자신들의 대리인을 내세워 경선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기부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구매’한다. 중국에서는 사적인 자본 집단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대리인을 내세워 고위 행정직에 나서는 것이 쉽지 않다. 승진 시스템 안에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떤 정치 실험을 실시했나.
“2002년부터 2012년까지 간부 선발에 공추공선(公推公選)과 공추직선(公推直選)을 실시했다. 전자는 시험과 민주추천, 민의여론을 결합한 간접 선거방식이고, 후자는 경쟁적 직접 선거를 도입해 높은 투명도와 경쟁성을 보장한 것이다. 농촌과 기층 당조직 간부를 선발할 때 실행했다. 당조직이 추천하는 후보가 100%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당조직의 간부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간부들 사이에 파벌주의가 조장되기도 했다. 2013년 6월 이후 공산당은 더 이상 경쟁적 간부 선발 방식을 언급하지 않았다. 민의에 대한 당의 통합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산당의 정당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과거 공산당이 혁명 시기 주창했던 군중 노선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현재의 정치체제 구조를 바꿀 필요가 없어서다. 정책 결정자가 능동적으로 정책 대상자들 속으로 다가간다는 의미다.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아닌 ‘역방향의 참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책 결정자와 정책 대상자 사이의 관계와 상호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화가 필요하다. 기층에 군중 조직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군중에 친근함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친민노선’에 불과한 한계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와 함께 일반 시민이 지방 관료의 업적을 평가하는 ‘군중평의’도 시행 가능하다.”
-중국 정치가 서구식 자유민주정치의 대안이란 말인가.
“냉전이 끝난 뒤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의해 ‘역사의 종말’로 표현되었던 자유민주 정치체제는 ‘역사의 종말’을 실현하지 못했다. 경쟁 선거의 정치체제가 부적절한 양상을 내보였다는 의미다. 제조업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다. 선진국은 ‘탈공업화’됐다. 과세 대상이 크게 약화됐다. 정부의 세수가 날로 부족해졌다. 정부는 부자 증세를 이뤄내기 어려워졌다. 가난한 이들의 복지를 줄일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국채를 발행해 빚을 냈다. 이는 다시 국가의 자율성을 약화시켰다. ‘재공업화’ 전망 역시 요원하다. ‘제3의 민주화’를 경험한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쟁 선거는 사회집단 간 반목을 낳았다. 민족과 종교, 계급과 지역 모순이 선거에 이용됐다. 그 결과 정치 참여는 있지만 정치적 통합은 없어졌다. 충돌 중심의 정치는 국가의 공업화에 심각한 방해 요소가 됐다.
중국의 정치 탐색은 돋보인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신속히 추진되면서 중국 역시 사회 모순이 빈번히 발생했다. 정치 환경도 크게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의 집단 지도부는 정책적으로 높은 연속성을 보여줬다. 국내 및 국제사회의 충돌 속에서 유연한 자세를 취했다. 극단을 지양했다. 지방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앙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지도 않았다. 모두 메리토크라시의 성과다. 그 속에 내재돼 있는 국가 자율성도 큰 기능을 했다.
중국의 최근 30여 년의 메리토크라시는 강한 실용주의 방향을 취하고 있다. 다만 ‘민주의 차원에서 일종의 적자(赤字)’가 발생했다. 이 ‘적자’는 개혁을 통해 보충돼야 한다. 민주는 단순한 경쟁 시스템에 국한된 제도가 아니다. 중국은 지금도 100개 이상의 다양한 정치 실험을 하고 있다. 중국은 서구의 정치 발전 방식으로 그대로 모방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 중국은 인류에 다른 유형의 정치적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장융러(章永樂·35):베이징대 법학원 부교수. 저장(浙江)성 러칭(樂淸) 출신. 베이징대 법학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정치학 박사. 연구 분야는 헌법·행정법, 서방법률사, 중국 근현대사상사. ‘The Future of the Past: On Wang Hui’s Rise of Modern Chinese Thought’ New Left Review(2010)를 비롯해 『行政法論叢』 『中國社會科學』 등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 발표. 베이징대 법치연구센터 부주임, 베이징대 비평이론센터 주임조리 등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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